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문방구 1 : 뚝딱! 이야기 한판 - 제2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
정은정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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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그려진 도깨비 생김새는 꼭 알라딘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 지니 같기도 하고, 달마대사 같기도 하다. 사물에서 탄생한 장난꾸러기 도깨비는 현대에 와서 문방구 주인이 되었다. 이처럼 전래동화라고 불리우던 옛이야기의 소재들이 오늘날의 버전으로 이 책에 그려져 있다. 마치 책 속에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이 아니라, 어린이 독자의 삶 속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작가의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다.

*앞으로도 시리즈물로 계속 나올 것만 같은, 나와야만 하는 이 책의 프롤로그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날 깊은 산속에 이야기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도깨비가 살았어. 마을에 불쑥 나타나서는 사람들에게 대뜸 이야기 내기를 걸었지.
“어때? 나랑 재밌는 이야기 한판!”
사람들은 깜짝 놀라 벌벌 떨며 말했어.
“무.......무슨 이야기요?”
“아무거나! 이야기라면 다 돼!”
그런데 그게 또 희한해. 도깨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야기가 절로 술술 나오지 뭐야?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말이야.

여기서 도깨비가 원하는 이야기는 꼭 재미있어야만 하는 이야기라던가, 할머니에게 전해들어야 알 수 있는 그런 유명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 속 인물들만의 속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원한다. 따지고 보면 도깨비는 굉장한 경청자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어른들도 함께 읽고 이 도깨비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슬이 친구 중에 가끔 눈을 마주쳐주면 더 열심히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이렇게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나서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일단 부럽다. (슬이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두 번째 드는 생각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누군가 앞에서 이야기할 때 에너지가 증가하는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I인 나는 도가 지나치면 기가 빨..)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좋아하는 도깨비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줌으로 아이들에게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를 보태주는 존재다. 우리 어른들도 본받아야 한다. 명령형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아이앞에서 ‘라떼는~’ 은 좀 적게하고(안할 순 없을테니)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우리아이들이 힘을 받고 그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또 다른 도깨비가 되어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되는 선순환의 사회를 작가가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이 ‘아무거나 문방구’를 들어가게 되는 아이들은 선택받은 아이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운이 좋아야 아무거나 문방구 근처에 살고 있는 운이 있어야 할테니 말이다. 이즈음 생각하며 걷다보니 우리 동네 문방구가 보인다. 30년 운영하셨다는데 이제는 문을 닫는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사실 나는 이사를 왔기에 내가 어렸을 때 다녔던 곳은 아니지만, 몇 년 사이에 부쩍 나이드신 주인 할아버지가 어디 편찮으신가 생각하게 된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줄었고, 인터넷이나 다이소에서 학용품을 사는 분위기다. 무인 문방구도 있고, 우리 때는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했던 도화지나, 리코더, 단소 이런 물품은 이제 학교에서 제공해준다. 어쩌면 문방구도 이야기 책 속에나 존재하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 무인편의점이나 하나 더 생길지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
전천당에 빠져 있는 아이라면 120% 좋아할 우리의 이야기이다.
새학기를 맞아 친구들과 우당탕탕 우정을 쌓고 있는 아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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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사상과 종교공부 -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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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사상과 종교공부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

나이가 불혹을 넘어 지천명으로 가는 중간 지점, 주변 분들은 논어를 읽기도 하고 주역을 공부하기도 한다. 내 윗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천명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다. 그런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20세기의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가졌던 사상에 대해. 비록 동학농민운동의 실패로 역사에는 한줄 남짓 외에는 기록되진 못했지만 그들이 가졌던 생각에 자랑스럽게 K를 붙여도 된다고 말하는 이 책을 말이다.
1장 정도를 읽으면서는 안중근도 천주교 집안이었다고 하고(그러니까 서학일 것이다) 유관순 언니(열여섯에 죽었지만 언니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 분!)의 집안은 기독교집안(역시 서학)이었고 윤동주 역시 그러했다는 부끄러운 지식을 가진 나로서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동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 책에는 문학에 있어서도 동인지 창조, 백조 보다 개벽이라는 잡지가 훨씬 많은 부수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민중들이 선택한 동학, 그게 대체 무엇이냐 궁금하다면 바로 이 책을 집어들어야 한다.
사실 근처에 휘경이라는 이름을 단 학교가 있어 원불교라는 종교가 낯설진 않았다. 0교시 채플시간에 한국어인 듯 한국어가 아닌 경전을 읊는다는 그 학교의 재단이다. 대체 불교와 뭐가 다르냐고 물으면 전혀 몰랐지만 이제는 대충 안다. 수운과 소태산에 대해 백낙청 저자로부터 들으며 상당히 스케일이 크고 그들이 꿈꿨던 세상의 디테일을 보며 이렇게 욕심 이 많은 사상가였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욕심을 글로 쓰며 이 분들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지만 근대의 그 시대는 얼마나 암울했나를 생각해보면 대단하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절대 피해야 할 대화 주제인 정치, 종교, 육아에 들어가는 터라 내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 경계선을 세워야 다음이 읽히는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백낙청 저자님이 서문에 “종교학 공부는 아니고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을 탐구하며 심화하는 것이 주된 목표”(p.5)였음을 밝히고 있다. 처음에 제목을 보았을 때, ‘개벽’이라는 단어가 옛것처럼 보이면서도 이날 이때껏 살며 경험해보지 못한 명사라 새롭게 다가왔음을 고백한다. 이 책에서는 “여기서 말하는 개벽은 물론 후천개벽인데, (...)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천천개벽’ 같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대변혁을 ‘후천개벽’으로 규정하고 추진한 것은 유독 한반도에서 시작된 현상이요 사건이다.”(p.6)라고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 이 단어를 사용한 수운 최제우 선생이 <용담유사>에서 ‘다시개벽’이라는 표현을 한 차례 쓴 것에 대해 시작된 이 개벽은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 소태산 박중빈등으로 이어진다. 이 개벽사상이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과 4·19, 5·18, 6월 항쟁 그리고 2016~2017년의 촛불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백낙청 저자님을 포함한 대담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사실 서문만 읽어도 저자가 무엇을 담았는지 잘 보인다. 그는 1장에서 ‘K사상의 출발’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한반도가 세계에 내놓을 고유의 사상이 동학에서 더 멀리는 “원효나 최치원에서, 늦춰 잡아도 조선시대에 중국과는 여러모로 구별되는 유학 전통이 성립됐고 유·불·도 회통의 노력도 병행했다는 점에서”(p.8) 동학을 시작으로 잡는 게 부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말한다. 하지만 “동아시아문화권 내에서도 완연히 구별되는 사상적 돌파가 그때 획기적으로 이루어졌고 21세기 지구인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역사가 출범했다는 점에서 예의 부제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p.8), “‘K 사상’의 자랑은 그것이 남다른 실천의 역사와 함께해왔다는 사실이다.”, “수운, 증산, 소태산 등이 각자 뚜렷한 특징과 성향의 사상가들이지만 크게 보아 한반도의 후천개벽사상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고, 그 전통이 소태산에 이르러 한층 세계화된 ‘K사상’에 도달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소태산에 와서 후천개벽이라는 한반도 특유의 흐름과 불교라는 오래전부터 세계종교의 반열에 올라 있던 사상의 융합이 이루어짐으로써 세계사적으로 의미있는 새 길이 열린다는 인식” 등을 설명하고 저자의 결론까지 일찍이 밝힌다.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동학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지만 여기서 파생된 종교인 원불교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 기독교가 반성해야 할 지점 1/4정도로 읽혔다. 분량면으로는 그렇고 기독교를 다룬 4장이 나에게는 개벽과 같은 장이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신학에 대해 무식했고(지금 이 책 한권 읽었다고 유식해진 건 아니겠지만)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점에 반성했다. 개인적으로는 ‘욥기’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대심문관’에 대한 토막토막 문장들이 의미있었다. 이 책을 덮으며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동아시아인으로서 한국인이다. 여성이며 부모님으로부터 모태신앙을 선물받은 기독교인이다. 이 중 나의 사고 근간을 생각해본다. 기본적으로 한국인 여성의 시각으로 생각하지만 나에게 닥친 윤리 문제의 끝에는 기독교가 서 있다. 무식한 기독교인에게 숙제를 안겨주는 책이었다. 아마도 풀어내지 못할 것 같은 숙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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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스페이스 실록 - 너의 뇌에 별을 넣어줄게 파랑새 영어덜트 4
곽재식 지음, 김듀오 그림 / 파랑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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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실록이다. 실록(實錄)이란, 동아시아권에서 편년체 역사 기록 양식 및 이 양식에 따라 쓰여진 기록을 총칭하는 말이다.(나무위키) 우리가 잘 아는 ‘조선왕조실록’이 예다. 이 책은 별을 품은 우주에 대한 실록, 그러니까 제목 그대로, <슈퍼 스페이스 실록>이다. 벌써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서문’이다.
“우주에 대한 기초 지식을 소개해 주는 여러 책들을 읽다보니(...) 아무래도 우주나 별, 나아가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유럽에서 시작되어 유럽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실제로 나는 막연히 과학 기술은 유럽, 미국, 서양의 것이고 외국에서 들어온 것일 뿐이라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그랬다. 근대가 일제 강점기로 인해 억지로 열렸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런데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옛날이라고 해서 사람이 어떻게 기술 없이 살 수가 있겠는가? 발전의 속도가 다를 뿐이지(...) 과학 기술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반대되기는커녕, 한국 문화 속에도 언제나 과학 기술은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라고 말한다. “과학과 우주에 대한 연구가 멀리 있는 남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한국 땅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의 일이라는 가까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는 과학기술‘의’(‘이’의 오타 아닐까?) 우리의 문화이며, 한국인이 원래부터 하던 일이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 깊게 모두 갖게 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하나 더, “바쁜 현대인의 두뇌에 잠시 별이 지나가는 시간을 마련해 드릴 수 있다”까지.

이 책을 여는 이야기는 첨성대다. “첨성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인 선덕여왕 시절에 신라인들이 지은 돌 건물이다. 고대의 한국 건축물 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드문데, 첨성대는 몇 안 되는 예외에 속한다.”(p.18)라고 한다. 나도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처음 본 첨성대는 명성보다는 훨씬 자그마~했던 기억이 있다. 고대의 건축물이니 이 정도 높이밖에 못지었겠거니, 나는 그저 추측하다 말았으나 저자는 “조선 시대 사람들이 첨성대를 어떤 건물이라고 생각했는지”(p.18)를 <동국여지승람>에서 찾는다. “기록에 따르면 첨성대는 안으로 들어간 뒤 위로 올라가서 별을 관찰하는 곳이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첨성대가 천문대 역할을 한 건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첨성대의 정체에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여럿 있다. 일단 첨성대 안에 들어가서 별을 관찰했다는 것부터가 신라 시대 기록이 아니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조선 시대 책에 나오는 내용일 뿐이다.”(p.19) 그러고 보니 “긴 통 같은 모양의 건물 속에 기어서 들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불편해 보인다. (...) 그곳에 올라가서 별을 보면 무슨 특별한 장점이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불분명하다.”(p.19) “그래서 요즘은 첨성대를 두고, 실제로 그 위에 올라가라고 지은 건물이 아니고 그냥 어떤 기념의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저자가 보기에 결국 첨성대는 “기록이 제대로 보관되지 않은 까닭에 어이없게도 한국인들에겐 친숙한 전통 건물이자 신라 문화를 상징하는 첨성대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p.20) 는 신박한(!) 설명이다. (나는 이런 저자의 솔직함이 넘 좋다) 이후 나머지 글에는 글쓴이의 호기심이 가득차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유퀴즈에서 “궁금한 적 있잖아요?”라고 자기님들에게 질문하던 작가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이런 궁금증이 청소년들에게 가장 많이 필요하지만 그럴 시간이 가장 모자란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작가님의 글은 간결하고 가독성이 좋아 별 보며 새벽에 학교에 가서 별 보며 밤늦게 집에 오는 학생들이 챕터 하나 씩 읽어도 부담없을 것이다. 한 챕터당 5분 컷이다. 요새 인스타로 일러스트 쇼트 보며 힐링하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인지 김듀오님의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유퀴즈에서 한국괴물에 대한 덕후로 출연 이후 ‘괴물작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다작하시는 곽재식 작가님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같은 옛 문헌에서 K-요괴를 발굴해내시던 경험이 쌓이면서 이런 종류의 책을 쓰실 수 있는 스케일이 되는구나를 배웠다.

p.s 김듀오님의 일러스트 또한 이 글에 찰떡인데, 곰이 작가님 닮았.....
작가님 특유의 호기심을 동력삼아 옛문헌을 뒤지던 경험으로 또 다른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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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때문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3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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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때문에>

이 책은 고1 중간고사 이야기다.
“통합과학 시험이 끝났다. 어깨가 아프다. 아니, 온몸이 쑤신다. 아픈 곳에 손바닥이 닿을 때마다 딱딱한 돌멩이가 꿈틀거린다. 언제부턴지 채니 몸속에는 돌멩이가 살고 있다. 은연중에 한숨이 흘러나온다.”(p.7)
“우웩 우웩 토악질을 해 댄다. 제발 제발, 가슴 속에 들어찬 돌멩이들이 다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토악질을 할 때마다 변기 속으로 빨려 들 것 같다.”(p.18)
“채니는 더 이상 물리 선생님에게 맞설 수 없다. 가슴 속에서 딱딱한 것들이 꿈틀거린다. 아프다. 뭔가 굳어지는 것 같다. 저도 모르게 채니가 가슴을 문지르자, 울컥 눈물이 터진다. 뾰족한 돌멩이가 가슴을 찌른다. 가슴이 아프다.”(p.62)
주인공 채니의 가슴엔 돌멩이가 있다. 이 돌은 채니를 아프게도 하고 학교 물리 선생님인 민식을 상대할 때는 벽이 되기도 한다.
“근데 채니는, 절대 선생님 말을 받아들이면 안 돼, 하고 마음속에다 벽을 쌓아 놓은 상태같았어요. 도무지 제 말을 받아들이질 않았어요. 결국 설득 당할 것 같자, 울면서 벌떡 일어나 버리더라고요. 그 뒤로 몇 번 통화하려고 연락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고요. 그렇게 채니랑 통화하려고 할 때마다 괜히 맥이 빠지고, 도대체 선생이라는 존재가 뭔지 자꾸만 제 자신에게 묻게 되더라고요.”(p.108)

학생과의 벽이 느껴지는 민식은 나무같은 분이다. 30여년 전, 그가 여고 선생님으로 면접을 볼 때, “나무 때문에, 학교에 있는 숲 때문에, 이 학교에 반했습니다.”(p.38)라고 이야기한다. 이분 말고도 이 나무에서 눈물을 훔치며 버텨나가는 다른 선생님들도 있다. 학교에 심겨진 나무 역시 생존이 불안하다. 지금 이 사건이 일어나는 현재, 민식이 처음 본 숲의 10%밖에 남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주차장을 확장한다고 해서 밀어버릴 뻔 한 걸, 민식을 포함한 다른 몇몇의 선생님들이 반대해서 살아남았다.
“그때는 학교에 100여 그루 나무가······느티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들이 뒤섞여서 대단했잖아요? 근데 이제 20그루 정도만 남았고, 그것도 시간문제이지 다 사라질 것 같아요. 그 동안 하나둘씩 사라졌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다 모른 체 했고요. 갑자기 저 나무들 운명이 선생님들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진실처럼 자리잡기도 하고······.”(p.131)
선생님들은 나무와 운명을 같이 한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내질 못한다.

이 책은 독자인 우리에게 묻는다. 학생에게 돌멩이를 가슴에 넣고 살게 하는 이 누구인가, 학교에 나무와도 같은 선생님들을 뿌리 채 흔들어 놓는 이 누구냐고. 우리나라의 살벌한 교육현실의 책임은 대체 누구에게 있냐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돌멩이와 벌목으로 우리 교육현장을 난도질해도 해도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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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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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103>은 무피귀가 출현한 검은과부거미섬, 생존을 위해 해저터널로 들어간 지 41년 후, 식수로 마시던 비우물에 바닷물이 유입되며 시작된다. 터널에 있는 거미줄마을 공동체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 이 터널 밖을 나가 외부에서 차폐문을 열어야 한다. 그 주인공이 바로 16살 서다형이다. 왜 어른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 책이 영어덜트소설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환기구 날개를 부수지 않을 얇은 몸이 필요하다. 참고로 다형이의 동갑내기 친구 재이 역시 이 터널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거미줄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형이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녀의 사투가 시작된다.

무피귀라는 피부가 없는 괴물들이 이 섬의 멧돼지나 염소를 잡아먹을 뿐 아니라, 사람도 보이는대로 잡아먹는다. 이 위협적인 존재를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인물들이 나온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목숨을 바쳐 희생을 자처한 사람들이었다. 손가락을 펴서 세다 보면 다섯 명정도다. 터널에 들어간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황선태. 바리섬에서 무피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죽은 정하의 아버지, 언더원의 일원인 이준익, 이 마을에 네피림이 등장했을 때 이장님, 그리고 등대에 살고 있던 조태관의 아버지이다. 이들 모두 사랑하는 이들, 즉 아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여섯 살 난 아이를 위해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지만 모두가 위대해 보이진 않는다. 대를 이을 자손을 위해, 아들을 위해 죽었던 이들의 후손들은 타인에 대해서 관용이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의 목숨만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기 자식이 아니어도,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 사람들을 위해 희생 한 사람들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할 줄 안다. 이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내새끼 지상주의’가 최고조로 이른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이타심이 있는 사람들의 정의와 평등은 이기적인 사람들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는 이 재난 속에서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어둠 속을 한 걸음씩 내딛는 다형이와 정하가 존경스러웠다. 열여섯 살이지만 이타심이 무엇인지 안다. 작가는 이 둘과 희생을 자처한 사람들을 통해 내 자식, 내 가족 말고, 옆집,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를 위해야 살길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소설로 읽혔다.

p.s 1. 디테일이 있는 소설이다. 소화기를 물통으로 쓴다거나, 다형이의 수리검이 무피귀를 잡기 적합한 무기형태인 점 등등 작가가 얼마나 상상력을 발휘해 썼을 지가 눈에 보였다.
2. 에필로그의 섬뜩함이 이 시리즈의 2를 기다리게 한다!!
3. 근데 무피귀가 물을 무서워하는지는 잘 이해가 안된다. 특히 반무피귀인 이준익이 인간이면서 고무보트를 번쩍 드는 걸로 보아 해병이었던 것 같은데 왜 물을 무서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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