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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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책 죽이기THE BOOK, 2003

저자 : 조란 지브코비치

역자 : 유향란

출판 : 문이당

작성 : 2007.03.17.



“나는 좋아라. 책들의 양로원인 헌책방이.”

-즉흥 감상-



  꼭 대출해 읽고 싶으면 그 대기자 명단이 길어 보이는 책이 있곤 합니다. 대신 그러한 기다림의 시간을 이용해 먼저 다른 책들을 만나며 붉은색 표지의 이번 책을 들고 다니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군침을 흘리곤 했는데요. 결국 제 손에 들어온 책은, 흐음. 글쎄요. 처음에는 분명 자극적인 상상력을 발동시키시기에 재미있다 생각이 들었지만 중간부터는 뭔가 지겨운 느낌이 드는 것이……, 아무튼!! 마침표를 만나본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선 책이 말하는 자신들의 참혹한 역사와 일상들에 대한 시작을 여는 ‘수난’, 책이 상주하게 되는 여러 장소와 그러한 각각의 자리에서 말하는 나름의 고통어린 푸념 ‘학살’, 책의 이질적인 판매방식에 그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한 ‘망신’, 책이 책임을 인정받기위한 과정이 설명되기 시작한 ‘임신’, 그리고 그 중에서도 뛰어난 책임을 인정받게 되는 과정이 담긴 ‘진통’, 다시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 이번에는 책이 만들어지기 전,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출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보여 지는 ‘착상’, 책이 제작되어 무한히 복제되는 이야기에서 밝혀지게 되는 출판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에서 인간복제에 대한 철학까지 가미된 ‘출산’, 새로운 매체로 인한 실질적 책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죽음’,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해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 듯 보이는 삽화까지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흐음. 분명 작품에 대한 설명에서는 ‘소설’이라고 되어있었지만 무슨 이론서적을 읽는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특별한 줄거리도 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한권의 책이 처음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며 책이라는 형태가 되기 위해 거치게 되는 절차와 결국 엄청난 양으로 복제되어 어떻게 팔리게 되고, 또한 그러한 책들의 시장유통 형태나 그러한 과정 속에서 책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장소에 대한 안내. 이어서는 인간의 삶이 발전함에 따라 책이라는 것이 어떻게 변화되는 등. 한편으로는 책에 빗대어진 사람에 대한 블랙유머를 보는 듯도 했습니다.

  사람이 책을 대하는 행위에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예를 들어 말하는 것이 재미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통’편에 있었던 특별한 최고의 책이 탄생되는 과정에서 서양 종교의 지도자라고도 말해지는 교황이 선출되는 모습에 무슨 첩보영화를 첨가한 듯해 한참을 킬킬거릴 수 있었는데요. 그런 한편으로는 왜 책이 중간부분부터 재미가 없어졌을까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임신’편부터 ‘착상’편까지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갑자기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걸고 넘어가볼 수 있겠는데요. 시점의 변화와 그로인한 혼란에 대해서는 저도 어설픈 실력으로 글을 쓰며 지적을 많이 들어본 것인지라 특히나 민감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님의 작품들 마냥 또 다른 시각에서의 세상보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점에서 그런 실망감을 가져버린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볼 수도 있었는데요. 다시금 이야기의 바통을 책이 받긴 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책이 이야기를 이어서 하는 것이나 특별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책이라. 제 기록을 읽으시는 분들은 집에 얼마만큼의 책을 가지고 계시나요? 저는 도서관이나 관공서의 도서 대출코너를 어느 날 부터인가 이용하지 않게 되면서 책을 한두 권씩 사서 모은다는 것이 어느덧 500권을 넘어가면서 소장목록 리스트를 만들고 정리하는 것을 포기 해버리고 말았는데요. 특히나 헌책방을 알고 난 뒤부터는 그저 높은 빌딩마냥 책들이 싸여갈 뿐인지라 읽지 못해 구석에 잠들어 있는 책들이 많아짐에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습니다.

  네? 그건 그렇다 치고 한번밖에 안 읽을 거면서 뭐 그렇게 책을 많이 사냐구요? 그런 질문에는 책을 한번만 읽으면 그걸로 끝나는 것인가에 대해 되물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렇기에 한권의 책이라도 여러 번 읽는 방법을 살짝 알려드리고자하니 메모할 준비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요즘은 영화를 원작으로 책이 만들어지는 ‘씨네 픽션Cine Fiction’들도 많이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영상작품들이 ‘소설’ 등의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영화로 만난 작품도 원작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책으로 만나보고, 그렇게 다시 영화를 본 다음 차이점이나 헷갈리는 부분이 보이게 되면 재확인하는 경우가 있게 되는데요. 또한, 오랜 시간의 공백을 두고 리메이크하거나 이어지는 시리즈가 제작될 경우에 원작이 있다면 다시금 먼지를 털어 꺼내 읽곤 합니다. 그밖에도 분명 예전에 읽었지만 ‘감상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이 없을 경우 그것을 작성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꺼내 읽곤 하는데요. 책이라는 것이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는 점에서 소장중인 책일 경우 최소한 2번 이상은 열어봤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뭐. 또 다른 방법으로 소장중인 도서에 대해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이 생길 경우 대여를 해주곤 하니 책으로서는 나름대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그나저나 이번 책을 읽으면서 특히 많이 생각한 것이 하나 있다면 ‘삽화’입니다. 뭔가 대충대충 그린 기분이 있었던지라 글씨로만 봤을 때는 재미있다가 삽화를 보는 순간 원작을 책으로 제작된 영화를 볼 때 마냥 상상력이 죽어버리는 기분이 들어버렸는데요. 처음부터 삽화를 신경 써서 많이 집어넣던지 아니면 아예 집어넣질 말던지, 거기에다가 초반과 후반에만 삽화가 보이고 중반에서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위에서 잠시 말한 ‘지겨움’까지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듯한 책의 일생에 대해 나름대로 재미있는 상상력을 보여주신 작가 분께는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볼까 하는군요.



  음? 그러고 보니 책의 원제목은 직역해서 ‘책The book’인데, 한국 번역본의 이름은 ‘책 죽이기’였군요? 그냥 ‘책’이라고 적기에는 너무 싱거운 기분이 들어서 나름대로 과격한 제목을 적은 것 일까나요? 아니면 책의 내용에 일부 얼굴 붉힐만한 표현이 있어 양서를 원하시는 부모님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까나요? 책 전체로 책이 말하는 인생 비관론이 서술되긴 했지만, 그것은 전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비비꼬아 서술했을 뿐인데 가장 힘없이 보이는 마지막 이야기인 ‘죽음’이라는 소제목을 차용한 것은 뭔가 ‘아니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원제목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보이는 제목만 인식하는 생각보다 많은 독자 분들이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의 표지와 자극적인 제목만 보고 안 그래도 읽기 싫은 책을 학살하고 고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살 떨리는 내용을 기대하셨다가는 배신감마저 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영화 일 경우 특히 그런 사례가 많았던지라 제목 선정에 있어서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신경을 좀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거이거. 책 자체가 이미 부정적인 사고관이 잔뜩 묻어난 것이어서인지 감상기록 자체도 이게 싫네 저게 싫네 하는 식이 되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책이란 볼 때마다 그 맛이 다르며 읽는 사람에 따라서도 그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번 즘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말씀드리며 기록을 마쳐볼까 합니다.



[첨가]


  책에 대한 현실적 상상력의 소설은 이번에 읽은 책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개인 적으로는 앞서 읽은 적 있는 발터 뫼르스 님의 소설 ‘꿈꾸는 책들의 도시Die Stadt der Traumenden Bucher, 2004’를 더 추천해보는 바입니다. 그 책은 지극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즉흥 감상으로 “이것은 작가와 책들의 이야기이다!!”라고 적을 정도였으니 할 말은 다 했을 것으로 판단되는군요.

 

TEXT No. 410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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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 외국문학 5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책 읽어주는 여자La Lectrice, 1986

저자 : 레몽 장

역자 : 김화영

출판 : 세계사

작성 : 2007.03.18.



“오오. 나는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 볼까나?(웃음)”

-즉흥 감상-



  책 읽어주는 여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다 싶어 한참을 고민하며 개인 컴퓨터를 뒤적거리던 저는 수없이 많은 영화 목록 중에서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The Reader, 1988’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입수한 영화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일단 수중에 넣어 스틸 컷 마냥 휙휙 넘겨보며 얼굴 붉히는 장면이 나오기에 아직 감상에는 보류상태로 놔두고 있었는데요. 우선 그 작품의 원작이 이번에 읽어볼 책 속에 끼어있다는 생각에 대출을 받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어서는 영화까지 감상할 각오를 하게한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우선 옮긴이의 글과 작가로부터의 짧은 편지로 그 장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마리 콩스탕스 G.’라고 소개하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되는데요. 나이 30에 남편이 있으며 무직이었으나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책 읽어주는 여자’로서 일하게 되는 경위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노 스승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게 되고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하반신 불수의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 어떤 장군의 미망인인 듯한 노부인과 그 집의 하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어떤 회사의 사장,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한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 눈이 어둡다며 책 읽어주기를 원하는 전직 법원장 등을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그녀를 변화시키기 시작하는데…….



  와. 놀랐습니다. 역자의 말에서도 ‘매우 영화적’이라고 했지만 대충 넘겨본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있어서인지 한결 이해하기 편한 기분으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비록 조각적으로 등장하지만 예전에 만나본 작품-모파상의 ‘손’과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시리즈’의 모습이 지나가자 오랜 친구들을 만난 기분까지 들어버렸습니다. 또한 그런 조각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러움을 주는 요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능력에 감탄을 하고 말았는데요. 여러 조각을 모아서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만든 다는 것.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멋진 작품의 이상형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자 분은 이번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을 빌려 적은 것이라곤 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받아들여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는데요. 「[명사]<문학>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이솝 이야기》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우언寓言」로 나옴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답은 이것이노라’ 판단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개인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조금 적어보자면 ‘책 읽어주는 여자’의 대리 독서행위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로 하여금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음을 말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 또한 독서의 행위라 할 수 있겠고, 읽어주는 행위를 받아들이는 쪽 또한 독서를 한다 할 수 있음에, 비록 이것이 소설일 지라도 ‘책이란 말없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앞선 도서 ‘우리아이 우등생 만드는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 2005’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도서관의 ‘북시터booksitter’가 나오기에 한국에서도 책을 읽어주는 직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싶어 조사를 해보니, 엉뚱하게라도 중고등 학생 시절 때 점심시간 중에 몰래 듣곤 했던 ‘EBS 라디오문학관’이 발견되어 마냥 들떠버렸습니다. 거기에 책의 또 다른 형태인 ‘오디오 북’과 같은 것이 같이 발견되니 글자가 아닌 목소리로서 독서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 ‘오디오 북’에 대한 것은 스티븐 킹 님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2001’에서 먼저 그 언급을 만나볼 수 있었다보니, 과연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의 독서를 생각해 보신 적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어지더군요.

  또한 요즘처럼 영상매체에 적응된 세상에 있어서는 가능하다면 ‘TV 문학관’을 통하거나 휴대폰 등의 모바일 기술을 응용해서는 ‘오디오 북’과 같은 것을 이용함으로써, 꼭 책과 글씨로 된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실감해 볼 수 있었는데요. ‘좋은 책은 훔쳐서라도 보라!’는 가르침을 따라 불법적이라도 어둠의 항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했습니다(웃음)



  아! 그건 그렇다 치고 ‘책 읽어 주는 여자’!!

  모처럼의 휴식일인 일요일이라 집에서 편한 기분으로 공부 해보고자하니 부모님의 호출이 끝이 없어 몸은 노트북 앞에 있고 집중력이 콩밭을 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자리에 다시 앉으니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때가 새록새록 떠올라버렸는데요.

  제가 이성에 대한 감정을 일찌감치 닫아버리기도 했지만, 부모님끼리의 연합으로 인해 생물학적으로 여자인 동내 친구와 같이 가외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영어문장을 읽는 그 친구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자음 모음으로 이뤄진 문자와 그것의 집결체인 단어, 그리고 단어가 모여 만들어지는 문장을 읽는 것인데도 그렇게 맛깔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후로 저도 그렇게 읽어보고자 노력했지만 소리 내어 잃다가도 어느덧 독서삼매경에 빠지기 일쑤였던지라 그저 부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잘 읽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 생각이 발전됨에 미래로의 꿈 중 하나로 책 읽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하는군요.



  기록하는 것 못지않게 읽고 싶다는 절재 할 수 없는 욕망. 그렇다보니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매일같이 무엇인가를 연재하다가도 또 다른 분들의 기록을 만나버리는 순간 저의 기록이 밀려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하는데요. 저의 볼품없는 기록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 중 몇 분이 응원을 해주시니 기록과 감상이라는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읽기 위해서 기록을 하는 것인지, 아님 기록을 하기 위해 읽는 것인지 한 번씩 헷갈리기도 하지만 저는 둘 다 좋아하니 열심히 읽고 기록할 수밖에요(웃음)



  ‘한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와 비슷한 말을 심심하면 듣곤 합니다. 또한 그것은 실재로 한권씩의 책을 만나면서 생각하곤 하는 것인데요. 특히나 책을 읽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또 다른 방법으로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게 된 이번 책을 잃고서는 책을 읽어주는 행위에 대해 그 필요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내용에서는 어느 정도의 자극점이 필요해서 성적인 장면-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한 본능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 합니다-이 추가되었을지는 몰라도, 감수성이 풍부하나 육체적인 결함으로 친구가 필요하기에, 나이를 먹어감에 눈이 말을 듣지 않기에, 생활환경 문제로 어린나이에 혼자일 수밖에 없기에, 아. 아니군요. 방금 정리된 생각을 통해서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책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휴우. 감상기록의 시작을 ‘우화’라는 단어로 시작해서인지 그것에 얽매이는 기분이 없지 않은데요. 덕분에 다른 생각들이 하나의 생각에 묶인 체 머릿속에서 정신 사납게 비명을 지르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책을 읽을 때는 역자의 말이나 저자의 말 같은 것은 일단 나중에 읽는 버릇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다짐 하게 되었는데요. 보통은 그런 것들을 먼저 읽고 시작할 경우 작품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생각을 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 역효과가 나는 듯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영상화 한 미셀 드빌 감독님의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The Reader, 1988’를 통해 작품에 대한 정리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TEXT No. 409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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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 - 도서관과 사서의 위기 극복을 위한 철학적 고민
로널드 B. 맥케이브 지음, 오지은 옮김 / 이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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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Civic Librarianship, 2001

저자 : 로널드 B. 맥케이브

역자 : 오지은

출판 : 이채

작성 : 2007.03.16.



“문득, 이번 책에서 나오는 많은 사람들과 나름의 이론들은

어린 시절을 망각한 자들의 중얼거림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즉흥 감상-



  시작부터 적기에는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역사’에 대해서는 ‘잼 병’에다가 ‘역사의 기록이란 힘 있는 자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없었던지라 ‘역사’라는 말에 혐오감과 경멸감마저 있는 사람임을 언급하며 이번 책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아. 하지만 이번 책은 분명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책은 미국 도서관 협회 회장과 역자의 서문에 이어, 미국의 남북전쟁의 종전과 함께 1960년대부터 시작된 ‘문화남북전쟁’에서의 각종 주의나 사상의 이야기를 시작한 ‘제1장 미국의 문화남북전쟁(자유주의적 공공도서관의 탄생 배경’, 민주주의 확립을 향한 공공도서관의 필요성과 시대의 이야기 ‘제2장 자유주의적 공공도서관의 도래’, 교육과 사회도덕, 그리고 커뮤니티 운동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제3장 커뮤니티 운동의 의미와 중요성’, 커뮤니티 운동과 관련되어 시민사서의 역할과 임무를 말하는 ‘제4장 시민사서직’, 사서, 도서관 그리고 교육에 대한 내용인 ‘제5장 도서관과 사서의 사회적 권위 회복’, 학교의 죽음과 공공도서관의 교육적 기능에 대한 ‘제6장 교육적 임무의 재개’, 공공도서관의 올바른 위치와 그 역할을 설명하는 ‘제7장 도서관, 지역사회의 중심’,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위한 공공 도서관의 역할인 ‘제8장 커뮤니티 구축을 위한 도서관의 전략’, 공공도서관의 단체서비스와 정치적 문제를 알리는 ‘제9장 사회적 콘텍스트 속에서의 도서관 역할 정립’, 공공도서관 정책의 실패와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제10장 도서관 정책 강화’, 사서직과 시민사서직, 그리고 공공도서관을 발전 방안을 보인 ‘제11장 직업적 관점으로 본 사서직’, 옹호성과 중립성의 균형과 현재의 도서관과 앞으로의 도서관에 대한 마침표인 ‘제12장 공공도서관의 미래’, 그리고 앞선 이런 내용들에 대한 정리를 하는 기분을 준 ‘추천인의 글’ 두 개가 실려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책은 읽어 들어가면 갈수록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고리타분한 기분으로 우리나라와는 별로 상관도 없을 듯한 역사수업에 현실감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껴버렸다 랄까요? 하지만 마침표를 만나야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기에 마지막장까지 오게 되었고, 왜 그렇게 책에 집중이 힘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추천인의 글’을 읽으며 어느 정도 정리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학과 수업에 관련을 지어 이렇게 책과 도서관에 대한 책을 한권씩 만나보곤 있다지만, 이번 책에서 말하고 있는 ‘시민사서’에 대해서 “그런 것도 있었던가?”라며 한참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추천인의 글에서 ‘시민과 함께 지역사회와 공공도서관을 가꾸어 나가는 사서’라는 부분을 보니 앞으로 추구해 나가야만할 사서의 모습이라 재확인 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와 더불어 ‘도서관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도서관을 거대한 독서실 정도로 생각하고 이렇게 열람실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지만, 역시 공부를 하는 방향이 이러한 도서관에 대한 것인지라 새롭게 인식되는 것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중입니다.

  편입하기 전 학교에서는 수업과 수업사이의 여유가 있어 틈만 나면 멀티미디어실에서 영화 DVD를 즐기곤 했었는데요. 이러한 것들이 전부 등록금에서 예산을 할당받으며, 동내의 공공도서관들일 경우 국민이 낸 세금으로서 운용된다는 사실에 앞으로는 친구와 소풍을 간다고 해도 경치 좋고 이용하기 편한 도서관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군대에 몸담고 있을 때도 간혹 읍내로 나갈 일이 있으면 인터넷을 하기위해서라도 도서관에 들렸던 것이 떠오르는바. 알게 모르게 도서관의 여러 기능을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나 홀로 문화를 즐기고 있어서 그렇지 나중에 애인이 생기거나 아니면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생기더라도 도서관을 이용하고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들어갈 뻔 했군요.

  이번 책은 위의 내용소개에서도 간략하게 소개해두었듯이 미국 도서관의 설립의 배경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던 모습, 그리고 역사적, 사상적, 도덕적, 정치적 측면 등으로 인해 그 역할과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등의 많은 이야기가 수록되어있었는데요. 한국의 현재 도서관들은 우선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져 관리 시스템은 미국 것을 따른다고 들었으니 분명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할 역사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수업 시간 등을 통해서 한국에서도 고대의 도서관이 있었다는 것을 들었던바. 한국의 도서관 역사에 대한 문헌은 없나 찾아봐야 겠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론상으로는 지역사회, 심지어 전 국민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할 도서관이라 배우는 중이라지만, 동내에 있는 도서관이라 할지라도 우선 그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이 이때까지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결론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우선은 거리도 멀고 교통편도 불편했었기에 어느 날부터는 그냥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역시 소장하며 읽는 다는 것은 책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헌책방을 애용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 한계성을 달리는 듯 했습니다. 거기에 예전에는 이동도서관이랍시고 책을 잔뜩 실은 차가 동내까지 오기도 했었지만, 요 몇 년간은 본적도 없는 것 같고, 제 2의 도서관이라 생각했던 구청의 도서대출 코너도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지하로 이전해버렸다고 할 정도로 공공기관에서 책을 만나보기 힘들다는 생각을 가져버렸는데요. ‘시민사서’ 그리고 ‘도서관의 친구들’이라는 멋진 말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지식의 박물관이라 말할 수 있는 이런 도서관의 발전은 계속 연구되고 노력해야할 문제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해본 것이 바로 ‘교육적인 기능’인데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회사일이 끝나면 도서관을 찾아 친구와 함께 공부를 했었고, 그 과정에서 지나가며 만나게 되는 게시판의 공지들을 통해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놈의 ‘시간’이 뭔지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할 뿐 실제적으로 경험해볼 여건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지인들로부터 ‘한국에서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도 공무원이다’고 말을 들으며 이러한 문화 체험 기회를 사용하지도 못하게 할 거라면 왜 공지를 써 붙이느냐고 으르렁 거리곤 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좀 더 현실 가능성 차원의 교육적 기능이 준비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역시 지인 분들이 제 방을 보시며 농담 삼아 하시는 말처럼 개인 명의로 도서관을 하나 만들어서 제 마음대로 운용하는 방법 말고는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웃음)



  지나온 시간은 앞으로 열어나가야 할 시간을 위해서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정보의 해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부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모든 지식의 중립지대를 말하는 장소를 ‘도서관’이라고 말한다면 이 세상을 움직이는 교묘한 전략에서 저 자신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번 책이 말하고자하는 교훈을 벗 삼아 길을 걸어 나가보자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역시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많은 공부를 해야겠지요? 열심히 노력해서 꼭 꿈을 이뤄내 보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머리도 식힐 겸 소설 ‘책 읽어주는 여자La Lectrice, 1986’를 집어 들어볼까 합니다.



[첨가]


  학교도서관 홈페이지의 대출 등의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동내의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엄청 놀라고 말았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방문을 해서 대출하는 것도, 홈페이지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조금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었는데요. 역시 흘러가는 세월이 약이라고 하는 것처럼 발전되는 도서관의 모습을 보는 듯 해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여기서 계속 되는 발전만 이뤄진다면 분명 공공도서관은 지역 사회의 심장이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많은 공부를 해보고자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자!!

 

TEXT No. 408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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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도서관 학습법 (도서관 노트 포함)
이현 지음 / 화니북스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우리아이 우등생 만드는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 2005

저자 : 이현

출판 : 화니북스

작성 : 2007.03.15.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즉흥 감상-



  정신없는 편입생의 학기 초. 그리고 같이 편입한 친구와의 열심히 공부해보자는 계획에 밤늦은 시간의 마지막 스쿨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저는, 그만 저도 모르게 독서삼매경에 빠져버려 내려야 할 코스에서 한 정거장을 더 가고 말아버렸습니다.

  보통 자동차 등의 이동수단 안에서 집중력이 금방 사라지고 결국에는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파다한데 반해 이번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신선한 충격으로 저의 마음을 다 빼앗아버리고 말았는데요. 그럼 처음부터 글자만 보인다는 거부감에서 마지막장에 가서는 새로운 시도를 위한 넘치는 열정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지게 했던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저자분이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도서관에 대한 이론적 사실과 저자분의 생각을 담은 ‘1. 왜 도서관이어야 하는가?’, 도서관의 다양한 이용방법에 대한 안내인 ‘2. 어떻게 도서관을 이용하는가?’, 책을 어떻게 만나야 하고 앞으로의 발전과정과 방향성을 말하는 ‘3. 도서관 책 읽기’, 사서와 북시터 등 그 밖의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인 ‘4. 도서관 100배 즐기기’, 그리고 저자가 일선에서 상담했던 내용의 일부분까지 추가로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적어서는 차례에 나와 있는 것들밖에 설명이 안 되는지라 조금 더 첨가해 적어서는 그 안에 실려 있는, 마치 한편의 자서전 같은 기록이 정성스럽게 수록되어져있었습니다.



  아아. 사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극도의 뜨거움이 있기 전에 이때까지의 독서경험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작품상의 많은 말들이 저의 심장을 찌르는 듯 했지만 특히나 “책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책의 내용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어라.”라는 저자의 말에 그만 엄청난 충격을 받아버린 것이었는데요. “읽기위해서 책을 산다!!”라고 말하며 제 방을 침실 겸 서재로 개조해둔 것 자체가 일순간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번 기회를 통해 제가 왜 책을 구입해가며 읽기 시작했는지 한번 정리를 해보자 생각이 들었는데요. 분명 저도 처음에는 도서관이나 구청 등에서 책을 대출해 읽기 시작했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싶다고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믿거나 말거나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시험공부 좀 하라며 동내 도서관으로 쫓아내신 부모님 덕분으로 ‘폭발물 제조’와 관련된 책을 서재 한 귀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다시 찾으려고 해도 발견이 되지 않기에 그저 흐릿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는데요. 그때를 기준으로 온 서재를 돌아다니며 뭔가 신기한 제목이 보이면 일단 꺼내 읽기 시작했던 것이 그 시발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도서관이라는 곳이 예절이 잘 정착이 되어있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책이 파손되어져있거나 분실되어있었고 거기에 집에서 멀고 교통편이 불편했기에 어느 날 부터인가 가지 않게 되었었는데요. 대신 그때를 기준으로는 구청의 도서대출 코너를 이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책의 수집은 사실상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구청에서 빌려오셨다며 소설 ‘퇴마록’을 보여주셨고, 별 재미없고 이상한 내용이라며 대신 반납을 요청하시기에 읽어봤다가 그만 ‘소설’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라는 것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 작품을 말하는 것이기에 신간에 대한 목마름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뭔가 비슷한 느낌의 제목이 발견되면 대출해서 읽기 시작. 그러던 중 신간이 나왔지만 때를 놓쳐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른 분이 대출해 늦게 반납한다는 등 안 그래도 급한 성격에 답답함이 폭발해 결국 구입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 집고 넘어갈 것은 저는 한국형 대중 환상소설의 대부분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리 빛을 보지 못했다 생각하는 미국의 의학소설이나 SF, 호러소설 등의 장르문학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었는데요. 덕분에 작가를 중심으로 나름대로의 연대표까지 그려가며 한국에 번역 출판된 책들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본격적인 시작을 외국 소설로 테이프를 끊은 저는 작품 중간 중간에 나오던 전문용어의 이해를 위해 관련서적을 찾아본다거나 아침의 등교시간을 아끼기 위해 비 압수품목인 한국 현대소설을 탐독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부분에서는 동내 서점 형의 도움이 컷 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서점이다 뭐다 그래서 동내의 서점들이 거의 없어진 상태이고, 만일 남아있다고 해도 소설보다 문제집과 자습서와 같은 책을 많이 팔기에, 거기에 소설책이라도 가격이 계속 오르고 원가판매를 말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있어 결국에는 여행을 빙자한 헌책방순례를 전국으로 하기 시작했는데요.

  아무튼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도서관에도 잘 안보이면서 일단 번역 출판된 사실만 확인되면 읽고 싶다는 광기를 업어 한두 권씩 사서 모은 다는 것이 어느덧 소설책만 500권을 넘기며 소장목록 정리하는 것 까지 포기한 저에게, 안 그래도 그동안 많은 생각을 해본 ‘무소유를 통한 소유’를 말씀하시는 저자분의 말씀은 그저 저의 정신을 공황상태로 만들어버리신 것 같았습니다(웃음)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말씀하시는,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도서관의 도움을 많이 받은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다시금 도서관이라는 곳을 이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는데요. DVD가 시중에 돌기 전까지 친구나 동생과 함께 동내의 공공도서관에서 영화를 한편씩 봤던 추억이 떠올라버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짜’라는 기분으로 공지사항에 있는 문화행사 등을 즐겼었는데요. 이렇게 도서관 관련으로 공부를 해나가면서 도서관에 대한 진실과 오해들을 하나 둘씩 확인해보게 되니, 세상에나! 그렇게 많은 세금들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날리고 있다는 생각에 그만 흥분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서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선 역사적인 사실 부분을 옮겨 본다면 ‘도서관은 2천 5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지식의 독점적인 저장소로, 저장뿐만 아니라 전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6년 12월 20일자로 개정된 도서관 법 제1조에서는 ‘국민의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를 보장하는 도서관의 사회적 책임과 그 역할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여, 도서관의 육성과 서비스를 활성화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대한 자료의 효율적인 제공과 유통, 정보접근 및 이용의 격차해소, 평생교육의 증진 등 국가 및 사회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있으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도서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된다!’것 까지.

  한때는 ‘빛의 방’이나 ‘영혼을 치료하는 곳’이라 불렸다는 장소가 지금의 우리 곁에서는 어떻게 활용되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각종 시험 등으로 인해 도서관을 대형 독서실 정도로만 사용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살짝 물어보고자 합니다.



  음?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도서관의 이야기와 함께 ‘독서지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요. 저의 어린 사촌들만 보아도 하나 같이 책 읽는 모습을 잘 못 보는지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며 저자분의 사례를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서도 좋지만 이 책에서도 조금 언급되는 ‘북시터’나 앞으로 만나볼 소설 ‘책 읽어주는 여자La Lectrice, 1986’와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The Reader, 1988’를 통해 ‘독서지도교사’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이제부터 ‘전 인류의 지적 고양을 위해서’라도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가장 가까운 가족단위로 실험을 해보기로 할까나요?(웃음)



  그럼 나름대로 정신없는 일정 속에서도 또 한 번의 마침표를 찍은 책이 있으니 이번에는 도서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Civic Librarianship, 2001’의 감상기록으로 이어볼까 합니다.

 

TEXT No. 407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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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잘쓰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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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논문 잘 쓰는 방법Come si fa una tesi di laurea, 1977

저자 : 움베르토 에코

역자 : 김운찬

출판 : 열린책들

작성 : 2007.03.11.



“이 책은 논문을 위한 논문이다!!”

-즉흥 감상-



  아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이틀 꼬박 읽었으면서 무슨 책을 한권도 못 읽느냐고 잔소리하실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때만 하더라도 우선 저자분이 ‘움베르토 에코’ 님 이라 되어있었기에 ‘소설’같이 읽기 편한 구성으로 되어있지 않겠느냐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막상 읽기 시작한 책은 무슨 대학교제도 아니고 그저 딱딱하게만 보이는 차례와 오랜만에 마주하는 빡빡한 글씨들이 저를 압박해오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작가 ‘아루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님과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님의 한국번역본들로 단련했던 눈과 그래도 자칫 딱딱할 수도 있을 내용을 재미있고 친절하게 서술하진 저자분의 노력에 결국 마침표를 만나볼 수 있었던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사실 이번 판본이 1977년도에 출간된 초판본이 아닌, 8년 뒤에 나온 신판본 임을 말하는 저자의 서문으로 먼저 그 문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일곱 개의 장으로, 논문에 대한 기본적 개념과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제1장 졸업 논문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필요한가’, 논문의 종류와 각각의 방향성을 말하는 ‘제2장 테마의 선택’, 논문의 구성 시 자료의 출처 입수와 참고문헌을 조사하는 방법이 담긴 ‘제3장 자료조사’, 얻어진 자료들을 나름대로 정리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제4장 작업 계획 및 카드정리’, 논문의 내용을 구성하는 몇 가지 공식과 주의점인 ‘제5장 원고쓰기’, 실질적인 논문의 작성방법에 대한 예시와 앞선 설명들을 정리하고 있는 ‘제6장 최종적인 원고작성’, 그리고 이번 논문형식의 책을 쓰기 위해 저자가 참고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 ‘제7장 결론’까지. 정말이지 거짓말 조금 보태어 잠들지 않고 눈을 뜨고 있을 때는 계속 읽어 들어감에 몇 번은 졸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 장을 덮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보통 ‘논문’이라고 하면 대학교를 졸업 하기위해 작성하게 되는 엄청난 분량의 리포트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열심히 읽어가며 단순이 분량만 많은 보고서가 아닌 한권의 책을 쓰듯 어떤 한가지의 목표를 세워 자신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연구를 한 기록이라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해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렇게 생활의 일부분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 평소에 궁금증을 가지던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를 거쳐 기록해보고 싶어지는 욕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문 같은 글을 번역하신 번역자 분도 고생을 많이 하셨겠지만, 저자분도 기록 속에서 적어두셨듯이 이탈리아 대학제도를 기준으로 이 글을 쓰셨던 것인지라 번역본만으로는 이해의 한계를 경험하고야 말았는데요. 자신의 책이 다른 나라에 번역 출판된다는 점에 대해서 논문을 구성하는 공식에 대한 것보다도 그 의미를 생각하라는 점에서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도 자기발전을 위해 무엇인가를 연구하며 기록을 한다는 것. 저도 저 나름대로 중편이랍시고 소설을 써 자비를 사용해 책 형태로 몇 권 뽑아 본적이 있던 지라, 하나의 마침표를 향한다는 것이 막 나오는 말처럼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개인의 경재활동에 큰 보탬이 되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말했듯 ‘출산의 고통’을 대리체험 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만큼 처음에는 자그마한 동기로 시작 된 것이 회가 넘어가면 갈수록 좀 더 책임감 있고 현실감을 줄 수 있는 자료의 수집, 그리고 그렇게 모인 자료들을 숙성시켜 배치하는 것으로 많은 연구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이번 책을 통해 재발견해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논문이라는 것이 그저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어려운 말로 도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자기 자신을 위하며 이어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분야를 연구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는데요. 저도 ‘전 인류의 지적 고양을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연구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최근에 열심히 수집하며 관심을 가졌던 ‘병뚜껑’에 대해 그 ‘역사’나 ‘인류의 삶’과 같은 철학을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연구, 정리, 기록을 해보기로 할까합니다(웃음)



  그러고 보니 이런저런 작품들을 만나며 저자분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헌책방을 돌때마다 한두 권씩 보이는 책들을 살까말까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우선 한권을 만나본 이상 또 한분을 향한 열혈 독자가 되어볼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인데 이렇게 ‘논문 잘 쓰는 방법’같은 것으로 시작했으니 그동안 추천 받아왔던 작품들은 과연 어떠한 기분으로 만나게 될지 궁금해져버렸는데요. 본디 책은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보라고 했는데, 이번 같은 경우에는 저자분의 자서전 같은 분위기보다도 그 자체로 ‘논문’같은 구성이었던지라 또 하나의 선입견-색안경을 가져버리게 된 것은 아닐지 그저 행복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네? 감동 받았니 같은 감상은 그만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라구요?

  사실 이러한 이론서들을 끝까지 읽은 것이 도서 ‘귀신설화연구鬼神說話硏究, 1995’정도 밖에 없었던지라. 아직 논문 형식의 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것이 현재입니다. 그렇다고 앞에서 살짝 언급한 자서전 형식의 ‘에세이’들은 그들의 인생에 대한 회고록일 뿐 이렇게 연구성 짙은 기록이 아니었기에 비교대상에서는 완전히 벗어나고 마는 데요. 그래서인지 앞으로 하나 둘씩 만나게 될 연구기록들을 오히려 기대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또 한권의 책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번만 읽고 감히 이 책이 이러했노라고 적긴 조금 그랬지만, 하나 분명 한 것은 구매를 통해 소장하고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라도 연구와 기록에 대한 마음가짐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자분과 역자분, 그리고 이 책을 만나게끔 안내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첨가]


  그건 그렇다 치고, 사실 책의 내용과는 그리 상관없는 내용이기에 따로 빼두었다가 제가 이때까지 들어왔던 ‘논문’에 대해서 몇 가지 더 생각을 되짚어 볼 수 있었던 것이 있어 이렇게 덧 붙여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유행’과 ‘개성’에 대한 문제와 이번 책을 통해서 확장해 생각해본 ‘변질된 복제’에 대한 것인데요. 책 안에서의 저자도 말하고 있었지만 급하기에 앞선 사람들의 논문을 표절하거나 부분적인 수정으로 자신의 연구인양 소리 높여 말하는-결국 자살로 이어질 사태에 대해 지나온 학창시절이 떠올라버린 것이었습니다.

  요즘에야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몰라도, ‘평준화’가 뭔지 그저 공장에서 찍어대는 동질품의 상품인양 지식을 주입받아 다듬어졌었고, 그 과정에서 뭐가 문제였는지 학교에서 요구하는 참된 학생의 본보기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자 심한 소외감을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제시하는 것을 못하겠다면 베끼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백지를 내버리는 등의 정면대응을 했던 기억까지 같이 떠올라버렸습니다.

  비록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좁은 시점의 이야기였을지는 몰라도 요즘처럼 개성의 시대라 떠드는 세상도 조금만 떨어져서보면 하나의 ‘스타 시스템’을 기준으로 변질된 유행이 동심원의 파장마냥 출렁거리며 나아가며 그 흐름에 동참하지 못할 경우 묻어버리는 중이라 판단하고 있는바. 여기서 ‘민족성’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들도 몇 있어 ‘과거는 관심은커녕 생각지 않고서 민족성을 말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듯 ‘한국이니까’식으로 논문 등에 변질된 복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으며, 어렵고도 고상해야만 한다는 선입견을 가질 정도라면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것은 기본으로 자기 자신의 기록에 최소한의 양심과 최선의 자세를 가질 것을  다짐해보게 되었습니다.

 

TEXT No.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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