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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평점 :
라떼도 학교에 그렇게나 괴담이 많았다. 그래서 1998년도에는 <여고괴담>이 크게 히트했더랬다. 난 아직도 기억한다. 저쪽 어두운 학교 복도에서 최강희씨가 짠 짠 짠 하고 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를. 외국의 귀신들, 아니 고스트들인 <처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까지는 눈 뜨고 보겠는데! 진짜 우리나라 귀신들은 더 너무 무섭다. 게다가 알고보면 마냥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 뭐 이리 눈물없이는 못들을, 짠한 ‘한’이 많았는지 원.
학교마다 서 있던 유관순 동상에 밤이 되면 피눈물을 흘린다는 둥, 밤에 수돗가 물을 틀면 피가 흐른다는 둥.. 학교 강당에 있는 시계는 항상 4시 44분 44초를 가리킨다는 둥, 몇학년 몇 반 커튼 속에서 학교에서 떨어져 죽은 귀신들이 밑을 내려다보며 눈마주치는 애를 잡아간다는 둥, 학교에는 괴담이 참 많았다. 그러고보면, 조선시대 서당 귀신들이 아니라 학교에 사는 귀신들 이야기가 많았네. 그 당시 우리는(사실 나는 자율학습이 정말 자율인 세대 ㅋ, 우리 언니는) 새벽에 별보고 학교가고 밤에 별보며 집에 올 정도로 학교에 붙어있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언니오빠들은 도시락을 3개씩 싸가며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어우 징그럽다 진짜. 그렇게 붙어있으니 학교 귀신이라고 불릴 만도 했겠다.
근데 요새 학생들은 사교육하느라 바빠서 학교에 오래 있지 않으니 이 책이 학교괴담으로서 적합할까? 의문을 가지고 이 소설을 집어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나의 상상을 벗어났다. 이 책을 덮고 나는..초등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대입을 목적으로 좀비처럼 공부해야 하는 우리 학생들이 귀신이 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교육구조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이 반짝 거리는 나이에 어른들은 "공부,공부!"하니 삐뚤어질만도 하지, 그 스트레스들이 다 왕따한테 가는게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근데 시어머니 구박 받은 며느리가 자신은 절대 며느리 구박안시킨다고 하며 더 시킨다는 이야기가 있듯.. 우리도 그 시절을 그렇게 보내서 그런가, ‘아.. 울엄마는 나한테 공부하라고 안했던 것 같은데’, 으응? 그래서 나는 귀신이 안되고 잘 살고 있나? ㅋ
요새 학생들은 공부할 때 자기가 공부한 시간을 체크하는 앱을 틀거나, 백색소음 틀거나, 공부하는 책상 찍히도록 스마트폰을 놓는 유투브를 틀어놓고 한다고 한다. 이.책은 그런 전교1등의 이야기인 <스터디 위드 미>에서 발전시켜 책 제목을 <스터디 위드 엑스>라고 지었다. 정말 잘 지었다. 공부를 하는 데 미지수 엑스와 함께. 유투브나 앱으로, 비대면으로, 서로 알지 못해도 찍고 있는 애나, 거기 들어가 있는 애나 어떻게든 공부해보려고 애쓰고 있는 요새의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12년. 한 달전인가 시사인 잡지에서 의과대학 합격률 현황을 보니 고3은 17퍼센트인가 그랬고 나머진 다 재수, 삼수, N수 였으니 12년+알파. 귀신이 될 정도로 공부를 해야 출세할 수 있는 우리 사회. 이 사회가 귀신 메이커 장소였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에게 인상적인 단편 중 하나는 <영고1830>이었다.
“오래 전이나 가능했던 잔인한 일이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소름 돋는 건 그런 게 아니겠어?”(p.89)
에피그라프 문장도 그랬지만, 성적순으로 반과 번호를 정하는, 그러니까 1학년 1반 1번은 1등, 1학년 8반 30번은 꼴등인 이 이야기! 내가 고등학교때 1학년 8반이었고!!! 홍씨라서 뒷번호였기에 비슷한 상황이라? ㅋ 내가 희준이면 영고에 귀신으로 나타난다 백퍼. 스포는 할 수 없지만 진짜 예상치 못한 다른 전개다. 엔딩을 몇 번을 다시 읽었나 모르겠다 ‘이게 이게 아닌데 진짜?’ 이러면서. 호러같은 호러 아닌 이 엔딩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게 젤 쇼킹했다 나는.
어쨌든 이제 기말고사도 끝나고 올해 더위 온도는 또 최고를 경신하는 이 여름. 공부하느라 귀신이 되어가는, 아니 이미 좀비 학생들이 이 책 읽으며 리프레쉬 했으면 좋겠다. 우리도 학생 때 그렇게 보내서가 아니라, 너희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시스템인지를 알기에, 한 살이라도 어린 희망인 너희가 노력하면 우리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바라는 가느다란 희망 한 줄을 공부하라는 말로 표현하는 거라고 이해해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