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
리처드 라이트 지음 / 월간조선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 : 하버드 秀才 1600명의 공부法 Making the most of college, 2001

저자 : 리처드 라이트

역자 : 이남규

출판 : 월간조선사

작성 : 2007.04.02.



“시간의 지배자? 거 참 거창하군.”

-즉흥 감상-



  흐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통계학적이며 그저 말 뿐인 방침이라는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는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정리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우선 이 책은 「SBS특별기외 ‘세계의 명문대학’(2002년 8월 방영)에 소개된 화제의 책, 하버드대학 출판사 92년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와 「하버드대 교육학 교수가 15년간 160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 통해 얻어낸 ‘하버드생의 공부 法’」이라는 대입을 앞둔 학부모님들의 시선을 잡아 끌만한 카피로 그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겨보기 시작한 책은 이 글을 왜 쓰게 되었으며 그 수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얻어낸 답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통계학적 결과물을 만들기까지의 이론들과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법 등에 대해 재미있게 소개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라고 생각만 하고 있던 수많은 방법들에 대해, 인터뷰를 통한 나름대로 신빙성 있어 보이는 통계학적 결론들을 보며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감탄을 즐길 수 있었기도 했지만, ‘내가 처한 현실과 이 얼마나 다른 세상을 말하는가!!’라며 허무에 늪에 빠져드는 기분마저 들고 말았는데요.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저에게 부합되지 않다 생각한 것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겠습니다.


  우선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글쓰기의 중요성’입니다. 개인적으로 취미삼아 많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대중을 노린 글보다도 혼자만의 독백에 가까운 기록을 감히 ‘무한’의 이름을 걸고 써내려가고 있었던지라, 생각보다 그 양이 엄청나다는 지인 분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아직 필명 하나 별로 알져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분한 기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그날에 와서야 담임선생님에게서 교지에 실린 저의 단편 소설에 대해 놀라움과 격려의 말씀을 들어봤던지라 행복했던 동시에 ‘진짜 국어 담당 맞아?’라는 배신감마저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그렇게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타 전공과 학년을 무시한 채 들었던 많은 수업들 속에서 처음으로 써본 ‘보고서’들은 정말이지 다른 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을 적어낼 수밖에 없었지만 높은 점수를 받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혼란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움베르토 에코 님의 ‘논문 잘 쓰는 방법Come si fa una tesi di laurea, 1977’을 통해 한국에서는 딱히 어떠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연구하며 글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훌륭한 조언’에 대한 것인데요. 공장마냥 같은 모양을 찍어내는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제품이 나오면 불량제품 취급당했던 것처럼. 오로지 명문대학교를 위해 공부를 해야 했을 학창 시절동안 그림을 그리겠다고 학교랑 정면승부를 걸었던 중 그토록 믿었던 미술선생님에게마저 버림을 받았을 때. 그리고 오기로서 시 내의 이런 저런 대회에 나가 상을 따왔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무시했으며 담임까지 결국 부모님을 설득해 다니던 화실까지 그만 뒀어야 했을 저에게 ‘훌륭한 조언’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저 궁금했습니다. 결국에는 그런 ‘포기함’의 조언을 통해 오히려 여러 분야를 찔러볼 수 있었다곤 하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저 부정적인 자세로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중인데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저 비현실적인 상상력의 산물이라 말해지던-특히 외국의-대중소설 속 주인공들로부터 어떤 상황이 저에게 닥쳐도 살아남을 것과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 받았던지라 저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오셨던 분들께는 딱히 마음에 와 닿는 ‘훌륭한 조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기분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질성’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이번에 읽은 책에서처럼 ‘하버드’라는 곳은 참으로 다양한 만남을 통해 그 이질성을 배척한다기보다 어떻게든 상호보완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기에 저에게 있어서 그저 꿈의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줄 알았습니다. 하긴 어린 시절이라도 외국에 잠시 나가봤던 저에게 있어 외국이라는 곳은 참으로 마음편한 세상으로 기억에 남아있긴 한데요. 분명 그 무한한 자유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곤 하나 현재의 저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제 발목을 잡고는 ‘우리나라’를 벗어날 것을 반대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 딱히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습니다. 대신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학생을 지양한다는 외침 아래에서 정작 그런 생활을 했었기에 열심히 밟히고 살았다 추억하는 학창시절은 저로 하여금 그 누두고 쉽게 신용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외곡 되고 참으로 좁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그것을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기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최근 요 며칠 동안 머피의 법칙마냥 연이어 꼬이기만 하는 일정에 지친 친구와 즐거운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문득 그때 나눈 대화가 떠올라버렸습니다. 아마도 주제가 ‘이공계를 기피하는 이유에 대한 사회학적 시각’인가 뭔가 였는데요. 역시 대화라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처음에는 동문서답 같은 대화가 오고갔기에 으르렁 거렸지만 나름 근사한 결론이 나왔기에 여기에 조금 적어볼까 합니다.

  사람은 대부분 행복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복은 일상의 안정성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런 한편으로 정신적이나 물질적으로 계속되는 발전 또한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전’이라 함은 사실 어떤 현상의 안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정된 관념을 흔들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름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때를 말한다고 생각하는바. 물질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 있어서는 그 공백의 정신적 발전을 원한다고 무의식적으로 그 불균형을 조절하고자 함에 이공계를 기피하게 된 것은 아닌가 정리를 해볼 수 있었는데요. 여기에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학벌 중심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덧 붙여 대화를 마쳐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께 같은 이야기인가 하니, 토론식 수업에 대한 중요성을 부르짖는 현 사회에서도 정작 토론식 수업이라는 것을 학교에서보다 절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이 암담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대학이 고등학교 때 보다 자유로운 수업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크게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위에서 말한 이번 책에서의 교육 방법이라는 것이 그 곳만의 이야기일 뿐 그저 편안한 미래로의 삶을 지향하며 공무원만을 노래하는 가정환경이 지배하는 저의 현실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라 받아들여진 듯 했습니다.



  교육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통계학적으로 마련된 답안이라는 것이 사실상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위에서 짧게 서술한 저의 인생이야기 말고도 군 입대라던가 대학입학시의 이야기 등으로도 계속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걸 전부 적었다가는 밑도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생략하기로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참된 교육이란 어떤 것 일까나요?

  개인적으로 계속 생각해온 나름의 답은 ‘우리’라는 개념의 재확인과 부재중인 도덕과 윤리관의 재확립. 마지막으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에 역시나 도서관에 대해 하나 둘씩 배워가는 중에는 공공도서관의 확대와 그 중요성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IT강국이다 뭐다해서 물질문명으로서 세계적 시장에 나서는 것 까지는 좋지만 ‘원래 그런 민족성’ 타령 하지 말고 지적으로도 지향해 나아가야 할 멋진 미래사회를 위해서 변화의 두려움에 숨어들 생각 말고 하고자 함이 있으면 일단 도전해봐야 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말하는 바입니다.



  본의 아니게 너무 흥분해서 작성한 나머지 너무 개인적인 내용의 기록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기회를 통해 자기정리의 기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없이 손가락의 춤을 춰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열정이 조금씩 깨어남에 홀로 남아있어 방향성을 상실했던 광기가 북극성의 위치를 잡아간다는 기분이 있으니 열심히 살아보고자 다짐해보게 되었습니다.

 

TEXT No. 416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품의 역사 세미나리움 총서 11
리사 자딘 지음, 이선근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 : 상품의 역사 : 르네상스의 새로운 역사WORLDLY GOODS : A New History of the Renaissance, 1996

저자 : 리사 자딘

역자 : 이선근

출판 : 영림카디널

작성 : 2007.03.30.



“으으. 자꾸만 바로 옆에 둔 ‘거상SANG JI, 2003’을 읽고 싶은 이 기분이란…….”

-즉흥 감상-



  흐음. 시작부터 이렇게 적긴 조금 그렇지만 사실 무엇인가를 읽은 것 같긴 한데 정확이 무엇을 읽었는가에 대한 감각이 도망 가버린 기분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꼭 열심히 공부한 것이 시험지에 하나도 나오지 않을 때와 같이 백지 또는 흑지의 세상을 유영하는 기분이랄까요? 그런 한편으로 책 중간 중간 붙어있는 포스트잇이 나름의 부표라고 생각되는바 이번 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고 ‘르네상스’에 대한 현재와 과거에 대한 언급으로 그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15세기 초를 무대로 포탄제조 기술과 향신료의 거래. 물물교환 등을 시작으로 거래 규모의 확장에 이은 대항해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이야기하기는 [변화의 조건 : 수많은 상품], 화폐의 등장과 그로인한 거래시스템의 발전과정, 그리고 향신료에서 직물로의 관심 이동을 읽은 [위엄의 대가], 손으로 일일이 적고 그림을 그리고 보석 등으로 치장하는 ‘필사본’의 책 제조 방식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한 목판 인쇄본의 이야기가 담긴 [인쇄본의 승리], 장서수집과 책 가치 변화를 재미있게 서술한 [개화되는 학문], 인쇄술의 발달과정을 통해 학문의 발전 모습과 지식이 상업화 되는 모습을 보이는 [상업화되는 새로운 지식], 전 세계적으로 확장된 무역에 의한 문화의 교류와 그로인한 지적향상의 이야기를 한다 판단한 [상품의 문화], 천문학과 과학의 발달사를 다루었다 생각한 [천체의 지도], 과시하기 위한 상품과 그런 물건의 제조방법의 발전사가 재미있게 실린 [과시적 소비], 런던의 국립박물관에 걸린 ‘특별한 의미를 가진 그림’에 대한 풍자적 해석과 앞선 모든 이야기를 정리한다는 기분을 받은 [에필로그]까지 내용과 관련된 작품들을 정신없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이렇게 제가 받아들인 내용을 정리해볼 수는 있었지만, 사실 책을 읽어가면서 이야기가 각 부분마다 서로 따로 떨어진 흐름을 가지지 않고 새로운 어떤 한 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앞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엄청 헷갈리는 기분이 들어버렸는데요. 그래도 중간 중간 그저 빡빡하게만 보이는 글씨들의 행진 속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과 그림들이 있었기에 읽어 내려가는 순간만큼은 참 즐거웠습니다.



  이번 책을 통해서 하나 반가웠던 것은 스페인의 작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님의 소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La Tabla de Flandes, 1990’을 통해 눈에 익은 ‘플랑드르’라는 글씨였는데요. 이번의 만남을 통해 그런 작품들의 부분적인 실체를 확인해볼 수 있었기에 사실주의 초상화의 그 아름다움에 취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못 그리는 실력으로 한때는 미대로의 진학을 꿈꾸며 열심히 화실을 다닌 기억이 있었던지라 ‘사실’을 반영하는 그림을 그린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실감해본 적이 있는데요. 아무튼 소설로만 만나봤던 어떤 한 대상을 이렇게 또 다른 시각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다양한 많은 책과 작품들을 만나봐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경영공부를 하는 친구에게 한번 읽어볼 것을 말한 기억이 있는데요. 그것은 이번 책을 통에서 현대의 상업 시스템이 구축되기까지의 역사가 열심히 설명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너무나도 그저 당연하다 생각했기에 별로 중요하게 인지해 본적이 없는 것이 이번 책을 통해서 하나의 지도가 그려지는 듯해 흥분하고 말았는데요. 처음에는 간단한 물물교환에서 화폐가 등장했으며, 항해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풍부한 물질문화의 시대가 열렸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지는 한편 희소성의 원칙을 따르는 거래가 발생. 그러면서도 발전되는 예술과 과학력 사이에서 허영으로 무장된 제품들이 생산되는 등 그러한 모든 과정에 대해 그 나름대로의 연관성을 재미있게, 그리고 한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생각이 드니 저야말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일단 제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것이 도서관에 대한 것이며 책에 대한 것이기에 신경 쓰면서 읽었던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좁은 시야에서는 책의 변천사가 기록되어져 있었다는 것과 넓은 시야로는 이 책을 구성하기 위한 대부분의 자료가 역사적인 기록, 즉 책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이 책에서 나오는 책의 변천사는 ‘필사본’에서 ‘인쇄본’으로 넘어 가며 그 가치의 변화와 발전 과정이 서술 되어져 있었는데요. 그 변화가 칼로 그 흐름을 잘라버리듯 일순간에 변해버린 것이 아닌, 처음에는 글씨만 인쇄를 하고 필사본처럼 그림을 그리는 형식에서 목판 인쇄의 계속 되는 발전으로 섬세한 판화가 등장 하였으며, 요즘에는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필사본들이 한때마나 인쇄본들보다 그 가치가 낮았다는 점에서 어떤 것이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절대적으로만 보이던 가치도 그 기준이 달리질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분이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 했던 수많은 참고문헌들의 목록을 보고 있자니, 역사라는 것이 힘 있는 자의 기록이라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논리적인 공백부분에 대한 신빙성 있는 생각들의 나열에, 어떤 것이든 일방적인 받아들임보다도 논리적으로 그 흐름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독자적이고 일방적인 흐름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이 사실은 완만한 직선으로 타원을 그리듯 쉽게 보이지 않는 연결지점에 대한 지적 탐구의 자세 또한 가져보자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위의 즉흥 감상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이번의 책은 솔직히 서구사회의 시점에서 바라본 역사이기에 피부, 아니 마음으로 와 닿은 것이 없어서인지 그리 남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예전에 1년 정도 일했던 사무실을 나오면서 소장님께서 꼭 읽어보라고 던져주신 책이 하나 보이는 것이 바로 동양의 시점에서 바라본 상업의 이야기라 판단중인 ‘거상’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역사’라면 무조건 적으로 거부반응을 표했던지라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가 뽀얗게 싸여버렸는데요. 그래도 일단은 가까운 것을 시작으로 멀리 바라보라고 말을 들어왔으니 이 책도 기회가 되는대로 읽어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책의 시작에서부터 이 모든 기록의 중요사항으로 말해진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로. 중세와 근대 사이 즉, 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역사 시기와 그 시대에 일어난 문화운동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말을 처음 인지한 것이 ‘애니매트릭스The Animatrix, 2003’에서 ‘제 2의 르네상스Second Renaissance Part Ⅰ & Ⅱ’편에서 부터였습니다. 기존의 문화가 새로운 문화로 탈바꿈되는 장면을 방금의 작품일 경우 비록 공포를 동반해 소개했었다고는 했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의 문화혁명 또한 당시대로서는 정말이지 파격적인 양상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인류의 물적, 지적 고양을 위해서라도 그 변화의 혼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모든 것이 그저 순식간이라는 기분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이 유행인지 판단되기도 전에 새로운 유행이라는 것이 등장해 지나가기를 몇 차례. 그리고 이 부분에서 개성과 변질된 유행에 대해 많은 생각해보곤 했었는데요. 최근에는 그저 지나간 유행이 새로운 것인 것 마냥 돌고 돌 뿐이고, 그 회전의 속도가 정신없이 빠를 뿐이지 사실 새로운 것이 등장하지 않은 체 모든 것이 정체되어있으면서도 하루하루 변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것이 전혀 생성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르네상스’를 위해서라도 이젠 지구를 벗어난 우주적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를 꿈꿔야 하는 것인 아닐까 하며 이번 감상기록을 마치는 바입니다.

 

TEXT No. 415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밀리안 콜베
마리아 비노프스카 지음, 김동소 옮김 / 성바오로출판사 / 199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 막시밀리안 콜베Le Secret De Maximilien Kolbe, 1971

저자 : 마리아 비노프스카

역자 : 김동소

출판 : 성바오로

작성 : 2007.03.28.



“나는 광인이었기에 성인의 행적에 공함할 수 있을 것인가?”

-즉흥 감상-



  아아. 모르겠습니다. 그저 감동이라는 말밖에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들어 감에 이해할 수 없음에서 감탄의 연발이 되고야만 한 성인의 이야기를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저자가 이 글을 집필하게 된 이유로 그 장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세기말. 막시밀리안 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 레문도라는 이름을 가진 한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로 그 시작의 문을 열게 되는데요. 다소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던 그가 어떻게 성직자의 길로 걷게 되었는가에 대해 성모님과의 만남과 두 개의 관-순결의 흰색 관과 순교의 붉은 색 관이라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감에 그가 지닌 뛰어난 재능을 군인의 길을 위해 쓸 것인가 성직자의 길을 위할 것인가 하는 등의 선택이 걸린 시련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결국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그가 모든 이가 반대하던 위대한 사업을 어떻게 진행시켜나가는지 그 과정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시작에는 끝이라는 것이 있듯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에 대한 전쟁의 시기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예언된 마지막을 행하고자하는데…….



  전기문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는 듯한 편안한 기분으로 막시밀리안 콜베라는 이름의 성인 한분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앞서 읽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madre Teresa di Calcutta, 1999’를 통해 먼저 만나 뵌 데레사 수녀님의 언급이 살짝 지나감에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이번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연이어 발생하는 고행들과 그 속에서의 기적이 있기 전에 신부님께 있었던 성모님의 ‘계시’ 부분인데요.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갈림길과 가야만할 길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리킴. 글쎄요.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대한 힘의 존재성을 믿는 저에게 있어서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때. 특히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간혹 경험하는 ‘절정점’이 이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절정점’이란 사실 제가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분이 전시회 등을 총괄하면서 경험한 어느 한순간의 ‘감각’을 그렇게 이름 붙이셔서 사용하시기에 저도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요. 분명 여러 사람과 시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어느 한순간의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 흐름이나 나아갈 길이 보이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시내 한복판에서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명확한 길 하나가 열리곤 하는 것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이번의 책에서는 소년 레문도 콜베에게 일어난 현상을 그런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순교’라. 보통 전란의 시대라던가 종교 박해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순교’라는 말을 많이 접하곤 합니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마지막이자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순수한 마음으로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시는 신부님의 그 모습에 대해 다시금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도 성치 않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넘치는 활력으로서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뜻을 따른다고 말씀하시는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그러고 보니 역시나 앞서 먼저 만나본 마더 데레사 님이 자꾸만 떠오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두 분의 행적은 그 차이가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마더 데레사님의 이야기는 그저 행복하고 조용한 감동을 주셨던데 반해 신부님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제가 간혹 듣곤 했던 말인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자꾸 연상되고 말았는데요. 흐음. 역시나 이 말은 부처님이 하신 말이기도 해서 종교계통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딱히 이것이 답이노라 말하기 힘든 기분입니다. 개인적인 해석이라면 역시나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강인한 자세로 목표를 행해 돌진하라’정도의 의미 일까나요? 아. 그리고 방금의 조사를 통해 그 의미를 알아보니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로. 모든 대상에 대한 애욕, 애착을 끊어버리고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말며 홀로 진리를 추구하라는 뜻이라고 하며, 무소의 뿔은 하나이고 강하다는 점에서 <고독>과 <굳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틀린 해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막시밀리안 신부님의 이야기는 힘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비슷하지만 각자의 길을 걸은 두 분의 이야기를 접했던지라 계속해서 위와 같은 비교 감상이 되어버린 듯 한데요. 그러면서도 한 가지 공통적인 생각을 가져볼 수 있었던 것은 두 분 다 자신의 시간을 ‘전쟁’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처음 들었던 말인지는 기억에 없으나 ‘난세는 영웅을 요구하고, 영웅은 역사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듯 그저 ‘휴전’상태인 대한민국에 살아가면서 전쟁불감증을 체험중인 저를 포함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밝은 빛에 노출된 지루한 행복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고 판단하고 있는데요. 부의 나라인 미국만 해도 슬럼가가 있듯 우리에게도 있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탄생하는 작은 영웅들과 나름의 신화 또한 알아봐야겠다 결심하게 되는군요.



  그건 그렇다 치고 위와 같은 진부한 감상보다도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 것은 사실 ‘열정’이라는 뜨거운 마음입니다. 비록 책의 내용에서는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향한 막시밀리안 신부님의 종교적 열정이었다 할지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있어서-제가 살아가는 환경 탓인지-열정이라는 것을 가진 분들을 그리 많이 만나보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그나마 어느덧 식어 잠들어 있던 열정이 꿈틀거리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한편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반성의 시간 또한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그것과 관련해 오랜만에 떠올린 구절이 하나 있어 여기에 적어볼까 합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사실. 그다지 많이 들어본 분의 이야기도 아니고 ‘극단적인 자기희생’에 대해서 공감도가 그 그리 높지 않았다보니 신부님의 행적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야기 전반에 걸쳐 어떤 감동적인 일화보다도 불가능함에 도전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성공할 수 있었기에 기적이라 생각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인데요. 위에서 잠깐 언급한 ‘절정점’의 이야기와 같이 신부님에게는 그 원대한 흐름이 보이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마더 데레사 님에 이은 또 한분의 성인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렇게 ‘감기록’을 남기면서 왜 그렇게 감탄사를 뱉어냈는지에 대해서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전쟁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셨던 분들의 이야기. 그러는 한편 이런 지구상에서 아직도 끊이지 않는 전쟁에 대해 심각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며 이번의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첨가]


  책의 부록에는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에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니에포칼라누프)’가 설치되어있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보긴 했는데요. 흐음. 인터넷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찾아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그동안 이름과 위치가 또 한 번 바뀐 것인지 아니면 검색방법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조만간 성당에 다녀보기로 했다보니 신부님께 한번 문의해봐야겠습니다(웃음)

 

TEXT No. 414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이상의 도서관 50
최정태 글.사진 / 한길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2006

저자 : 최정태

출판 : 한길사

작성 : 2007.03.27.



“도서관은 사실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즉흥 감상-



  와. 그저 감동이었습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듯 내용보다도 사진을 통해 만나본 외국의 도서관들이 사실 1년 이상의 건축설계사무소 짬밥을 먹은 저에게 그저 별천지로 보여 버렸는데요. 돈만 두둑이 생기면 여행 삼아 국내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는 저에게 있어 이번의 책은 저로 하여금 더 넓은 세계로 나가볼 것을 강력 추천하는 듯 했습니다!!

  그럼 알찬 내용의 세계도서관 여행기록이 담김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여행을 떠나기 위한 저자의 말로서 그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우선은 저도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로 안면이 있는 ‘뉴욕의 공공도서관’으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이어서는 유럽에 있는 마치 궁전을 보는 듯한 모습의 ‘비블링겐 수도원 도서관’, 말로만 들었지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한국의 고대 도서관인 ‘규장각’,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되더라도 미국 의회 도서관만 건제하다면 복구는 시간문제다.”라는 시작의 말에 강한 자부심을 느껴버린 ‘미국 의회도서관’, 수업 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들었다가 가슴속에 맴돌던 ‘위대한 사서 없이 위대한 도서관은 없다’는 말로서 시작하는 ‘마자린 도서관’, ‘사람들은 어디에서 최고의 지식을 얻는가?’라는 구절이 인상에 남는 ‘독일 국립도서관’, 그저 내부가 아름답다 생각해버린 ‘아드몬트 베네딕트 교단 수도원도서관’,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아버린 ‘프랑스 국립도서관’, 그리고 불타버렸기에 그저 안타깝게 만나본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 도서관’, 처음에는 왕궁이었기에 그 웅장함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대학의 도시 그 심장에 있는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 ‘영혼의 요양소’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장크트 갈렌 수도원도서관’, 영화나 기타 작품 등을 통해 잠깐씩 만나본 프라하 그 중심에 있다는 ‘체코 국립박물관’, 스펀지에도 내볼까? 순간 즐거운 상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도서관들에 대한 소개가 실린 ‘부시 대통령도서관’, 마지막으로 미스터리에 푹 빠져 살았을 때 정말 좋아했던 팔만대장경판의 이야기를 담은 ‘해인사 장경판전’ 등 정말이지 각 장의 타이틀만으로는 다 말하지 못한 많은 도서관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입담과 함께 그 장대한 역사와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해일처럼 들이닥쳤던지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웃음)



  사실 이번 책을 그냥 만났다면 “이 세상에는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한 아름다운 도서관들이 있구나~”라고 감상을 마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편입을 해서 도서관과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이 책을 만났다보니 수업 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하나 둘씩 들은 도서관의 역사라던가 도서관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도 착실히 정리되어져 담겨 있다는 사실에 그저 즐거운 기분으로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나 저자분이 실제 그 현장을 돌며 느낌 점에다가 직접 촬영까지 한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저 또한 그 현장에 함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언젠가는 수업시간에도 들을지 모르겠으나 특별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만나본 지식이 있었는데요. 바로 ‘규장각’편에서, 일상생황 속에서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사용하던 생활 언어 중 하나인 ‘서방님’의 유래에 대한 것입니다. 아내가 자신의 남편을 서방書房님, 즉 ‘글방에 있는 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보면 선조님들께서 책을 좋아하셨다는 것은 일단 둘째 치더라도 저도 진정으로 ‘서방님’으로 불리기 위해 책을 더 많이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편에서는 수업시간에 들었던,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사슬로 묶어놓은 책이 사진으로 첨가가 되어있었으며, ‘부시 대통령도서관’편에서의 바버라 부시 여사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앞서 읽은 적 있던 도서 ‘우리아이 우등생 만드는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 2005’을 연상해볼 수 있었기에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과 행동의 실천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구나 라며 입체적인 감상의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었습니다.

  덤으로 직접 손으로 만든 고대의 필사본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는 ‘움베르토 에코’ 님의 이야기가, 도서관과 장미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는 ‘덴 브라운’ 님의 이야기마저 거론 되는 것이 그저 황홀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지금 우리들에게 처해있는 도서관의 현실은 과연 어떨까요?

  도서관이 지식의 보고이자 아름다운 곳이며 영혼의 휴식을 담당하는 곳이라 열심히 듣곤 있다지만 과연 저는 지금 어디에 앉아있는 것일까요? 수업시간에도 하나 둘씩 듣게 되는 도서관의 이야기가 그동안 경험한 한국의 공공도서관에 대한 상식을 조금씩 정화시켜주곤 있다지만, 이렇게 노트북을 꺼내들고 열심히 손가락을 굴리는 저는 그저 탁한 기분의 공기와 답답함이 드는 침묵 속에 앉아있다는 기분이 드는 이유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분명 공백의 시간이 길었던 도서관에서의 생활이 많은 차이점과 개선점을 보여주는 듯도 했지만 아직은 현실과 이론들, 그리고 도서관을 찬양하는 이런저런 책들과는 그 합치점을 발견하지 못한 체 혼란의 바다 위를 정신없이 표류하는 기분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니면 이 책을 읽음으로서 특히 이런 기분이 들었으니 역시나 ‘남의 떡이 더 맛있게 보인다.’라는 심리상태를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그저 재미없게만 보이는 도서관에 대한 반발 심리로 제가 멋지고 아름다운 도서관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으으. 그나저나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이렇게 ‘감기록’을 작성하면서도 약간의 멀미 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도서관’이라는 공통의 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해도 각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 성질을 다르게 하는 장시간의 여정을 이렇게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읽어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든 여행길을 경험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그러고 보면 저 또한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필리핀과 일본, 금강산 등을 방문한다고 이런저런 교통편을 이용해봤다지만, 꼭 이렇게 장대한 여행길의 안내서와 같은 책을 읽을 때만이 금방이라도 구토를 일으킬 것 같은 기분에 빠지곤 하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저라는 사람은 책을 통한 상상적 이미지에 더욱 민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건물의 시각에서 먼저 바라본 도서관의 시작. 그것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하며, 초창기에서는 요즘과 같이 인쇄기술 보다도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써가며 그림까지 그렸다는 ‘필사본’이 만들어 진 장소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만나본 미국 도서관의 역사를 담은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Civic Librarianship, 2001’이 연상되면서 좀 더 확장된 영역의 감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현재 읽고 있는 ‘상품의 역사 : 르네상스의 새로운 역사WORLDLY GOODS : A New History of the Renaissance, 1996’까지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이 심히 알딸딸한 기분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빠른 시일 내로 ‘규장각’과 ‘해인사’를 방문해볼 것을 다짐하며 이번 기록을 마쳐볼까 합니다.



[첨가]


  작년 3월에 방문해 지인분과 맛있는 술자리를 가졌던 안면도에 도서관이 하나 없다는 사실을 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인분과 의논해본 것이 공공도서관 설립이 무리라면 둘 중 하나가 로또 1등에 당첨되어 개인도서관을 하나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으로 많은 계획들이 일단 귀결되고 말았는데요. 그분도 나름대로 글도 쓰시고 작품 감상을 좋아하시던 중 서울에 사시다가 안면도로 갑자기 내려가셨던지라 많이 적적하시다고 하시니, 마침 저 또한 한적한 시골의 도서관 사서를 꿈꾸는 중 이었다보니 그 계획이 사실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것이 더 많으니 일단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고자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번 책에 나오는 여러 멋있는 도서관까지는 무리일지는 몰라도, 제가 꿈꾸는 그런 멋진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TEXT No. 413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테레시오 보스코 지음, 이건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 :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madre Teresa di Calcutta, 1999

저자 : 테레시오 보스코

역자 : 이건

출판 : 가톨릭출판사

작성 : 2007.03.21.



“우리는 혹시 ‘파랑새’의 이야기를 망각하진 않았는가?”

-즉흥 감상-



  마더 데레사. 그저 얇게만 보이는 책을 집어 들어보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싶어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조사를 통해 제 머릿속에 ‘마더 테레사’로 남아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요. 비록 제가 무교인일지라도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고 또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기에 ‘성녀’로까지 불리게 된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마침 그분의 일생이 담긴 기록을 접할 수 있어 반가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럼 꽁트 마냥 짧은 분량이라도 그 진지한 연속체의 이야기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한명의 여인이자 신실한 신자이기도 한 마더 데레사 님의 일생을 다루는 듯 하면서도, 기록은 사실 그런 일대기의 중간 중간의 중요한 이야기나 감동적인 사연을 발취하여 작성되어져 있었는데요. 그렇다고 순차적으로 재배열해 이런저런 조사를 하면서 ‘감기록’을 작성했다가는 하나의 전기문이 될 것 같아 책을 읽으며 덕지덕지 붙여둔 포스트잇을 따라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고통은 과연 절망인 것인가?

  죽음과 병마를 업고 외면을 받던 자가 정성스럽게 치료해주는 마더 데레사 님께 마지막 감사의 말을 건네자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접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겪으셨거든요.”라는 답을 하는 부분에서 생각했던 것. 일반적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고통 없이 죽고자하는 것이 소원이긴 하지만, 죽어가는 순간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진정한 안식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깨끗한 물이 담긴 대야]


  아름다움에 대하여.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끊이지 않은 죽음과 생각할 수 없는 더러움 속에서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자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게 될까요? 글쎄요. 개인적으로 진실 된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식물로 알려진 ‘연꽃’과 같이 말이지요.[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수레]


  인간다운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랑은 보편적이어라.

  모든 것을 포기한 체 죽음을 앞둔 이가 마지막으로 말한 ‘난 정말 짐승처럼 살았지만, 이젠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군요.’에 대해. 사람의 생이란 그 과정이 남들과 달랐을 뿐 시작과 끝은 같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보편적으로 말이지요.[가난한 사람과 교황]


  그리고 실천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노라.

  바로 앞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교황이 인도를 떠나며 마더 데레사에게 기증했던 자동차를 팔고 그 돈으로 ‘나병환자들의 마을’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게 되는데요. 교황이라는 분의 영광스러운 선물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그 행동에 심심한 감동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붉은 좌석 위의 갓난아기들]


  순수한 기쁨이여!

  마더 데레사 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어떻게 신앙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던 중. 하느님의 부름을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기쁨을 통해서’라는 답은 저에게 잃어버린 꿈과 순수한 기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에는 그 나름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며 그것을 찾는 방법 또한 알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다만 ‘기쁨’의 마음이 바로 그 열쇠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18세, 어떻게 살아야할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라.

  참혹한 전장의 소식을 들은 마더 데레사 님이 현장으로 가고자함에 반대에 부딪히게 되나, 결국에는 그 현장에 몸담을 수 있게 되었던 작은 기적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로. 글쎄요. 잘은 모르겠으나 ‘다만 그 길은 걷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길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노라.’라는 말을 계속 덧붙이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하느님의 두 번째 부름]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부와 가난이 공존하는 도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밝음을 전하시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그것은 비단 마더 데레사 님이 계셨던 곳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눈에 보이는 밝음만을 쫓지 말고 등잔 밑을 확인할 용기를 찾아야 겠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빛의 도시와 암흑의 도시]


  신실한 믿음은 만들고자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마더 데레사 님의 뒤를 이을 자들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모습을 읽으며, 위대한 자와 그런 위대함의 길을 걸어 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저 또한 그런 위대한 스승님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제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선생님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죄 없는 자 만이 돌을 던질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원관념이란 본디 같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생각하게 해본 이야기로. 말뿐인 종교와 실천하는 종교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칼리 신전]


  사랑의 기적이란 과연 좋아함의 관심으로부터인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생사를 넘나들다 정신이 든 여인과 여인을 간호 중이셨던 마더 데레사 님의 대화에서 ‘왜 이렇게 해주시나요?’라는 여인의 질문에 ‘당신이 좋아서요.’라고 답하시는 모습에 그저 감동을 받아버리고 말았습니다!![“이 일을 왜 하십니까?”]


  기적은 노력한 자의 몫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하느님의 사랑만을 가슴에 품고 험난한 환경에서 따뜻함을 실천하시는 마더 데레사 님에게 일어나기 시작한 기적들의 행진! 그것은 진정 절대적인 우연을 가장한 하느님의 손길이란 말일까요!![네 번째 서약]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

  말과 행동뿐인 사랑보다 그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본 이야기로. 이론보다 신실한 믿음의 자세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부재중인 믿음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 까나요.[가난한 이들을 환대하는 기쁨]


  돈이 없다면 없는 데로 행할지어다.

  이것은 글의 내용보다도 그냥 이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을 덧붙이고 싶은 기분이랄까요?[가짜 수염을 단 수녀]


  신이란 무엇인가?

  위에서 짧게 이야기했듯 종교의 원관념에 대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소리 없이 빠른 발전]


  고독. 그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의 이름이노라.

  마더 데레사 님의 이때까지의 행로와 하느님의 마지막 부름의 이야기가 담긴 부분에서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이 있어 적어본 것입니다. ‘외로움’보다 더욱 심각한 마음의 질병인 ‘고독’. 요즘처럼 스스로가 소외되는 세상 속에서 작음 사랑의 꿈을 꿔볼까 합니다.[서방의 가난한 사람들]


  행복을 찾아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들을 만났다는 마더 데라사 님의 이야기에서. 우리들은 바로 옆에 있을 행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아이의 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중간중간, 짧지만 긴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사랑의 기록행진은, 신은 믿지만 어느 종교에도 귀속되지 않길 원하는 마음에 종교의 원관념만을 찾아 나서려고 했던 저로 하여금 지난날에 접한 적 있던 동화 ‘파랑새L'Oiseau bleu’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을 ‘행복’을 찾아 험난한 여행을 했던 남매의 이야기처럼. 저 또한 텅 비어버린 가슴속 구멍에 살고 있을 망각된 ‘사랑’을 찾아다니고 있던 방랑자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이 책을 읽고서는 일단 가까이서 힘들어 하는 지인 분들께 어깨라도 빌려드리는 작은 실천부터 해볼까 합니다.

 

TEXT No. 412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