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위대한 사람 또는 그 비슷한 사람에 근접할 수 있다는 지적 허영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끊임없이 자신의 뛰어남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램지씨. 어쩌면 유아적인 감성에서 아직 못벗어난듯 보이는 가부장이다.
자신의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고 그와 그의 지인들과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보는것에 자신의 삶의 지향이 있다고 굳건히 믿으려하는 램지부인.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자신 스스로 뭔가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끊임없이 또 느닷없이 소설의 시점이 바뀌고, 각자의 생각들도 작은 계기에도 확확 바뀌어 나가는걸 그대로 보여주어서 소설 읽기가 쉽지 않다. 이게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는 것인가?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사사로운 여인이 아닐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와 같은 일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베푸는 자선은 자신의분노를 어느 정도는 삭여주었고, 자신의 호기심도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었으며, 지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그녀가 대단히 경탄해마지 않는 존재, 즉 거창하게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원이될 수 있었던 것이다.
- P19

바람의 방향이 자주 바뀌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그녀는 반문했다.
그녀가 하는 말의 이상한 비합리성, 여인들의 낮은 수준의 지력이 그의 화를 북돋았다. 그는 죽음의 골짜구니를 말을 타고 달렸고, 산산이 부서져서 오한에 떨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어처구니없게도 엄연한 사실들을 무시하고, 자식들로 하여금 어불성설의 상황을 희망하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돌계단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빌어먹을." 그는 내뱉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했길래? 내일 날씨가 좋을지도 모른다고 했을 뿐인데, 정말그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 P49

즉 가장 완벽한 관계도 결함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시험을 견뎌내지못한다는 사실, 즉 그녀의 남편을 사랑하면서 사실을 사실로 파악할 수 있는 본능을 지니고 그녀는 사실 쪽으로 몸을 돌린 것이다. 또한 자신의 무가치성을 명확하게 느끼고 괴로워할 때, 그리고 이 거짓말들과 이 과장들에 의하여 그녀의 고유한 기능을 방해받고 있을 때 — 바로 이런 순간에, 그녀가 그렇게나 득의양양했던 직후에 비참하게 초조해하고 있을 때, 카마이클 씨가 그의노란 슬리퍼를 신고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내면의 어떤 악마의 농간으로 그가 지나갈 때 다음과 같이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마이클 씨 들어가시는 건가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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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3-01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그 유명하다는 의식의 흐름 기법,,,아무튼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젤로 재밌다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려고 하는데 어느 세월에 읽게 될지,,,그러니 <등대로>는 뭐 말 할 필요가 없겠죠??^^;;;

바람돌이 2021-03-02 01:18   좋아요 0 | URL
저는 버지니아울프 책 처음인데 <등대로>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전집의 1권이었기 때문이라죠. ㅎㅎ 아주 어렵지는 않아요. 그냥 정신이 좀 사납다고 할까? ㅎㅎ 그나저나 댈러웨이 부인이 젤로 재밌다고요? 음 그럼 다음책은 델러웨이 부인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
 

 중소 국경분쟁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소련은 중국 유물이중국인들이 여기에 살았다는 근거로 쓰여 자칫 영토분쟁의 빌미가 될까봐 이볼가 성터를 흉노에 잡혀온 ‘중국인들의 포로수용소라는 공식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2011년 내가 일본과 몽골에서 흉노 성터 연구를 발표하자 한 일본인 노학자는 그 내막을 듣고서자신은 이제까지 이볼가 성터를 포로수용소로 알고 있었다며 허탈해했다. 국가 간 학문적 교류가 전무하던 시절의 해프닝이다.
이볼가 성터 발굴 이후 부랴트공화국과 몽골의 성지 곳곳에서는옥저 계통의 온돌을 설치한 주거지가 속속 발견되었다. 흉노가 살던 추운 북방 초원에서 옥저의 온돌은 꽤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 P159

모든 나라들은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신라도 국력을 강화하면서 부여계와는 다른 그들만의 선민의식이 필요했다. 이에 진한 시기부터 이어져왔던북방과의 교류를 전면에 내세워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화하고자했다. 신라가 흉노를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유라시아 초원은 흉노의 영향을 받은 유목민들이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세력을 키웠다.  - P174

무덤의 생김새만으로 기원을 찾으려 하는 것도, 신라인이 우연히 똑같은 고분을 만들었다고 우기는 것도 둘 다 의미 없다. 신라인들이 유라시아의 적석목곽분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경주에서재창조했다고 보는 게 맞는다. 1500년을 변함없이 그 자리에 단단히 지키고 있는 거대한 돌무더기는 유라시아의 기술을 신라의 것으로 바꾼, 신라인들의 지혜가 집약된 산물이다.
- P180

흉노의 영향을 받아 왕족들이 편두를 하는 나라들에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금관이나 금동관을 쓴다는 점이다. 신라와 가야의 금관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신라의 금관과 유사한유물이 발견된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아 테페(Tilla Tepe)에서도 편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흑해 연안에 살며 금관을 썼던 사르마트인(Sarmat)들도 편두를 했다.
- P222

그 배경에는 20세기 초반에 서양에서 유행한 우생학과 인종주의가 있다. 그들은 순수한‘ 유럽인을 찾아야 했다. 열등한 타민족과 섞이지 않은 고대의 우월한 사람들이 신아 지역에 모여 있다고생각했고, 서구의 인류학자들은 경쟁적으로 파미르고원과 티베트고원을 탐사했다.  - P241

유목민들은 다른 부족들을 정복할 때에 반드시 적의 무덤을 파괴하고 도굴했다. 전쟁에서 이겨도 정복해야 할 도시나 요새가 없기 때문에 유목민들이 모이는 장소인 조상들의 무덤을 파괴했던것이다. 무덤 속에서 황금 유물이 나오면 전리품으로 나누어가졌다. 그 과정에서 황금 유물들이 사방으로 전해지며 잘못된 황금의나라 전설을 부추겼다. 그렇게 수천년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했던 황금의 나라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다.
- P258

수많은 핸디캡을 딛고 그가 마야 문자 해독에 성공할 수 있었던이유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차별 없이 보고, 인류의 보편성에 눈길을 주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후에 서양의 수많은 학자들은 크노로조프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연구하면서 새롭게 발굴된마야 문자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야의 언어도 발전할수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반면 크노로조프의 천재성은 마야의 문자가 세상의 다른 글자와 마찬가지로 수백년간발달해왔다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한 데 있었다.  - P274

어용학자를 바라보는 서양의 관점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예를들면 지금까지도 서양에서는 학문 연구에 있어 나치에 부역했던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며, 그들의 이름은오로지 비판을 위해서만 인용된다. 이러한 냉정한 평가는 그 사람들의 개인적 능력이나 성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제국주의 고고학의 폐해는 그들이 성격 파탄자거나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을 암묵적으로 따라가는 연구 경향이 결국 수천만명을 고통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 P296

 일제는 이 용어를 한반도에 도입하면서 한국인은 제대로 된청동기나 철기를 쓰지 못한 열등한 민족이라는 의미로 곡해해서사용했다. 쉽게 말하면, 석기 - 청동기 철기로 이어지는 발전 단계없이, 한반도의 바닷가에는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신석기시대문화에 머문 사람들이, 내륙의 산과 평야에는 청동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장식용으로 일부 사용한 민무늬토기 문화에 머문 사람들이 문명을 이루지 못한 채 동시에 살았다는 뜻이 된다. 석기시대에 뜬금없이 중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철과 청동을 같이 사용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금석병용기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 P297

정작 일본의 현지인은 미개하다고 치부하고 ‘위대한 일본인‘ 조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일부 우리가 가진 한반도에 대한 인식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최근까지 한국에서도 북방 유라시아는원래 우리의 영토‘였다며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 떠도는데, 그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가 주장하던 침략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고대에 사람들이 교류하고 공존했던 사실을 현대 국가의 영토로 치환시켜 논하는 것은 오히려 고대 한국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일본 군국주의의 논리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일 뿐이다. - P298

1980년대 이후 개혁개방을 앞세운 중국의 정책과 함께 훙산문화는 그 의미가 변질되었다. 각 지역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구계유형론은 한족 중심의 중국 문명을 강조하는 다원일체론(多元一體論)으로 바뀌었다. 다원일체론은 마치 여러 지류의 물길이 하나의 큰 강으로 합쳐지듯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문명이 중화 문명이라고 하는 큰 문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다원일체론이 계냥하는 지역은 주로 티베트, 신장, 몽골, 만주와 같이 최근에 중국의 영토에 편입된 곳들이다. - P319

이후 다원일체론에 포함되는 지역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양쯔강 유역의 량주문화에서도 옥기가 발견되면서 다원일체론에 추가되었고, 2010년대 이후에는 백두산 일대도 ‘장백산문화론‘이라 불리며 중국의 문명 재편 과정에 포함되었다. 중국의 이런 역사 만들기는 훙산문화의 재발견에서 출발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촉발된 홍산문화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이 지금은 반대로 중국의 팽창주의적 역사관을 여는 단초가 된 셈이다.
- P321

터키가 세계적인 그리스와 근동 문명을 마다하고 굳이 머나먼알타이,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기원을 찾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오스만튀르크가 멸망하고 지금의 터키가 들어선 사건이다. 신생국가 터키는 강력한 서구화 정책을 취하는 한편 머나먼 미지의 땅에 자신의 고향을 둠으로써 터키의 정체성이 서양으로 휩쓸리지 않도록하는 양면 정책을 실시했다.
머나먼 극동 지역의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며 아낌없는 호감을 표시하는 것은 현대 유럽의 일부로 살면서도 정체성은 아시아에 두는, 그들의 이중적인 역사인식의 발로인 셈이다. 유라시아동편에 자신의 기원을 둔 터키의 사례는 미지의 땅에 대한 동경과고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이 현실의 치열한 일부분임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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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41페이지 유물 사진 설명에 의하면 아래 그림이 <위원 용연동 유적에서 발견된 명도전과 철제 농기구>라고 되어 있는데 사진의 유물은 모두 철제농기구입니다. 명도전이 없어요.
책의 본문이 명도전을 중심으로 설명이 되고 있는 중에 나온 자료 사진인지라 반드시 사진 교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147쪽
아래에서 5번째 줄 휴노는 흉노로 고쳐야 하네요.
291쪽 아래에서 5번째 줄 부흥은 부응
314쪽 아래에서 7번째 줄 주변에는은 주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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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28 0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월요일에 저자 북토크를 놓쳐서 아쉽다 생각했는데, 저자분께서 인지하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바람돌이 2021-02-28 01:48   좋아요 0 | URL
알고 계시면 다행이고요. 몰랐다면 다음 인쇄에서는 고쳐줬으면 해서 올려봤어요. 출판사 바로 가서 얘기하는게 제일 빠르겠지만 제가 그 정도로 또 바지런하지는 않고요. ㅎㅎ

cyrus 2021-02-28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려보고, 출판사 측의 답변이 오지 않으면 직접 출판사에게 의견을 전달해야 될 거예요. 저는 인스타그램 DM으로 오자를 알려줘요. 출판사들이 인스타그램으로 책 홍보를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

바람돌이 2021-02-28 23:43   좋아요 0 | URL
오호.... 하지만 전 인스타를 안해요. ㅠ.ㅠ 굳이 답변을 기다리는건 아니구요. 설마 자기들이 만든 책 독자반응도 안볼까 싶은거죠. 그리고 이 책은 2쇄 들어갈 것 같은데 쇄라는게 제가 알기로는 판본을 바꾸거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찍어내는 걸로 알고있는데 반영이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출판사는 또 출판사대로 사정이 있을테니까요. ㅎㅎ

pistis 2021-07-13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오타오류가 발견되면 출판사에 전화를 하는 데, 간혹 저자분과 연락이 되어 영상통화도 하고 만나서 식사도 같이 하며 아는 사이가 되기도 했어요. 꼼꼼한 책읽기를 좋아합니다.

바람돌이 2021-07-14 14:2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성의부족인 낯을 좀 가리는 제 성격 때문인지 이런 얘기를 직접 하는건 좀 어렵더라구요. 저자분을 만나면 참 좋을듯도 한데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망설일듯합니다. ^^
 

4대문명론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전세계를 활보할 때에 만들어졌다.
문명이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발달했고 나머지 지역은 미개하게살았다는 생각은 몇몇 선진국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우리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여럿발견되고 있다. 터키 남부에서 발견된, 1만 5000년 전에 만들어진대형 신전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유적과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2만년 전의 토기가 대표적이다.
- P22

유라시아 서쪽에 괴베클리 테페가 있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세계 최초로 구석기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1960년대부터 일본열도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와 함께 토기가 발견되었고 1990년대에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도 토기가 발견되었다.  - P23

고고학을 통해 강대국 문명 중심의 역사관을 해체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주류와 변두리의 선을 긋지 않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한국사와 세계사를 보기위한 첫걸음으로 그간 우리가 지나쳤던 역사의 진정한 주역들을차례차례 만나보겠습니다. - P6

서 접근했다. 세계 문명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근동과 인더스의 문명이 전쟁, 행정, 교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면 중국을 비롯한아시아와 신대륙 일대는 제사와 그것을 주관하는 신관, 즉 샤먼이문명의 주축이 되었다. 구석기시대 이래 종교적 전통이 잘 남아 있는 아시아와 신대륙에서 예술품과 종교에 유사점이 보이는 것은이 때문이다. 이를 아시아-아메리카 샤먼 문화권‘이라고도 할 수있다.
- P43

훈족과 흉노가 같은 민족인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성립 자체가불가능하다. 유목사회는 다양한 집단의 융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들이 ‘같은 민족‘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흉노와 훈족 관계의 핵심은 ‘유라시아를 관통한 문화교류에 있다.
- P77

동이(東夷)는 원래 ‘동쪽의 오랑캐‘라는 뜻으로, 중국 내에서 사용한 명칭이다. 동이족은 주나라 건국 직후에는 상나라 사람을,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는 산둥반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통일을 이룬 진한시대에는 바다 건너 고구려, 부여, 옥저 등한반도와 북방의 만주족을 통칭해 동이족이라 불렀다.
- P107

한가지 분명한 점은 기자 동래설이 한나라때 갑자기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기원전 109년 한무제가 고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 있다. 고조선은 원래 중국에서 사람을 보내 세운 나라였다는 주장을 정벌의 명분으로 삼았다.
- P122

 이렇듯 다링하는 청동기시대에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며 발전한지역이다. 단편적인 자료 몇개를 가지고 기자조선인가 아닌가라는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유라시아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던 이지역의 역동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어쩌면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 시대가 되면서 이 지역으로 건너간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와전,
윤색되어서 기자동래설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기자가 동쪽으로 와서 나라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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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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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복잡한듯 하면서도 단순하다.

인간의 온갖 욕망이 다 복잡해보이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어디에 방점을 더 두는가? 어느정도의 사랑? 어느정도의 인정? 어느정도의 부자에 만족하느냐에 따라 그 스펙트럼은 또 천만가지로 나뉘겠지만 말이다.

 

소련 또는 러시아라는 나라의 여성작가 책은 처음이다.

이쪽은 워낙에 쟁쟁한 작가들이 많아 사실 그들의 책만 읽어도 차고 넘치겠지만,

가만 생각하면 그 세계적인 대가 러시아 작가들에게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안나 카레리나>나 <닥터 지바고>가 있겠지만 이런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남성작가가 바라본 여성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빅토리아 토카레바라는 이름도 생소한 러시아 여성작가가 펼치는 여성의 세계는 흥미로웠다.

 

이 소설은 스탈린 시절부터 페레스트로카 이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면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 시절의 소련 또는 러시아는 어쩌면 지금의 중국처럼 뭘 가져와도 이야기가 되는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격변의 시절이란 상상하기 힘든 일도 너무 쉽게 현실이 되고, 일반적인 삶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일상이 되기도 하는 시절이기 때문일테다.

결국 이 소설은 그런 시절 사랑과 부와 명예를 갖고 싶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이게 과연 소설인가 르포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대기적인 느낌도 물씬 나는 중편 3개의 이야기와 단편 2개로 이루어져 있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이야기 속 여성들은 하나같이 자존감이 강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긍정적인 인물상이 그려질법도 한데,

우리의 개발시대 시골에서 꿈을 품고 상경했던 수많은 영자 순희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들이라고 해서 딱히 다르지는 않을테고, 그런 속에서 무엇인가를 가지고자 했다면 긍정적이거나 도덕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소설속 여성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점이 빅토리아 토카레바가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표제작인 <티끌같은 나>에서 노래라는 재능 하나를 믿고 모스크바로 상경한 소녀 안젤라는 아직 어린 소녀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명민하게 살핀다.

 

레나는 실제로 편두통을 앓았고오후 1시까지 늦잠을 잤다두통의 원인은 안나 카레니나처럼   없음이었다레나는  일이 없었다화단에 물이라도 주면 좋으련만……하긴 집안일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일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집에는 운전기사와 경비원도 있었다안젤라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들에게는 저마다 목표와 높은 이상이 있었다뇌물을 줘서 아들의 군복무를 면제받으려는 이도 있고딸이 전문의 자격증을 따도록 뒷바라지하는 사람도 있으며러시아제 가젤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거나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  돈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다저마다 추구하는  다를 뿐이었다. - P61

 

러시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새로운 부르조아의 삶의 허위를 냉철하게 간파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안제라의 선택이 딱히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는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안젤라의 삶이 그저 그런 뻔한 신파가 되지 않는 것은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중심에 두고 주변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쟁취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두번째 중편 <이유>에서 주인공 마리나는 그야말로 사랑받고, 사랑하고싶은 욕구를 극단으로까지 표현하는 여성이다.

삶의 중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살아남는 방법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생활력 강한 억센 여성이지만 자신의 모든 삶의 순간 순간에서 항상 사랑을 선택하는 여성이다.

그것이 비록 자신을 절망의 구렁으로 이끌지라도말이다.

삶은 끊임없이 곤두박질 치지만 그럼에도 마리나는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여성이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도덕적인지 아닌지는 마리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이해한다마리나의 지인 중에는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이 없었고다른 사람들 사정은 그녀가   아니었다.- P287

 

 

세번째 이야기인 <첫번째 시도>에 가면 주인공 여성의 욕망추구는 극단적으로 진행된다.

마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쟁취하는데 어떤 거리낌도 없다.

사랑도 권력도 부도 모두 가지고 싶은 여성이고, 실제로 한때는 그것 모두를 가지기도 하는 여성이다.

자본주의적 욕망의 화신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삶은 어쩌면 러시아가 자본주의 사회로 재편되면서 무수히 많은 러시아인들이 밟아갔던 바로 그 과정일 것이다.

다만 이 평범한 이야기가 특별해지는 것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것 때문일테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소설 속 주인공 어느 누구도 딱히 긍정적이지 않으며, 쉽게 공감이 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특별한 것은 이 여성들을 보라고 당당하게 내놓는 지점에 있다.

남자에 의해 대상화되고 타자화되는 여성이 아니라, 비열하든 부도덕하든 상관없이 자신이 주체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에게 말할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욕망을 잘 들여다보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당연한 욕망이다.

왜 남자의 욕망은 성공스토리로 포장되면서 여성의 욕망은 은폐되어야 할 부도덕한 무엇으로 간주되는지에 대해 당당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굳이 이론적으로 따지고 들지 않아도 그저 여성의 삶을 보여주면 된다.

거기에 남성 여성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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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2-26 0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바람돌이님처럼 읽지 않고 그냥 정신없이 읽었어요. 이 책 덕분에 소설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는데... ^^;;

바람돌이 2021-02-27 02:04   좋아요 0 | URL
러시아 여성을 소재로 하는 현대 소설이 많이 신선했어요. 소설을 읽는 건 항상 즐거워요. ^^

mini74 2021-02-26 1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유. 읽으면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란 일본영화가 생각났어요. 묘하게 닮은 느낌. *^^*

scott 2021-02-26 14:28   좋아요 1 | URL
오 미니님 저도!
마츠코 불쌍한 마츠코 ㅜ.ㅜ

바람돌이 2021-02-27 02:07   좋아요 1 | URL
아 맞네요. 둘이 닮은거 맞네요. ㅎㅎ

cyrus 2021-02-26 1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욕망’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남자)은 ‘섹슈얼한 욕망’으로 생각해요. 욕망을 욕정의 동의어로 보는 거죠. 남자들은 여성의 욕정에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바람돌이 2021-02-27 02: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남자들은 왜 아직도 그 지독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못벗어나는 이들이 그토록 많은걸까요? 그렇게 자기 생각에만 갇혀있으니까 독해도 못하죠. ^^

희선 2021-03-02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 남자를 떠나서 사람은 욕망을 가지고 있겠지요 예전에 본 드라마 같은 거 생각해도 다 남자이야기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러시아 작가도 남성 작가만 더 알려졌고... 아주 없지 않았을 텐데,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는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1-03-03 11:44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지예요. 진짜 러시아는 워낙에 대단한 남자 작가들이 많아서인지 여성작가들이 너무 가려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나씩 이렇게 번역이 되어 나오니 다행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