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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 Room in the heart, BIUM 고래뱃속 생각 그림책 1
곽영권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고래뱃속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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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31일, 6월 1일 양일간 신규야간보호교사 워크샵이 여성플라자에서 열렸다. 지역아동센터 또는 복지관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나이트케어를 해주는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 고무신학교의 교장즈음 되시는 고무신님이 오셔서 비움을 비롯한 여러권의 책으로 책 읽기와 놀이를 주제로 워크샵 형식의 강의를 하셨다. 참! 고무신학교의 특징 중 하나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스승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선생님]이라는 말을 고무신 학교의 금지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나 또한 정말 선생, 교사로서의 자격이, 자질이 있는 건가 돌아보게 되었다. 

  비움... 제목만 가지고 2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것 같다. 고무신님이 전에 아이들과 워크샵을 했을때 어떤 아이는 [비움]이 비가 온 뒤에 움이 트는 것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의 머리속은 그야말로 무궁무진 한 것 같다. 비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마치 시를 읽 듯이.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분히 철학적일 수 있겠지만 아이들만의 순수함이 이 책속의 내용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왼쪽 페이지에는 나뭇결들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나뭇결을 이용하여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와우~ 신기해라! 할 정도로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는 소리내어 책 읽기와 그림 보기를 마친 후 조그마한 나무 도막을 받았다. 길거리에 가다가 어느집에서 버린 나무를 톱으로 쓸어서 가져오신 거라고 하였다. 우리는 고무신님이 정성스레 준비한 나무도막을 일명 뻬빠, 건조한 사포로 열심히 문질렀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릴 것이기 때문에 매끄럽게 될 때까지 문지르라고 하였다. 매끄러운지 아닌지는 볼에 대보면 안다고 했는데 볼에 대니 아주 기분좋은 매끄러움이 전해졌다. 대신에 하얀 밀가루 같은것도 묻었다. 나무 도막을 뚫어지게 30초를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나뭇결이 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였다.  

  6명이 한조가 되어 둥글게 앉아서 작업을 했는데 어쩜 6명이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나뭇결에서 큰 고래한마리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누워있는 사람도 보았다. 나는 피노키오도 보았고, 성경의 인물 요나도 보았다. 어떤이는 선풍기를, 공작새를 그리기도 하였고, 또 어떤이는 막대사탕을, 곰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주어진 미션은 이 여섯개의 그림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각조마다 정말 근사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나무 조각이 하나 남아서 집에서 남편에게 해보려고 가지고 왔다(아이가 없으니 나의 실험 대상은 언제나 남편이다. ^^) 남편은 열심히 사포로 문지르고 얼굴에 대보고 물티슈로 깨끗이 닦고 난 후 나무조각을 뚫어지게 30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는 말 "난 아무것도 안그릴래" 잠시 실망했지만 맞아!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인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는 나무 조각을 볼 때마다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으니 하나쯤 아무것도 안그려진 나무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겠군!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4평형의 우리집은 책들로, 살림들로 정말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가끔 숨이 막히기도 한다. 결혼해서 8년동안 한번도 이사를 한적이 없기에 살림들이 구석 구석 잘도 채워지고 있다. 이제 슬슬 비움을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들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있는 것들로 더 많이 풍성하게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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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1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새로운 상상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가
최근에 출간 되었습니다.
 
멀쩡한 이유정 푸른숲 작은 나무 13
유은실 지음, 변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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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작품을 문학으로 마주보기는 것이 참 어렵다. 모든 주인공이 '나' 인양 몰입정도가 너무 강해서 아프고 슬프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미있을 땐 또 엄청나게 남의 눈치 안보고 웃어재낀다. 멀쩡한 이유정의 표지는 내 마음을 '쿡' 찔렀다. 나의 외모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 모습도 그닥 나아진건 없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과 어쩌면 이리 비슷하던지.참 불쌍하게 생겼다와 순박하게 생겼다는 생각들이 내 마음을 '쿡'.  작가가 서문에 쓴 세상의 모든 유정이에게는 책을 읽기도 전에 위로가 되었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도, 집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 때문이었다. 늘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세상을 향해 두손 꽉 쥐고 어금니 꽉 깨물고 그렇게 산날이, 그래서 너무 피곤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말 서른 넘고, 결혼하고, 세상에 이리저리 치이며 살다보니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고, 그렇다고 그 사람이 지금 불행한 것도 아니고, 나보다 잘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힘겹게 사는 사람도 많고...... 뭐 사람 사는건 그닥 비교거리가 되는 것 같지 않다.  

멀쩡한 이유정에서는 '할아버지 숙제'가 제일 재밌었다. 유은실 작품에서는 마당놀이 같은 구수한 해학, 유머가 넘친다. 그런 웃을거리가 있어서 좋았다.  [우리집에 온 마고할미]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듯 했고 [만국기 소년]에서 '내 이름은 백석' 은 <나린다> 라는 말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웃음을 자아냈고, '어떤 이모부'는 배꼽을 달아나게 하였다. [달려라 바퀴]에서 '기도하는 시간' 은 녹아가는 아이스크림과 함께 웃었다. 이렇듯 유은실의 웃음을 자아내는 표현들은 나와 잘 맞는다.  

할아버지의 삶에 대하여 쓰는 숙제를 하기 위해 가족들의 증언을 들어본 결과 숙제는 이렇게 써야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술마시고 길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다 자빠져서 이마가 찢어졌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지긋지긋했습니다. 경수의 걱정는 한 걱정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도움으로 숙제를 하는 경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반전 명수 할아버지이야기!  

이렇게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웃게 만드는 유은실의 동화에는 웃음도, 아픔도, 생각할 거리도 잔뜩 있다. 진지하게 읽다보면 기성세대들에게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도 하고, 세상 사는데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세상이 세대간에, 빈부간에, 다른 성(性) 간에 등등 화합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는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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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밥 공주 창비아동문고 249
이은정 지음, 정문주 그림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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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 토닥!  요즘 읽게 되는 동화속에는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주며 "네 잘못이 아니야" , "참 대견하구나", "애썼어" 라고 해주고 싶은 등장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이런 마음이 드는건 어쩌면 이런 토닥거림을 내 어린 시절 이웃들에게 받았다면 나도 더 잘 자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소나기 밥 공주 안공주는 먹을 수 있을때 먹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교 급식때 엄청나게 밥을많이 먹는다. 그래서 별명이 소나기 밥 공주다. 공주의 아버지는 집에 안들어온지 꽤 되었다. 월세도 못냈는데 말이다. 집주인 아저씨는 방세 때문에 자꾸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다. 새벽에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온다며 얼버무린다. 이런 공주에게 심장 떨리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콱 얹혀버린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루고 꽉 닫혀있던 공주네 집 문도 열리고 202호의 문도 열린다. 

공주의 모습에서 자꾸 나를 본다.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마치 소녀 가정이라도 된 듯 살림을 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나. 그때는 엄마가 집을 나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씩씩한 살림 잘하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팠다. 우유 급식도 참 많이 먹고 싶었고, 하교길에 군것질도 하고 싶었다. 생일파티도 하고 싶었는데... 나는 동네 가게에서 과자를 훔쳤다. 그리고 걸렸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했고 주인 아줌마는 돌려보내주었다. 아마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은 누구의 것을 탐낼 만큼 가난하지 않다. 오히려 힘든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 오빠들이 무료로 가르쳐주었던 야학이 고마워 지금은 내가 야학 선생이 되어 복지관 아이들에게 때로는 간식도 사주고 책도 사주곤 한다.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헌금을 내기도하고, 월드비젼과 어린이 재단에 기부를 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컸다. 분명 공주도 나와 같은 어린이 될 것이라 믿는다. 받은 만큼 베풀 줄 아는, 용서 받은 만큼 용서할 줄 아는... 꼭 그렇게 자라길 바란다. 힘든 이 세상의 공주들에게 잘 자라주길 바라며 다시 한번 응원을 보낸다. "토닥 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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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찐군과 두빵두 문지아이들 74
김양미 지음, 김중석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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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동화]라는 표현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쓰곤 한다.

  “완전히 동화 속에서 사는구만.” “지금 동화쓰냐?”
하면서 말이다. 동화를 쓰는 분들은 동화를 저속화 했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말 안에 동화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동화는 세상이 어둡고 힘들더라도 좀 더 밝은 면을 강조하고 아름답게 쓰여 진 글인 줄만 알았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동화를 읽으며 나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동화 속에서 사는구만.” 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동화를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 [찐찐군과 두빵두]라는 동화가 있다. 여행 작가 아버지와 미용실에서 일을 하는 엄마를 둔, 친구가 없고 생각이 많은 찐찐군(기영이)과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할아버지와 엄마랑 사는 장애아이면서도 남달리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두빵두(찬울이)의 우정을 그린 동화이다.

  찐찐군과 두빵두는 여러 결핍들이 소개 된다. 그 중 가장 큰 결핍은 아빠의 부재이다. 찐찐군의 아버지는 몇 년씩 집을 비우고 여행을 다니신다. 아버지가 여행 후 쓰신 책들이 아버지를 대신한다. 좋은 글귀도 많고 그 글들을 좋아하지만 자신과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학교에서 부모활동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그립기만 하다. 두빵두의 아버지는 두빵두가 한 살도 되기 전에 존재하지 않으셨다. 두빵두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찐찐군의 것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어머니의 부재이다. 두 분 다 아이들과 함께 살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아무것도 함께 하지 못한다. 하루 종일 미용실에 나가서 밤 열시가 넘어서야 들어오는 찐찐군의 어머니와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기에 직장에 메여 할아버지에게 양육을 맡겨버린 두빵두의 어머니. 마음은 더 신경써주고 싶고, 미안하고 걱정되지만 현실이 받쳐주질 못한다. 그 미안함과 걱정됨을 찐찐군의 손전화기로 대신 해주고 싶겠지만 그것은 역부족이다.  그 다음은 신체의 결핍이다. 찐찐군은 장애우이다. 혼자서 외출하는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으며, 마당에서 집안으로 전화를 받으러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 다음은 친구의 결핍, 그 다음은 경제적인 결핍…… 
  찐찐군과 두빵두에서 보여주는 결핍들은 이 사회의 결핍들이고, 또 나의 결핍인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대표로 뽑혀 웅변대회를 나갔다. 우리 학교는 용인의 작은 시골 학교였기에 누군가가 읍내의 군청으로 나를 데려가야 했다. 엄마가 데려갈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대회 날 아침 엄마가 사라졌다. 며칠 집에 머물다가 집을 나가 몇 달씩 있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늘 반복해왔던 엄마지만, 대회 날 아침 사라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서 어른들이 바쁘셔서 혼자 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들은 상의 끝에 일단 버스는 혼자 태워 보내고 용인 터미널에서 교장선생님이 기다리시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멀미를 심하게 한 나는 터미널에서 교장 선생님을 보자마자 폭 안겨버렸다.

 나는 엄마의 결핍이 가장 컸고, 정상적인 피부가 아니라는 결핍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그러나 어릴 적 읽은 동화들이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말한다 해도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그때에 찐찐군과 두빵두를 만났다면 허황된 신데렐라의 꿈을 꾸기보다 좋은 친구 한명을 사귀기 위해 노력 했을 것이고, 도서관으로의 모험을 떠났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야 라며 절망에 빠지기보다 다들 이렇게 결핍된 채로 살아가는구나. 라며 어울려 사는 법을, 서로서로 위로하고 사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동화는 허황된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현실을 위로하고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놀이터와 도서관을 여행지로 만들어 주는 것이고, 동네의 골목길을 미로로, 새로 만나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해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고, 동화 속 주인공들과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들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 떠나 보는 것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결론이 아닌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면 좋을까? 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얼마 전 논술에 관한 세미나가 있어 참석하게 되었는데 몇 만 명의 주부회원을 거느린 인터넷 사이트 대표님께서 자신의 자녀의 독서습관을 말씀하시면서 살짝 동화를 폄하 하는 발언을 하셨다. 쉬는 시간 쪼르르 그 분에게 다가가 “요즘 동화 읽어보셨나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유치하지도, 권선징악적이지도 않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왔다. 아마 그 분도 동화 속에서 살고 싶은 분이셨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동화의 세계는 양탄자를 타고 날 수도 없고, 멋진 왕자님의 키스로 모든 현실이 바뀌지도 않는다. 동화 속세계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긴 한 숨소리에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 요즘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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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가출했다 힘찬문고 41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한기상 옮김, 최정인 그림 / 우리교육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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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가출했다]는 우리나라 동화가 아니다. 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니까 유럽 동화라고 해야겠지. 그런데 이 동화의 주인공들의 이름을 살짝 은지, 영순 등의 이름으로  바꾸면 우리나라 동화라고 여겨질 만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과 많이 비슷하다.

주인공 에리카는 재혼 가정에서 살고 있다. 원래 아빠와의 사이에서 언니 일제와 에리카가있고 재혼한 아빠에게서는 동생 둘이 있다. 예쁘고 세상물정에 훤한 언니,  삐걱거리는 분위기가 싫어 숨죽이며 사는 에리카, 아이들을 잘 키워보겠다고 하지만 부모로써의 자격증 시험이 필요할 만큼 무지한 엄마, 그리고 사람좋은 아저씨, 말썽꾸러기 두 동생이 함께 살고 있다. 이야기는 언니가 가출한 시점에서 시작해  돌아온 날로 끝이 난다.  언니가 없는 날동안에 아니 없는 시간 동안에 에리카가 회상을 하며 가출할 때까지의 상황을 이야기 해주는 식이다.

동화를 읽으면서 난 내 안의 상처들을 끄집어 냈다가 다시 집어 넣기도 하고, 딱지 앉은 상처를 쓰다듬기도 하고, 아직 덜 나은 곪은 부분에선 살짝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는 에리카나 일제에게 나를 투영하기보다 엄마에게 나를 투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부모가 될 것이다. 안될지도 모르지만 가능성은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 부모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보고 배운것 없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윽박지르고 때리기나 하는건 아닐까. 아이의 말이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는 있을까.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감싸줄 수는 있을까...

에리카의 엄마는 두번째 결혼이기에 이번엔 실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제대로 아이들을 교육시켜 재혼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잘 크는구나 증명해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리카의 엄마는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잘 몰랐다. 모를 때 묻고 공부하기보다 자신의 방법으로 아이를 다그쳤다. 때리고 윽박지르고 집안에 갇워놓고... 오히려 그것은 더 역효과를 가져와 일제가 가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부모들은 착각을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부모란 내 엄마, 아버지가 아닌 자녀를 가진 모든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내 친구도 될 수 있고, 언니, 동생이 될 수 있다. 부모가 되면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것을 마치 다 알게 되는 양 군다는 것이다.  뱃속에 열달동안 아기를 갖고 있었을 뿐,  출산으로 인한 극도의 고통을 겪었을 뿐 그 전과 달라진 건 없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그러므로 부모가 되기 위해선 부모자격증 시험이라도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로써 갖추어야 할 소양, 지혜 이런 것들은 배우고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절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인생은 단 한번이기에 키우면서 시행착오를 겪기에는 아이에게 주는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온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시간과 노력, 모든 학문을 동원해 일궈놓은 연구의 성과물.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부모가 되어가야 한다. 진정한 부모말이다.

우리아버지, 어머니 또한 많이 부족한 분들이셨다. 사랑은 했지만 도시를 지향하는 어머니와 안정적인 생활을 지향한 아버지는 많이 달랐고 자식들은 어떻게 되든 말든 우리앞에서 무식하리만치  과격하게 싸워댔고 이혼을 하셨고 우리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나 5학년, 언니 중학교 2학년, 오빠 고1때의 일이었다. 우리는 모두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였고 아직 어렸던 나였지만 그때의 기억들로 인해 지금도 나에게 큰 소리를 치거나 이유도 묻지 않고 싫은 소리를 할때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부터 나곤 한다.

에리카의 모습은 나의 모습을 닮았다. 밖으로 뛰쳐 나간 일제보다도 그 모든걸 감내하고 있는 쪽의 에리카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성경에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달라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잔치를 베풀어 받아준 이야기이다. 난 이 이야기에서 동생이 나가있는 동안 불만없이 집안일을 모두 건사했던 큰 형에게 더 마음이 쏠렸다. 큰 형에게는 잔치 한번 베풀어 준적 없으면서... 내게도 불만이 쌓였다. 나는 항상 그래왔다. 참고 견뎠는데 결과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것이었고 파격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내비쳤던 언니 오빠에게는 경계도 관심도 쏠렸다.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내게 너무도 잘해주는 태양님께 그동안 쌓여왔던 화나 악을 막 쏟아붓는다.  무서울정도로 쏟아 붓는다.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겁이 난다. 내 아이에게 쏟아 부을까봐 말이다.

[언니가 가출했다]는 분명 동화다.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동화이고,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그린 동화이다. 그래서 더더욱 부모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할 동화이다. 내 어린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고, 부모된 지금의 나를 바라볼 수도 있고, 어떻게 키워야 하는건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건지 고민 할 여지와 시간을 마련해주는 책이다. 내 안의 상처는 이 세상의 이혼한 부모들에게 외친다 "못키울 것 같으면 낳지를 마라!!!"  기대와 행복감 속에서 부모가 되고 싶다. 지금처럼 불안과 두려움속에서가 아닌... 언제쯤 내안의 상처들이 나을까... 이런 책을 읽을때마다 사실 두려움이 더 커진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기도가 되고 준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진정한 부모되기... 어렵겠지만 허락한다면 열심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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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9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쁜하루 2007-04-1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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