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센강변 헌책 노점상 거리에서 만남의 시간』이라는책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내게도 아주 먼 과거에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자주 공허의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내가 그런 어지럼증을 느끼던 것은 나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바로 그때 막 만나서 알게 된 어떤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였다. 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명 저 사람들을 따돌릴 수 있는기회가 있을 거야, 하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런 인물들 중 몇몇은 정말이지 사람을 어느 지경까지 몰아갈지 도무지알 수가 없었다. 비탈이 미끄러웠다. - P7

나는 그 책들을 오십 년 전부터 계속 가지고 있는데, 왜 어떤 책들이나 물건들은 평생 어딜 가든 기어코 우리를 따라다니는가하면 다른 것들은 귀중한 것들인데도 그만 잃어버리고 없어지는것인지 알 수가 없다. - P49

그녀는 틀림없이 모든 것을 다 잊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모두 아득하게 먼 것으로 세월이 쌓일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것으로 여겼으리라. 그리하여 풍경이 마침내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현재를 살고 있었다. - P59

만약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상황에서 과거에 이미 겪었던 일을 다시 겪으며 살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처음보다 실수도, 오점도, 공백도 없이 훨씬 더 잘살수 있다면………… 그건 마치 정정한 곳투성이의 육필원고를 깨끗하게 다시 베껴 쓰는 것 같을 거야.....…  - P60

추억들을 머릿속에서 정돈해보려 한다. 추억 하나하나가 각각의 퍼즐조각인 셈인데, 빠진 조각이 많아서 대부분이 따로 떨어진 채 있다. 때때로 서너 개를 연이어 한데 붙여볼 수 있지만 그뿐, 더이상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나는 머릿속에 뒤죽박죽으로되살아나는 단편들, 아주 간단한 이름들이나 문장들의 리스트를적어본다. 나는 그 이름들이 자석처럼 또다른 새로운 이름들을표면으로 끌어당겨 올리고 마침내 그 조각조각의 문장들이 서로이어져 문단과 챕터로 완성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는 옛날 차고와 비슷한 이 커다란 헛간들 중 한 곳에서 잃어버린 사람들과 물건들을 추적하며 세월을 보낸다. - P62

우리는 생모르의 노르대로 35번지에서 출발해서 걸어왔는데 이십 년이 걸려서 세뤼리에대로 76번지에 이르렀다.
트렁크는 그전 것보다 훨씬 가벼운 것 같았다. 어찌나 가벼운지혹시 빈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등뒤에 달고 다니던 모든 무거운 것들을, 그리고 모든 회한들을 마침내 내려놓게 된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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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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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와 다양한 모습들을 내포하고 있어 생각은 많아지는데, 읽다가 보면 덜컥 덜컥 걸리는 곳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선이와 달마의 대화 같은 것. 좀 작위적인 것 같은 이런 장면들은 뭔가 좀 다르게 표현됐더라면 이 소설이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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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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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이에게 철이란 이름을 준다.

철학의 철에서 따온 이름이다.

집에 있는 고양이들은 칸트와 갈릴레오이고, 로봇고양이의 이름은 데카르트다.

아이에게 고전을 읽히고 천자문을 가르치며, 음악을 듣고 감동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르친다.

인류의 오랜 인문적 예술적 성과들이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그리고 인간의 사회를 오래도록 유지해줄 힘이라고 믿고 있다.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거야.(226쪽)


그래서 그는 중세 유럽에서 수도원이 인류의 지식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했듯이, 인간의 마음을 가진 휴머노이드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가진 최첨단 휴머노이드 철이를 만들고 아들로 기른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필멸을 아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필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절실할 수 있고,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고, 알고자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그것이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 왔고, 인간의 영역을 계속 확장시켜온 주된 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는 인물이 바로 주인공 철이의 아버지 최박사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기계 로봇, 클론 등이 다수 등장하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 철이의 아버지 최박사만이 유일한 오리지널 인간이다.

필멸의 존재로서의 그의 염원은 점점 더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에 대해 그건 안된다고, 인간을 로봇이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인류의 유산을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존재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그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의 제작과 그 휴머노이드를 통한 문화의 전수라는 방법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아이러니인가?

애초에 그의 염원과 그가 선택한 방법이 지극히 모순적이었던 탓에, 그가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파멸하리라는 것은 애초에 자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찾고자 한 것은 아들로서의 철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성과의 결과이자 집합체로서의 철이었고, 지극히 이기적인 그의 고려대상에는 철이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장 인간에 가까운,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가진 휴머노이드 철이를 만들었지만, 최박사 스스로가 휴머노이드 철이에게 아들로서 아버지의 애정을 바라는 마음, 또는 그렇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줄 아는 마음, 아버지와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었던 소중한 관계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철이를 다시 돌려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인간의 감정과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들 중 가장 그 마음과 거리가 먼 등장인물을 따지자면 바로 이 오리지널 진짜 인간인 최박사일듯하다.

오리지널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다움에 대해, 또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쟁을 벌이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하는 선이나 달마, 철이와 다르게 최박사는 자신이 애초에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 자신이 생각하는 것, 갈구하는 것 그 모든것이 진리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파멸한다. 

죽음이 아니라 파멸하는 것은 마지막의 순간에 그에게 무엇도, 누구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여지도 남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다운 감정과 마음이란 결국 존재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복제인간 클론인 선이 어린 민이에게 가지는 애틋함.

휴머노이드 철이 헤어진 선이를 찾고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마음.

같은 존재들의 마지막 삶의 선택기회를 주고싶어 고군분투하는 달마의 마음.

그런 마음들이 결국 인간다운 감정과 마음일테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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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30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요즘 인기 많은거 같아요. 리뷰만 보면 비슷한 소재를 다룬 <클라라와 태양>이 떠오르네요. 표지를 보니 좀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바람돌이 2022-05-30 18:57   좋아요 2 | URL
클라라와 태양을 아직 사놓고도 못읽었는데 곧 읽어야겠어요. 아마 비슷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책 겉표지도 좋았지만 속표지가 더 예뻐서 깜짝 놀랐습니다. 궁금하시면 음..... 500원???? ^^;;

페크pek0501 2022-05-30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신간 읽으셨네요. 요즘 잘 나가는 작가네요. 여행의 이유, 도 꽤 팔린 것 같은데
작별인사의 세일즈 포인트도 아주 높더라고요. ^^

바람돌이 2022-05-31 16:01   좋아요 1 | URL
김영하 작가는 좋아하는 작가라서 나오자 마자 사두었는데 마음이 좀 싱숭생숭하다보니 이제 읽었네요.
그간의 김영하 작가의 책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던데 아직 그게 좋은건지 나쁜건지가 좀 헷갈려요. ^^

희선 2022-05-31 0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인 최박사가 가장 사람답지 않은 마음을 가졌다니... 사람이기에 그걸 더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닐까 싶어요 사람으로 사람 마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만 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5-31 16:03   좋아요 1 | URL
사람이 뭔가라고 하면 진짜 아무도 한마디로 정의하진 못할 거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저 최박사의 모습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 맞지 싶다가도 그래도 세상에는 또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소설로서 탁월한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
 

노을 같은 무해하고 장엄한카오스는 그냥 감상하면 그만이야. 뭐하러 예측을 하겠어? 노을이 우릴 죽이는 것도 아닌데."
"정말 미래는 알수 없는 거네요."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은 아니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럼 미래를 알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건 ‘미래‘라는 말이 뭘 의미하느냐에 달렸어." - P33

거나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인류가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이런의문들을 품어왔다는 것을 고전 SF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서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 P70

"소비자들은 한번 다른 집에 입양됐던 중고 휴머노이드 아이는 원하지 않거든. 성격이 이미 형성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파양된 걸 보면 성격에도 문제가 있을 거라 넘겨짚기도 하고・・・・…그들은 사용감이 없는 아이만 원해." - P98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 P160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은연중에 말합니다. 가장 많은 인간이 믿었던 두 종교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고통에의미를 부여합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고도 합니다. - P162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선이는 옳았다. 훗날 때가 왔을 때, 선이도 나도 일말의 의심 없이 알 수 있었다. 끝이 우리 앞에 와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 P204

이전에는 선이나 민이를 아예 알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몇 주 사이에 그들을 평생 같이 살아온 아빠보다 더 가까운 존재로 느끼는 걸까? 다음속의목소리가 그 의문에 대답했다. 그들은 나를 속이지 않았다고. - P215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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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뉴욕의 여름에 바깥에 있는게 좋았다. 밤에는 특히 그랬다. 조명이 꺼진 도시의 어둠, 뜨겁고 탁한 공기, 갖가지 소음과 차량 행렬, 미친 듯 울리는 사이렌, 북적대는 사람들이그는 좋았다. 그런 것들은 고독한 인간에게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과 단절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 P8

"케이트와 제이드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이건 그들의 싸움이 아닙니다. 특히 제이드와는 조금도 관계가 없는 싸움입니다. 만약 호바트나 나이트가 레인을 직접 뒤쫓았다면 나는 물러나서 두 사람을 응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케이트와 제이드에게 손을 댔습니다. 악에 악을 더한다고 선이 되는 건 아닙니다."
"세 가지 악이 더해져도 마찬가지죠."
"이번 경우엔 그렇지 않습니다."
"케이트와 제이드를 본 적도 없잖아요."
"사진을 봤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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