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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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드라마로 안방을 누비고 있는 ’성균관 스캔들’ 의 원작, 이 책을 비롯하여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까지 나오자마자 구매를 해 놓고 읽는다 하면며 자꾸 뒤로 밀리다 드라마 때문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동생의 이름으로 남장을 하고 필사를 해서 겨우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녀가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하여 필사보다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거벽일까지 막혀 시험에 합격을 한다면 좀더 돈벌이가 될까 하여 그동안 어깨너머로 한 공부로 시험장에 나가게 된다. 우연히 그곳에서 만난 이선준과 순돌,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눈에 반한 둘은 서로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 채 시험을 치기에 좋은 장소를 알려주고 그 덕에 좋은 성적으로 시험에 붙게 되면서 그들의 인연의 끈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아픈 동생의 이름을 빌려 남장을 하고 시험에도 응시를 하고 그외 일들을 하는 그녀, 만약에 자신의 변장이 탄로난다면 자신은 물론 윤식도 어머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어디에도 자신있게 나서지 못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비록 남자의 옷 속에 숨겨진채로 살아야 하지만 어떤 남자보다도 배포도 있고 당당하다.그녀의 남장이 탄로나지 않음을 인정하듯 조선 최고의 기녀인 초선에게 먼저 눈에 띄게 된 그녀 ’ 처음 뵙는 선비님의 그윽한 미소가 웃고름만 흔들고 갈 것이지, 어잉하여 이내 마음도 같이 흔들고 가시나요.’  그런 그녀가 동생도 구하고 가정도 일으키고 자신 또한 포부를 이루며 살 수 있을까. 늘 불안불안 하여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식구들, 하지만 그녀의 앞날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탄탄하다. 좁은 길을 가려하면 어디에선지 누구에게든지 눈에 띄어 대로를 가게 되는 그녀가 사랑도 이루고 꿈도 이루고 동생 또한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지.

우선은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죄충우돌 ’잘금 4인방’ 의 이야기도 재밌지만 남자인 윤희에게 자꾸 마음이 가는 정말 어느 한 부분 빠지지 않는 선준과의 사랑이 언제 이루어질지, 이루어지기는 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노론의 좌의정 아들이며 윤희는 외가는 노론이지만 아버지가 남인이니 아버지를 따라 자신은 남인인데 그 또한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거기에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남장까지 한 정말 간 큰 여자인데 자신의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발각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어느모로보나 여자처럼 이쁘장한 외모이지만 누구보다도 당찬 그녀, 신방례에서도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척척 잘도 해결한다. 결국 대물이라 불리게 되었지만. 대물이라 부리는 그녀가 이름값을 톡톡히 할지 궁금해지는 소설은 한번 손에 잡으면 놓지를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잘금 4인방에 찔금 4인방의 재밌는 인물구성.
인물도 잘 생기기도 집안 배경도 좋고 누구보다 성적도 최고인 그야말로 모든것을 가진 이선준, 그에 비해 배경은 조금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노력은 최고이며 노력한 만큼 결과도 최고이고 남자보다 더 남자다운 자신감이 백프로인 누구나 한번 보면 반하는 꽃미남표인 윤희와 겉모습도 최고 먹는 것 또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성균관의 최고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용하와 그에 반대인 겉모습이지만 날카로움 속에 부드러움을 숨기고 있는 재신, 그들은 잘금 사인방이라 하여 그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성균관은 물론 거리가 시끌 거린다. 그들에 반대하여 장의와 병춘등 그들을 시기하고 그들이 가는 길에 늘 걸림돌처럼 반대파인 찔금 사인방과 조화로 소설은 더욱 재밌다. 거기에 스승들과 선준의 머슴 선돌과 용하의 머슴등이 맛깔스럽게 등장을 하면서 최고의 배경으로은 정조도 한몫씩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고 나타나 주시니 그들의 조화는 정말 잘 어울린다.

조선의 문화 르네상스 시대인 정조, 그 시대의 풍속도를 보는 느낌이다.
성균과 유생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도 재밌지만 그 시대의 정치상황이 그려져 더 맛깔스럽다. 선준과 윤희의 연애사만 있었다면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되었겠지만 정치가 가해지고 양반과 그외 다양한 계층이 어우러지면서 ’남녀칠세 부동석’ 이라는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윤희가 남장을 하여 그것도 함께 기숙을 하는 성균관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이슈인데 그곳에서 연애도 하지 무척 간 큰 이야기도 거기에 여자가 남자로 남장을 하였으니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여권신장까지 고려해 볼만 한 소설이라고 하지 않을까. 여자라고 울타리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아니라 남자와 동등한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는 그 시대에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 났으나 ’여자’ 여서 그 이름을 더 드높이지 못하고 스러져야 했던 ’허난설현’ 등 비슷한 인물들을 떠 올려 보게도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풍속화는 ’정조’ 시대에 이름을 날렸던 김홍도나 신윤복등의 그림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김홍도 보다는 ’신윤복’ 의 그림에 가까운 소설이다. 많은 기녀들이 등장을 하고 살짝 살짝 보일듯 말듯 하면서도 이어질 듯 끊어질 듯 하는 선준과 윤희의 사랑은 신윤복의 그림이나 그 시대의 춘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초선이 가채를 만지기 위하여 들어올린 팔 사이로 들어난 겨드랑이처럼 ’은근미’ 를 소설은 보여주며 연애사와 더불어 문화부흥기였던 정조가 그들의 학습에 기름을 붓듯 열을 올리게 하는 역할로 나와 더욱 흥미진진하면서 연애사와 꼬이게 되는 ’홍벽서’ 는 과연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모든 인간은 제각각 삶의 추를 가슴에 달고 있습니다. 추의 무게도 사람마다 제각각이지요. 나이가 어리다고 하여 나이가 많은 이들보다 반드시 가벼운 삶의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니,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선준의 말처럼 삶의 추의 무게는 제각각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무게도 제각각 빛을 발한다. 윤식은 누나의 보살핌 속에 더욱 건강을 되찾게 되고 성균관의 문제아 취급을 당하던 재신은 윤희와 선준이 들어옴으로 하여 공부에 열정을 쏟게 된다. 겉모습이야 늘 자유분방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그 속에서 부드러운 연애시도 거침없이 나오는 한마디로 가슴 따듯한 남자이다. 그런 그의 곁에서 잘 감싸는듯 하면서도 늘 서로 다투듯 하는 용하 또한 입만 열면 뒷골목 이야기에 여자 치마속을 들추는 이야기처럼 연애19금의 말만 늘어 놓지만 그의 말속에서는 늘 뼈를 감추고 있고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다.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세태를 파악하는 발빠른 그인듯 하여 주목하게 만든다. 그런 그들 옆에서 순돌과 그외 유생들의 저마다의 맛이 더해지고 날이 갈수록 윤희에게 깊게 빠져드는 선준의 고뇌가 그려져 더욱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 난 변화를 시키려는 게 아니라, 단지 비난만 하고 끝내는 무능은 저지르고 싶지 않을 뿐이오. 세상에는 완벽한 정책은 없소. 보다 나은 정책이 있을 뿐이지. 그러니 그 어떤 정책이라도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소. 그 비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조선을 위한 정책을 알고 싶소,진심으로.’ 그들이 보다 나은 조선을 만드는데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사랑도 이루고 꿈도 이루고 할 수 있을지 주목 되는 소설은 표현이 사실적이면서 어떻게 보면 연서를 읽는 것 같아 가을바람처럼 살랑살랑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뿐만 아니라 성균관 유생들과 정조가 과연 이루어 나갈 앞으로의 향방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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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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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집에 여자가 들어갔다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해야 하는데 1권을 읽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윤희'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 진짜 남자보다 더 남자답고 자신감과 당참으로 무장한 그녀 앞엔 '불가능' 은 없는듯 노력형 윤희는 모든 남자들이 부러워할만큼 성균관에서의 입지도 당당히 굳혔다. 그런 그녀가 과연 어긋날듯 이어지고 있는 선준과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선준이 사랑하고 있는 '남색' 이라 겨이고 있는 이 사랑은 남자가 아닌 진짜 여자인지 정말 궁금하게 하는 소설은 1권을 읽자마자 다른 책을 잡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으며 신윤복의 '단오풍경' 이 그려진 부채의 그림을 몇 번 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 그림속 한 장면이 그들이 지금 있는 그 장면인듯 하여 미소를 지으며 콩닥콩닥 책장을 넘겨가는 재미 또한 윤희에게 맞추어졌던 촛점을 선준에게 맞추어 보았다.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를 한사람 정해 놓고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그를 따라가다 보면 더 재밌는 부분을 만날 수도 있다.

전편에서 보다는 그들은 더 가까워지고 그들 사랑전선에 위태함도 있고 선준 또한 자신이 사랑에 자신이 없어 할까 말까 하면서도 오롯 윤희에게 향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함에 더 애간장을 타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라이벌처럼 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베스트 프렌드로 거듭나는 그들을 보면 인생에 라이벌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보게도 된다. 전편에서 들킬듯 말듯 하던 윤희의 정체는 재신에게 먼저 여자임을 들키고 난 후 선준에게도 들키고 만다. 여자라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부터 그들의 사랑엔 불에 기름을 부은것처럼 겁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그런 사랑을 옆에서 표현도 못하고 아슬아슬 바라보는 재신은 거칠면서도 부드러움을 숨길 수 없는 멋진 남자로 거듭나 믿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지막 부분에 웃음을 주기도 한다.

윤희, 그녀의 가면이 언제 벗겨지고 홍벽서는 과연 누구인가.
윤희는 선준에게도 그리고 다른 성균관 유생들에게 늘 조심스럽지만 특히나 임금인 정조앞에서 더 불안하다. 그런 임금이 그들이 장치기 놀이를 하는 왁자한 자리에 정조 임금은 한마디 말도 없이 나타나 함께 한다. 자신들만의 젊음의 자리에 임금이 있어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점점 임금을 잊어가듯 경기에 몰입을 한다. ' 빌어먹을 임금 같으니! 대신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지금 내 어깨에 부딪치는 건 가랑 형님의 것이었을 텐데.제엔자아앙!' 젊음의 자리에 왔지만 그들을 멀리서만 구경해야 했던 임금은 선준이 정치기 놀이에서 다치고 나자 줄다리기에는 바로 그의 자리를 빼앗아 윤희 바로 뒷자리에서 줄다리기를 하겠단다. 선준이 다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 놓고 있어 무척 좋았는데 정도 임금 때문에 좋았다 말았다. 여기에 윤희의 한마디가 임금도 선준보다는 못함이 그녀의 말속에 나타난다. 하지만 임금은 그곳에서도 윤희의 손이 남과 다름을 여실히 느낀다.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조막만한 손이 너무도 눈에 확연하게 들어온다. 그들이 행사에서 이기고 용하는 사인방만 여름 휴가를 가듯 물놀이를 가자고 하는데 그것이 그만 커져서 모두 함께 가듯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사랑이 매개체처럼 비가 내리고 소나기를 피해 모두가 내려간 사이 선준과 윤희만 남게 되는 자리에서 윤희의 비밀은 밝혀지고 둘은 사랑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이젠 홍벽서, 그건 누구의 짓이란 말인가? 홍벽서를 쫓는 용하는 긴가민가하면서 혼자 나름 홍벽서가 누군지 감을 잡고 있다. 그래서 늘 재신을 두둔하듯 하는 그의 말에 가시가 있다.신방례 날에 선준이 푼 문제가 잘못되어 홍벽서로 오해를 받으며 잡혀가게 된 그를 빼내기 위하여 성균관 유생들이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임에 임금도 함께 하여 그가 풀려나게 하는 장면은 스릴감도 있지만 순돌과 용하의 행동에 웃음도 준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랑은 언제 연결이 될까.
'가랑 유생님도 마치 제 계집 보듯 도련님을 보는 모양이 예사롭지 않더이다.' 윤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인물로 초선이 있다면 선준에게는 '부용화' 가 있었다. 하지만 초선은 윤희의 마음을 가지려 한것이 아닌 대물이라 소문이 난 윤희의 양물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 판명이 나고 좋지 못한 이별을 하게 되었지만 초선과의 정도 정리를 하게 되고 선준 또한 몸살을 앓듯 부용화와의 관계를 정리하여 그들 앞에 걸림돌은 모두 제거가 되지만 남장을 한 여자인 윤희를 어떻게 그것도 파가 다른데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속에 선준은 윤희와는 결별이라도 한듯 공부에만 집중을 한다. 그런 선준 옆에서 윤희도 용하도 처음으로 재신 또한 공부에 열중하는 풍경이 지금과 별반 다르게 않게 그려진다. 모범생과 놀기 좋아하는 용하는 무엇이 달라도 다르게 표현되어 웃음을 주는 가운데 윤희는 점점 자신에게 냉랭해지는 선준이 믿을 수 없다. 자신은 점점 사랑이 깊어지는데 선준이 왜 홍벽서 일 후에 자신을 멀리하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하는 얄밉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자신 또한 열심히 대과에 급제를 하여야 임금께 간청을 하여 어느 지방의 말단 관직이라도 얻어야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동생 윤식의 이름도 찾아 줄 수 있는 길이라 여기도 그녀 또한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럼 이제 그대를 마음껏 사랑해도 되는 것이오?'
그녀가 여자임이 밝혀지고 자신의 사랑이 헛되지 않음을 확인한 선준은 부모님과 모종의 거래를 한 듯 하다.뭐든지 다 가진 남자였던 선준이 고르기만 해도 자신에게 차고 넘치는 여자를 선택할 수 있었을텐데 윤희에게 향하는 일편단심은 그들의 성균관 생활에서도 보여지듯 천생연분이었다. 어쩌면 주위의 모든 이들과 상황은 그들의 사랑을 위해 마련된 하나의 병풍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을 향하여 있었지만 그것이 결코 값싸보이지 않았던 것은 인물들의 특색이 각기 다르게 잘 표현되었고 성균관의 생활상과 그시대에 어울리는 일들이 잘 짜여진 그림처럼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로맨스 뿐만이 아니라 정치상황과 정치를 비웃는 '홍벽서' 의 일등이 잘 표현되어 재미를 더해주지 않았나 싶다. 거기에 공부밖에 모를것 같은 샌님같은 선준이 사랑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지고 비록 남장을 한 여자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남들도 힘든 것을 일구어 내는 노력형 윤희가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졌기에 더없이 끌려 들어 읽게 된 소설이다. 

'화중은일이 드디어 서서히 피어나는구나, 그런데 이를 어쩌나 화중왕은 이미 졌는지 모르나, 화중군자는 아직 만개함을 그칠줄 모르고, 거대한 연못의 보호 속에 있으니...' 용하의 말처럼 이제 그들의 사랑은 시작이다. 모두에게 쉬쉬하며 비밀로 사랑을 키워 나갔지만 성균관에서 그들의 눈빛이 요상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임금 또한 윤희의 조막만한 손이 이상하고 그의 가려린 어깨가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면 윤희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늘 선준 뒤에 숨으려 했던 비밀은 무엇일까. 임금의 눈까지 속여가며 남자로 살아온 그녀를 용서해 준다는 것인가. 이 책에서는 잘금 사인방의 성균관 이야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규장각' 이야기를 준비한다. 대과에도 붙고 서로 이제 흩어지나 했지만 임금 또한 그들 사인방을 눈여겨 보기도 하고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간청을 한 윤희를 아깝게 아무 이유없이 보낼 수는 없다. 선준 또한 높은 벼술에 앉히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 그렇다면 그들의 앞으로 행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선준과 윤희는 부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드라마를 몇 번 보다 보면 책 속에 주인공들이 보다 더 자세하게 그려져 읽는 가운데 그들의 말 톤으로 읽게 된다. 선준과 윤희로 분한 그들의 고은 모습이 눈에 아른아른 하면서 닿을 듯 말듯 하면서 어느 순간 서로에게 자동으로 끌리어 붙어 버릴 수 밖에 없는 자석처럼 그들의 사랑은 이 가을을 흔들어 놓았다. 잠깐 동안 그들의 고은 사랑 속에서 애틋한 눈빛에 잠자던 감성을 되찾게 해주듯 파란 하늘 한번 더 바라보게 했던 시간들의 느낌이 좋았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은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선준과 윤희' 의 여운에 잠시 첫사랑의 느낌에 빠져 들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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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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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서 아홉이란 숫자는 참 애매하다. 무언가 꽉 차는 듯한 완성이 되는듯 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숫자처럼 한 살 한 살 더해가다보면 아홉이란 숫자에서 한참 헤매이게 된다. 스물아홉이 삼십대를 위한 준비처럼 머뭇머뭇하게 했다면 서른아홉 또한 마흔을 준비하는, 아니 이제 중년이란 나이로 접어든다는 생각에 괜히 우울하고 무언가를 더 늦기전에 시작하기 위하여 마음만 분주했던 나이였다. 그렇다면 마흔아홉이란 숫자는 그 감이 또 다를듯 하다. 쉰이라는 인생의 중턱에 서서 또 다른 고개를 넘어가는 기분은 작가가 글 속에서도 나타냈듯이 어느 작가는 절필선언을 하고 오지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나이란 것이 참 묘한 감정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느꼈다. 나 또한 그런 힘든 고개를 한 두번 넘기도 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작가의 나이 마흔 아홉, 쉰으로 향하는 고개를 넘기 위한 '뒤돌아 봄'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작가의 책들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를 못했다. 그저 눈구경으로 만족하며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다른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어쩜 다행이라 생각을 했다.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으면 소설과 소설사이에서 놓쳤던 '틈' 을 읽는 듯 하여 너무 좋다. 사소하면서도 그들이 글쓰기를 위하여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고 그들 또한 평범한 이웃집 누구처럼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나면 그의 작품에 다가가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그런면에서 이 책 속의 그의 이야기들은 ' 인간적인 윤대녕고 작가로서의 윤대녕' 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거기에 부록처럼 그의 '독서일기' 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별미인듯 하다.

그의 고향은 내가 잘 아는 곳이라 정말 이웃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의 어머니의 고향 또한 내 어머니의 고향과 같다. 삽다리. 그래서일까 그의 이야기들은 가까우면서도 어쩌면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잊고 있던 유년의 첫사랑을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핏속에 흐르는 역마살 때문일까 작가로 들어서기 위한 준비의 길처럼 그가 앓는 몸살이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과 빨리 만나 어떻게 작품으로 해소가 되었는지 느끼고 싶어졌다. 지금까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였다면 이제부터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은 그, '이제부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살고 싶다. 자기 자리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세월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조용히 받아 들이며 가끔은 누군가 찾아와 기대고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겉모습은 어쩔 수 없이 변하더라도 속마음은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그루 나무처럼 말이다.' 지금까지의 방황은 어쩌면 한 그루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위한 자리를 보러 다닌듯 하다. 자신이 뿌리를 내릴 튼튼하고 흔들림이 없는 자리를 잡아 그곳에서 한 그루 나무로 뿌리를 내리기 위한 긴 터널을 지나 온 그의 지난날을 뒤돌아 본 시간속에는 누구보다 두드러진 여인들이 있다. 어머니와 아내.

어머니는 달성 서徐씨이며 이름은 외자로 란蘭이다.나의 필명이 서란인데 이 무슨 우연일까.그부분을 읽다가 깜짝 놀랬다. 그는 어머니의 두부 두루치기에서 잊지 못하는 어머니만의 맛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어머니가 만드는 두부 두루치기는 두부를 통째로 냄비에 물을 부어 따로 익힌 다음, 크게크게 썰어 접시에 올려놓고 나중에 양념장을 끼얹는다. 그리고 약간 덜 익힌 대파를 역시 크게크게 썰어 함께 올려놓으면 두부의 흰색과 대파의 파란색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매우 깔끔하고 맛깔스러워 보인다. 또 고추장 대신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를 많이 써서 탁한 느낌이 없고 맵되 입 안에 남는 뒷맛이 개운하다.' 그에게 어머니는 두부 두루치기처럼 잊지 못하는 맛과 색깔로 남아 있다. '특별하지 않기에 나는 오히려 어머니를 더욱 가슴 깊이 사모하고 있다. 그 평범한 속에 삶의 온갖 섭리가 깃들어 있는것이다.' 남과 달라서가 아닌 평범했기에 더 오롯이 가슴에 남아 있는 어머니, 역마살과 같은 여러번의 이사와 아들의 방황에도 늘 흔들림이 없으셨던 분, 그런 어머니를 기억하며 어머니를 추억하며 쓴 '달력과 어머니' 에서도 어머니의 성격이 들어나 있지만 어머니의 정 또한 듬뿍 담겨 있다. 그런 어머니의 품이 있었기에 그가 지금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가 글 속에 담아낸 아내 또한 그의 흔들림 없는 버팀목이 되어 주기엔 충분하다. 한달여동안 글쓰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여 어제 나갔다 돌아온듯 냉이향이 진한 된장찌개로 맞이해 주는 작가의 아내, 자신은 글쓰기를 위하여 자신의 숨겨진 장소를 찾아 여행을 하지만 아내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속을 잘못 드려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말과 자신의 등단 때 사용했던 낡은 타자기를 버리지 못하고 서재에 보관하기도 하고 십여년을 쓴 낡은 노트북을 간직하자고 하는 아내,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 글을 쓰거나 혹은 글쓰기 위한 준비를 하고 돌아오면 늘 따듯한 보금자리와 함께 자신을 변함없이 기다려주는 아내가 있기에 그의 글쓰기 방랑은 이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가 말했듯이 어머니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기다림' 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날 그가 있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이 무엇보다도 더 힘겹다는 것을 아는 그가 이젠 어쩌면 기다림을 종식시키지는 않을까.

'새삼스럽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 대해서. 한 순간 한 순간이 마치 축복처럼 다가왔다가 새벽의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감을 생각해본다.' '나는 대용량 쓰레기봉툴르 가져와 종이상자 안에 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버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가난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비밀이 없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다' 고 하지 않았던가.'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게 된 마흔아홉, 지금까지는 추억이나 그외 자신의 모든 것을 쌓아 두기만 하였는데 비우고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하여 그동안 꼭꼭 담아 두었던 추억을 버리는 것을 읽으며 나 또한 버리지 못하고 쟁여두기를 좋아하는데 쓰레기통을 잘 비울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 내 나이 몇 년 후에 한번 추억을 비우듯 버릴것들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봤다. '오늘 버려진 것들이 앞으로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라는 그의 인용문처럼 삶은 가끔 비우는 철학이 있어야 발전한다는 것을 느껴본다. 

작가의 에세이는 그 삶은 송두리째 들여다 보는 것 같아 거리감이 좁혀져 좋다. 소설로만 접하다 보면 무언가 딱딱하고 겉모습으로 굳어지는데 단단한 것을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그를 말랑말랑하게 해 준다. 좀더 작가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마련하게 된다. 뒤돌아보면 삶에서 극적이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으랴. 기쁘건 슬프건 모두가 극적인 순간들이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 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처음 마음이 흔들렸던 첫사랑의 여인도 자신의 터전이 되었던 어머니도 늘 기다림의 끝에 있는 아내도 모두가 삶의 순간들이며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 속엔 우연히 만난 친구도 있고 지인도 있고 모든 인연들과 순간들이 모여 지금을 이루고 있다는 행복한 뒤돌아봄이 공감이 간다.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소설도 좋지만 작가의 에세이가 느낌과 틈을 접할 수 있어 더 좋다.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숨겨 놓았던 순수한 부분을 훔쳐 본듯 하여 뿌듯하다. 그의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 보았으니 이젠 그의 소설들을 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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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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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양쪽에는 공동주택들이 얼굴을 찌푸린 거인들처럼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흐릿하게 서 있었다.어쨌든 바람막이는 됐다. 건물 사이의 좁은 틈에는 쓰레기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고, 악취가 하늘을 찔렀다.' 공동주택과 쓰레기더미, 소녀 로사는 허름하고 냄새나면서 그녀의 가족 뿐만이 아니라 모자라는 집세를 위해 다른 가족과 함께 가족처럼 살고 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언니인 애나가 나이를 속여 방직공장에 다니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햇빛이 안드는 골방처럼 늘 어둡다. 먹을 거리가 부족한 그들에게 방직공장의 파업은 생을 포기하는 일과 같다. 한편 쓰레기더미속에서 잠을 자야하는 아버지가 있으나 술주정뱅이에 소년의 월급봉토나 노리는 아버지이며 부족하면 소년에게 매질을 가하는 아버지 보다는 냄새나고 춥지만 쓰레기더미나 교회등 밖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편한 소년 제이크가 있다. 소년 또한 공장에 다녔지만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파업을 하여 부족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술값으로 들어가던 돈 마져 끊겨 그는 빵가게며 교회등을 돌며 몰래 잠을 청하기도 하고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그런 소년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잠을 청하려 하는데 소녀가 '낡은 구두' 를 찾으러 왔다. 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름도 모르면서.

학교에 다니는 로사는 담임선생님이 아끼는 최고의 제자이다. 하지만 그녀는 역사책 하나로 공부를 한다. 다른 과목의 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 역사책도 과분하다. 다른 친구들은 역사책조차 없이 학교에 온다. 낡은 옷 한벌에 교과서도 없이 학교에 오는 아이들에 비해 선생님은 가난이란 것을 모르는듯 그녀의 옷차림은 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비싸보인다. 밖에서 파업이 일어나 모두가 파업과 폭동에 관심이 모이지만 그녀는 그 모두가 관심밖처럼 보이고 그런 행동은 사회주의자들이나 하는 것처럼 집에 돌아가면 부모나 그외 식구들에게 파업에 가담하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그러니 로사의 눈에도 엄마와 언니인 애나의 파업에 가담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변 사람들과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이 불안하다. 그러지 않아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들이 먹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비참하게 줄어 들었고 어린 동생인 리치는 빵한조각 겨우 얻어 먹을뿐 우유는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자라 빼빼 말랐다. 그래도 자신은 우유를 먹고 자랐는데. 담임선생님 또한 가족이란 의당 남자가 밖에서 돈을 벌어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다른 학생뿐만이 아니라 로사에게도 아버지가 밖에서 돈을 버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그녀의 가정사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드 씨가 뭐라 했는지 너도 알잖니. 공장에서 54시간 일하는 사람들한테 56시간 임금을 줄 수는 없어. 로사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딱딱해졌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집이 다섯 채나 있잖아요.' 노동자와 부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차이가 너무 현격하게 들어난다. 노동자들은 공장주가 건립한 공동주택에서 그들이 벌어 들인 돈을 모두 집세를 내며서 겨우 나머지 알량한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임금삭감이라니, 로사는 지금 겨우 먹는 빵조차 잃을까봐 엄마와 언니를 말린다. '저 , 결심했어요. 엄마랑 애나 언니가 파업을 계속하면 저도 파업할 거에요.' 

만약에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엄마와 언니가 이렇게 거리로 내 몰리게 되었을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노래를 잘하는 엄마가 이런 삶을 살고 있었을까? '엄마가 부르던 노래가 아니라 영어로 된 다른 노래였다. 로사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가사를 아는 걸까?' 파업에 끼여들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와 그외 주변사람들이 영어를 잘하고 글씨를 잘 쓰는 로사에게 피켓에 글씨를 부탁한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정말 어떤 말이 자신들의 지금 심정을 가장 정확하고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 될지 고심을 하다가 그들은 생각을 해 낸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지 우리의 배를 채워줄 빵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빵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죠. 우리는 우리의 가슴과 영혼을 위한 양식도 원해요. 우리가 원하는 건 -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원하는 건, 그 뭐냐 - 푸치니의 음악 같은 거예요.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것들도 어느 정도 필요해요.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우리는 장미도 원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빵과 장미' 먹을것과 그 이외의 것이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기계처럼 노동만 하는 그런 동물적이 아닌 이탈리아인다운 낭만을 가미한 삶을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법은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게 말이 되나? 눈뭉치르 던졌다고 사람을 감옥에 가두다니.' 노동자와 그들을 제압하려는 세력들과 부딪치게 되고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한다. 뉴욕으로 가려던 로사는 시골스럽고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 산다는 버몬트 베러로 갈 곳을 바꾸었는데 뜻하지 않게 아버지가 죽은 것을 발견한 제이크와 함께 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무서움에 떠는 소년, 버몬트에 서류도 없이 몰래 왔지만 로사는 자신의 오빠라며 위기때마다 그를 잘 감싸준다. 그들이 가서 잠시 살게 된 가정은 노부부의 집으로 무척 부유하다. 그들이 상상도 못했을만큼, 하지만 그들에겐 아픔이 한가지 있다. 아들을 가슴에 묻었던 것.

노부부에게서 따듯한 집과 사랑과 먹을 것을 제공받지만 로사의 맘은 늘 로렌스에 있는 엄마와 그외 식구들에게 머무르고 제이크는 자신의 존재가 탄로날까봐 늘 노심초사 하며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노부부는 자신의 아들과 딸처럼 따듯하게 소년과 소녀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시킨다. 공부엔 영 관심이 없는 제이크는 제르바티씨를 따라 그의 석수공장에서 일을 하지만 언제 자신의 정체가 들어날까 걱정하다가 어느날 그곳을 빠져 나갈 기차표를 구하기 위한 돈을 훔치려다 제르바티씨에게 들켜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 그런 자신을 경찰에게 넘기지 않고 예전처럼 대해 주는 그, 한편 로사는 다행히 파업이 잘 해결되어 엄마와 언니가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그녀 또한 로렌스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가방 가득 가족의 옷가지와 그녀의 옷으로 채워 주는 제르바티 부인의 정에 눈물을 쏟는 그녀, 그런 로사에게 제이크는 제르바티씨에게 자신의 모든 진실을 말했든 그녀에게도 털어놔 용서를 구한다. 로사가 집으로 돌아간 후 노부부는 제이크를 아들처럼 대한다. '어째서 얘한테 장갑도 안 사준 거요? 쟤 손이 얼마나 빨간지 좀 봐요.... 내가 이미 샀소..' 그의 따듯한 마음이 전해지는 장면을 읽으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은 그는 '죽은 사람들이 잊혀지는게 싫다.' 라는 말처럼 제이크의 아버지의 비석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죽어 있는 돌에서 새로운 생명인 장미 백한 수선화 등을 누구보다 뛰어나게 새생명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인 동시에 가슴이 정말 누구보다 따듯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빵이 넘치고 돌에서 장미가 자라는 새로운 삶, 그것을 향해 달리는 기분은 정말 야릇하고도 황홀했다.' 어쩌면 제르바티부인은 그들에게 먹을것인 빵을 만들어주었고 제르바티는 돌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장미' 를 피워냈던 것이다. 

소설을 읽고나니 언젠가 영화로 본 듯 한 기억이 났다. 너무도 오래전에 본 것이라 가물가물 했는데 소년이 도둑질을 한 후 던컨과 함께 조각품을 보러 갔던 장면이 생각이 났다. 1900년 초, 지금보다도 노동자들은 얼마나 많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고용주들에게 착취를 당하며 살았을까? 생존권 보장도 안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용주들의 배만 불려주며 자신들은 쓰레기더미를 헤매고 다니듯 너무도 비참한 삶을 산 그들은 잡초와 같이 밟으면 밟을수록 강인해져 모두가 함께 모여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갔다.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아이들을 맡아 보살펴주었던 사람들, 어찌보면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현실일 수도 있는데 그런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알맞게 얽혀 교육을 받아야할 청소년들이 교육보다는 나이를 속이며 삶의 현장에서 노예처럼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파업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파업에 뛰어 들면서 현실과 맞부딫히는 이야기는 청소년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누가 읽어도 가슴 따듯한 소설이었다. 인간이 빵을 먹어 배만 부르면 사는 것이 아닌 그 이상적인것, 장미의 향과 같은 인간의 따듯한 정과 서로가 서로를 감싸는 연대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장미의 향기보다 더 진한 것을 선물 받은듯 하다. 엄마를 잃고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사는 제이크가 끊임없이 죽음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불안한 삶을 제르바티가 그에게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듯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 아직은 따듯한 사람이 더 많고 혼자가 아닌 뜻이 통하는 사람과 뭉치면 세상은 더 살맛이 나는 곳이된다. 자신의 외모에만 치중했던 선생님이 반아이들 모두에게 도시락을 제공하고 파업으로 먹을것이 없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그들의 머리가 되어 준 사람이며 그들의 아이들을 잠시지만 자신이 아이들처럼 맡어서 보살펴준 그들이 있어 가슴을 따듯하게 해 주는 스프처럼 읽고나면 가슴이 훈훈해지며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해 주는 소설이다. 사춘기 딸들에게도 권해 읽어보게 해 장미의 향기를 느끼게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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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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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물입니다.' 
사고를 당하여 한번 크게 병원신세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덤으로 사는 삶인지를 알게 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날보다 더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선씨 그녀, 의사도 포기한 삶이었지만 스스로 이겨 고치에서 벗어나 화려한 날개짓을 하고 있는것 같아 참으로 가슴 따듯해지고 감동적이면서 눈물을 머금고 읽어 나가다 너무 목이 메어 중간에 책을 덮고 말았다. 나 또한 큰 사고를 07년엔 산행사고로 간신히 빗겨간 생과사의 길에서 행운적으로 생의 길을 선택받게 되었고 09년엔 교통사고로 아차 하는 순간, 죽음이 눈 앞에 왔지만 정말 운명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병원신세를 오래도록 지며 내게 주어진 삶은 '이제부터는 덤이야,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느꼈어.' 라며 남편이나 그외 친구들에게도 많이 하던 말들이 생각나고 병원에서 혼자서 고통과 싸웠던 시간들이 생각나 계속 읽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 간병인으로 남편이나 가족들이 있다고 해도 환자의 고통을 모두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고통은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런면에서 그녀가 10여년 동안 감수했을 고통과 통증 그리고 사고전과 사고후의 변화에 긍정적이면서 선물처럼 받아 들이며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 하여 너무도 감사했다.

사고가나면 사고나기 그 전 시간으로 시계를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만약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말 몇 번이고 생각해 보기도 하며 '왜 유독 내게만 이런 일이...?' 하며 자책해 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여울을 지나 더 큰 바다로 향하는 힘을 안겨주기 위한 시험의 길인지도 모른다. 달게 받으면 고통 또한 내겐 그저 한때 내리고 마는 소나기와 같다. 하지만 그 고통을 내 전부로 여겨 그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삶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것처럼 암흑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내 혼자만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가족의 삶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변하고 만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것은 고통과 지금 현재를 받아 들이는 환자의 마음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 그때부터 고통은 잘게 부서져 나가기 시작이다. 날마다 한가지씩 희망과 감사를 찾다보면 내 삶이 모두 감사이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희망이고 감사가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작은 일들이 환자 당사자에게는 너무도 큰 감사가 되어 삶을 더 보람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지선 그녀, 너무도 잘 고통의 터널을 벗어난 듯 하여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고 싶다. '오빠, 나 이러고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 진심이었을 것이다. 사고 당시 몸 전체의 반 정도가 3도 화상에 의사도 포기한 생명이었는데 그녀만이 홀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생을 쥐었다. 사고 이전으로 똑같이 되돌릴 수 없겠지만 두 개의 얼굴, 두 개의 삶으로 나뉜듯 하겠지만 너무도 대단하게 아픔의 고치를 벗어버린듯 하여 대견하고 정말 곁에 있다면 안아 주고 싶은 그녀이다. 물론 곁에서 늘 함께 재활치료를 해 준 '오까' 도 있고 그녀를 24시간 바늘처럼 따라다녔던 엄마의 정성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그녀가 있겠지만 환자 자신이 강인한 마음을 먹지 못한다면 고통은 영원히 벗어버릴 수 없다. 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동안 함께 있던 어느 젊은 아줌마 환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 스스로 심한 천식증세도 보이며 같은 방 식구들은 물론 간호사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숨도 쉬지 않고 죽으려 하듯 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희망적인 말을 해주며 다독여주니 그녀 스스로 호흡을 천천히 뱉어내기 시작하고 마음의 문을 열며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다졌다. 그런 그녀가 밥도 잘 먹고 애들도 병원에서 잘 돌보며 하루빨리 병원생활을 마감해야 겠다며 다짐하던 웃는 얼굴이 생각난다. 스스로 희망을 찾지 않는다면 옆에서 아무리 희망을 찾아 주어도 본인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런면에서 스스로 파도를 이겨내며 큰 바다로 항해를 나가는 것과 같은 삶의 변화를 열심히 시도해 나가며 노력하는 그녀의 변화된 삶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희망이고 감사' 이다. 

'사고구나... 사고가 났었구나!. 내가 다친거구나... '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그 기분은 놀람이나 당황스러움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고의 피해자이고 사고나던 순간이 계속 떠오르면서 그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재활하는데도 진전이 없다. 공포, 눈만 감으면 떠 오르는 사고의 순간을 빨리 자신에게서 떨쳐버리는 것이 새로운 내 삶을 받아 들이고 사는데 더 도움이 된다. 교통사고이후 나 또한 한동안 차가 많이 오가는 길에 나가면 움츠러 들어 한발짝도 꼼짝할 수 없음을 느꼈다. 빨리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몸은 머리와 다르게 행동해서 한동안 고생을 했는데 차츰차츰 잊어가며 늘 새로운 '오늘' 과 악수하다 보니 그 또한 내 삶이 일부이며 넘고 나면 또 다른 '눈' 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단계였는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자신을 비관하고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받아 들이며 어떻게 살아갈까를 변화된 내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눈에 적응하여 나를 새롭게 변화시킨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대단하다. 정상인들도 하기 힘든 일을 거뜬히 소화해 내는 그녀를 누가 30여번의 성형수술 중독자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 말로 중독자이지 그녀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힘든 순간은 지나고 이제 웃을 수 있는 희망만 있다고 생각을 하면 나 자신 또한 변화할 수 있다. '귀엽다' 라며 자신을 받아 들이는 행복한 그녀의 모습이 낯설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지선' 으로 우뚝 설 수 있어 나 또한 희망을 충전할 수 있는 책이라 좋았다. 정말 영화였다면 영화속 주인공으로 잠깐 분했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영화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 더 마음이 아프고 따듯해지고 삶에 더 감사해야 됨으 느끼게 해 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모든 생명에는 사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정말 전쟁터와 같았던 중환자실에서 살아서 나오면서 제가 전우라고 부르는 그분들의 소중한 생명을 기억하며 저는 이제 숨 쉬는 동안 제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내리라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내 피부보다 더 단단한 피부를 가지게 되어서 그런가 그녀의 마음과 다짐이 당차고 단단해졌다. 그녀는 사고이전으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느끼고 받아 들인 세상이 다르기에 지금의 삶에 더 감사하게 된 그녀가 정말 멋지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순간에도 나를 사랑해준 이들 때문에 나는 나를 감히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싸움의 승리가 결국 나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한참 이쁘게 꾸미고 가꾸고 자신이 삶보다는 다른 것에 더 신경쓸 나이에 그녀는 스스로 벗어나야 할 커다란 고통의 터널을 지나서인지 참으로 야무지고 누구보다 단단하게 여물어졌다. 그녀가 펼칠 앞으로의 멋진 그림이 기다려진다. '지선아, 사랑해.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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