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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1장 윌’로 시작해서 ‘2장 피비’, ‘3장 존 릴’,이 세 명의 순서대로 이어져, 마지막 40장은 첫 장을 시작했던 윌의 이야기로 끝맺는다. 따라서 이 40장의 다이어리는 윌이 쓴 것으로 보인다. 신앙을 잃었던 윌, 피아노와 어머니를 잃은 피비, 그리고 북한 수용소 경험을 통해 신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된 존 릴,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 시한폭탄으로 제조된다.
‘incendiary’라는 단어는 ‘방화, 선동’ 이란 뜻으로 이 책의 원제 <The incendiaries> 라고 하면 ‘방화범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원제 단어 끝의 ‘diaries’라는 의미가 이 책의 40장 ‘일기’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이 챕터 40장을 읽는 동안 성경의 사순절이 갖는 상징처럼 고통 속에서 인물들의 부활(여기서는 갱생이란 단어가 더 적합하겠다)을 바라며 읽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폭발이다. 아니 의도를 가진 폭발, 방화이다. 기독교에서 세례는 물로 행해진다. 윌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을 때 어머니의 세례식을 떠올리는 장면을 보면 물이 이 작품에서 신앙의 순수함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존 릴은 물 위에 떠 있는 기름과 같이 존재한다. 물과 붙어 있지만 섞이지 않으며 물을 밑에 두고 그 위에 분리되어 존재한다. 여기에 피비라는 도화선이 합쳐지자 완벽한 방화를 일으키고, 그래서 이 소설은 이 것을 목격한 윌의 간증처럼 읽힌다. 이렇게 서사면에서도 불을 지르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불을 질러버리는, 강렬한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괴로웠다. 가독성은 좋지만 한 번에 읽어내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개독교로 놀림받는 현 상황에서 이 작품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내가 화살에 잔뜩 맞은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교회에서 주지 못하는 위로를 존 릴이 피비에게 주는 것을 보고 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작가가 열 일곱에 신앙을 잃었다는 홍보 문구는 피비를 작가로 보이게도 했다. 하지만 나와 비슷했던 신앙경험은 대부분 윌에게 있었다. 읽고 나서는 피비보다 윌의 이야기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까지는 기독교인으로서 읽은 감상문이다. 다시 객관적인 독자로 돌아가 글을 마무리하자면, 이 소설에서 컬트 종교(이단)의 테마도 크지만, 근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피비의 부모들과 현대에 태어난 피비와 줄리언 노의 세대의 고민들도 크게 다가왔다. 단순히 이단에 빠진 자에 대한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빠지게 된 경위부터가 너무나도 한국적이었다.
맺으며..
인센디어리스라는 제목이 주는 상징, 세 명이 끌고 나가는 다성악 구성, 인물 내면의 이야기들이 주는 몰입감까지 이 소설은 굉장히 잘 쓰인 작품이다. 이 전에 접한 <파친코> 이민진 한국계 미국인작가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권오경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