이것은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전기를 쓰는 한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어떻게 쓰는가가 문제다. 비타는 올랜도라는 젊은 귀족 남성이 돼야 한다. 리튼도 써야 한다. 사실 그대로. 그러나 환상적이어야 한다. (울프 일기 195쪽)


이 짤막한 일기 글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의 시작을 알 수 있다.

걸작 <등대로>를 쓰고 난 이후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주고자 약간 장난스런 기분으로 쉬는 마음으로 시작한 소설이 바로 <올랜도>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를 주인공의 모델로 하면서 연대기를 쓰듯 또는 연애편지처럼 가볍게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책의 시작은 다른 버지니아 울프의 책처럼 어렵지 않다.


16세기 끄트머리 이제 열일곱살이 된 올랜도는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름다운 귀족 소년이다.

얼마나 귀족이냐고?

그의 집에 엘라자베스 1세가 방문할 정도로.....

그 여왕의 방문의 날 그는 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식탁옆에서 종이와 맥주를 마주한 뚱뚱하고 초라해보이는 남자를 스쳐지나가는데 그는 바로 세익스피어.

그 때 느꼈던 기묘한 감각은 문학에 대한 올랜도 평생의 희구를 암시한다.


여왕은 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그를 궁정으로 불러 궁정귀족의 지위를 주고 그는 귀족청년으로서 승승장구한다.

그가 러시아의 공주 사샤를 만나기 전까지는....

약혼자가 있음에도 사샤에게 빠져드는 올랜도, 첫사랑은 너무도 강력하여 그의 눈과 정신 모두를 멀게 하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걸 버릴 수 있는 청년으로 만든다.

세상에 어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이 광기야말로 젊음의 특권인것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사샤는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많은 것이 복잡해보이는 여인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주인공은 올랜도이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둘이서 떠나자고 약속한날 그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고, 그날 내린 비로 런던의 얼음이 모두 녹아 런던은 대홍수에 휩싸인다. 

사나운 흙탕물이 쏟아지는 광경 속 수많은 집들과 사람들이 하염없이 떠내려가면서 보이는 온갖 광경의 묘사는 압권이다. 

떠내려 가는 얼음조각들 위에서 무릎을 꿇은 사람,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이, 성경을 읽는 사람, 개과천선을 맹세하며 기도하는 사람, 멍한 사람, 허세를 부리며 노래하는 사람, 아일랜드인에게 이 재해의 책임을 돌리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사람, 자신의 은주전자 같은 보물들이 가라앉는걸 차마 보지 못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 한 페이지의 묘사에 온갖 인간의 모습이 모두 자리잡은듯 하다.

이전 <등대로>에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던 버지니아 울프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결국 올랜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러시아로 떠나는 사샤의 배다.

첫사랑의 배신 앞에 놓인 올랜도에게 다다른건 부서진 옹기 하나와 지푸라기 하나(59쪽)다.

그의 젊음의 한 때가 끝났다. 


나는 <올랜도>를 반쯤 장난스런 문체로, 사람들이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 매우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다. 그러나 진실과 환상은 주의깊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울프 일기 201쪽)


아직은 그래 아직은 괜찮다. 읽을만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일기에서 얘기하듯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다지 않은가말이다.

실연 후 올랜도는 궁정에서 쫒겨나다시피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잠에 빠진다. 

이번의 첫 잠은 그리 길지 않다. 일주일.

첫사랑의 아픔이란 격렬할 뿐 그리 깊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의 생활은 고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고독해지는 순간 자기 내면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고, 올랜도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필생의 작업이 될 그의 단 하나의 작품 <참나무>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무엇을 쓰야할지 모른다.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들은 어쩌면 울프 자신의 어려움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랜도는 그래서 도움을 줄 사람을 구하기로 하고,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니콜라스 그린이라는 작가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야말로 뻔뻔한 사기꾼에 가까운 이로 올랜도의 글에는 관심이 없다.

자만에 가까운 자의식에 가득찬 이 인물은 자신이 필생의 역작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줄 후원자가 필요했을 뿐.....

니콜라스 그린과의 관계 역시 당연하게 인간에 대한 환멸과 배신으로 끝난다.

올랜도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 없이 누군가에 기대 삶의 기쁨을 찾거나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그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그린과의 관계가 보여준다. 여인이든 시인이든 관계의 끝이 허망한 것은 똑같다.

2장에서 올랜도의 삶은 고독을 지나 이제 다른 인생의 기쁨을 찾기 위한 온갖 시도로 점철되어 있다.

파티, 집장식, 전원생활 등등등....

그러나 그가 진정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그의 조용한 방에서 <참나무, 한수의 시>를 쓰고 또 쓸 때이다.

지워지는 것이 많아 늘 처음 시작점과 쓰여진 양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러나 그의 글은 현란함은 다듬어지고, 그의 장광설은 억제되었으며, 산문의 시대가 따뜻한 샘을 얼어붙게하고 있었다. (101쪽)

이런 올랜도에게 다시 자칭 루마니아의 대공부인 해리엇 그리젤다라고 하는 여인이 찾아온다.

올랜도의 초상화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며 올랜도의 집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는 매일 찾아오는 이 여인의 존재는 수상쩍다.

그 수상쩍음이 무엇이었는가는 책의 뒤편에 다시 등장한다.

기대하시라...... 입이 딱 벌어진다. 

어쨌든 이 여인의 구애는 올랜도를 곤혹스럽게 하고 도피하고싶게 만든다.

올랜도는 이제 터키 대사가 되어 터키로 떠난다.


<올랜도>, 이것이 이번 가을의 중심 과제다. 평론을 쓰고 있을 때는 하루나 이틀 아침을 제외하고는 결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없다. 오늘 아침에 제3장을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뭔가 배울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농담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런 평이한 문장이 좋다. 그리고 기분 전환으로 시도해본 양식도 마음에 든다. 물론 깊이가 너무 없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튀겨놓은듯. (울프 일기 202쪽)


깊이가 없다뇨. 

버지니아 언니 책 중에 이정도로라도 책장이 넘어가 주는 책은 이 책밖에 없었다고요.

그리고 이걸 평이하다고 하다뇨. 그저 등대로나 델러웨이 부인에 비해서 읽기가 좀 나은건 맞지만 이걸 평이하다고 하면 언니의 정신세계는 도대체 어디쯤에 위치해있는건가요?

그럼에도 언니의 문장은 여전히 사람을 혹 빨아들이니 그냥 계속 깊이가 없는 채로 가주시는건 어떨지요라고 막막 주장하고 싶은데..... 인생이 어디 뜻대로 되는게 있던가? 책도 내가 작가가 아니니 뜻대로 안 될게 뻔하고말이다.


터키대사로 콘스탄티노플로 간 올랜도는 매일 아무 의미없는 형식적인 외교적인 절차를 되풀이한 덕분에 공을 인정받아 공작도 되고 출세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는 어디서나 화제 만발이고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은 공허하다.

그리고 공작의 관을 쓰던 날 올랜도는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그의 꿈속에 순결, 정절, 겸손의 여신들이 들어와 올랜도에게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붓고, 진실을 외치는 고함들속에서 올랜드는 깨어난다.

이제 그는 여자가 되었다. 

이제 올랜도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집시와의 방랑이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다가 이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 여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경험에 대한 올랜도의 생각은 "여성들은 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 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139쪽)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남성으로서의 올랜도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이 이제 올랜도에게 다가온다.

자유롭게 살던 남성 올랜도는 여성적 미덕들로 추앙받는 것들이 그저 참고 견디는 훈련을 통해 강제된 것일 뿐이며, 남성일 때는 중요하지 않던 옷이 여성일 때는 다른 사람의 존중과 친절을 얻어 낼 때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심지어는 이제 여성이 된 그녀는 남성이 없이는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인간 올랜도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여성 올랜도는 남성 올랜도와 완전히 다르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전에 올랜도를 터키로 가게 했던 지겨운 루마니아 대공부인 해리엇이 다시 등장한다.

심지어 남자로.... 그는 해리엇 대공부인이 아니라 해리 대공이었던 것이다.

올랜도처럼 성별이 바뀐 것은 아니고 같은 성별인 올랜도의 초상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가 여장을 하고 올랜도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의 집 근처로 왔던 것.

이제는 올랜도가 여자가 되었으니 그는 여장을 멈추고 남성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인다.

아 이정도면 찐사랑인가?

올랜도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올랜도만을 바라고, 그는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 돋보인다.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므로 올랜도는 그런 맹목적인 구애에 당혹해하고 벗어나고싶을 뿐이다.

사실 이게 현실이지. 그리고 올랜도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맹목적인 사랑에 기대어서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올랜도는 올랜도 자신이 무엇인지를 여전히 고민하고 찾고 있다.

그녀의 내면에는 남자와 여자가 혼재해 있어, 하나의 성이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다음에는 다른 성이 우위에 서고(167쪽) 있는 중이다.


<올랜도>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쩌다 그처럼 그 자체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마치 태어나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밀쳐낸 듯하다..... 정신은 풍자적이고, 구조는 환상적이다. 정확히 그렇다. (울프 일기 206쪽)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빨리 썼다. 이 책은 전체가 농담이다. 그러나 즐겁게 빨리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울프 일기 212쪽)

다루고 있는 소재가 더 재미있으며, 인생에 더 애착이 있으며, 더 폭이 넓다고. 사실을 말하자면, 장난삼아 시작했던 일이 뒤에 가서는 진지해진 것이다. 그래서 통일성이 부족해졌다. (울프 일기 218쪽)


<올랜도>에서 시간은 순차적인 흐름을 보이지 않는다.

300년을 산 올랜도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잠이 들고 어느 지점에서 훅 시간이 지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100년전의 사람이 그대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맹목적으로 올랜도에게 구애하는 루마니아 대공이 그런 인물이다.

그러므로 300년의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미리 포기하고 읽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듯이 이 책은 환상에 그 구조를 두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말이 되냐고 하는 질문은 살짝 접어두어야 한다.

5장에 이르면 이제 19세기다. 

5장의 시작은 19세기 영국 사회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영국의 기후 변화와 그것이 인간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 남녀의 성차가 오히려 강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현실등을 묘사하는데서는 그녀가 얼마나 민감하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신 내에서 자아를 완성해가는 올랜도는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을 "인생! 연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 남편!"이 아니라...

그러나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시대정신은 여성에게 철저하게 억압적이었고, 이전의 보다 느슨한 사회를 살아왔던 올랜도에게는 구속과 패배로 느껴진다.(여기서 영국인인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 나라의 각 시대에 대한 평가도 엿볼수 있다.특히 여성의 위치에 입각한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상징하는 복장이 크리놀린 드레스라면 올랜도에게 이 드레스는 자유로운 삶을 구속하는 억압에 다름 아니다.(크리놀린 드레스는 옷 자체로 여성억압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 드레스를 입기 위해 허리를 극단적으로 조이는 모습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리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이 드레스는 이후 어떤 저택에 화재가 났는데 남자들은 다 무사히 탈출했는데 크리놀린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작은 문을 통과하지 못해 대부분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이후 엉덩이 부분만 부풀린 버슬 드레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영화 올란도의 한 장면>


소설 <올랜도>에서는 이처럼 곳곳에서 복장을 매개로 한 여성 억압과 사회적 편견을 보여주는 곳이 등장한다.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예리한 시선이 미치지 않은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잠시 올랜도는 시대정신에 굴복해 결혼을 열망하지만 이 열망은 진정한 열망이 아니라 시대에 어떻게든 편승해보려고 결혼을 열망하는 듯이 자신을 속여보기도 하고, 몰래 결혼반지로 유행하는 스타일의 금반지를 사서 손가락에 끼워보기도 한다. 

또한 점차 자신을 잃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맞춰지는 자신의 행동양식, 마음의 변화에도 당황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묘사하는 것은 정말 버지니아 울프만이 할 수 있는 서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자연과 주인공의 마음을 교차시키면서 온갖 비유들을 모두 주인공의 심리변화에 복속시키는 길고 긴 서술이 장황하지 않게 주인공의 마음에 독자가 깊이 감정입하도록 고조시키는 글쓰기의 힘은 박력 그 자체다.

이러니 어떻게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 빨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어쨌든 모두가 예상하듯이 올랜도는 자랑스럽게 이런 굴복에서 벗어난다.

올랜도가 누구인가?

300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온갖 삶의 과정과 심지어 여성과 남성의 삶까지 모두 섭렵한 인물이 아닌가?

이런 인물이 비인간적인 시대적 억압에 굴복한다면 이 소설은 살아남지 못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잃어간다는 초초감속에서 헤매이는 순간 올랜도에게 진짜 사랑이 나타난다. 

그들은 만난지 몇 분만에 약혼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쉘, 당신은 여자예요!" 그녀가 외쳤다.

"당신은 남자예요, 올랜도!" 그가 외쳤다.(221쪽)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이 남자에게도 올랜도에게도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다.

그들은 둘 다 남자일수도 여자일수도 있는 그저 자존감과 자신의 고유성과 삶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된다.

올랜도와 달리 이 남자에게는 어떤 구체성도 부여되지 않는다.

그는 올랜도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리고 바람이 불면 항해를 위해 떠난다.

사랑과 결혼이 서로의 삶의 형태를 간섭하지도 바꾸지도 않는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살고 그리고 사랑한다.

이제 올랜도는 자신의 필생의 과업인 <참나무>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234쪽)


올랜도는 이제 마음껏 "신난다. 신난다."를 외칠 수 있는 인간, 세상이 바뀌어도  불변하는 것이 있음을 자각하고 누릴 수 있는 인간, 삶의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으로 드디어 태어난다.


그러나 <올랜도>는 확실하고 분명하고 압도적인 충동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나는 장난을 하고 싶었다. 나는 공상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사실인데) 사물에 만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 기분은 아직도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울프일기 232쪽)


확실히 <올랜도>는 이전에 읽은 <댈러웨이 부인>이나 <등대로>와는 많이 다른 책이다.

아마도 맘껏 상상하고 환상을 창조하고 싶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 반영된 탓일테다.

그럼에도 이 책은 누가 봐도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라는 것을 조금만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온갖 사물과 상황과 정경들을 주인공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서술이 버지니아 울프의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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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1-19 00:38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랜도를 울프 일기와 함께 읽었어요.
그래서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고 너무 무겁게 접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말 버지니아 울프가 아니면 이 소설을 누가 쓸 수 있을까요!
그냥 올랜도가 버지니아 같았어요^^

바람돌이 2022-01-19 00:57   좋아요 7 | URL
작년에 이어 버지니아 울프 전작 읽기에 계속 도전 중입니다. 읽다보니 올랜도가 처음과 뒷부분이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좀 고전햇어요. 그래서 좀 더 이해해 보려고 사두었던 울프일기를 펼쳐 읽었는데 이게 의외로 도움이 되더라구요. 버지니아는 이 책을 비타에게 헌정하고 그녀를 모델로 했다지만 저도 오히려 버지니아 그녀 자신으로 읽히더라구요.

새파랑 2022-01-19 00:36   좋아요 1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은 <올랜도>를 재미있게 읽으셨군요 ^^ 저는 울프 책중 이 책이 제일 어려웠어요 ㅎㅎ 시대와 공간이 급하게 변하다 보니 못따라가겠더라구요 ㅋ

<울프 일기>와 함께 읽으셔서 더 좋았을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19 00:59   좋아요 7 | URL
이 책이 초반에 좀 읽기 쉬워서 오 버지니아 울프 언니 고마워요 읽다가, 뒷쪽에서 뒤통수 확 후려치는.... ㅎㅎ
그래서 저는 울프일기도 같이 읽었지만, 이 글 쓰면서 거의 책을 다시 보다시피 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등대로보다 더 어렵다는 느낌 이해가 가기도 해요. 뒷부분 읽으면서는 저도 막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요. ^^

희선 2022-01-19 02:0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올랜도는 삼백년이나 살았군요 시간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다니...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을 즐겁게 쓴 것 같네요 자신도 올랜도처럼 되고 싶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결혼도 그때와는 많이 달랐겠습니다 이것도 버지니아 울프가 바라는 거였겠네요


희선

Falstaff 2022-01-19 06:23   좋아요 7 | URL
올랜도, 아직 살아 있어요. 어제 신도림역 3번 출구에서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민 온 건 아니고 잠깐 다니러 왔다고 BBC에서 얘기했던 게 기억나기도 하고요. 영어방송이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stella.K 2022-01-19 15:51   좋아요 4 | URL
골드문트님 또 취기가 오르셨나 봅니다. ㅋㅋ

희선 2022-01-21 00:02   좋아요 2 | URL
올랜도가 아직 살아 있군요 지금은 여성일지 남성일지... 여성으로 여성이 살기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1-22 16:22   좋아요 1 | URL
??? ㅎㅎ

바람돌이 2022-01-22 16:25   좋아요 3 | URL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 인간으로서 소중하고, 결혼이든 뭐든 그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하는데 삶의 기쁨이 깃들수 있다는 점에서 올랜도는 지금의 모든 인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골드문트님이 비록 취기에 하신 말씀이지만 바로 이런 뜻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맞죠? ㅎㅎ

다락방 2022-01-19 08:28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오, 울프 일기와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된다니, 좋은 팁 얻어갑니다. 일단 그러면 울프 일기를 사야겠네요. 이런 참...

바람돌이 2022-01-22 16:12   좋아요 3 | URL
올랜도를 읽을 때 너무 심각해지지 않도록 어느정도 지침을 주더라구요. 이번에 저도 처음 시도해봤는데 앞으로 울프 책 읽을 때마다 울프 일기와 함께 읽어야기 생각하게 되었어요. 울프 일기가 또 벽돌책이라 한꺼번에 읽기에는 또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또 일기다 보니까 특정한 흐름이 없어서 리듬을 타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읽으니 울프 책도 이해가 잘되고, 울프 일기도 잘 읽어지고 1석2조라죠. ^^

책읽는나무 2022-01-19 08:5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도 꿀팁이에요^^
예전에 울프 책 읽다가 어려워 포기했었는데 전작하려고 일단 조금씩 책 사다 놓기만 하고 있거든요. 올랜도 책 보니까 솔 책인 것 같아 반가웠어요. 저도 솔 출판사로 깔맞춤 결정 내려 현재 두 권 모셔 놓았습니다ㅋㅋㅋ
그런데 울프 일기도 미리 읽어야 하는군요??
아........

바람돌이 2022-01-22 16:15   좋아요 4 | URL
아 나무님 울프일기 사신 페이퍼 봤어요. 죄송해요. 벽돌책이건 얘기 안해서....ㅠ.ㅠ
울프일기는 한번에 완독은 못하겠더라구요. 울프 연구자도 아닌 우리가 그냥 쭉 읽어내려가기에는 재미가 없어서... 어쨌든 일기잖아요. ㅎㅎ 울프 책과 함게 그 책이 출간된 연도 찾아 전후로 읽어주는 방법으로 읽으려고 하고 있어요. ^^ 아 그리고 제 경우엔 울프 일기를 미리 읽는 것 보다는 책을 읽고 후에 읽는게 더 좋았던거 같아요.
저도 솔출판사 깔맞춤으로 사고 있는데 지금 6권 샀어요. 다음에 출항 읽으려고 준비 중.... 여기서 고민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등대로를 사서 시리즈를 완성하느냐 마느냐라죠. 물론 등대로에서 울프에게 혹 반한 저이니 아마 사겠죠? ㅎㅎ

미미 2022-01-19 09:39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 울프일기는 조금 읽다 말았는데 이렇게 도움이 되는 줄 알았으면 <올랜도>읽을 때 같이 볼껄 그랬어요! 바람돌이님 이 글, <올랜도>를 앞으로 읽을 분들에게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줄 듯 합니다. 다시 감동이 살아나면서 한 번 더 읽은 기분이예요 ^^ <올랜도>도 재독하고 싶어졌어요!!

바람돌이 2022-01-22 16:17   좋아요 3 | URL
울프 책은 계속 재독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요. 저는 댈러웨이 부인이랑 자기만의 방은 리뷰를 못썼는데 그 이유가 다시 읽어야 뭔가 울프를 제대로 읽은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막 들더라구요. ㅎㅎ 나중에 울프 다른 작품들 다 읽고 나면 저 책들도 다시 읽고 울프 일기랑도 같이 읽고 리뷰에 도전할래요. ^^

단발머리 2022-01-19 11: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울프 전집읽기 계획 세우고 딱 두 권 읽었거든요. 아.... <올랜도> 읽을 때 일기도 같이 읽었어야 하는 것을.
바람돌이님 계속 읽으신다고 하시니 저도 슬쩍 다시 계획세워볼까 합니다.

바람돌이 2022-01-22 16:18   좋아요 4 | URL
저도 작년에 전집읽기 계획 세웠지만 몇권 못읽었습니다. 뭐 그러면 어때요. 올해 또 도전하면 되죠. 그쵸? ㅎㅎ
단발머리님의 올랜도 리뷰 마음 설레며 기다리겠습니다. ^^

stella.K 2022-01-19 15: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옷 때문에 불타죽다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까마득히 오래 전에 <댈러웨이 부인> 읽다 포기한 적이 있는데
<올랜도>는 정말 흥미롭네요. 울프의 상상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영화도 함 봐야겠군요.^^

바람돌이 2022-01-22 16:20   좋아요 4 | URL
저 드레스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싶습니다. 치마를 너무 부풀리다보니 안에 들어가는 심이 장난 아니게 강한 거라서 말이죠. ㅎㅎ 댈러웨이 부인보다는 저는 올랜도가 읽기 좀 나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인물이 좀 댈러웨이 부인보다는 흥미롭다고 할까요? 저도 댈러웨이 부인 보면서는 부인이 너무나도 맹숭맹숭하여 좀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그레이스 2022-01-19 19: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환타지같은 이야기 !
21년에 읽었는데 굉장히 오래된것 같은 건 소설내용때문일까요?

바람돌이 2022-01-22 16:22   좋아요 3 | URL
진짜 환타지인데 또 앞뒤 선후관계나 개연성 같은건 거의 밥말아먹은 것 같아서 논리에 익숙한 저같은 사람에겐 좀 그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럼으로써 환타지성은 더 강화된 것 같다는 생가도 들고요. 작년에 읽었는데 오래 된 것 같은 이유는 저는 지금 막 읽었으므로 내년에 답해드릴게요. ^^

mini74 2022-02-10 1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쓰셔서 부러웠던 글 ㅠㅠ 2관왕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2-12 01:04   좋아요 1 | URL
오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2-02-10 1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우 2관왕 울프네요 ㅋ 축하드립니다. 방학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바람돌이 2022-02-12 01:0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2월 개학했다가 이제 다시 방학입니다. 한동안 엄청나게 바빴습니다. ㅎㅎ 문제는 다음주는 또 출근이라는.... 하지만 학생이 없는 학교 출근은 천국입니다. ^^

그레이스 2022-02-10 1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2관왕~~!

바람돌이 2022-02-12 01: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울프여사가 참 저에게 많은 것을 주네요. ^^

희선 2022-02-12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즐겁게 보시고 쓰신 글이어서 기쁘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2-12 01:06   좋아요 1 | URL
버지니아 울프,김초엽 둘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 더 기쁜게 맞는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2-02-12 0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바람돌이님 축하드려요^^
스콧님의 사울 레이터 책이랑 이어 바람돌이님의 요 페이퍼를 읽고 구매한 울프 일기였었는데....
역시 나의 안목!!ㅋㅋㅋ
제 구매로 이어지게 만든 페이퍼가 당선되니 기쁩니다^^

바람돌이 2022-02-13 16: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이 소개한 사울 레이터 책은 저도 이번달에 구매하려고 대기중이에요. 사진이 아무리 봐도 진짜 멋지더라구요. 나무님의 안목이야 항상 옳습니다. ^^
 

 죽음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곳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내가 목격해온 폐허의 적막과고요는 어디까지나 살아서 그것을 목격하는 이들의 것이었다. 적어도 죽어가는 이들의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다.
- P30

나는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셀을 만난다. 그는 무너져 내리는 도시를 지키며 소리 내어 웃고 있다. 파편들이셀의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그 풍경 속에는, 내가 아닌 라이오니가 있다. 죽어가는 셀의 곁에서 라이오니는 셀의 손을 잡는다. 둘은 멸망을 맞이하고 있지만 불행하지 않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의 원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최후이자 유일한 존재였던 라이오니의 모습을,
- P53

"이상하지 않아요. 보통은 플루이드를 우연히 경험한사람들, 모그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전환을 고민해요. 플루이드는 모그가 된다는 게 결핍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요. 변화인 거죠. 어쩌면 진보일 수도 있어요."
- P85

 그럴 때 움직임은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것이었다. 근육 속에, 피부의 표면 아래, 혈관 속에. 마리와춤을 출 때 나는 구체성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웠다.
- P86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어떤 선택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치료를 받지 않은 채 계속 모그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고, 사회적인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분명히 그런 선택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시 시각을 회복했지만, 이제야 모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논쟁적인 선택은 모그에 관한 다른 논쟁들을 이끌어냈다.
사람들은 모그들의 존재를 갑작스레 알아차렸고, 그 사실에 놀랐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은 그 사건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 P94

봐, 지금도 그 팔이 너를 만지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포옹할 때 나는 세 번째 손을 이용해서 네 뺨을 쓰다듬어.
그런데 그게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내가 어떤 틈새에 낀 존재 같다고 느껴, 진, 네 감정에 대해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냐. 내가 너라면,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고도 생각했어."
- P118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 P126

숨그림자의 사람들은 조안을 결코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안도 그것을 느낄까.
아마도 말과 말 사이에 벽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단회는 생각했다. 조안과 숨그림자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기위해서는 이중 통역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했다. 조안과의대화는 매우 느렸다.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 P169

"사람들이 나를 위해 대화를 멈춘 적 있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서로 주고받는 걸 중단한 적이 있어?
공기가 침묵으로 가득 찬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 그런 적이 없다면, 나는 여기 속한 적이 없는 거야."
- P174

우리의 긴 삶에 비하면 너희의 삶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 그러니까우리가 행성의 시간을 나누어 줄게.
그리고 그들은 오랜 잠에 빠져들었어요.
- P223

"그렇게 말하지만, 너도 이 순간을 잊게 될걸."
"어째서?"
"공동 지식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감정과 생각나 일상은 시시하고 단조로워. 기억할 가치조차 없을 거야. 우린 더위대한 세계를 만나게 될 거야."
- P237

그 이후로 나는 이브를 피했다. 공동 지식에 자신의 뇌를 넘기지 않겠다는 그 애의 말을 생각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만약 이브의 말을 인정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헌신해온 이 공간의 의미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이브는 몇 번이고 나를 설득하기 위해 내 집 앞에 찾아왔으나, 도저히 이브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 P262

한동안 이브는 격자 구조물의 어딘가에 남아 있겠지만, 나중에는 그 위에 새로운 정보가 덧씌워질 것이다. 모든 기억은 낡아가고, 시간의 흐름 앞에서 그 가치를 시험당하며, 남을 가치가 없는 기억은 지워진다.
- P264

인지 공간이 모든 지식을 제공하는데 왜 개별적인 인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별들을 기억하기에 하나의 인지 공간은 너무 작거든.
그래서 우린 그 기억들을 나눠 가져야 해.
- P266

불변하는 진리는 모두의 인지 속에서 동일해야 한다고사람들은 여전히 믿는다. 하지만 스피어가 정말로 분열일까? 스피어를 갖게 된 우리는 정말로 같은 격자를 보고도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공동 인지 공간을 거닐면서도각자의 스피어를 통해 진리에 대한 다른 해석을 하게 될지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더 많은 종류의 진실을 만들어내는 다른 방법일 수도 있다.
만약 이 인지 공간이 우리의 확장된 사고라면, 그 사고가 우리의 개별적인 영혼에 깃들지 못할 이유는 어디 있을까?
- P268

우리는 다르게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로각자 다른 인지적 세계를 살고 있다. 그 다른 세계들이 어떻게잠시나마 겹칠 수 있을까, 그 세계 사이에 어떻게 접촉면 혹은 선이나 점, 공유되는 공간이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난 몇 년간 소설을 쓰며 내가 고심해온 주제였다. 그 세계들은 결코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고 공유될 수도 없다.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다.
- P322

하지만 안녕, 하고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몇 안 되는 순간들, 그럼으로써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되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게 하는 교차점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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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졌다. 힘이 쭉 빠졌다.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 색깔도 없었다. 지구는 죽어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공이 하나 튕겨져 나온 것처럼 구름에 다시 색깔이 나타났다. 그것은 섬광 같은 옅은 색깔에 불과했다. 빛은 그렇게 돌아왔다. 빛이 사라졌을 때 나는 뭔가 거대한 순종이라는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언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빛들이되돌아오자 갑자기 일어나는 것 같은, 빛은 놀랍도록 가볍고, 재빨리, 그리고 아름답게 골짜기와 언덕 위에 되돌아왔다 - 처음에는 기적 같은 반짝임과 경쾌함으로, 그러고는 거의 정상으로, 큰안도감과 함께 (잠시 색깔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신선하고 다채롭게, 여기가 파랑색인가 하면 저기는 밤색, 모두가 새로운 색깔이어서, 마치 한 번 씻어내고 다시 칠을 한 듯했다 - 울프 주).
- P193

이것은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전기를 쓰는 한 방법이될지도 모른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어떻게 쓰는가가문제다. 비타는 올랜도라는 젊은 귀족 남성이 돼야 한다. 리튼도써야 한다. 사실 그대로, 그러나 환상적이어야 한다. - P195

이 화끈거려, 늘 먹던 계란을 먹지 못했다. 나는 『올랜도』를 반쯤장난스런 문체로, 사람들이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매우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다. 그러나 진실과 환상은주의 깊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 P201

『올랜도』, 이것이 이번 가을의 중심 과제다. 평론을 쓰고 있을 때는 하루나 이틀 아침을 제외하고는 결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없다. 오늘 아침에 제3장을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뭔가 배울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농담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런 평이한 문장이 좋다. 그리고 기분 전환으로 시도해본 양식도 마음에 든다. 물론 깊이가 너무 없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튀겨놓은듯. 
- P202

『올랜도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쩌다 그처럼 그 자체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마치 태어나기 위해주위의 모든 것을 밀쳐낸 듯하다. 그러나 지금 3월 부분을 다시읽어보니, 실제는 그렇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바로 그 당시 내가 계획했던 대로의 엉뚱한 작품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정신은풍자적이고, 구조는 환상적이다. 정확히 그렇다.
그렇다. 여기 반복해 두겠다. 매우 행복한, 이상스럽게 행복한가을이다.
- P206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빨리 썼다. 이 책은 전체가 농담이다. 그러나 즐겁게 빨리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휴일 같은 것. 앞으로 다시는 소설을 쓰는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더욱 강해진다. 운을 맞춘 시의 단편이 떠오른다. 우리는 토요일에자동차로 프랑스를 횡단하고, 4월 17일에 귀국해서 여름을 지내게 될 것이다. 시간이 날아간다. 정말 그렇다. 여름이 다시 돌아오고, 나에게 아직 그 여름을 찬탄할 능력이 있다니. 세상이 다시 눈부시게 돌아가고, 푸르고 파란 색깔을 바로 눈앞에 가져다주다니.
- P212

그렇다. 이제 『올랜도」는 끝났다. 10월 8일에 장난삼아 시작했던 것이 그런데 내 취향치고는 좀 길어졌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
가 한 마리도 못 잡은 격이다. 농담치고는 너무 길고, 진지한 책치고는 너무 경박할는지 모른다.  - P212

그러나 유일하게 흥분되는 삶은 상상 속의 삶이다. 머릿속에서 자동차 바퀴가돌기 시작하면 돈도 별로 필요 없고, 드레스나 심지어는 로드멜의 집을 위한 찬장이나 침대, 소파도 필요 없어진다.
- P216

L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올랜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이것이 『등대로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다루고 있는 소재가 더 재미있으며, 인생에 더 애착이 있으며, 더폭이 넓다고. 사실을 말하자면, 장난 삼아 시작했던 일이 뒤에 가서는 진지해진 것이다. 그래서 통일성이 부족해졌다.  - P218

리얼리티란 내 바로 앞에서 보는 어떤 것이다. 뭔가 추상적인 것. 그러나 언덕이나 하늘에 있는 것. 그것에 비하면 무엇 하나중요한 것이 없다. 그 안에서 나는 쉬고,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리얼리티라고 부른다. 그리고 때때로 리얼리티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그것을 찾는다. 그러나 누가 알랴, 일단 펜을 들고 쓰기 시작하면? 리얼리티는 하나인데, 우리가 글을 쓸 때는 리얼리티를 이런 것, 저런 것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내 재주인지도모른다. 아마도 그 재주가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리얼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에 이처럼 날카로운 감각을갖는다는 것은 드문 일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반복하거니와, 누가 알랴? 내가 이것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P225

그러나 『올랜도는 확실하게 분명하고 압도적인 충동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나는 장난을 하고 싶었다. 나는 공상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사실인데) 사물에 만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 기분은 아직도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나는 역사를 써보고 싶다. 이를테면 뉴넘 대학이나, 같은기분으로 여성운동에 관한 역사를, 이 기분은 내 안의 깊은 곳에있다. 적어도 반짝이며 절박한 상태로, 그러나 이것이 칭찬에 자극된 것은 아닌가? 지나치게 자극을 받은 것은 아닌가? 천재를쉬게 하기 위해서는 재능이 담당해야 할 직무가 있다는 것이 내지론이다. 내 말은 사람들은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능이 단순한 재능일 때는 사용되지 않은 재능이다. 반면 재능이진지할 때는 일을 한다. 이처럼 한쪽이 다른 한 쪽을 쉬게 한다.
- P232

 우선 명성의 문제가 있다. 「올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써나갈 수 있다. 그렇게 하라고들 성화다. 사람들은 그 작품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나도 할 수만 있다면, 다른 특징을 잃지 않고 그런 특성들을 지키고 싶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대개 다른 특성을 희생시킨 결과다.
다시 말해 외면적으로 글을 쓴 결과다. 만약에 깊이 파내려간다.
면 이런 특성을 잃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면적인 것과 의면적인 것에 대한 내 태도는 무엇인가? 어느 정도 글을 편안하게, 탄력을 받아 써내려 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외면성마저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둘을 합치는 것도 틀림없이 가능할 것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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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하고 싶은 것만큼 큰 욕망은 없다.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깎아내리는 느낌만큼 우리의 행복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우리를 분노로 채우는 것은 없다. - P133

올랜도는 자기가 젊은 남자였을 때,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하고, 세련된 차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이 났다. 앞으로는 그런 요구들을 내가 몸소 감내해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여성으로서의 나의짧은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  - P139

"내가 성숙해지고 있는 거야" 라고 그녀는 양초를 집어 들면서생각했다. "나는 새 환상들을 얻기 위해 이전의 환상들을 버리고있는 중인지도 몰라." 그리고 그녀는 긴 회랑을 걸어 내려가 침실로 갔다. 이것은 불쾌한 동시에 성가신 변화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굉장히 흥미롭다고 그녀는 장작이 타고 있는 난로 쪽에 두 다리를 뻗으면서 (거기에는 선원이 없었으니까) 생각했다. 그러고는 과거에 있어서의 자신의 발자취를 마치 큰 건물들이 줄지어선 대로를 보듯이 되돌아보았다.
- P155

우리는 옷이 팔이나 가슴의 형태를 갖도록 만들지만, 옷은 우리의 가슴, 두뇌, 혀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다. 이리하여 스커트를 입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지금, 올랜도는 눈에 띄게 변해, 심지어는 얼굴마저 달라져 있었다. 남자 때의 올랜도와 여자 때의 올랜도를 비교해보면, 두 사람은 틀림없는 동일 인물이지만, 어딘가 다르다.  - P166

남자는 세상이 마치 그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여자 올랜도는 비스듬히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본다. 그들이 만약 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의 태도도 같았을는지 모른다.
- P167

그리고 또한 습기는 습기를 막을 재주가 없었으므로 - 목공예품으로 들어간 것처럼 잉크병에도 들어왔다 ㅡ 그 결과 문장이 불어나고, 형용사가 늘어나고, 서정시는 서사시가 되고, 한 칸 정도 길이의 에세이로 쓸 수 있었던 것이 열 권, 스무 권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 P202

이것이 그녀의 성미에 도통 맞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대공의 마차 바퀴 소리가 사라졌을 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외침은 "인생! 연인!" 이었지 "인생! 남편!" 이 아니었고, 앞 장에서처럼 그녀가 런던에 나와 세상을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도 이목적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대정신의 본성은 단호해서, 누구든맞서려는 자는 순종하는 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때려눕히는 것이었다. 올랜도는 천성적으로 엘리자베스 시대 정신, 왕정복고 시대정신, 18세기 정신이 더 기질에 맞았으며, 그 결과 한 시대로부터 다른 시대로의 변화를 거의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19 세기정신은 그녀의 성미에 전혀 맞지 않았으며, 그것은 그녀를 붙잡아 망가뜨렸고, 그녀는 그 손에 걸려 전에 없는 패배를 맛보았다.
인간정신은 스스로에게 맞는 할당된 장소가 있는 것 같았고, 사람은 각각의 시대의 소산이다.  - P214

 "나는 오랜 세월을 거쳐 행복을 찾아다녔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명성도 찾아다.
녔지만 놓쳤고, 사랑은 아직 알지 못한다. 인생을 - 아니, 죽음이더 낫다. 나는 수많은 남자와 여자를 알아왔는데" 라고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아무도 이해하지는 못했다.  - P218

"그렇다면 좋다" 라고 올랜도는 이런 때 사람들이 그렇듯 유쾌하게 말하고는 또 다른 자기를 불러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 수용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한 개인은 수천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데도, 전기에서는 예닐곱 개의 자아를 묘사하는 것으로 일이끝난 것으로 간주한다.  - P272

"기러기다!" 올랜도가 소리쳤다. "기러기 .…"
그러자 자정을 알리는 12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1928년 10월11일 목요일, 자정을 알리는 12번째 종소리였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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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젊은 시인들의 영원한 테마인 자연을 묘사하고있었는데, 초록빛의 섬세한 농도를 정확히 표현하고자 그는 사물그 자체를 관찰했는데(이 점에서는 그는 누구보다도 대담했다),
그것은 마침 창 밑에서 자라고 있던 월계수 덤불이었다. 보고 나서는 물론 더 이상 그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자연 속의 녹색과 문학 속의 녹색은 별개의 것이다. 자연과 문학은 선천적으로 상극인 것 같다. 둘을 함께 있게 하면 그들은 서로를 찢어발겨 놓는다.
- P17

올랜도가 지금 본 초록색의 명암은 그의 시의 운과 박자를 망쳐놓았다. 게다가 자연은 나름대로의 책략을 가지고 있다. 일단 창밖 꽃들 사이에 있는 벌들, 하품하는 개, 지는 해를 바라보게 되면, 또 "몇 번이나 더 저 노을을 보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이 생각은 너무도 잘 알려진 것이라 여기 적을 가치도 없지만)우리는 펜을 내려놓고, 외투를 들고, 방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가다가, 페인트칠을 한 서랍 상자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일 따위가생긴다. 왜냐하면 올랜도는 약간 굼뜬 편이었으니까.
- P18

여자였다. 올랜도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몸이 떨렸다. 몸이 뜨거워지더니, 오한이 왔다. 여름 대기 중으로 뛰어나가고 싶었다. 도토리를 밟아 으깨고 싶었고, 자작나무와 참나무를 끌어안고 싶었다.  - P36

말에서 뛰어내리자, 격노한 올랜도는 마치 홍수를 밀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무릎까지 물이 차는 곳까지 들어가서, 그는 지금까지 세상의 여자에게 퍼부었던 있는 욕이란욕은 모조리 이 배신한 여인에게 퍼부었다. 그는 그녀를 배신자,
변덕쟁이, 바람둥이, 악마, 간음녀, 사기꾼, 등등으로 불러댔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그가 하는 말을 집어삼키고, 그의 발치에 부서진 옹기 하나와 지푸라기 하나를 던져 놓았다.
- P59

저런 훌륭한 신사에게 책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책은 그가 아니고 반신불수 환자나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읽게 하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 P68

일단 독서병에 걸리면, 몸의 기관이 약해져서 쉽사리 다른 재앙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잉크 방 안에 숨어 있고, 깃털 펜 속에서 높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병자는 글을 쓰기 시각한다. 이것은 가진 것이라고는 비가 새는 지붕 아래 놓인 의자 하나와 테이블뿐이어서, 잃을 것이 별로 없는 가난뱅이에게도 문제려니와집이 있고, 가축이 있고, 하녀들이 있고, 나귀들과 리넨이 있으면서 글을 쓰는 부자의 경우에는 그 입장은 참으로 딱하다. 이런 물건들을 즐길 수 없다. 그는 온몸에 뜨거운 인두질을 당하고, 해충에게 물리게 된다. 그는 작은 책 하나를 쓰고 유명해지기 위해 전재산을 탕진한다(그만큼 이 해충은 질이 나쁘다). 그러나 페루의금을 모조리 다 쓴다고 해도, 그는 한 줄의 멋진 표현이라는 보석을 살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탈진해서 병이 들고, 권총으로 뇌를날려버리거나, 절망 끝에 얼굴을 벽으로 향한다.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이미 죽음의 문을 지나 지옥의 불길에 태워진 뒤니까.
- P69

어머니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책을 쓴다는 것, 더군다나 출판한다는 것은 귀족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치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70

그런데 그는 왜 그들보다 앞서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은 사라진 무명의 사람들이 힘들여 이루어 놓은 창조물을 능가하려고 애쓰는 것은 극도로 허망하고 교만하게 보였다. 유성처럼 빛나고,
먼지 하나 남기지 않는 것보다 무명인채로 살고, 뒤에 아치 문 하나 남기거나, 헛간을 하나 남기거나, 복숭아가 영그는 담 하나를남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는 발아래 잔디밭에 자리 잡고 있는 집을 내려다보면서, 결국 저기 살았던 무명의 영주와 귀부인들은 자손들을 위해, 비가 샐지도 모를 지붕을 위해, 쓰러질지도모를 나무를 위해 뭔가 남겨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부엌에는 늘 나이 든 양치기를 위한 따뜻한 모퉁이가 마련돼 있었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먹을 것이있었다. 그들의 술잔은 그들이 병들어 누워 있을 때도 반들거리게 닦여 있었고, 그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도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 P96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도 좋을 것 같은데, ‘사랑‘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하나는 희고 다른 하나는 까맣다. 사랑‘은 몸도 두 개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는 매끄럽고, 다른 하나는 털투성이다. 또 손도 둘이고, 발도 둘이고, 발톱도 둘이다. 사실 모든 기관이 둘이고, 각각은 정확하게 상대방의 정반대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연결돼 있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이번 경우, 올랜도의사랑이 흰 얼굴을 그에게 향하고, 매끈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전면에 내놓고 그에게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수한 기쁨의향기를 앞세우고 점점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 갑자기(아마 대공부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몸을 돌려 반대방향을 향하더니, 검고 털투성이의 야성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그의 어깨 위에 펄썩 주저앉은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은 ‘사랑의 극락조‘가 아니라 ‘탐욕의 독수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뛰쳐나갔던 것이고, 그래서 하인을 오게 했던 것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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