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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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복잡한듯 하면서도 단순하다.

인간의 온갖 욕망이 다 복잡해보이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어디에 방점을 더 두는가? 어느정도의 사랑? 어느정도의 인정? 어느정도의 부자에 만족하느냐에 따라 그 스펙트럼은 또 천만가지로 나뉘겠지만 말이다.

 

소련 또는 러시아라는 나라의 여성작가 책은 처음이다.

이쪽은 워낙에 쟁쟁한 작가들이 많아 사실 그들의 책만 읽어도 차고 넘치겠지만,

가만 생각하면 그 세계적인 대가 러시아 작가들에게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안나 카레리나>나 <닥터 지바고>가 있겠지만 이런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남성작가가 바라본 여성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빅토리아 토카레바라는 이름도 생소한 러시아 여성작가가 펼치는 여성의 세계는 흥미로웠다.

 

이 소설은 스탈린 시절부터 페레스트로카 이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면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 시절의 소련 또는 러시아는 어쩌면 지금의 중국처럼 뭘 가져와도 이야기가 되는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격변의 시절이란 상상하기 힘든 일도 너무 쉽게 현실이 되고, 일반적인 삶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일상이 되기도 하는 시절이기 때문일테다.

결국 이 소설은 그런 시절 사랑과 부와 명예를 갖고 싶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이게 과연 소설인가 르포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대기적인 느낌도 물씬 나는 중편 3개의 이야기와 단편 2개로 이루어져 있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이야기 속 여성들은 하나같이 자존감이 강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긍정적인 인물상이 그려질법도 한데,

우리의 개발시대 시골에서 꿈을 품고 상경했던 수많은 영자 순희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들이라고 해서 딱히 다르지는 않을테고, 그런 속에서 무엇인가를 가지고자 했다면 긍정적이거나 도덕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소설속 여성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점이 빅토리아 토카레바가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표제작인 <티끌같은 나>에서 노래라는 재능 하나를 믿고 모스크바로 상경한 소녀 안젤라는 아직 어린 소녀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명민하게 살핀다.

 

레나는 실제로 편두통을 앓았고오후 1시까지 늦잠을 잤다두통의 원인은 안나 카레니나처럼   없음이었다레나는  일이 없었다화단에 물이라도 주면 좋으련만……하긴 집안일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일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집에는 운전기사와 경비원도 있었다안젤라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들에게는 저마다 목표와 높은 이상이 있었다뇌물을 줘서 아들의 군복무를 면제받으려는 이도 있고딸이 전문의 자격증을 따도록 뒷바라지하는 사람도 있으며러시아제 가젤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거나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  돈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다저마다 추구하는  다를 뿐이었다. - P61

 

러시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새로운 부르조아의 삶의 허위를 냉철하게 간파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안제라의 선택이 딱히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는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안젤라의 삶이 그저 그런 뻔한 신파가 되지 않는 것은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중심에 두고 주변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쟁취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두번째 중편 <이유>에서 주인공 마리나는 그야말로 사랑받고, 사랑하고싶은 욕구를 극단으로까지 표현하는 여성이다.

삶의 중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살아남는 방법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생활력 강한 억센 여성이지만 자신의 모든 삶의 순간 순간에서 항상 사랑을 선택하는 여성이다.

그것이 비록 자신을 절망의 구렁으로 이끌지라도말이다.

삶은 끊임없이 곤두박질 치지만 그럼에도 마리나는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여성이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도덕적인지 아닌지는 마리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이해한다마리나의 지인 중에는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이 없었고다른 사람들 사정은 그녀가   아니었다.- P287

 

 

세번째 이야기인 <첫번째 시도>에 가면 주인공 여성의 욕망추구는 극단적으로 진행된다.

마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쟁취하는데 어떤 거리낌도 없다.

사랑도 권력도 부도 모두 가지고 싶은 여성이고, 실제로 한때는 그것 모두를 가지기도 하는 여성이다.

자본주의적 욕망의 화신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삶은 어쩌면 러시아가 자본주의 사회로 재편되면서 무수히 많은 러시아인들이 밟아갔던 바로 그 과정일 것이다.

다만 이 평범한 이야기가 특별해지는 것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것 때문일테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소설 속 주인공 어느 누구도 딱히 긍정적이지 않으며, 쉽게 공감이 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특별한 것은 이 여성들을 보라고 당당하게 내놓는 지점에 있다.

남자에 의해 대상화되고 타자화되는 여성이 아니라, 비열하든 부도덕하든 상관없이 자신이 주체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에게 말할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욕망을 잘 들여다보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당연한 욕망이다.

왜 남자의 욕망은 성공스토리로 포장되면서 여성의 욕망은 은폐되어야 할 부도덕한 무엇으로 간주되는지에 대해 당당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굳이 이론적으로 따지고 들지 않아도 그저 여성의 삶을 보여주면 된다.

거기에 남성 여성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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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2-26 0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바람돌이님처럼 읽지 않고 그냥 정신없이 읽었어요. 이 책 덕분에 소설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는데... ^^;;

바람돌이 2021-02-27 02:04   좋아요 0 | URL
러시아 여성을 소재로 하는 현대 소설이 많이 신선했어요. 소설을 읽는 건 항상 즐거워요. ^^

mini74 2021-02-26 1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유. 읽으면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란 일본영화가 생각났어요. 묘하게 닮은 느낌. *^^*

scott 2021-02-26 14:28   좋아요 1 | URL
오 미니님 저도!
마츠코 불쌍한 마츠코 ㅜ.ㅜ

바람돌이 2021-02-27 02:07   좋아요 1 | URL
아 맞네요. 둘이 닮은거 맞네요. ㅎㅎ

cyrus 2021-02-26 1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욕망’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남자)은 ‘섹슈얼한 욕망’으로 생각해요. 욕망을 욕정의 동의어로 보는 거죠. 남자들은 여성의 욕정에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바람돌이 2021-02-27 02: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남자들은 왜 아직도 그 지독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못벗어나는 이들이 그토록 많은걸까요? 그렇게 자기 생각에만 갇혀있으니까 독해도 못하죠. ^^

희선 2021-03-02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 남자를 떠나서 사람은 욕망을 가지고 있겠지요 예전에 본 드라마 같은 거 생각해도 다 남자이야기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러시아 작가도 남성 작가만 더 알려졌고... 아주 없지 않았을 텐데,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는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1-03-03 11:44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지예요. 진짜 러시아는 워낙에 대단한 남자 작가들이 많아서인지 여성작가들이 너무 가려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나씩 이렇게 번역이 되어 나오니 다행이겠죠?
 

레나는 실제로 편두통을 앓았고, 오후 1시까지 늦잠을 잤다. 두통의 원인은 안나 카레니나처럼 ‘할 일 없음‘이었다. 레나는 할 일이 없었다. 화단에 물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하긴 집안일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일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집에는 운전기사와 경비원도 있었다. 안젤라는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저마다 목표와 높은 이상이 있었다. 뇌물을 줘서 아들의 군복무를 면제받으려는 이도 있고, 딸이 전문의 자격증을 따도록 뒷바라지하는 사람도 있으며, 러시아제 가젤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거나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 데 돈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추구하는 게 다를 뿐이었다.
- P61

"나는 그가 매일 날 보고 기뻐하면서 ‘당신이 최고야. 난 당신만 사랑해……..‘라고 말해 주면 좋겠어."
안젤라는 오븐을 끄면서 ‘안나 카레니나랑 판박이야. 라고 생각했다. 주인 남자는 육즙이 너무 많이 빠지는 걸 안 좋아했다.
- P79

"난 우정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우정은 게오르기만으로 충분해요. 난 열정이 필요하다고요."
"열정은 돈을 주고 사면 되죠." 라이사가 지적했다.
"대가성이 있는 사랑 말고요.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요. 바보 이반이 세 개의 솥에 들어갔다 나와서 젊은 이반 왕자로 변한것처럼 그렇게 되고 싶다고요."
"당신의 솥들은 똥으로 가득 찼을 거예요. 그 안에서 헤엄칠지말지는 당신이 결정할 문제죠."
- P83

사브라스킨은 안젤라를 성장시켰다. 그는 ‘존재하기‘와 ‘소유하기‘에 대해 알려 주었다. ‘존재하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할수도 있다. 그래도 ‘존재해야 한다. 반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안젤라는 사브라스킨의 눈동자를 쳐다보면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사브라스킨의 날개가 자라고 있었다.
그는 피그말리온처럼 자신의 작품을 조각했고, 자신이 만든 작품에 마음을 빼앗겼다.
- P155

안젤라는 순간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은 바닷가가 떠올랐다. 해변이 파헤쳐질 것이다. 허름한 흰색 집도 철거될 테고 마당도 사라질 것이다. 대신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누군가는 기뻐하고, 또 누군가는 속상해할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흔들리지 않는다. 바다는 달에 의해서만 동요될뿐이니까..….
- P175

모성애는 축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돈과 집안일을 도와줄사람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 모든 것이 있고 아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것도 없이 힘만든다면 스스로 사람이 아닌 비 맞는 한 마리 말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 P182

"스탈린 때가 나았어요." 마리나가 결론을 내렸다.
"스탈린 때는 강제수용소가 있었어요." 안나는 마리나가 잊은부분을 상기시켰다.
"난 잘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거기에 수용되지않았으니까요."
사람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이해한다. 마리나의 지인중에는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 사정은 그녀가 알 바 아니었다.
- P287

마리나는 문득 사람들이 사는 이 지구 역시 개미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다른 개미들 틈에서 들기 힘든 짐을 끌고 가는 것이다. 누군가 쓰러진 나무에 앉아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319

사실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이유는 호기심이 아니라 연민이었고, 나를 실제 모습보다 더 나쁘게 생각하는 게 싫었다. 모든 사람에겐 이상적인 자아가 있는 법이다. 나는 누군가 내 이상적인 자아를 폄하하면 당황한다. 더 낮고 더 약한 새로운 이상을 재단할지, 내 이상을 폄하하는 사람들과 교제를 중단할지 고민한다. 두번째 방법이 좀 더 쉽기는 하다. 하지만 마라는 지금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이고, 그렇게 해서 그녀의 기분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희생할 준비가 돼 있었다.
- P389

그녀가 가끔 꿈에 나타나는 날이면 하루 종일 그녀를 생각하며머릿속으로 대화하는데, 우리가 논쟁의 끝을 보지 못해 계속해서논쟁을 이어 가는 듯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또 하나는 죄책감이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내가 잘못한 게 뭘까? 나도 모르겠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해서 내 삶을 살아가지만, 늘 뒤를 돌아봐서 마치 목을 뒤로 꺾은 채 앞을 향해 걷는 기분이 든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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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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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을 생각하다.

 

소라와 나나와 나기 - 합쳐서 그냥 소나기라 부르면 좋겠다.

집 하나를 반으로 나눠 놓은 셋방에 소라와 나나 자매가 살고, 나머지 반에 나기와 나기의 엄마가 산다.

그냥 어느 순간 이들은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너무 흔한 이야기라 통속적이다.

소라와 나나의 아버지는 공장의 기계에 휘말려 죽었고, 나기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리다가 시장 한가운데서 그냥 쓰러져 죽었다.

엄마는 나기의 엄마 순자씨가 있다.

"새끼를 먹여본 손맛, 그런 연륜"(43쪽)을 가진 엄마.

소라와 나나의 엄마 애자씨는 가족이 아니다.

사랑이 넘쳐 애자씨는 소라와 나나의 아빠가 죽은 이후 계속 혼자만의 세계에서 아빠와 산다.

이들은 곧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

나나의 아기

그러면 이들은 아기, 할머니, 엄마, 이모, 삼촌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될 것이다.

아기의 아빠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가족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이므로.....

가족은 혈연이 이어졌다고 되는게 아니다.

어린 시절 무서운 것을 본 순간 소라가 나나의 손을 잡고 허겁지겁 가던 그 길에 가족이 있다.

혼자 아이를 기르려는 나나에게 순간이나마 폭력을 행사하는 아기의 아빠에게 달려드는 소라의 주먹에 가족이 있다.

위로 받고 싶은 순간에 그녀들 만을 위한 스페셜 메뉴를 만들어주고 공간을 내어주는 나기의 식당에 가족이 있다.

그러니 남들이 뭐라든 이들은 가족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2. 사랑을 생각하다.

 

사랑이 로맨스 소설처럼 낭만적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늘 구질구질함과 오해와 엇갈림을 동반한다.

 

애자는 나나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 뒤,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덧붙였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  - P12

 

그래서 소라는 애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기도 하는거지.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라고 하는 그 지점에 소라는 늘 머물러있다.

그래서 소라는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관심과 배려를 보이는 가족에게 머물러있다.

아기를 만들었으면 무조건 결혼해야 하는걸까?

모세가 주었던 한순간의 위로가 사랑은 아니었음을, 그가 생각하는 결혼에 이르는 당연한 순서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160쪽)

그런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가 사랑은 아님을 나나는 잊지 않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랑의 대상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기의 사랑이 있구나.

부러져 텅비어버린 이빨 하나만큼의 공간만 남긴 나기의 사랑.

단 한줄의 소식 - 잘 지낸다든지 아니면 죽었다든지 -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랑.

모든 사랑이 구질구질하고 안타깝고.

그래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얘기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3.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다.

 

산다는 것은 김장을 담기 전에 묵은 김치를 몽땅 꺼내 만두를 만드는 그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묵은 것을 갈무리해야 하는 것. 그것이 만두든 감정이든 관계든

양이 너무 많아 냉장고에 다 넣지도 못한 만두를 상할지도 모르지만 밖에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때로는 모른 척 버릴 수 밖에 없는 감정이나 관계들도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함께 만두를 빚으며 그 맛을 상상하고, 함께 하나의 일을 나눠하는 그 순간이 있어 삶은 계속될 수 있는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함께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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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2-14 04: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좋았어요.^^ 나중에 다시 읽어야지!!!

바람돌이 2021-02-14 23:41   좋아요 0 | URL
전 황정은 작가의 소설은 다 좋아요. ^^

초딩 2021-02-14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은 달걀이 아니고 만두군요!
함께 빚으면 역시 즐거운 것 같아요.
이제 동년배들과도 좀 빚으야겠다 생각합니다 :-)

바람돌이 2021-02-14 23:43   좋아요 1 | URL
이 소설에서는 사회적 통념상 평범함에서 멀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저 만두빚기로 상징되는 것 같아요. 어떤 형태든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힘이 되는거겠죠? ^^
 
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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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 실낙원

 

 

책의 표지에 실낙원의 저 강렬한 문구가 이 책의 모든 주제를 대변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의 절규 역시 저 문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모든 인류가 나를 피하고 증오하지 않는가? 내 창조주인 당신도 나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승리의 기쁨에 젖으려 한다. 그걸 기억하라. 그리고 인간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인간을 동정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당신은 나를 저 얼음의 갈라진 틈새로 거꾸로 떨어뜨리고 당신의 작품인 내 육신을 파괴하더라도, 그걸 살인이라 부르지 않겠지. 인간이 나를 경멸로 대하는데 내가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가? -194p

 

 

이 소설 전체는 제1권~제3권(흔한 분류로 하자면 제1부, 2부, 3부가 더 맞겠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권의 수준이 고르지 않다.

제1권은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창조하고 그 추악한 외모에 경악하여 너무도 쉽게 버리고 마는 과정이 전개 된다.

제2권은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버린 괴물을 드디어 만나 그의 범죄를 추궁하고 분노하자, 괴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반박하는 과정이다.

제 3권은 괴물의 복수와 그 괴물을 죽이고자 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여정이 펼쳐진다.

 

솔직하게 말하건대 제1권을 읽으면서는 아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하나 고민했고, 제 3권에서는 피식거리면서 읽었다.

중간에 제2권이 없었다면 아만도 나는 중도에 이 책을 포기했을 것이다.

괴물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이상화되었으며, 그들의 행동도 따지고보면 세상물정모르고 별 생각없는 젊은이 그 자체라고나 할까?

심지어 나이든 인물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너무나 평면적인 인물들이라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치 연극무대에 올라가 주어진 대본대로만 대사를 읊는 배우들같다. 그것도 딱히 매력없는.....

작가인 매리 셀리가 19살에 이 소설을 썼다는데 물론 나이에 비해 굉장히 잘 썼다고 해줄 수 있지만, 고전이란게 청소년문학상은 아니지 않는가?

200년이나 뒤의 내가 무슨 청소년 문학상 심사위원도 아니고말이다.

 

하지만 이 책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2권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괴물의 회고와 주장으로 이루어진 제2권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며, 작가가 하고싶었던 말을 모두 여기에 쏟아붓지 않았나 싶다.

 

괴물이라는 존재는 다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괴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는 밀턴의 실낙원의 저 외침처럼 탄생을 갈구한 적이 없다.

그저 젊은 한 과학자의 무모한 호기심으로 세상에 던져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 창조주가 자신의 잣대로 외모가 추악하다 하여 생명을 얻자마자 버려진다.

괴물은 자신이 왜 창조되고 왜 버려졌는지, 그토록 도와주고 싶어하고 다가가고 싶어하는 자신의 선의를 왜 인간들이 그토록 경악하며 자신을 배제하는지 이해할 수 없이 끊임없이 거부당한다.

괴물이 배제당하지 않는 방법은 아무도 없는 어딘가의 숲이나 사막이나 빙하속에서 홀로 외롭고도 고독하게 살다가 죽는 것 밖에 없다.

완벽할 정도의 철저한 배제다.

이런 배제의 대상을 과거나 현재의 사회에서 찾는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특히 괴물의 이름이 없다는 것에 주목해보면 소설 속 괴물이 당대 사회에서 실제 억압받던 다양한 존재에 대한 메타포로 읽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하게 된다.

매리 셀리가 살았던 19세기를 생각하면 먼저 여성을 생각할 수 있다.

여성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어떤 정치적 사회적 권리에서도 배제 당한 채 남성의 부속물로서만 존재를 인정받던 시절의 여성은 저 괴물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와 같은 대우를 받는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매리 셀리 역시 19세기 여성을 괴물에 비유했으리라는 짐작을 강하게 하게 된다.

그 이유를 더 짙게 하는건 이 책의 출간 당시 1818년판 서문을 그의 남편이 썼다는 것이다.

서문을 보면 남편은 자신이 이 책을 쓴 것처럼 쓰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출간 당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은 매리 셀리처럼 똑똑하고 도전적이었던 여성으로서는 굴욕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배제된 여성의 괴물의 은유를 통한 절규로 이 소설을 읽는다면 지나친 것일까?

 

고전이 고전인것은 그것이 현대에서도 그 층위를 달리하며 새롭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일게다.

지금에 이르면 괴물은 누구일까?

가난한 사람들, 실업자들, 난민들, 여성들 무엇으로 대치해도 저 괴물의 절규를 같이 같이 내뱉고싶을 것이다.

 

 

제2권과 나머지 부분의 소설적 완성도의 차이가 왜이렇게 나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해보게 된다.

200년 전의 매리 셀리에게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작가인 매리 셀리는 괴물의 배제가 얼마나 부당한지 얘기하고 싶었고 그것을 제2권에서 충분히 풀어놓았지만, 그러한 관점이 당대 사회의 분위기, 도덕관에서 수용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본다.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른 수용될 수 있는 이야기 속에 슬쩍 끼워넣는 트릭?

나의 지나친 상상일수도 있지만 각 권의 수준차이가 너무 나는 것을 이 외에 무엇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러하다면 메리 셀리는 나이에 비해서 정말 지나치게 명민하다.

나이에 비해서 지나치게 굴곡진 삶을 일찍 겪었던데서 나온 명민함일까라고 생각하면 또 그녀의 생애가 안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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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2-14 02: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청했으나까
이 책의 처음에 있는 실낙원의 저 문장이 얼마나 가슴을 팠던지 ㅜㅜ
그녀의 삶이 이런 천재적인 작품을 만들어냈고 실낙원의 그 말은 그녀의 절규 같았어요 ㅜㅜ

바람돌이 2021-02-14 03:02   좋아요 5 | URL
맞아요. 실낙원의 저 문장 굉장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죠? ㅎㅎ 매리 셀리의 삶을 보면 아마 당대에서 온갖 비난에 시달렸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그녀를 더 힘들게 한건 그 비난들이 똑같이 남편의 몫까지 같이 덤태기를 쓴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붕붕툐툐 2021-02-14 0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청소년문학상~ㅋㅋㅋㅋㅋㅋ 저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 아니고 박사 이름이라는 거에 충격 먹고 읽었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던 기억이 나네용~ 다시 페이퍼로 만나니 반가워요~ 전 괴물에 너무 감정이입 해가지고 평가는 1도 못했어요~ㅎㅎㅎ

바람돌이 2021-02-14 23:45   좋아요 0 | URL
저도 괴물에 감정이입했습니다. 이거 읽으면서는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생각이 많이 났는데 같은 주제를 훨씬 깊이있게 다뤘구나 했어요. 혹시 안 읽으셧다면 저는 다섯째 아이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막시무스 2021-02-14 0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추천이 정말 많네요! 어릴적 문고판 읽은거 같은데 기억은 가물거리고.ㅠ 올 해 꼭 한번 정독해 보겠습니다!ㅎ

바람돌이 2021-02-14 23:47   좋아요 0 | URL
책장은 잘 넘어가요. 제 추천은 오로지 2장에만 있습니다. ^^ 이 책의 1장, 3장을 정말 심도있게 잘 표현한 책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작품을 확 갖다 붙이고 싶어요. ㅎㅎ
 

 "살아라, 그러면 내 권능이 완벽해지리라. 나를따르라. 나는 북극의 영원한 얼음을 쫓아갈 테니. 거기라면 나는 끄떡없어도, 너는 추위와 서리의 참담함을 느끼게 되리라. 네가 너무 게을리 따라오지만 않는다민, 북극 근치에서 죽은 토끼를 보게 될 것이다.
먹어라, 그리고 힘을 얻어라. 어서 와라, 내 원수, 우리에겐 목숨을 걸고 벌여야 할 결투가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네가 힘들고 비참한 시간들을 견뎌내야 그때가 올 것이다."
- P278

오! 남자답게 행동하십시오. 아니, 남자 이상의 존재가 되십시오. 확고하게 목표를 다지고 반석처럼 든든히 버티십시오. 얼음은 여러분의 심장과는 재질이 다릅니다. 얼음은 변하기 쉬우니, 의지만 품는다면 결코 여러분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이마에 굴욕의 낙인을 찍고 가족에게 돌아가지는 마십시오. 싸워 이긴 영웅이 되어 돌아가십시오. 적에게 등을 돌리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영웅으로 돌아가십시오."
- P292

나는 이성적인 존재를 창조했으니, 내 능력이 닿는 한행복과 복지를 보장했어야 합니다. 그게 제 의무였어요.  - P295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이 사람이 겪은 고통이 나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하지는 않았다. 오! 잊히지 않는 범행의 과정 하나하나에서 그는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만분의 일도 겪지 않았단 말이다. 끔찍한 이기심 때문에 도저히 멈출 수 없었으나, 내 심장에는 가책의 독이 퍼져 있었다. 클레르발의 신음이 내 귀에 음악 같았을 거라 생각하는가? 내 심장은 사랑과 연민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불행이 심장을 쥐어짜 죄악과 증오를 품게 만들었을 때, 당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문 같은 아픔 없이는 그 지독한 변화를 견뎌낼 수 없었다.
- P299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심지어 신과 인간의 원수에게조차 외로움을 함께할 친구와 동료가 있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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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2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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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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