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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문학책을 내 손에 쥐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작가의 나이와 데뷔년도를 살피는 일이 되었다. 딱히 책을 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책을 낸 이들을 보면서는 이들은 이 나이에 이걸 했는데 넌 대체 지금 뭘하고 있는거니? 하는 자책하는 심정으로 내 인생에 채찍을 가하기 위함이고 또 때로 나보다 나이가 많을 때 데뷔한 작가들을 보면서는 그래 나도 아직 늦지 않았어! 아자아자!!!!위로 받으며 힘을 내기 위함이다.
내게 제일 좋아하는 은희경 : 1959년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이중주] 로 데뷔 37살
최근 만난 작가 중 가장 젊은 김애란 : 1980년생 2003년 계간 [창작과 비평]봄호로 데뷔 24살
순수성이 너무 좋은 박완서 : 1931년생 1970년 여성동아에 [나목]으로 데뷔 40살
발랄 깜찍 정이현 : 1972년생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시인문학상으로 데뷔 31살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와타야 리사를 만났다. 1984년생 2001년 17살 [인스톨]로 데뷔
미친다. 대체 어떤 천재길래 17살에 귀여니같은 인터넷 소설이 아닌 문예상을 수상하며 데뷔를 할 수 있는거냐...책을 펼치는 순간 환한 빛을 받으며 그 빛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새하얀 미소가 두꺼운 쌍커플이 가지런한 이가 보인다. 우씨....이쁘기까지.... 책을 읽기도 전에 외모 컴플렉스 덩어리인 나는 질투의 화신이 되었다.
니나가와 하세가와 그리고 하세가와의 친구 키누요 이들이 주인공인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은 참 조용조용하게 일상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유머도 잊지 않는다. 문장들은 길지 않고 그래서 읽는 속도가 무지 빠르다. 얼마전 읽은 공지영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와 비교하니 담백하기 그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참 크래커]를 닮은 소설이다. 짭쪼롬하니 맛도 있고 다 먹고 나면 뭔가 상큼한게 먹고 싶어지기도 하고...
니나가와의 발로 쳐주고 싶을 만큼 위로해주고 싶고 함께 어울리고 싶은 등짝을 본적이 있다. 웃기게도 내 측근이 아니라 내가 이뻐라 하는 배우 최강희 에게서이다. 헐렁한 바지와 지저분한 스니커즈화를 신고 고개를 푹 숙여 아무데나 주저 앉아 바닥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그녀의 등짝이 꼭 그랬다. 화려한 조명을 잔뜩 받고 있는 그녀였는데 하루에 미니홈피 방문자수가 1만명을 넘는 그녀인데 그녀의 등짝이 꼭 그랬다.
10대는 젊다. 그래서 외로움마저 쓸쓸함 마저 싱그럽게 보인다. 그리고 니나가와를 향한 핑크빛 하세가와의 마음이 그것을 더 싱그럽게 만든다. 모든 10대가 젊고 싱그러운 건 아니다. 내 십대를 생각해도 오히려 삼십대인 지금의 내가 더 싱그러우니까 (나의 십대는 음...좀 구질구질하지..) 하지만 이 소설의 10대는 젊었고 예뻤다. 다 읽고 난 후 책을 덮으며 뭐야 연애소설인거야? 라고 말해버린 나를 자책하면서 너도 늙었구나... 중얼거렸다. (요 책 다음에 바로 바나나의 슬픈예감을 읽었는데 책 다 덮고 또 그래버렸다. 뭐야! 연애소설이야? 라고...)
하세가와의 곧은 두다리, 배구에서 달리기로 종목을 바꿀 수 있는 것. 누군가의 등짝을 발로 쳐주고 싶다에서 그치는것이 아니라 실제로 치고 있는 그녀. 그것이 바로 젊음이 아닐까? 이 시기의 하루는 오늘을 사는 나의하루의 10배는 되는 것 같다. 다이나믹하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그래서 결론은 이제 질투는 그만하고 내 인생의 속도를 조금 늦춰야겠다는 결심이다.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삶이 아니라 살아 생명력 넘치는 삶!! 펄떡 펄떡 힘센 물고기가 퍼덕꺼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매우 조용하고 심심한 참 크래커 같은 소설에서 고래같은 힘이 느껴진다. 거대하고 질길것 같은... ^^ 와타야 리사!! 그녀의 성장과 오래 삭힘을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