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펠 씨는 참 묘하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죽은 사람의 손을 만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체에서도 뭔가 죽은 것이 느껴졌다.  - P10

어쩌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 속에서 뭔가 특이하고, 중요하고, 아주 극적인면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자신이 경험한 사건에 주목해 주기를 바라고, 그로써 더 많은 관심과 경탄의 대상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보다.
- P19

 하지만 인생이란 별난 모험이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이다. 삶에 나타나는 특이하고 비일상적인 것은 단지 삶의 바퀴가 덜컥거리는 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덜컥거림이나 비통함이 없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고 해서 부족한 삶일까? 그 대신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고,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을 완수했다. 나의 삶은 전체적으로 보아 행복했고, 소심하지만 목가적인 삶에서 발견한 조그맣고 규칙적인 행복은 부끄러울 게 없다.
- P20

나는 오래전에 세상을 뜬 이 사람들을 회상하면서, 그때의모습으로 그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들 모두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세계 속에서 각자의신비스러운 일과를 영위해 나갔다. 모든 직업은 그 자체로하나의 세계였고, 다른 소재와 다른 의식(儀式)을 가지고 있었다. - P27

(〈행복한 청춘 시절)이라는 말은 얼마나 단순한 표현인가! 그런 표현과 더불어 우리는 분명 그 당시 건강했던 치아와 위장을 생각할 따름이지 고통스러워하던 영혼은 간과해버린다. - P57

 세상 끝에 있는 마지막 역에서 아버지의 소목 공장 마당을 연상시키는 목재 더미 위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난생처음으로 경이로움과 무상함을 느꼈고, 인생의 아름답고 단순한 질서를 좇으며 살기 시작했다.
- P86

사랑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서로를 소유하는 것으로 족했고, 그것만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자, 우리는 공동의 세계를 위해 물건들을 소유하기시작했다. 어떤 새로운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때마다 말할 수 없이 기뻤고, 우리의 소유가 더 많아지도록 앞으로 실천에 옮길 계획들을 짰다. - P109

그래, 하지만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 있었나? 이혼을 하거나, 결혼한 사람들 간에 그러듯 은밀하면서도 광적으로 서로미워하거나, 아니면 남편의 게임 룰을 인정하여 그가 주인이고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 말고 서로를 결속시켜 주던 것이 사라지자, 그녀는 남편의 것으로남편을 붙잡으려 했지. 그의 안락과 습관과 욕구들로 말이다.
그러자 단지 남편만이 존재하게 된 거야. 그의 가정과 부부생활은 오로지 그의 편안과 영달을 위해서만 존재했지. 그는역과 가정의 주인이었어. 그것은 작고 폐쇄된 세계였지만 그의 것이었고, 그를 숭배했어. 그때가 사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지. 그러기 때문에 죽은 아내를 회상할때면 실은 바로 이 시기를, 그의 자존심을 강하고 건강하게) 만족시켜 주던 이 시기를 생각하는 거야. - P146

그에게는 수많은 가상(假想) 인생들이 있었다. 온통 연애 사건과 영웅적 행위와 모험으로 가득한 삶으로, 그 속에서 그는 늙지 않는 청년이자 건장한 기사였다. 때로는 죽을 때도 있었지만, 늘 용감했고 희생적인죽음을 맞았다. 훌륭한 행동을 하고 나서는 뒤로 물러났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타적이고 고귀한 행동에 감동을 느꼈다. 그런 겸손한 모습에서 다른 현실의 삶으로 깨어나고싶지 않았으며, 현실의 삶에는 훌륭한 행동을 할 일도, 고매하고 희생적으로 자신을 부정할 일도 없었다.
- P178

평범한 자아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자신의 일을 했고, 억척스러운 자아는 그 일을 상품화하면서한눈팔지 않고 이 일은 하고 저 일은 하지 말라는 지침을 정해 주었으며, 우울증 환자인 자아는 가장 괴로워하며 어두운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았고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했다. 그처럼 세 개의 상이한 본성이었지만 서로 불화하지는 않았다. 말없이 타협했고, 아마도 서로를 배려하기도 했을 것이다.
- P202

그것은 나의 자아와 대립했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몰락이나 자기 파멸을초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체를 볼 수 없는 존재였고, 항상어둡고 은밀하게만 경험될 뿐이었다. 마치 짐승의 악취가 나고 자물쇠가 걸린 더러운 판잣집에서 그랬듯이.
- P204

 인간은 왜 늘 그런 일을 하는 건지. 그저 존재하면서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아주 조용하고 현명한 죽음이다. 나는 그게 나름대로 삶을 부정하는행동이었음을 알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런 행동은 다른어떤 삶의 연관성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그 삶은 단지 존재했었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게 허무한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는 없었으니까.
- P211

이제 나는 가능성이란 게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삶들의 집합이며, 그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서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 P213

그것이 진정하고 평범한 인생이며, 가장 평범한 인생이다.
내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우리 모두의 광대한 생명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면서도 그것은 축복이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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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3-15 16: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글을 읽고 - 평범하기도 힘들다는 걸 알게 되면 인생을 조금 알게 된 거라고 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말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바람돌이 2022-03-20 23:58   좋아요 0 | URL
어쩌면 가장 어려운게 평범하게 사는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가끔합니다. 평범의 기준이 또 사람마다 다른게 함정이겠지만요. ^^
 
백의 그림자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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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전에도 황정은은 황정은이었구나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삶에 깃든 그림자를 이해하고, 껴안고 위로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의 문학의 본령이었음을 이 오래된 소설에서 다시 느낀다. 변하지 않는 작가의 마음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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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2-03-13 08: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디디의 우산도 읽어보려 하는데 정말 기대됩니다 이 작가

바람돌이 2022-03-14 00:57   좋아요 3 | URL
황정은 작가의 모든 책은 백의 그림자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이야기의 다른 변주라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모든 책이 좋았습니다. 최근에 나온 에세이 <일기>역시 좋았어요.

페크pek0501 2022-03-15 16: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삶에 깃든 그림자를 이해하고...
뭔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뭔가 배웠다는 뜻 같아요. 그래서 현재의 상태에서 한 걸음 나아간 거라고 생각해요.
이해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아니까요...

바람돌이 2022-03-20 23:57   좋아요 2 | URL
무언이든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저는 황정은 작가가 그런 삶의 그림자들을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오랜 기간 변하지 않고 그 어두운 구석들을 애정어린 손길로 어루만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테니까요.

scott 2022-03-22 23: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분 에세이 강추 합니돠 ^ㅅ^

바람돌이 2022-03-23 11:09   좋아요 2 | URL
그럼요 그럼요. 그 에세이가 최근에 나온 <일기> 1권뿐인게 아쉬울뿐이죠. ^^
 
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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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우울과 짜증과 체념과 오기를 왔다갔다하며 입에서는 연신 욕을 중얼중얼하는.... 

이거 뭐 약간 미친거 아닌가 하는 상태를 반복합니다. ㅠ.ㅠ

하 정말 앞으로 5년간은 또 어떤 참담하고 어이없는 일들이 반복될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그래도 너무 끔찍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반복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모든 사람이 나와 생각이 같을 수 없는거야 당연하지만, 그 생각의 차이가 상식선을 벗어나 황당무계한걸 볼 때는 "아 저 인간은 도대체 머리속에 뭐가 들었는지 뒤져보고 싶다거나, 세탁기에 넣고 강력세제로 한 번 빨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주변엔 짜증나는 사람도 싫은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저렇게 뇌를 빨아주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은 없네요. 그러나 tv를 보거나 신문기사를 읽을 때면 그런 인간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참 이상합니다.

이게 내가 이상한건지, 저들이 이상한 나라에 사는건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아 그런데 여기 이 책 이언 매큐언의 <바퀴벌레>가 그 답을 알려주네요.

뇌를 빨아주고 싶은 그들은 사실 인간이 아니라 바퀴벌레랍니다. 

카프카의 잠자는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어 절망에 빠지지만, 

이놈의 바퀴벌레 녀석은 자고 일어나니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바퀴벌레도 인간이 된것이 좋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배를 내놓고 등을 바닥에 바짝 붙인 자세도 불편하고, 다리도 4개밖에 없고, 피부는 왜 모두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지.... 아 그리고 입속에 있는 빨간 혀라는 덩어리는 혐오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바퀴벌레 녀석은 잠자랑 다르답니다. 

잠자는 왜 자신이 벌레가 되었는지를 모르지만, 이 바퀴벌레 녀석은 인간의 멸망을 위해 그럼으로써 바퀴벌레의 삶을 제대로 편안한 삶으로 돌려놓고싶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의 발에 밟혀죽을 위기를 무수히 넘기는 고난의 행군의 댓가로 인간의 몸을 차지하게 된거거든요.  

그것도 영국의 총리 짐 샘스의 몸에 말이죠.

심지어 이 바퀴벌레는 혼자도 아니예요

그의 충실한 동료들 역시 중요 각료들의 몸에 다 들어가는데 성공했어요. 

한 마리만 빼고..... 그래서 외교부 장관만 인간인거예요.


이 영리한 바퀴벌레들은 그들이 가지게 된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요.

인간의 역사, 경제, 사회를 거꾸로 돌리기 위한 그럼으로써 인간이 스스로 파멸할 수 있도록 역방향주의라는걸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추진해요.

모든걸 거꾸로 돌리는거죠.

예를 들면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면 그 댓가로 기업에 돈을 줘야해요.

그럼 돈은 어디서?

열심히 쇼핑을 하면 됩니다. 쇼핑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돈을 받게 되는거예요.

그 돈을 일을 하고 난 댓가로 지불하면 되는거죠.

말도 안된다고요?

그럼 말이 될 줄 아셨어요? 바퀴벌레잖아요.

여론을 움직이는것 그닥 어렵지 않아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욕심들을 적당히 자극하기만 하면 돼요. 먼 미래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지금 당장의 이익, 지금 당장의 고통에만 집중하게 하면 만사 오케이죠.

또한 방해자들,가령 외교부장관같은 인간은 스캔들을 일으켜서 매장하면 되고요.

트위터 같은 새로운 매체는 이런 말도 안되는 선동도 말이 되게 만드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거든요.

결국 바퀴벌레들은 모든 목적을 이루고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품어줄 보금자리로 돌아갑니다.

이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어요.

인간들은 자멸할거고, 그럼 이제 바퀴벌레들은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한번 주인공이 되어 번영할테니까요.

아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한 마리의 바퀴벌레가 안타깝게 죽고 말았네요.

그들은 한마리가 다리 한개씩 6개의 다리를 들어 아주 엄숙하게 동료 바퀴벌레의 시신을 운반합니다. 

많이 보던 장면이기도 하네요. 


지금 여기 한국 땅에는 과연 몇 마리의 바퀴벌레가 인간인듯 행동하고 있을까를 가만히 꼽아보면,

갑자기 우울함이 조금 가십니다.

아 저는 바퀴벌레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사실 박멸하고 싶은데, 걔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의 멸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퀴벌레보다 더 열심히 그것들을 박멸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일명 바퀴벌레 박멸 대작전! 이런건 어떨까요? 뭔가 죄책감없이 근사한 작전이 될것도 같아요. 


작가란 직업은 생각하면 할수록 멋진 직업인듯해요.

이렇게 대놓고 아주 구체적으로, 아주 심하게 욕을 할 수 있잖아요.

나는 상스런 욕설만 주절주절하고 있는데 말이죠.

심지어 작가는 이렇게 욕을 디테일하게 하고 그 댓가로 책의 인세를 받을 수도 있잖아요.

나는 욕하던거 들키면 주변의 눈총과 비웃음밖에 못받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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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2-03-11 08: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퀴벌레는 두 번의 대멸종을 버티고 살아남았다고 하죠. 앞으로도 인간이 멸종한 이후의 지구에서 잘 살아갈 거라고 하더라구요.

바퀴벌레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오랜 세월 잘 살아온 지구에 어느 날부터 인간이란 종이 폭발적으로 불어나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못 마땅할지도 모르지요. 물론 그들은 인류가 지구를 다 망쳐서 또 다시 대멸종이 와도 살아남을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공상에 잠시 빠져봅니다.

이런 공상이라도 해야 현실을 잠시 잊겠지요? 물론 잠시 시선을 거둔다고 해결되지는 않지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겠지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2-03-11 10:11   좋아요 3 | URL
그래 바퀴벌레니까 저런거야라면서 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장면에 가면 또 다르게 바퀴벌레의 입장에서 소설을 보게 되기도 해요. 그들은 종족으로서의 자신들의 보존에 가장 해악인게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거잖아요. 사실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구요. ㅎㅎ
이 책 읽으면서는 잠시 나 대신 분노해주는 이안 매큐언덕분에 마음을 좀 가라앉힐수 있었달까?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건 아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또 자신의 일을 하고 감시의 눈도 번득이고 해야겠지요. 다만 앞으로가 좀 더 피곤해질뿐이겠고요. ㅠ.ㅠ

미미 2022-03-11 1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는 왜인지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는데 이 책을 보니 반갑네요!
(안그래도 이 책의 초반 묘사가 ‘변신‘을 떠올린다고해서 궁금했어요ㅎㅎ)
바퀴벌레의 음모라면..정말 맞아떨어집니다.ㅎㅎ 저는 자주‘ 인간이 이렇게까지 할 수 없는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최근 옌롄커를 읽고 작가들의 힘, 은유의 힘을 새삼 주목하게 되었어요. 리뷰를 그렇게 쓰고싶은데 언제쯤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바람돌이 2022-03-13 01:34   좋아요 2 | URL
카프카의 변신의 오마주이긴 한데 이게 벌레가 사람이 되는거다보니 굉장히 코믹하더라구요. ㅎㅎ
제가 읽었던 옌렌커는 굉장히 직설적인 작가구나라는걸 느끼게 했었는데 미미님이 읽으신 책은 은유의 힘을 느끼게 한다니 역시 훌륭한 작가는 뭐든지 가능한거군요. ^^

mini74 2022-03-11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퀴벌레라고 하기엔 ㅠㅠ 평상시엔 너무나 말쩡한 이웃들 ㅠㅠ 선이라 믿는 그들앞에서, 그들 눈엔 제가 바퀴벌레같겠지요. ㅠㅠ 외로운 섬 ㅎㅎ 이 된 것 같아 북플만 들락거립니다 ㅠㅠ

바람돌이 2022-03-13 01:37   좋아요 2 | URL
아 바퀴벌레는 주변의 인물들이 아닙니다. 먼곳에 있지요. 국회나 뭐 이런..... ㅎㅎ
우리 주변의 멀쩡한 이웃들은 가짜뉴스나 정치공작이 바퀴벌레들의 음모인지도 모르고 막 휘둘리는 사람들이랄까? 바퀴벌레들을 공작에 휘들리지 않으려면 두눈을 부릅뜨고 있어야겠지요. 외로운 섬 mini74님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심각하게 저를 외로운 섬으로 만들어요. ㅠ.ㅠ

희선 2022-03-14 0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 남을 거다 한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우주인 모습이 바퀴벌레일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바퀴벌레가 사람 안에 들어가서 사람을 멸망시키려 하다니, 무섭지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군요 바퀴벌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텐데... 바퀴벌레도 사람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지...


희선

바람돌이 2022-03-15 08:51   좋아요 2 | URL
영국의 팬데믹을 풍자한 것이고 영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주내용이다보니 생각만큼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영국인들은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실제 인물 누구를 풍자하는지 바로 알아보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영국인이었다면 더 재밋게 읽을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정치에 대해서도 이렇게 좀 고품질의 풍자를 소원해보기도 했네요. ^^
 

두말이 되면 종업원들은 힘들게 일항 시간의 대가로 기업에 돈을 낸다. 하지만 상점에 가면 그곳에서 가져오는모든 상품에 대해 소매가로 후하게 보상받는다. 현금을 비축하는 일은 법으로 금지된다. 쇼핑몰에서 고된 하루를 보낸 후 은행에 돈을 맡기면 높은 마이너스 이자가 붙는다. 그러니 저축이이자로 다 깎여나가기 전에 나가서 더 비싼 일자리를 찾거나 직업훈련을 받는 게 현명하다. 더 나은, 그래서 더 대가가 비산 일자리를 얻을수록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쇼핑을 더 열심히 해야한다. 그러면 경제는 활성화되고, 숙련된 노동자는 늘고, 모두가 이득을 본다. 임대인은 임차인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세금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인수하고 우주탐사계획을 확대시켜야 한다. 호텔 지배인은 고객 확보를 위해 최고급 샴페인, 가장 안락한 침구, 희귀 난초,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를 들여와야한다. 그리고 트럼펫 연주자는 댄스플로이에서 성공적인 공연을한 다음날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열정적인 쇼핑을 해야 한다.
그 결과는 완전고용이다.
- P42

복잡한 첫날 일정이 끝난 후 총리는 관저 꼭대기층의 작은 거처로 물러나 트위터를 익히느라 분주했다. 그는 트위터가 페로몬적 무의식의 원시 형태라는 결론을 내렸다. - P74

이튿날 미국 대통령이 침대에서 논쟁을 이끌기 위해 일찍 일어나 그에게 시범을 보였다. "꼬맹이 실비 라루스 영국 함선들 침몰시키다. 나빠 BAD!" 의미의 밀도와 세부사항으로부터의 발 빠른 해방을 매끄럽게 결합시킨 시였다. 진실이건 아니건 라루스는 영원히 그를 따라다닐 조롱으로 거세된 후 작아졌으며(그의 이름은실뱅이었고, 키는 173 센티미터였다), 어선은 함선이, 함선은 함선들이 되었다. 고인들에 대한 지루한 언급은 없었다. 마지막 평가는 유치하고 순수했으며, 기억에 남고, 적절한 단음절어였다.
그리고 그 대문자들, 함축적 느낌표로 이루어진 멋진 마무리! 자유의 땅에서 상상력의 자유에 대한 가르침을 준 것이다.
- P75

 사악하고 무자비하며 냉혹한 거짓말. 그건 남성적 힘에 의한 진짜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자신이라면 그 기사에 이름을 넣을 용기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그 이야기는 마치 원자로가 스스로 열을 만들어내듯이 신문 지면이라는 틀에 갇혀 진실을 생성해냈다.  - P100

나중에 연회장으로 가는 길에 젊은 프랑스 외교관이 동료에게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왜 기립박수를 보냈는지 이해가 안 돼요. 그렇게 요란하게, 그렇게 오래.
"그야, 선배 외교관이 설명했다. "그가 한 모든 말이 싫어서지."
- P108

 그들의 운명은 그들 손에달렸다. 역방향주의는 실현되었다! 더이상 망설임과 지연은 없다! 영국은 홀로 섰다!
- P121

우리는 우회적인 수단을 통해, 그리고많은 실험과 실패 끝에, 인간의 파멸에 필요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지구온난화는 확실한 전제조건이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고착화된 계급, 부의 집중, 뿌리 깊은 미신, 루머, 분열, 과학과 지성과 낯선 이들과 사회적 협력에 대한불신을 꼽을 수 있지요. - P123

트레버 고트의 동료들은 신호가 다시 바뀌기 전에 가까스로 그를 들어올리고 몸에서 밀려나온 내용물을경건히 그의 아랫배에 올려놓았다. 그다음엔 여섯 장관이 그의다리를 하나씩 잡고 웨스트민스터궁으로 옮겼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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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다름없는 자신의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그림자,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으니 살 수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아무 곳에서나 불쑥 말하곤 하다가 그는 귀신 같은 모습이 되어 죽고 맙니다.
- P21

차마, 차마, 하고 내 목소리가. 하여간에 얼마 못 가고 집으로 돌아갔어. 어처구니가 없었지. 나라는 놈은 그림자도 따라가지 못하고, 하면서. 그 밤에 달이 어찌나 둥글고 밝은지 분화구가 다 보이고,
라면서 여씨 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분화구 윤곽이 선명한 달이 뜬 밤에 구불구불 늘어진 그림자를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씨 아저씨의 모습을 나는 생각해보았다.
- P50

문턱에 코를 댄 채로 나무 결이라고 짐작되는 어두운 얼룩을 들여다보며 젖은 듯 마른 듯한 문턱 냄새를 맡고있었다. 차라리,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것이 되면 이미어두우니까, 어두운 것을 어둡다고 생각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아예 그렇지 않을까, 어둡고 무심한 것이 되면 어떨까, 그렇게 되고 나면 그것은 뭘까,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 P99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개를 더 넣어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 P104

오른쪽으로는 조명 가게나 공구 상점들을두고 걷다가 오른쪽으로 첫번째 골목이 나타날 때 발길을 틀어서 그 길로 접어들면, 이십년째 그 자리에서 별다른 도구도 없이 드럼통 하나를 세워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순대를 찌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회중시계, 구리 자명종, 낡은 손목시계, 빛바랜 은수저를유리장 안에 진열해두고 졸고 있는 남자를 앞을 지나 담배와 음료와 삶은 계란을 파는 구멍가게를 지나서 부품상점이나 구식 라디오를 손보는 수리실 등을 지나가게되어 있었는데, 어느 곳이든 책상 하나 더는 들어갈 여지가 없을 만큼 비좁았다. 그런 가게들 틈으로 난 골목,
이라기보다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 정도로 보이는 어둡고 좁다란 통로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간판도 탁자도없이 점심배달 메뉴로 백반 한가지를 만들어서 파는 허름한 식당이 있고, 그 맞은편에 오무사가 있었다. 칠십년대 이후로 손을 본 적이 없는 듯 낡고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 P112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되나. 그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까.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 P115

 작네요,라고 멍하게 말하자 무재씨가 빈 우유갑을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 P123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 P126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사정인 걸까, 하고,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 P159

따라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 P184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걷고있었다.
은교씨,
하고 무재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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