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장아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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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달끝마을에 사는 희미, 그 옆집 사는 준후, 신도시로 최근 이사한 민진이, 그리고 신목의 특별한 기운으로 남다른 존재 새별이, 소녀 셋에 소년 한 명이 그리는 이야기이다. 작가의 새와 고양이, 그리고 나무 사랑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기도 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안타까움이 예쁜 책이다. 또 한편으로는 쿨한 세 명의 소녀들이 한 마음(!)이 아니어서(???이건 진짜 읽어봐야 그 뉘앙스를 안다!) 그 셋의 대화가 완전 요새 아이들 이야기하는 식이어서 더 정겹다.
한 아이만 소개하자면, 주인공 중의 한 명인 희미는 달끝마을의 오래된 집, 하하헌에서 사는 아이이다.

“부엌에는 조왕님, 장독대에는 칠성님을 모신 것처럼 대들보에는 성주님을 받든 거지.”(p.65)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엄마가 희미에게 전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우리나라 전통 집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래 산 나무가 베어져 이 집의 기둥이 되고, 대들보가 되고, 그리고 그 오래된 것들이 넋이 되어 함께 한다는 이야기가 전승된다는 이야기이다. 그 앞 신도시에서 사는 민진이의 환경과 대비시켜 보면 우리가 잊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 희미이다. 그래서 이름이 희미일지도 모른다. 잊혀져 가는 것을 희미로 표현한 것이지도.

이 책은 우리가 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이야기들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우리가 불편해서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자연(식물, 동물)으로 보인다. 신도시가 들어서기까지 베어져버려야 하는 나무들과 그 속에 살고 있던 자연물들. 도시가 생기면부차적으로 함께 깔리는 도로들, 그 위의 로드킬된 동물들. 새들이 피할 수 없는 건물의 유리들. 인간의 편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나무들이 죽어가는 이 런 상황을 우리가 잊어선 안된다고, 별과 새와 소년을 생각하라는,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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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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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두 종류의 수레바퀴가 언급된다. 하나는 지구에 700만 명의 인간이 살고 있었을 때, “바퀴는 도공의 공방에서, 물레방앗간에서, 수송로에서, 전장에서, 시계판 아래에서 역사를 이끌어왔다”(p.13)라는 그 우리가 알고 있는 바퀴다. 다른 하나는 (이 소설 기준)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만질 수도 없고 과학으로도 검증할 수 없는 원판은 인간의 정수리에서 50센티 가량 떠올라 있으며,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pp.13-14)라고 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이다. 작가는 ‘바퀴의 회전’이라는 것이 “시작도 끝도 없는 반복이자 순환이지만 그것이 멎는 순간은 시작이거나 끝”(p.13)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인류는 바퀴에 의해 인력을 더 이상 쓰게 되지 않을 줄 알았을 것이다. 하나의 바퀴 대신 수 많은 바퀴 컨트롤이 가능해졌고 이전보다 더 힘을 쓰지 않을 수 있었으나 그 대신 바퀴를 끄는 가축이라던가, 바퀴가 마찰없이 굴러가기 위한 길 등등 더 많은 신경을 써야했을 것이다. 바퀴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불리우고 바퀴의 노예가 된 것은 감춰졌을 테니.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다. 여기에 그저 운명의 수레바퀴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모든 정치, 경제, 종교, 개인의 삶에 이 바퀴가 스며들.. 아니 심장에 쾅쾅 망치질된 것처럼 압도되었다. 미국보다도 경쟁이 치열하며 세속적인 현재의 한국. 이 수레바퀴는 과연 한국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게 되지만 읽을수록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예리해서 감탄하면서도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 마음아프다. ㅜ

수레바퀴란 무엇일까? 나는 사피엔스가 이 지구에 이룩해놓은 모든 정치, 경제, 종교, 과학, 사회 속 여전한 계급, 그리고 그 한가운데 욕망 그 잡채, 돈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바퀴로 상징한게 아닐까 싶다. 하나로 뭉쳐진 상태로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무섭게 굴러가고 있다. 썩어빠진 브레이크로는 멈출 수 없다. 이대로 기후위기와 큰 충돌을 할수 밖에 없는 것인가? 이 책의 제목은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이다. 바뀐다는 것은 주체의 의지가 필요한 동사이다. 그 주체가 제발 우리 인간이기를 바랄 뿐이다.

p.s 진심 나의 원판이 무슨 색으로 도배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과연 떳떳하게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제목의 '수레바' 까지는 수평을 이루다가 '퀴 이후'는 수직으로 뚝 떨어지고 있다. 이 책의 결말이 무습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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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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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었을 때, 난 이 책의 주인공이 와이라(퓨마)인가, 로라(저자)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죄책감을 느꼈다.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이 소중한 존재들이 나에게 와 닿는 의미를 생각하면 말이다.

“야심만만한 여자애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달리기 경주는 누가 다윈의 적자생존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을 능력자인지 증명할 기회였다. 그 경주는 미래를 위한 훈련이었다.”(p.30)

로라가 다니던 학교에서 달리기를 하던 추억에 대한 문장이다. 학창시절부터 적자생존 경쟁에 부담스러워하는 그녀. 이후 이곳저곳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석 달 동안 볼리비아 자유여행을 계획한다. 아마도 도시생활의 번아웃으로 방랑 중이었을 2007년도, 스물 넷 저자의 앳된 얼굴이 그려진다. 도시 위, 아니,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도 벅찬 모습이다. 이 여행도 지칠 무렵 우연히 ‘파르케’(볼리비아 동물 복지 자선단체)에서 봉사자를 모집하는 광고지를 보고 무작정 찾아가며 이 책은 시작한다. 이곳에서 야생동물 밀매 희생양인 동물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난다. 스포는 할 수 없으니 대략 화재, 떠남, 사라짐, 죽음들이 겹친 이야기들이다.

인간과 함께 이 위험한 도시에 적응한 개체는 사람의 손에 쉽게 닿지 않는 거리의 새들, 그 외엔 고양이가 있다. 이들은 많은 캣맘 집사들을 거느린 존재들이다. 저자의 와이라에 대한 사랑은 어느 정도는 이 고양이과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퓨마의 이름은 여든 가지가 넘게 기록된 것으로 전해진다. 플로리다 팬서, 쿠거, 마운틴 라이언, 캐터마운트, 페인터, 마운틴 스크리머, 레드 타이거, 쿠과콰라나, 고스트 캣.....”(p.15) 퓨마가 불리는 이름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들을 ‘자세히 보았던’ 인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자세히 본다는건 사랑한다는 뜻. 로라는 ‘퓨마’라고 부른다.
포유류여서 모기에게 같은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다른 존재와 교감한다는 일이 어떤 느낌일까? 가끔 수조 속 물고기의 감지 않는 눈이나,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는,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관찰하는 비둘기의 눈을 보면 생기는 질문이다. 이 대답은 로라의 노력덕분에 나는 꽁으로 알게됐다. 로라도 와이라와 유대감을 맺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저자의 능력이 무얼까 생각해보면, 책 초반의 코코(원숭이)였을 것 같다. 아이를 길러본 부모들이 체험할 수 있는 업어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로라는 코코를 어깨에 메고 갔긴 하지만. 파르케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나, 여기를 떠날 생각만 하던 로라에게 남자멤버가 코코를 숙소로 데려다주라는 미션을 준다. 스물 네살의 로라는 코코(원숭이)를 어깨에 감고 가면서 인간과는 다른 모양의 심장이지만 규칙적으로 뛰고, 나와 같이 뜨거운 피가 흐르는,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정온동물의 생명체를 느꼈을 것이다. 이 묘사가 아름답진 않다. 코코는 생각보다 그녀에게 무거웠고 "놀랍도록 뾰족한 코코의 턱이 내(로라) 정수리를 육중하게 짓누른다"(p.67)라고 표현한다. ㅋㅋ 그녀가 이 곳을 떠났을 때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힘 역시 코코의 죽음이었다.(사실 처음 파르케에 온 것도 코코사진 홍보지 ㅜ 였다) 그렇게 그녀는 이 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며 일원이 되어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와이라와의 관계를 쌓는 부분의 묘사에서 물집 표현이 기가막혔다. 이 곳에 도착했을 때 로라의 발에는 물집이 생기고 있었는데 와이라를 돌보는 닷새동안 "물집이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면서 피와 고름이 낭자해진"(p.82)다. 이 물집은 단단한 피부가 되었듯이 로라 역시 목차처럼 껍질 속의 나- 깨어나는 나 – 새로운 나로의 진화를 거듭한다. 그런 그녀를 응원한다.

책에는 후각에 예민한 저자의 표현이 많다. 자유 여행 중 “맥주 냄새와 희미한 토 냄새가 풍기는 공용 숙소”(p.22)같은 문장으로 ‘이 양반 후각 예민하네’를 느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파르케가 있는 정글의 온갖 냄새를 열심히 풍겨주신다. (이런 부분은 저자가 와이라와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ㅋ )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이 정글이 내 코 바로 앞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독자인 나로서는 생생한 표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지만, 이렇게 후각에 고통받으면서도(!) 여기서 만난 이 아름다운 존재들과 함께하는 삶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슬이와 동물원에 간 날이 떠오른다. 그림책이나 한글카드로만 보던 동물을 내 아이에게 직접 보여주려니 내가 더 신났다. 어린이대공원에 도착해 생생한 동물들을 처음 마주한 슬이는 그닥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풍선, 아이스크림 콘, 그리고 그림으로 그려진 동물표지판을 더 좋아했다. 엉덩이만을 보여주는 추레한 원숭이들, 우리 쪽으로 고개를 파묻고 홀로 서 있는 코끼리,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누워있는 늙은 사자, 100미터 이상 달려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탄력없는 다리를 가진 망아지... 나는 차라리 아이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 다행이야, 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학교때 친구들과 기린을 보러 대공원을 갔을 때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문화시민인가 생각해보면... 바바파파와 그림책의 영향이었던 것도 같다. 동물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몇 권 읽고 보니 개네가, 세상 그렇게 불행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동물들과의 교감뿐 아니라 이 정글을 향해 끊임없이 오고가는 벌목 트럭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이 지역의 기후위기 문제들, 돈이 되는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숲을 ‘면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몰릴 대로 내몰린, 사피엔스의 언어를 할 줄 모르는 식물과 동물들을 보고 있자면 사피엔스의 마지막이 상상되지 않을 수 없다. 돈 있는 사람들은 화성에 우주선 띄우고 잘 살고 있으려나. 그래서 이렇게 가속도가 붙은 환경문제를 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던 중 우리 동네 아파트에서 검은 고양이를 만났다. (책 표지 다음 사진) 온몸이 새카만 이 아이를 와이라라고 이름 붙여주기로 했다. 그러고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보자고 마음 먹어진다. 너도, 내 새끼도 살 수 있도록. 배송말고 내 발로 걷는 것부터. 이런 마음이 생긴다는 것, 이것이 고양이과들이 인간에게 부리는 마법같은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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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델핀 페레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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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림책을 쓰고 그린 ‘델핀 페레’의 아들로 보이는 ‘세티’가 주인공인 듯 싶다.
준비되었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들(세티)은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다. 엄마와 아들은 할아버지 ‘장’의 집이 있는 시골을 향해 차를 타고 달린다. 커다란 능선이 있는 산들을 지나 저녁이되었다. 차에서 잠든 아들을 안고 이 집으로 들어선다. 책의 초반 장면들이다.
세티의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시골집은 엄마가 자란 집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티의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신듯하고 할머니는 엄마의 남동생 삼촌이 모시는 듯하다. 1년에 한 번 여름을 보내러 이 집으로 오는 대화들이 오고간다. ‘~한 듯 하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그런건가’하고 독자가 유추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설명은 하지 않고 그저 이 곳의 소소한 일들을 보여주고 아들과 엄마는 대화할 뿐이다. 이런 부분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들이 보내는 이 곳의 여름이 고요하면서도 선뜻 받아들여지는 이유일 것이다.

*난 지금은 완전 서울 촌년이지만, 어렸을 때 딱 한 번, 엄마와 단 둘이 기차를 타고 산기슭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댁에 간 여름을 기억한다. 언니들은 다 학교를 다니느라 바빴다. 그래서 언니들과 나이차가 있는 나만 엄마가 데리고 갔던 것 같다. 기차 안에서는 내내 졸고 역에 내려 또 택시를 한참 탔다. 입에 단내가 폴폴 풍길 때쯤 도착한 외할머니 댁 대청마루를 기억한다. 마당 앞의 펌프를 눌러대던 이모의 모습이 떠오르는 걸로 보아 수돗물은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전기는 들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밤이 되었을 때 마당은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화장실이 푸세식이어서도 무서웠지만 밤이 되면 보이질 않아 더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작두 앞에 혼자 서 있던 누렁이 소, 거기서 하룻밤 자고 일어났을 때 외할아버지가 끓이고 계시던 여물냄새, 외할아버지가 농사지으신다는 녹색빛이 가득 차 있던 논. 아, 더 어렸을 때 언니들도 같이 그 곳에서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니들과 모기장안에 쪼로록 누워있다. 봉숭아물을 들인 손 위에 검은 봉다리가 실로 묶여 있다. 언니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손을 꼬물락거릴 때마다 간헐적으로 봉다리 백색소음이 들린다.

*이상하게 거기에 있었던 기억은 나는데 어떻게 돌아왔는지의 기억은 전혀 없다. 돌아오면서 이 아이처럼 엄마에게 ‘아름다운 여름이었어’라고 말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세티만큼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걸까? 나 말고 언니들이 셋이 더 있어서 이 모자가 보여주는 일상을 즐길 겨를이 없었을까? 하지만 난 이 엄마처럼, 아이가 하나다. 그런데 올 여름, 너무 더워 에어컨 밑에 숨어있느라 아이와 여름을 직면할 시간을 놓쳐버렸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었다. 그만큼 델핀 페레와 세티가 외할아버지댁에서 보낸 여름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을 보낸 그들도 지금쯤은 이 책을 보며 그 시간을 그리워할 것이다.

*세티가 시골로 향할 때 머리에 눌러쓰던 모자는 일종의 ‘보호’가 필요한 아이라는 표식이었다. 여름을 거기서 보내는 동안, 세티는 할아버지네서 엄마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엿본다. (근데 말이 그렇지, 다락방에 있는 물건들을 보고, 서랍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엄마가 어렸을 때 그랬듯, 세티 역시 여러 곤충을 들여다보고 근처의 열매도 따먹는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 신발끈을 묶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자신보다 어린 사촌, 조아킴에게 이 모자를 물려준다. 세티는 엄마가 컸던 곳에서의 여름을 똑같이 보내고 그 역시 성장한다. 여름은 햇빛으로 광합성 삼는 식물들이 커지는 계절이지만 우리 인간(!) 역시 그렇다. 여름이라는 아름다운 시간을 너무도 예쁘게 그린 책이다. (번역을 백수린 작가님이 하셔서 더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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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이름의 숲
아밀 지음 / 허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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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이 폐허가 되고 가상현실이 중심인 근미래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런 때에도 아이돌은 여전히 존재하고 사랑받는다. 2023년 현재나 이채가 인기인 근미래나 아이돌 연습생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1) 말라야한다 2) 예뻐야한다 3) 노래를 잘 해야 한다 4) 춤을 잘 추어야 한다
저 조건이 완벽하여 데뷰하더라도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다 소용없다. 하지만 팬심이 두터운 아이돌들의 인생은 180도 화려하게 바뀐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하층민계급으로 변해버린 이 책 속, 아이돌 이채도 그랬다. 서울에서 어렵게 살았지만 데뷰하고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돌은 대체식이 아닌 진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그 비싼 물을 실컷 쓸 수 있었다. 2023년 현재 아이돌처럼 다음의 미션 - 아이돌은, 팬들이 정해놓은 이상의 틀에 완벽하게 박제되어야 한다- 1) 몸매나 얼굴은 절대 변함없을 것. 2) 과거를 포함한 인성은 도덕 교과서급일 것. 3) 이성관계 금지. 팬들의 사랑만 받으면 아이돌 인생은 화려한 천국같지만 그 길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주 좁은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온, 진하, 정숲 등등의 팬앞에서는 방긋 웃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잔뜩 먹은 것을 토해내는 이채를 보면 그곳이 천국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 미래에도 아이돌 유지를 힘들게 써놓은 작가님이 살짝 얄밉..)

* 가상현실속 아이돌의 삶을 이채가 보여준다. 그리고 가상현실로 아이돌을 보지는 못하지만 태블릿으로 뮤직비디오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이채의 팬이 된 정숲이라는 가저증(가상현실 저항증) 소녀가 있다. 이 둘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걸어놓으면 예쁜 액자 속 그림처럼 아이돌의 외모에 집착하지말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진심을 더 받아주기를 바라는 작가 에밀의 말이 들린다!

* 이 팬픽은 track 4장 - Track1. 사계절의 그대, 2. 만나자, 지금, 3. 너라는 이름의 빛, 4. 너라는 이름의 숲 -으로 구성되어 있다. track 1, 2, 3은 아이돌 이채의 노래 제목이다. 참 반짝반짝 영원할 것 같고 아름다운 단어들이다... 오래된 신들의 이야기 <그리스 로마신화>도 읽다보면 그 어떤 인간들보다도 질투, 시기, 바람 등 장난아닌데 우리 k-아이돌들은 어쩌다 이렇게 비주얼뿐 아니라 멘탈도 도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해야 살아남게 된 것일까? 반문해보게 되는 그런 책이기도 했다. 난 사람많은데만 가도 기가 빨리던데 이들은 얼마나 피곤할까? (연예인 걱정은 하는게 아니라던데 하게되는) 이 부분에 대한 팬픽을 보는 느낌이 드는 그런 책, <너라는 이름의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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