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
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 P17

이상하지, 눈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인선이 말했다.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 P55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 P57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헌디 너가 그날 밤 꿈에, 그추룩 얼굴에 눈이히영하게 묻엉으네... 내가 새벡에 눈을 뜨자마자 이 애기가 죽었구나, 생각을 했주, 허이고, 나는 너가 죽은 줄만 알아그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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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0-03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눈
맞아요
한참 눈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정말 음 뭐라고 할까
조곤 조곤 꼭꼭 다지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바람돌이 2021-10-04 15:31   좋아요 1 | URL
끊임없이 눈에 대해서 얘기하죠? 눈이 주인공인줄 알았어요. ㅎㅎ
작가님이 고통을 어찌나 꼭꼭 다지며 썼는지 읽다가 숨막히는 줄 알았어요.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 P63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나, 땅을 헤집고 다니는 벌레들, 바다와 호수의 조류,
축축한 곳마다 균사를 뻗치는 균류, 아영은 그렇게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들이 멀리 퍼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잠식하지만 강력한 것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정원을다 뒤덮어버리는 식물처럼. 그런 생물들에는 무시무시한 힘과놀라운 생명력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 P82

"세상이 망해가는데, 어른들은 항상 쓸데없는 걸 우리한테 가르치려고 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왜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른들은 굳이 학고 같은 것을 만든 걸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대체로 하품을 하며 수업을 듣는 반면, 칠판 앞에 선 어른들은 늘의욕에 가득차 있었다. 나는 이것이 어른들의 몇 안 되는 즐거움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 P165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면, 빼곡한 나무들 사이의 작은 공백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 풍경을 볼 때면 이곳이 투명한 스노볼 안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득하게 아름다웠고, 당장깨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 P215

"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령 돔 안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런 인류가만들 세계라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오래가진 못할 거야."
- P226

내가 다음을 모두 주었던 이 프림 빌리지는 영원히 지속될 수없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끝이 결코 오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도 여기에 내 마음이 아주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동안 붙잡혀 있으리라는 것을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 P244

지수는 밤새도록 바위에 앉아서, 숲을 가득 채운 푸른 먼지들을 보았다. 아름다움 외에는 아무 기능이 없는, 그러나 결국 제거되지 않은 푸른빛들을,
- P327

 언제나 의심하고, 매일 서로에게 물었어요.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프림을 떠난 이후 우리는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프림에서 하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죠.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시절이 그리웠고, 그것만이 우리를 잠시나마 과거로 되돌려 보내주었으니까요."
- P349

"시간이 흐를수록, 모스바나가 무엇인지가 제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에요. 저는 그냥 그곳에서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프림 빌리지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도, 그런 곳은 오직 프림빌리지뿐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식물들을 심었어요. 오직 그것만이 저를 살아가게 했으니까요."
- P354

생의 어떤 한순간이 평생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하고, 동시에 아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 P378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 P379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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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젊은이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멍하니 앞만바라보았다.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안에서 솟구쳤고,
전쟁 초기부터 쌓인 온갖 고통, 온갖 분노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일었다. 죽어가는 친구를 보며 느끼는 울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졌다는 패배감, 영웅주의적인 애국심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공허함으로 그는 운명에 대한 극단적인 반항심을 품게 되었다.  - P541

보수적인 부르주아들의 가슴속에서도 불타고 있었다. 프랑스는 피와돈이 말라가고 있었다.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항전을 고집하는 파리에대한 은근한 반감이 지방 점령지 전역에서 싹트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강베타의 열렬한 선언을 암시하며 결론을 내렸다.
"아니, 아니! 우리가 극렬분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어요. 결국 잔혹한죽음에 이르게 되니까 …… 저는 선거를 원하는 티에르 씨를 지지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화정, 맙소사! 하지만 공화정을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더 나은 게 나올 때까지."
- P625

달리샹 박사가 장을 이륜마차로 부이용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박사의 용기와 선의는 끝이 없었다. 바이에른에서 퍼지기 시작한 티푸스가 로쿠르를 휩쓸자 그는 집집을 다니며 환자를 치료했고, 그 외에도로쿠르 야전병원과 레미 야전병원 두 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부상병을 치료했다. 열렬한 애국심, 부당한 폭력에 대한 저항심으로 인해 그는 프로이센 당국에 두 번이나 체포되었다 풀려났다. - P630

수개월의 고통과 기아를 거치며 지칠 대로 지친 시민들, 이제 무위 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시민들, 바야흐로 자신이 만든 유령 앞에서 의혹에 빠진 시민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공공연하게 반란의 싹이 텄다. 시민들의 영혼을 헛되이 불태운 뒤 복수와 파괴의 맹목적 열망으로 변해버리는 환멸의 애국주의는 독일의 대대적인 포위 공격이 끝날 때마다 보이는 정신적 발작 가운데 하나였다.  - P648

 아! 장군들! 그의 뇌리에스당의 장군들이, 그 향락적이고 무능력했던 장군들이 떠올랐다. 장군이 한 사람 늘었든 줄었든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그날 하루의 나머지시간도 똑같은 열광과 흥분, 그의 전망을 완전히 바꿔놓은 열광과 흥분속에서 마무리되었다. 거리의 포석조차 바라는 듯했던 무장봉기가 점점 확산하더니 예기치 않은 승리의 운명 속에서 대번에 사태를 지배했고, 마침내 밤 열시경 시청을 중앙위원회 손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자신들이 시청을 장악한 게 믿기지 않는 듯 놀라워했다.
- P651

그러자 말도 안 된다는 듯 격한 몸짓으로 모리스는 장의 손을 놓았다. 두 사내는 잠시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파리 전체를휩쓴 광기의 충동, 즉 저멀리서 온 질병, 황제가 뿌린 병균에서 비롯된질병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노동과 검약의 땅에서 자랐기에 상식과 무지로 무장한 채 상대적으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형제나 다름없었고, 연대감이 더없이 강고했다.
갑자기 군중이 떠밀어 서로 떨어지게 되자, 그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 P653

죽음을 모면한 모리스는 패배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프로이센군과 맞붙어 번번이 패한 자칭 합법 정부군이 파리와 싸울 때는 엄청난용기를 발휘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 P655

화염에 휩싸인 주변건물들이 내뿜는 참을 수 없는 열기와 질식할 듯한 공기가 그의 몸을휘감았다. 포석 더미가 쌓인 십자로는 비처럼 쏟아지는 불똥과 함께 화재로 방어되는 진지, 불의 참호로 둘러싸인 진지가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명령이 아니었던가? 바리케이드를 포기할 때는 동네에 불을 지를것, 불덩이 방어선으로 정부군을 저지할 것, 파리를 넘겨줄 상황이 닥치면 파리를 불태울 것. 벌써 화염에 휩싸인 지역은 바크가만이 아니었다. 그의 등뒤로 도시 전체가 불타는 듯 검붉은 하늘이 보였고, 멀리서뭔가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 P666

시라도 편히 쉬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끌려와 임의로 뒤섞인 포로 출신병사들은 파리를 향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리고 코뮌의 만행도 소유와 질서에 대한 존중심에 상처를 내며 장을 격분하게 했다. 온건한농부로서 그는 다시 땅을 일구고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노동할 힘을얻을 수 있도록 그저 평화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화재는 가장 선한천성마저 잠재우며 미치도록 그의 화를 돋우었다. 승리할 수 없다고 해서 집을 불태우고 궁전을 불태우다니, 아. 그건 안 돼, 말도 안 돼! 그것은 날강도들이나 할 짓이었다. 그 전날 즉결 처형을 보고 통탄을 금하지 못했던 그도 이제 자제력을 잃었고, 고함을 지르며 눈이 뒤집힐 정도로 난폭해졌다.
- P667

 마침내 파리가 불타고 있어, 독일군의 포탄이 처마끝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파리가 불타고 있어! 군터는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풀리는 듯했다. 포위공격으로 인한 격심한 피로, 혹독한 추위, 끊임없이 발생하는 난관 등이 여전히 독일군을 괴롭혔는데, 이제야 그 고통을 보싱빈는 기분이었다. 지방의 정복도 50억 프랑의 배상금도, 그 무엇도 이 파괴된 파리,
사나운 광기에 물든 파리, 청명한 봄밤에 스스로 불타올라 연기 속으로사라지는 파리만큼 승리의 자부심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 P673

그러나 모리스는 불타는 도시에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힘겹게더듬거렸다.
"아냐, 아냐, 전쟁을 저주하지 마……… 전쟁은 나쁜 게 아냐, 전쟁은자기 할일을 할 뿐이야….."
장이 증오와 후회에 찬 고함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제기랄! 네가 여기에 누워 있잖아, 그게 다 내 잘못인데……… 전쟁이뭐가 좋다고 그래, 전쟁은 더러운 거야!"
환자가 모호한 몸짓을 했다.
"오! 전쟁이 뭐가 문제라는 거지? 이점도 많아!..… 유혈사태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전쟁이란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이야."
- P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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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국왕의 발밑으로, 레미에서 프레누아까지 촘촘하게 포진한포병대들이 쉴새없이 몽셀과 대니를 공격했고, 스당을 넘어 북쪽 고원까지 화염에 휩싸이게 했다. 아직 여덟시가 채 못 되었다. 국왕은 전투의 필연적 결과를 기다리며 거대한 장기판을 응시했고, 자애롭고 무궁한 자연 속에 흩어진 조그만 병정들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다.
- P262

영웅이 되는 건 멋진 일이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배를 채우는 일, 그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맛있는 수프가 끓는 날이면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냄비를 바라보았던가! 그러나 빵이 없는 날이면, 그들은 어린아이나 야만인처럼 불같이 화를 냈다.
"먹지 못하면, 전투도 못해." 슈토가 말했다. 젠장,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 P265

그러자 보두앵 중대의 병사들 사이에서 조소가 터져나왔다. 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경멸에 찬 야유를 쏟아붓는 슈토와 루베의 편이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그저 떠미는 대로가면 돼! 이제야 장군들끼리 마음이 맞는 모양이군. 그래, 더이상 자기가 옳다고 고집 피우는 자가 없는 건가! 이따위 장군들 밑에서는 잠이나 자는 게 상책이지 않겠어? 단 두 시간 만에 총사령관이 셋이라니.
도대체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제각각 다른 명령을 내리는 건달 셋이라니! 모두가 기겁할 일이야, 그렇잖아, 이런 상황에서는 신이라도사기가 꺾일 테지! 배반이라는 비난이 다시 쏟아졌다. 뒤크로와 드 빔펜도 마크마옹처럼 300만 프랑을 받고 싶은 거라고!
- P286

"그런데, 그가 장에게 말했다. "뭐라도 좀 먹어야겠어.……… 지금 당장총에 맞아 죽을망정 배를 채우고 싶어!"
모리스는 배낭을 열었고, 떨리는 손으로 빵을 집어 허겁지겁 물어뜯었다. 총알이 씽씽 지나갔고, 포탄이 지적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배를채우는 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었다.
"형, 조금 먹지 않을래?"
똑같이 굶주림에 시달리던 장은 얼이 빠진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쨌든 먹고 보자. 나도 너무 힘들어."
- P362

바로 그때, 모리스는 장이 다시 눈을 뜨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꼈다.
장의 얼굴을 적실 물을 구하러 근처 개울로 뛰어갔을 때 오른쪽, 즉 거친 비탈로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에서 아침에 보았던 농부가 커다란 백마에 매단 쟁기를 밀며 태연히 일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왜 하루를허송하랴? 전투를 한다고 밀이 자라기를 멈추고 사람들이 살아가기를멈추는 게 아니잖아.
- P371

기대를 넘어서는 완벽한 압승이었다. 이 광활한 계곡 앞에서 도로 위에 널린 수천 구의 시체는 너무도 작아 보여 빌헬름 국왕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바지유의화재, 일리의 학살, 스당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름다운 하루가 평온하게 저무는 이 시각, 무심한 자연은 너무도 눈부시게물들어갔다.
- P403

1780년에태어난 그의 할아버지는 나폴레옹 대군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아우스터리츠 승전, 바그람 승전, 프리틀란트 승전의 주인공이었다. 1811년에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무원으로 전락해 셴포필뢰에서 징세관으로 일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1841년에 태어난 그는 신사로 자라나 변호사로서 온갖 어리석은 유혹, 온갖 위대한 열정에 사로잡히기도했으나 이제 스당에서 패배해 하나의 세계를 끝장내는 재앙을 맞이했다. 이런 종족적 퇴화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아버지 세대에서 승전을 거듭했던 프랑스가 손자 세대에서 참패를 당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가슴을 몹시 아프게 한 그 종족적 퇴화는 천천히 악화하다가 때가 되면 파국을 초래하는 가족력을 연상케 했다. 만약 승리했다면, 그는 너무도 용감하고 의기양양했으리라! 하지만 패배하자, 그는 여자처럼 신경이 쇠약해져 전 세계가 빠져드는 깊은 절망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더이상 아무것도 없어, 프랑스는 죽은 거야. 목을 죄는 듯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 P440

그런 다음 그는 고통스럽게, 생각나는 대로 자기 의견을 말했다. 우리는 호되게 당한 거야, 그건 확실해! 하지만 모두가 죽은 것은 아니야열심히 일하고 벌어들인 것을 탕진하지 않는다면, 남아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만사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예를 들어 가정에서도 모두가 참고 견디며 저축을 하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출구가 보이는 법이야. 심지어 가끔은 따귀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아, 곰곰이 생각하게 해주니까. 게다가 말이야, 만약 몸 어딘가가 썩고 있다.
면, 예를 들어 팔다리가 썩고 있다면, 그걸 도끼로 쳐서 잘라내는 게 온몸에 독이 퍼져 죽는 것보다 낫지 않아?
- P441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정말 진절머리가 나요!" 프로스페르가 다시말했다. "저기 아프리카에 있을 때처럼, 힘들어도 뭔가 좋은 일을 하게해줘야죠! 그런데 이번에는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왔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만 시켰어요, 그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게다가 불쌍한 제피르가 죽었고, 저는 완전히 혼자가됐어요. 그러니 다시 농사일을 시작해야죠. 안 그래요? 그게 프로이센포로가 되는 것보다 낫잖아요…..… 푸샤르 영감님, 영감님은 말도 가지고 계시잖아요. 한번 보세요, 제가 얼마나 말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말을 잘 돌보는지!"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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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 모리스는 온몸을 떨리게 하는 어둠 속에서 크나큰 의무감을 느꼈다. 그는 더이상 전설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는 허황한 꿈을꾸지 않았다. 베르됭으로의 행군,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행군이었다.
그리고 죽어야 하는 이상 그는 그 죽음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 P91

당장의 전투를 꿈꾸며 애국적인 열정 속에서 입대한 지 육 주가 지났건만, 그가 한 것이라고는 전투와 무관하게 살았기에 구보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발을 혹사시킨 행군뿐이었다. 따라서 적군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그는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무한히 뻗은 듯한 그랑프레 도로를 초조하게 주시했다.
- P125

 아! 대패가 확실한데도 완조의안녕을 위해 사지로 급파되는 이 설망의 군대여, 이 파멸의 군내여 진격하라, 진격하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빗속으로, 진창 속으로, 전멸을향해!
- P147

랭스에서 야영한 다음날 샹파뉴에서 병사들이 했던 즐거운 행군, 농담과 노래로 떠들썩했던 행군, 프로이센군을 따라잡아 격퇴하리라는 희망 속에서 배낭을 가볍게 들어올렸던 행군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 분노와 침묵 속에서 그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소총과배낭을 저주했고, 지휘부를 더이상 믿지 않았으며, 절망에 사로잡힌 채채찍질을 두려워하는 가축떼처럼 전 만근 무거운 발을 그저 앞으로옮길 뿐이었다. 이 가련한 군대는 자기들의 십자가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 P153

많이 배우지 못해 무식한 그가 보기에,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조화롭게 공존하는것보다 더 쉬운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많이 배운 모리스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쟁이 삶 자제요.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정의와 평화의 개념을 도입한 자는 불쌍하고 유약한 존재가 아닐까? 어차피 냉혹한 자연이란 끝없는 살육의 장일 뿐이니까.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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