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2학년 여름방학, 공부도 더 하고 싶고 할일도 많아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기숙사에 살기로 하고 신청서를 냈다. 30여만의 돈을 내면 여름방학내내 자는거며, 먹는거며 신경쓰지 않고 살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런데 집에서 연락이 없다. 왜 그렇게 비싸냐는 얘기만 하실뿐 돈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접수 기간을 놓쳐 난 어디에도 갈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는 계속 해야하고, 과 근로도 신청해놓은 상태였는데....다행히 자취하는 후배에게 부탁을 해 그집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참 많이 속상했다. 방세를 내는것도 아닌지라 어디든 머물러야하는 내 몸뚱이가 참 부끄럽기만 했다. 후배의 언니가 며칠 왔다갔다. 그동안 머물곳을 또 찾아야했다. 그들사이에 끼어 있는건 견딜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집은 하루하루 전전하며 며칠을 보내고 후배의 방에 돌아왔을 때 책 한권이 놓여져 있었다. 언니가 읽던건데 주고 갔다면서 내게 가지라고 하였다. 은희경...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책 장을 펼쳤다. 그리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책속의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내 신세에 누릴수 있는 가장 최고의 호사가 책 읽기라는 생각에 더 더욱 크게 웃어댔다.

열 두살 꼬마 진희는 정말 영악하다. 삶이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을것이다. 영악하지 않고는 살수 없도록, 또 영악하되 겉으로는 순진함 그 자체로 보이도록 아마 그렇게 만들었을것이다. 내 어린시절에도 그랬으니까.. 엄마 아빠가  싸우는 날 저녁이면 난 어김없이 꿈나라로 가버렸다. 사실 난 자지 않았다. 그저 전쟁통 같이 시끄러운 저들의 세상이 끼고 싶지 않아 자는 척을 한것이다. 다음날이 되면 나를 향해 엄마는 욕을 퍼붓곤 했다. 너는 어째 집에 불이 나도 모르고, 전쟁이 나도 모르냐고!! 그래 그렇게 잠이 오디!!!! 난 아무말도 안했다. 그리고 그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자는 척을 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양 그렇게 살아갔다.

영악한 은희경의 어린시절이 좋았다. 적당한 허세와 적당한 잘난체와 적당한 약음이 너무 좋았다. 이 때 이후로 은희경은 내 문학 인생의 최고 작가가 되었다. 내 마음을 훔쳐가버렸다! 그래서 난 오늘도 은희경을 체포한다. 그녀의 생각을 체포하고, 그녀의 글들을 체포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 마음을 훔쳐가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질녘에 아픈 사람 민음의 시 120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은 말한다. 아픔은 의지가 약한 자의 엄살이라고 그러면서 잃기 싫어서 우스워서 나만 아픈것이 아니여서 풀지 않겠다고...  시인을 처음 본것은 한 문화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대여섯살로 보이는 딸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는 꽃분홍 스커트를 입고 신나게 언덕길을 내려오는 그녀의 얼굴은 어린아이같았고,  딸과 스텝바이미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모습은 하루이틀이  해온것이 아닌듯 하였다. 딸아이를 툭툭치며 임신 칠개월때 초음파 사진을 보고 느꼈던 때의 시를 읊어준다. [컴퓨터 화상에 물결치는 네 얼굴, 네 발, 네 손, 젖가슴 아래 작은 발이 수초처럼 부드럽게 흔들리는 너, 너 너로인해 사랑을 얻고 어미는 감미로운 족쇄에 묶여 노래한다]  아이는 이 시를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쿠우 음료수만 맛깔나게 들이키고 있다. 이것이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본 풍경이다.

세기말 블루스나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는 이 시보다 후에 봤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그 실망감을 난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를 읽으며 지금의 신 시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을것 같은 공격적인 문체가 느껴져 이질감을 살짝 느꼈다. 해질녘에 아픈 사람을 처음 읽었을때는 왜이리 가난하고 힘겨워하느냐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먼저 새어나왔다. 참 사랑도 애처롭게한다. 마지못해한다.. 뭐 이런식으로까지 느꼈었다.  어미가 되는 기쁨에 앞서 살아내야할 삶이 더 버거워 보였다. 그러다 시집을 덮어버렸다. 신현림의 싱글맘 스토리를 천천히 읽어내고 다시 시집을 들었다. 이제서야 그 힘겨움이 어디에서 온건지 알것 같았다. 그리고 한숨섞인 시어들보다는 포기와 절망의 시어들보다는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은거라는것도 조금은 느껴졌다. 희망의 푸른 지평선이 보일 때까지 다시 힘내려 한다 는 마지막 싯구가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독자에게도 좀더 힘을 내라고 용기를 주는듯 하다.

신시인의 시에는 자신이 영향을 받았던 인물, 음악,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살짝 내비친다. 어찌보면 시와 대중문화의 연결점이 되어주는 작품이 되는거 같기도 하다. 그녀는 어찌보면 참 솔직한 시를 쓰는것이 아닌가 싶다.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본것처럼 상상해서 쓰기보다 가서 보고 쓰기를 좋아하는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시가 그것을 다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런 그녀의 스타일이 가장 뚜렷하게 보여지는 책이 [시간창고로 가는길]인데 만삭이 되어서 힘겹게 전국 방방곡곡의 박물관을 둘러보고 쓴 기행 산문집같은 책인데 정작 책 속에는 박물관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 힘든 그런 책이다. 친절한 사람같으면 박물관 가는 약도까지 그려넣으련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그녀의 글쓰기가 좋다. 그냥 그게 더 솔직해 보인다.

그녀의 책을 무더기로 마구마구 사다놓았는데 왜이리 더디 읽혀지는지..^^;; 그냥 핑계를 대자면 신 시인의 책을 후딱 먹어치우기보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기 위함이다.... 과연?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전반에 걸쳐있는 무능력한 아비 또는 부재중인 아비는 작가의 경험일까...  작가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경험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늘여뜨려놓은건 아닐까... 책을 읽다 문득 내 아비는 어땠던가..생각하게 되었다. 친엄마가 우리를 두고 도망갔을 때 내 아비는 우리를 지켰다. 새 엄마가 보증을 잘못써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오갈데 없이 되었을때도 내 아비는 우리를 지켰다. 그래서 나에게 내 아비는 최고의 아빠였고, 최고의 신랑감이였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아빠랑 결혼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내 아비와 같은 사람과 결혼해야지 다짐 했었다. 그러나 저 일들을 사춘기에 겪은 언니는 나와 달랐다. 언니에게 아비는 무능력한 사람이였고 자기 마누라 하나 간수 못하는 사람이였다. 나의 어린 눈은 아비가 월 100만원도 안되는 돈을 월급으로 받고 있었다는것에 관심이 없었고, 내 어미가 시골에 묻혀 살기엔 능력도 많은 사람이였고 머리에 든것도 참 많은 사람이란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곁은 언제나 한결같이 지켜주고 잠자리에서 발꼬락으로 내 살을 꼬집고 간지르며 꿈나라로 가는 길을 즐겁게 해주었던 기억들이 전부였다.

달려라 아비의 나는 어려서부터 어린 눈을 가진적이 없었던것 같다. 농담으로 키운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녀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어른들은 세월의 무뎌짐 속에 좋은것과 싫은것, 재미있는것과 감동적인것, 슬픈것 들을 잃어간다.  달려라 아비에 나오는 나들은 좋은것도 나쁜것도 싫은것도 슬플것도 없다. 메마른 감정들로 성내지 않고 살아가는것에만 집중한다. 그것이 과연 이해에서 나오는 행동인지는 알수 없다. 그저 시끄러운것이  싫은것이 아닐까 싶다.

많은 리뷰어들이 작가가 80년생 이라는것에 관심을 보인다. 80년대생 특유의 발랄함과 발칙함, 발랑 까짐등을 기대 하며 이 책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랬다. 책 표지에서 보여주는 형광 분홍 반바지와 듬성듬성 난 털을 보면서 밝은 기운을 느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은희경님을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여자의 눈으로, 어린 남자아이의 눈으로, 또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렇게 다양한 시점으로 써간 작품들을 보며 그런생각이 든것 같다. 각 작품마다 소재도 다양하고 글쓰는 방법도 달리해 읽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80년생 만이 볼수 있는 시각! 독특한 시선과 발칙함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자기 안으로부터가 아닌 외부로부터의 글쓰기가 가능해질때는 좀 더 밝은 이야기도 쓸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순간 순간 나오는 그녀만의 유머가 그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서광현.박승걸 글, 김계희 그림 / 여름솔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이기찬이였던가. 어느 가수의 뮤직 비디오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가 나오는것을 보고 연극을 보러 가지는 못했지만 책을 얼른 샀다.  뮤직비디오에서 예쁜 몸짓으로 춤을 추던 반달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너무나 작고 어여쁜 소년같은 반달이였다. 그런데 책을 펼친 순간 내게 보인 반달이는 초록괴물이였다. 나는 반달이에 대한 애정이 마구마구.....하강되고 있었다. 글 자체가 주는 감동과 살짝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배경 그림들..참 멋졌는데 슬픈 반달이의 얼굴은 정말 충격이였다. 그 만큼 마음이 많이 여린 또 상처를 간직한 반달이를 표현하고 싶었을른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좀 벅찼다 ^^;; 눈을 감고 공주와 함게 춤을 추던 반달이는 너무 이쁘고 보랏빛 배경의 초승달이  뜬 밤의 풍경은 정말  너무 너무 환상적이였다. 나까지 붕붕  떠 그곳에서 함께 춤을 추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헌데 반달이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서 가까이 다가올때면 개구리 왕자님 같은 느낌이였다. 책 내용도 너무 좋고 다른 그림들은 다 좋은데 반달이만 좀...더 사람에 가깝게 그렸으면 감동이 더했을텐데 좀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1. 내가 사는 동네가 그리 못사는 동네는 아닌데 입시학원같은것은 전혀 없었고 하나 있는 학원은 중학생들까지만 가르치는 학원이였다. 뭐 또 딱히 입시학원이 들어선다 해도 다닐만한 형편의 아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동네에 대학을 다니거나 대학출신인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친구의 오빠가 s대에 다니있었고 그 오빠를 비롯 동네 출신 대학생들이 모여서 여름방학을 맞아 공부방을 만들었다. 학원에 다닐수 없는 형편의 나는 일주일에 두번 있는 그 수업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울 동네에서 조금 큰 곳에 있는 학교였는데 그래도 학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꽤 했었다. 나에겐 그것도 컴플렉스였던지라 학교 보충수업 마치고 공부방으로 갈때면 나도 너희들처럼 학원 다녀~~ 라는 웃기지도 않게 뻐기는 마음이 피어오르곤 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으면서 나를 가르쳐 주었던 그 언니 오빠들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 언니 오빠들이 나에게 가르쳐준건 공부 뿐 아니라 베풀면서 사는것에 대한 삶의 지혜였던거 같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지.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는 저 말이 깊이 새겨져 있다. 나는 언제나 장애가 있을수록 그것을 극복해 냈을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난은 장애물이다. 주저앉아 있을 장애물이 아니라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가야할 장애물이다. 1년 학비 벌고 1년 학교 다니고 해서 8년만에 졸업한 선배가 있다. 우리는 그 선배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선배가 좋은 회사에 취직했을 때는 더 큰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8년을 다니면서도 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왜 없이 사는것이 괴롭지 않겠는가! 다른 친구들 공부할 때 일해야하는것이 왜 힘겹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났을때의 그 기쁨과 환회를 생각한다면 그 이유로 본드를 하거나, 집을 나가거나 하는것이 얼마나 헛된짓인지를 알게 될것이다

엄마가 집을 나간뒤 할머니와 살면서도 우리 삼남매는 참 꿋꿋했다. 동네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라고 불리였고, 나쁜 짓은 냄새도 맡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삼남매 이제 모두 삽십대가 되어 삐까 뻔쩍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나름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나는 과학강사로 6년을 일했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어릴적 나에게 베풀어줬던 그 언니 오빠들처럼 도와주고  싶다. 나도 할수 있을까? 나의 최대 단점인 끈기 없음을 극복하면 할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식은 살짝 자신없지만 사랑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