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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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는 벨기에 조형 예술가 자크 리젠의 부고로 시작한다. 이 예술가는 “실패의 예술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p.5)했던 사람으로 실패 전문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이 예술가의 미학이 ‘중요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것이었다면, 자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버리지 않는가.”(p.8)라며 책 제목의 평범과 찬란이 동등한 의미로 쓰이는, 이 책을 써냈다. 왜 작가는 평범한 것이 찬란하다고 했을까? 보통의 작가라면 평범함이라는 소재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을텐데. 이 궁금증에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는 저자인 마리나가 향하는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따라가며 완독했다. 총 12장의 목차를 따라 읽다보니 평범함의 다양한 프리즘이 보인다. 이걸 작가는 찬란하다고 표현했구나, 싶다.

“평범함을 뜻하는 프랑스어 ‘메디오크리테’는 ‘메디어스medius’,(중간)와 ‘오크리스ocris,(산)’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는 글자 그대로 가파른 산 중턱 외딴 구석에 갇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런 적막한 산골에 틀어박혀 있다고 상상해보자.(p.43)” 여기서 알수 있듯이 평범함은 산 중턱의 외딴 구석이라는 어원에서 온 것이다. 사람들은 산의 정상만을 정복하려 한다. 중턱에서 멈추고 되돌아오는 것은 실패자의 행동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동안 산 중간에서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책 표지에도 세로에 “인류는 평범한 중간의 이들 덕분에 살아남았다!”라고 쓰여있다. 영웅이 아닌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은 이들의 평범함을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5장이 좋았다. 5장의 제목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다 여기에서는 능력주의라는 폭군에 휘둘린 저자의 모습이 서술되어 있다.
“나는 위대한 예술, 즉 극도로 난해한 철학에 헌신하고 싶었다. 이 특별한 영역에 들어가면 불안과 우울이라는 악마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돌이켜보면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위대한 예술, 즉 추상적 관념이 인간을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던 나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었다. 성취보다 사유를 중요하는 삶을 선택한 것을 정당화하고 싶었다. 스스로 저급 예술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 돈키호테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의 위선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이로움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구별되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상업적이거나 싸구려 쾌락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미학을 추구했다. (...) 순수한 영혼에 대한 열망과 모든 현실적 감정을 거부한 나의 태도는 일상의 만족으로 가는 길을 막는 걸림돌처럼 나를 평범하여 찬란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pp.162~163)”
나 역시 이 부분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주었던 유난히 짠 별점이 떠올랐다. 지금 역시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무언가, 더 위의 것, 더 찾기 힘든 것을 찾아 헤매며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것들을 평가절하한 나의 시선의 위치가 보였다. 소설에는 수많은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들이, 찌질이들이, 실패자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유의미한점일 것이다. 나는 이 평범한 주인공들의 서사가 위기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고군분투기를 읽으며 마치 남 이야기 구경하듯, 강건너 불보듯 본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이 평범한 주인공들이 내포한 메시지를 보지 못한 눈먼 독자에 불과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은 연필을 들고 읽을 것을 추천한다. 평범하여 소소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문단이 끝나고 다음의 새로운 단락마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짚어주는 저자의 ‘소듕’한 문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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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집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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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부를 의미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있고 아이들에게는 학군지가 있고, 노인들에게는 근처에 병원이 있는, 이 좁은 도시에서 둥지로 삼기에는 닭장같은 아파트 구조가 최선이다. 아파트는 구축이냐, 신축이냐, 어느 건설사가 지었느냐, 역세권인가, 숲세권인가, 이왕이면 강뷰가 있는 곳인가,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로얄층인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전청조의 사기가 먹혔던 이유는 그가 시그니엘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그니엘을 알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99.999999...%가 입주하고 싶어하는 그 아파트, 시그니엘이니까. 명주시의 2층 단독주택에서 깨볶던 은주는 몰랐지만, 어미새가 된 은주는 지안이의 둥지로 마땅한 곳을 찾아야만 했고 그것이 부동산 스릴러극의 시작이 된다.

<새들의 집>에는 새의 이름을 딴 아파트들이 나온다.
은주가 이번에 이사하는 아파트의 이름은 공작성운이다. 표지에 그려진 공작이 바로 이 그림일 것이다. 공작의 깃털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은주의 모습을 보고 이 책을 읽으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은주의 친구, 혜경이 가진 오피스텔의 이름은 푸른숲버드힐시티이고, 이들의 대모와도 같은 존재, 민정언니의 주소는 덕원피닉스메트로아트파크이다. 심지어 이 언니는 결혼도 안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홀로 유아독존 불사조인 피닉스를 담은 아파트에서 산다. 이 소설 시작 전, 주어진 지도위의 아파트 이름들은 죄다 새들 이름이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는 새들을 닮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관리사무소 처마 밑 할머니들은 참새들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끝 부분에 동대표 아저씨가 기다란 벤치형 나무의자를 놓아주시는데 이것도 재미있다. 참새와 나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악역을 맡고 있는 삐죽사장의 부동산 이름도 펠리컨이다. 커다란 비둘기를 꿀꺽 삼키는 펠리컨은 유툽 동영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새에서 비롯된 표현들도 많아 제목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디테일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우편함마다 흰 비둘기 같은 봉투들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p.37)”
“사람들은 마치 불길한 소식을 찾아 헤매는 까마귀처럼 몰려들어 주위를 둘러 싸고 무슨 말들인가를 수군대고 있었다.”(p.67)
“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더니 그 말이 딱이구먼.”(p.162)
“누굴 닭대가리로 아나······.”(p.243)

이토록 많은 새들의 표현을 담은 작가. 그가 생각하는 새와 아파트는 어떤 관계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참새할머니들이 알려주신다.

“여기가 원래 새 무덤이었잖아.”
“새 무덤?”
“그래. 7동에 민아 할머니 알지, 이번 봄에 요양원 들어간. 그 사람이 여기 토박이였잖아.”(...)
“글쎄들어보니까 여기가 늪이었다는구먼그래. 보통 늪이 아니라 연고도 없는 사람들 시체 걷어다가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곳이었대잖아. 그래서 새들이 그거 뜯어 먹으려고 달려들었다가 늪이 어찌나 깊은지 내려앉는 족족 가라앉아버렸대.”(pp.242~243)

이 부분을 읽으면 이 책의 전체적인 스릴러의 내용이 한번에 이해된다. 뜯어먹겠다고 내려앉는 순간, 나락을 가는 곳. 이걸 아파트화한 이름이 “공작성운”이었군.

이 새들이라는 상징외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여름꽃 비비추가 주는 의미가 있었다. 처음에 푸릇푸릇한 새싹처럼 돋아나기 시작해서 기다란 꽃대를 새우고 거기에 보라색 꽃들이 세로로 피어난다. 난 이 꽃이 아파트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확실히 작가님들은 남다르다. 이제 앞으로 나는 우리 아파트 한쪽에서 피어나는 비비추를 보면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최근에 읽은 한국형 스릴러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안이가 하는 말들이 제일 무서웠다. “저 아저씨도 새가 되려고 해?” 지안이가 코난도 아니고 이 어린 애 주변에서는 사람 새를 몇 번을 보여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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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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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에서 저자 유발 하라리는 세 번의 혁명을 이야기한다. 이는 인지, 농업, 과학혁명이다. <유전자 지배 사회>는 이 중 세 번째 혁명인 과학혁명에 대해 더 자세히 써놓은 책으로 읽혔다. 특히 진화론이라는 마크를 새긴 과학이라는 세분화된 시각으로 말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사회를 유전자로 건강검진 받은 느낌이기도 했다(!) 저자가 유전학자이면서 한국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의 ‘들어가며’에서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복원하여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의 비교분석을 해낸 스반테 페보박사가 코로나19백신 개발을 제치고 받았다는 점을 가장 처음에 언급한다. 이후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과 1976년에 쓰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바로 이 관점에서 지금까지 “5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것이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과 파급력은 그 사상적인 심오함에 크게 못 미치는 것 같다. 즉, 마치 ‘보이지 않는 지휘자’와 같이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의 여러 활동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영역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탐구가 별로 없었다”(p.11)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 세 가지 원인을 생각한다. 첫 번째는 “유전자의 조종이 너무나 교묘해서 인간의 인지능력에 감지되지 않는다”(p.12)는 점, 두 번째는 “우리 안에 있는 이타성의 집착”(p.14), 세 번째는 “<이기적 유전자>의 사상이 인문학적으로 발전되지 못한데는 그것이 주로 유신론과의 싸움에 집중되어 왔다는 점”(p.17)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사실 세 번째 문제를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점이 느껴진다. 나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뉴스에 몇몇 목회자분들이 자주 목격되는 걸 보며 느껴지는 바가 있는데 과학자들, 특히 진화론전공 과학자라면 오죽할까 싶었다.

이 책의 목차 키워드는 6개이다. ‘사랑’, ‘혐오’, ‘경제’, ‘정치’, ‘의학’, ‘종교’(라고 쓰여있지만 기독교), 이 여섯 개다. 만약 이 단어들에 실물이 있다면 저자가 그 실물의 바닥에 붙어 길게 누워있는 유전자식 그림자를 보고 쓴 책같았다. 어둡고 잘 포착되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실물의 유전자식 이면을 말이다. 사랑이라는 기만, 혐오라는 두려움, 감소하지 않는 한계효용을 무시한 댓가로 붕괴되어 가는 자본주의 세계, 보수적인 세로토닌과 진보의 도파민, 질병과 노화라는 생물학적 비극은 자연의 문제라는 것, 종교는 보수적인 성향의 인간 본능의 극단적 발현이라는 것, 따라서 창조란 자연세계의 발생이 아닌 인간 세상을 만들어가는 진보적 창조라는 것 - 이 6가지 키워드에 대해 진화론으로 투사한, 사회의 그림자같았다. 저자는 기독교인인 나에게 신이 아닌 인간의 유전자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를 직관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난 직통으로 맞았다. 그것도 뼈맞았다. 근데 더 맞고 싶다. 그게 과학의 매력이고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1.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이 한국인이 쓴 책이라 너무 좋았다...몇년 전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때 느낀 이해도와는 차이가 다르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사람들은 미리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2. 글은 논문식으로 쓰여져있다. 마지막에 요약 한페이지까지. 갓벽하다. 뭔가 “글은 이렇게 써라”를 배운 책이기도 하다.
3. 한편으로는 과학자가 전공을 가지고 사회에 대해 이해(여기에 한국사회에 대한 분노를 결합시키면)하면 이런 시너지 폭발 글이 나오는 구나를 느꼈다.
4. 기독교인이 더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반성해야 한다. 나는 예배당에서도 잘 안나오는 그 이름 ‘주여’를 여기서 가끔 읊조린 건 안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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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키우기 1 - 봉봉, 알에서 깨어나다!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기무라 이코 그림, 황세정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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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게의 경품행사에서 특등 상품인 ‘수호신의 알’을 받게 된 승우. 원래 승우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수호신에게 그 소원을 빌기 위해 데려온다. 곧 이 무지개 빛깔을 가진 알에서 ‘봉봉’ 수호신이 태어난다. 하지만 봉봉의 수발을 들고, 맥이고, 씻기는 상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하지만 수호신이라는 타이틀 답게, 아이돌 신야를 만나고 싶어하는 엄마의 소원과, 돈이 생겼으면.. 하는 승우의 소원, 그리고 시험장까지 시간 내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과정에서 수호신, 봉봉 역시 한 단계 성장한다.

*처음에 봉봉을 데려왔을 때, 가장 좋아하지 않았던 아빠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기대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면 노력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음을 짐작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자기도 모르게 신에게 기대고 싶어지잖아 그렇지? 하지만 아빠는 그게 싫단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수호신의 도움만 바라다니 부끄럽잖니.”(p.93)
봉봉 역시 이런 아빠의 의중을 눈치채고 가장 맘에 들어한다!(역시 신이군)

*“후후, 행복을 나누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나누는 거지.”(...)
차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짜증 내던 사람들, 조금이라도 먼저 앞으로 가려고 무리하게 끼어들다 오히려 더 정체를 일으키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봉봉의 힘이 깃들고 있었다.(p.106)
결국 수호신의 마음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의다. ‘나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아이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읽고 나눌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봉봉이라는 귀여운 그림은 아이들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봐도 숨막히게 귀엽..

p.s 히로시마 레이코의 새로운 이야기인 수호신을 읽으며 내내 다마고치와 앵그리버드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더 재밌게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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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매트리얼 - 지식 너머의 진실, 최신판
제인 로버츠 지음, 매건 김 옮김 / 터닝페이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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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너머의 진실’, ‘이 책은 삶과 죽음, 그리고 모든 근원적 궁금증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 ‘지식과 영감의 원천인 ‘세스’가 전하는 놀라운 통찰력!, 삶, 죽음, 시간, 꿈, 우주, 다차원 ‘인류의 비밀’을 밝힌 최초의 책‘, ’아마존 장기 베스트셀러‘ 이런 수식어구들이 나를 감쌌다. 세상을 적지 않게 살아왔지만 아직도 알아가며 배우는 중인, 한 사피엔스의 지적호기심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는 단어들이다. 인간은 왜 죽는가, 신이란 누구인가, 미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과학이 아닌, 세스가 말하는 답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나는 무속신앙에 익숙한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영매 책은 처음 접하는 거라 새로웠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잡귀를 쫓기 위한 삼지창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제물이나 재물을 지불할 필요도 없었다. 요란하게 칼춤을 추거나 소금 또는 돼지피를 뿌리지도 않는다. 제인 로버츠에게 접신해 온 ’세스‘는 세상의 근원적 진실에 대해 서구인답게, 이성적으로 이야기한다. “이 모든게 제인의 잠재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요?”라고 로버츠의 남편인 롭이 질문한다. 이에 대해 세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잠재의식은 통로와 같습니다. 어떤 문으로 들어서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p.37) 이 대답이 내가 이 책을 더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었음을 고백한다. 사실 초반에 이 책을 잡고 엄청 고민했다. 덮을 위기였다.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파묘를 본 관객들이 천백만이 넘어간 이 시점에서, 나만의 결론을 정했다. 어떻게 생겨난 세스인지는 믿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세스라는 존재가 한 말들은 참 매력적이다, 라고.

*프롤로그 중에서 ‘자신이 운명의 주인’임을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세스와의 교신은 나의 현실관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정체성을 강화해주었다. 인간은 시간과 질병, 부패의 노예이며 통제 불가능한 파괴 본능에 붙들려 산다는 시각은 더 이상 나를 구속할 수 없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스스로가 운명의 주인임을 느끼고 있다.”(p.19)

*세스의 조언에 따라 롭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초상화를 그리다가 나눈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욘포세의 ‘멜랑콜리아’를 읽고 있던 중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초상화를 그릴 땐 그 사람을 뭇 생명의 중심으로 상상하십시오. 그러면 그림이 완성됐을 때, 자동적으로 그 사람이 일부분으로 속해있는 전체 우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무엇도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바로 옛 대가들이 잘 알고 있던 비밀이죠.
그들은 아주 작은 부분을 통해 그것들이 속해있는 전체, 즉 우주 에너지를 전하는 영적 우주의 실상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겐 엄청난 재능이 잠재돼 있습니다. 이를 최대한 사용하십시오.
오일은 땅을 암시합니다. 어떤 대상을 그리든 그것으로 영속성의 물리적 양상 혹은 인체의 육체적 지속성을 나타내십시오. 또한 투명 유화물감으로는 언제나 끊임없이 새롭게 솟아나는 무형의 에너지를 표현하십시오. 당신이 그린 내 초상화는 내 말을 듣고 있는 듯한 무형의 청중들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흡인력을 갖고 있습니다.(...)”(pp.146~147) 풍경화도 아니고 초상화를 보며 그 사람이 일부분으로 속해있는 우주가 나타날 것 이라는 세스의 말이나, 아주 작은 부분, 즉 디테일을 통해 전해지는 우주 에너지를 나 역시 느낀 적이 있다.

세스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 무조건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세스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아니 그녀 일지도) 보는 관점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지평이 생각보다 더 넓어질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해 제인 로버츠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는 열린 마음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있긴 하지만 정신적 유연성은 기껏해야 나 자신의 선입관에 적합한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정도로만 확장됐을 뿐이다.”(p.18) 하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성공아닐까?

p.s 이 책을 읽으며 ChatGPT에게서 대답을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대화하는 인공지능이나 접신한 세스나 나에게는 같은 ‘존재’로 다가옴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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