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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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중에서 '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라는 말이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그가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라는 표현을 해 놓은 부분처럼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며 세밀화로 그려 놓은 듯한 '생과 사' 의 이야기는 가슴 시리도록 건조하면서도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가 '시화평고원' 의 어쩌면 청정지역이나 마찬가지인 그곳에서 보여주려 했던 수목원에 얽힌 이야기는 나무와 꽃들의 '생과 사' 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의 '생과 사' 이면서 '희로애락' 이기도 하다. 그가 세밀화로 피어내려 했던 '언어의 풍경' 보다 왜 먼저 '생과 사' 가 들어왔는지, 다 읽고 난 지금도 내 가슴안에서는 건조하게 말라 내게서 떨어져 내리는 한 쪽의 겉표피의 '댕댕댕' 소리를 듣는 듯 하다.

그의 책은 어느 날 부터인가 예약주문으로 '사인본' 을 가져야만 하는 강박관념과 같은 집착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온 몸으로 써 낸 육필의 글들은 한 땀 한 땀 수놓은 조선시대 규방의 작품처럼 알 수 없는 힘의 조화처럼 그렇게 내 책장 한 켠에 놓여 있어야 맘이 놓인다. 쉽게 컴퓨터 좌판으로 쓴 글이 아닌 어깨와 팔의 힘으로 쓰여진 글들이라 생각을 하면 쉽게 빨리 읽는 것도 어쩌면 작가에 대한 미안함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좀더 삭혀가며 읽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왠지 또 가슴이 건조해지면서 한편으로는 눈가가 촉촉하게 만드는 글이 오늘은 내게서 댕댕댕 거린다.

'아버지는 재정자립도가 이십퍼센트에 못 미치는 군청의 공무원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이 삶은 멸종의 위기에서 허덕거리듯이 위태로웠고,비굴했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이 보기에도 민망하게 직장의 상사들에게 굽실거렸고 밤중에도 수시로 불려 나갔다.' 그런 아버지가 뇌물수수죄로 실형을 살게 되었다. 아버지의 수감이후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표현은 3인칭인 '그' 로 바뀌고 면회조차 잘 가지 않지만 대신에 교회라는 믿음에 집착하게 되었다. 미대를 나와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하던 그녀, 연주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에 취직자리를 알아보다가 민통선 부근의 수목원에 세밀화를 그리는 계약직에 서류를 내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아버지를 면회가지만 아버지는 이미 남해 어느 곳으로 이감된 후이고 그 소식을 어머니는 알고 있는 것인지 전하지 않고 수목원에 취직이 되어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는 그녀가 떠난 후,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여 십칠평 짜리 아파트 두 개를 장만해 놓는다. 아버지가 나오면 떨어져 살 집으로 장만해 놓은 것이다. 그런 어머니는 밤 늦은 시간이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잠이 오지 않는다. 넌 잠이 오니?' 하며 묻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넋두리는 그녀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그녀가 취직이 된 수목원으로 들어가면서 통과하게된 민통선에서 만나게 된 통문소대장 김민수 중위, 키가 크고 이가 고른 그의 지프를 타고 수목원에 가게 되는데 그들은 그렇게 민간인과 군인으로 만났지만 그들 사이는 아무런 느낌이 오가지 않은 건조한 상태로 지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수목원에 있게 되면서 자주 그와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에게 들어낼 것 같지 않던 자신의 속을 가끔 들어내 보여준다. 수목원에는 연구실장인 안요한이라는 남자가 있는데 그에겐 열살정도의 남자애가 하나 있다. 하지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다 기어코 휴학을 하게 되고 아버지를 따라 수목원에 출근하게 되었다. 그녀가 수목원에서 해야 할 일은 달마다 다른 꽃들이나 나무등을 세밀화로 남겨 놓는 것이다. 사진으로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지만 '사진은 꽃과 나무의 생명의 표정과 질감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한데, 그 까닭은 사진의 사실성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적 기능 때문에 오히려 생명의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며 생명의 사실을 그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의 몸을 통과해나온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대상을 표현하는 인간의 몸짓에는 주관적 정서가 개입하겠지만 생명의 사실에서 주관과 객관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은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라는 말처럼 사진은 너무 사실적이라 인간의 몸을 통해 나온 '주관성' 이 들어간 세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꽃은 영원히 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수목원에 오기 전에는 보지 못한 숲과 자연이 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그녀는 또 다른 세상을 느끼게 된다. 들여다 보아야만 꽃은 자신이 비밀을 말해주듯이 사람 또한 그와 소통을 하지 않으면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사내아이를 키우는 안요한 실장, 아내와 사년전에 이혼을 하고 아내는 다시 재혼을 하여 그가 아이를 맡아 키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가 수목원에 와서는 그래도 자기만의 세상속에서 잘 적응을 한다. 하지만 직장에 늘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의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읍내의 미술학원에 보내던 것이 미술학원 원장이 목을 매어 자살하고 그들이 발견하면서 미술공부를 그만두게 되고 실장은 아들을 위해 연주에게 미술지도를 부탁한다. 한편 그녀의 아버지는 형기를 남기고 가석방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뇌일혈의 후유증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던지 아버지는 그녀인지 아내에게인지 모르게 '미안하다' 라는 말을 되내인다. 

'숲의 봄은 나무가 뿜어내는 신생의 시간이었다. 부푸는 땅의 들숨과 날숨이 나무의 입김에 실려서 온 산에 자욱했고 봄으로 뻗어가는 나무는 새로운 시간의 냄새와 빛깔까지도 뿜어냈다..... 너무 다 알려고 하지 말고, 잘 들여다봐,그래야 잘 그릴 수 있을 거야. 식물의 모든 외양은 본질과 관련이 있어. 그 관련을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야.' 숲에서 '생' 을 만나게 된 그녀, 나무며 꽃이며 풀 한 포기가 내 뿜는 신생이 시간을 세세히 들여다 보며 세밀화로 옮기는 작업은 생을 거쳐 '사의 시간' 을 마주하게 된다. 숲 해설가로 있던 칠순의 노인이 노부부에게 나무의 생과 사에 대하여 들여주는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고 그들이 나무의 '생' 을 들여다보기 위하여 나무 아래 부분에 귀기울이며 함께 하던 모습을 보았는데 며칠후에 그의 부음소식을 듣게 된다. '나무는 늙은 나무들도 젊은 잎을 틔우니까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지요.' 라며 설명을 하던 분, 숲에는 생도 있지만 또한 사의 시간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유해발굴을 위해 자등령으로 나가 작업을 하던 김민수 중위는 그녀에게 그가 제대를 하기 전에 '뼈그림' 을 두 점 그려달라며 그녀와 함께 유해발굴지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만난 이름없는 이들의 뼈조각을 들여다보며 백골속에서도 그 사람의 생과 사가 있음을 드려다보게 된다. 중위는 그녀에게 그림을 꼭 그가 부대를 떠나기 전에 완성해 달라며 부탁을 한다. 그 시기는 또한 그녀가 계약직만료기간과 일치를 하고 숲해설가의 부음자리에서도 쓸쓸하다며 일부러 그녀를 불러 자리를 함께 하며 그녀에게 업무적인 이야기이지만 당부를 하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김민수 중위 또한 어려운 가정의 맏이로 대학에서 전공한 토목쪽의 일을 군에 와서도 하게 되었고 전역을 하면 또한 현역에서 그와 관계된 일을 하게 될 것인데 군에서는 시화평고원의 상류에서 일했다면 민간인이 되어서는 시화강 하류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며 그녀에게 이미 취직이 된 그곳의 명함을 내밀며 그곳에 오게 되면 꼭 전화를 하라고 당부하는 그의 말은 은근한 '프로포즈' 나 마찬가지, 아버지의 죽음이후 아버지의 뼈가루를 시화평고원 아늑한 자리에 순골을 할때 그의 도움을 받게 된 그녀는 그가 전역하기전에 뼈그림을 완성하여 그에게 주고 그녀 또한 계약직만료이지만 수목원의 제정상 그곳을 그만두게 된다. 그녀가 이제 달려가려 하는 세상은 생과 사의 조화롭게 어우러진 '따듯한 세상' 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표현처럼 ' 꽃은 가냘프거나 옹색하지 않다. 꽃에 대한 어떠한 언어도 헛되다는 것을 나는 수목원에 와서 알게 되었다. 꽃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때의 패랭이꽃은 세밀화로 그려내려면 그 '쟁쟁쟁' 한 기운을 화폭에 옮겨와야 할 터인데, '쟁쟁쟁' 이 물리적 구조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쟁쟁쟁' 은 그 구조 너머에 떠도는 것이어서 화폭에는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다.날이 흐려서 '쟁쟁쟁'은 울리지 않았다.' 똑같은 말의 반복이 이렇게 틀린 어감으로 그리고 구체화되어 나타나다니 정말 대단하다. 꽃이 세밀화인 '생' 을 표현해야 했던 그녀가 유해발굴현장에서 나온 '뼛조각그림' 인 '사' 의 그림까지 그려야 했다. '생과 사' 다른 듯 하면서도 한줄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작가는 '생과 사' 의 긴 시간을 건조한 표현으로 시종일관 숲의 나무들처럼 인간들 군상을 하나 하나 자신의 자리에 잘 배치를 해 놓고 그들 사이에 평행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만날것 같지 않는 사람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연주와 민수 중위 그리고 안요한 실장과 아들 신우와 그의 아내, 미술학원 원장등 많은 인물들이 풀과 꽃 나무들의 숲이 아닌 '인간이 숲' 에서 저마다 '생이면서 사인 시간' 으로 나이테를 만들고 있다. 사의 시간에 놓인 '백골' 에는 생이 없을줄 알았는데 어느 군인의 편지에서 생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 또한 생과 사의 시간의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먼지로 돌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듯 '윤회' 의 삶을 살고 있음을 '수목원' 의 숲을 통해 보여준다. 조연주 그녀가 수목원에서의 세밀화가로 있었던 시간은 그녀에게는 짧은 듯 하지만 어쩌면 긴 그러면서 자신이 삶에 '살아야 겠다는' 삶의 희망의 수액을 뿌리 저 밑에서 깊게 빨아 들이는, 그동안 그녀 안에 쌓여 있던 죽은 표피를 한꺼풀 벗겨 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우린 숲을 '재생' 의 공간으로 말을 하게 된다. 그녀에게 수목원이 재생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핸드백에 들은 '김민수 중위' 의 명함을 넣고 서울로 달려가는 그녀는 환희로 가득차 엑셀을 힘껏 밟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반복적으로 나열했던 언어인 '쟁쟁쟁' 이란 단어때문일까, 자등령 그곳의 시화평고원의 수목원이 마치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곳에서 수목원엔 달마다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환하게 피어나고 나무들은 생명수를 깊게 빨아 들여 밖으로 삶을 확장해 나가고 개미들은 또 저마다의 공간에서 같은 삶을 반복하며 '생과 사' 의 윤회의 삶을 살고 자등령 고개 낙엽 밑에는 아직도 그 이름을 찾지 못한 '뼈조각' 들이 한데 엉켜붙어 국적과 사상을 초월한 공간에서 하나가 되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경계 없는 그곳을 '댕댕댕' 영혼의 소리를 울리며 떠나니고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그곳 수목원에서 재생의 생명수를 빨아 들인 조연주 그녀는 그녀의 이름처럼 자신의 삶을 다시금 '연주' 하기 위하여 그곳을 벗어나 시화강으로 달려가고 있다. 삶 속인 생과 사는 무척 건조한듯 하지만 오래도록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 '세상' 이 들어 있는 것이다. 객관적일수도 있고 주관적일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어찌되었건 작가가 표현한 것은 삶은 희망이라는 것이다. 희망에너지를 충족하게 건조함 속에 세밀하게 그려 놓은 듯 하여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읽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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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몽족 아이, 미국인 의사들 그리고 두 문화의 충돌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윌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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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충돌이 빚은 리아의 이야기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처럼 읽고 나니 어떻게 판가름해야 할지 몰랐다. 정말 '만약에..' 라는 가정하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본다면 리아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 단지 그녀가 어쩌면 '뇌사'보다는 더 나은 삶은 살았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것이 옳고 그른지는 정말 분간하기 어려울정도로 난해하게 얽힌 문화적 충돌과 소통의 부재는 너무도 큰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몽족, 그들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 <동방불패> 영화에도 나왔다지만 너무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영화는 보고 싶었지만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짝수장에 나열된 몽족의 역사를 읽다보니 우리와 너무도 흡사하다. 아픔을 겪어가며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택한 삶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문화적 충돌과 의학과 샤먼의 격돌은 무엇이 더 낫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의 믿음과 사랑이 리아를 현대의학이 하지 못한 부분을 해내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만든다. 결코 현대의학으로 모든 것을 다 치료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생명이란 의사들이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얼마전 친정아버지 또한 폐암판정을 작년 여름에 받고 얼마 사시지 못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건강하시게 농사일을 모두 하시며 일년 반을 사시다 지난주에 아주 편안하게 가셨다. 물론 현대의학인 병원에서 받아 온 약으로 연명하시기는 했지만 그외 아버지에게 좋다는 것들을 많이 보충해 드렸다. 의료진들이야 그런것들은 필요하지 않고 환자에게 더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피하라고 했지만 그런 위기에 놓인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정말 지프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좀더 건강하시게 생명이 연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게 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리아의 엄마와 아버지인 나오 카오와 푸아가 자신들의 방식대로 샤먼을 행하고 리아에게 행한 것들이 결코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의사들이 손을 놓은 상태에서 그들이 현대의학으로 돌보던 상태보다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 않은 상태로 오래도록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알 수 없는 몽족들만의 의학이나 그들의 사랑과 믿음이 밑바탕 되지 않았나 싶다.

'리 부구가 계속 라오스에 살았더라면 리아는 계속되는 대발작으로 영아기나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미국 의료는 리아의 목숨을 보존하기도 하고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어느 쪽이 리아의 가족에게 더 상처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만일 닐이 데파킨을 더 일찍 처방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일 그가 리아를 위탁 가정에 보내는 대신 방문 간호사를 이용해 약을 먹이도록 했다면? 만일 그가 양쪽 문화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는 바 야오 무아나 조나스 방아이 같은 몽족 지도자를 찾아 중재를 의뢰해 처방 이행에 관한 의심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면? MCMC에 더 나은 통역자가 있었다면?'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가정에 불과하다. 리 부부가 라오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오지 않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유능한 통역사가 개입되어 모든 말들은 잘 전달하고 리 부부가 또한 병원에서 내린 처방을 잘 따랐다고 리아가 좀더 나아졌으리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리아를 통해 9년 동안 지켜본 '문화의 충돌' 은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며 서로의 방법과 처방이 옳다고 우기는 어쩌면 우월함이 리아를 더 방치한지도 모른다. 좀더 '소통' 을 해보려는 시도보다는 서로의 언어로 받아 들이고 이해했으리라 하고 믿었던 '소통의 부재' 가 더 큰 화를 불어 온 듯 하다.

만약에 정말 처음 리아가 3개월 첫 발작증세를 보였을때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좀더 소통을 위하여 누군가 노력을 기울였다면, 법이 아닌 환자와 의사의 입장에서 리아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리아 뿐만이 아니라 병원에 가면 환자와 의사간에는 '간극' 이 있다. 의사가 내리는 처방을 모두 믿을 수 없듯이 의사가 백프로 환자를 낫게 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를 잘못 믿었다가 큰 화를 입는 경우도 있고 중간입장인 간호사의 잘못으로 일이 잘못 되는 경우도 있다. 누구 한사람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큰 '소통의 부재' 는 한 생명을 뇌사에 빠뜨렸고 죽음을 단정지으려던 생명이 부모의 사랑과 믿음으로 오랜 시간을 버티어 주었다. 현대의학이 손을 놓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한 리 부부의 손을 들어 주었는지 현대의학이나 샤먼 중에 어느 한가지 옳다고 하기엔 정말 애매한 상황이 그녀에게서 벌어졌다. 

나라는 없지만 어느 민족에게 한번도 지배를 받지 않은 민족인 몽족, '몽족은 명령받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는 것을 싫어한다. 굴복하느니 떠나거나 싸우거나 죽는 쪽을 택한다. 그들은 상대의 수가 많다고 해서 겁먹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네보다 힘이 센 문화일지라도 그 문화가 더 우월하다는 주장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 몽족인 '리 부부일행은 26일을 걸은 끝에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들어갔고, 1년 동안 난민캠프 두 곳에서 지내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메이의 글에서 '너무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한 여동생 계는 처음 있던 캠프에서 죽고 말았다.' 죽을 고비를 넘으며 그들이 살던 문화와 너무도 다른 미국에 오게 되었지만 그들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부분은 미국으로 먼저 이만한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공동주택, 도시의 폭력, 복지에 의존하는 것, 다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짐승을 잡아 바칠 수 없게 된다는 것, 할아버지가 아편을 피워도 감옥에 끌려간다는 것, 사람 잡아먹는 거인,공룡, 그리고 몽족 환자들의 간이나 콩팥이나 뇌를 먹어버린다는 의사들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이 들었던 소문만으로도 의학이나 의사 그리고 병원을 믿지 못하는 상태인데 문화적 차이로 그들이 행하는 샤먼까지 행하지 못하게 하니 그들이 의사들이 지시하는 대로 약을 잘 먹일수는 없었을 것이다. 약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법원은 그들에게서 리아를 빼앗아 갔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서서 부모에게서 자식을 법적인 근거로 빼앗기 보다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사회 복지사를 통해 이해를 시키고 약을 먹이게 했더라면 리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병을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고 병에 대한 처방 또한 판이하게 다른 문화적 차이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이 리아에게 과다하게 처방했던 약들로 인해 빚어진 더 큰 병은 만약에 리 부부가 그 약을 딸에게 제대로 먹이지 않았다면 그들나름의 처방을 했더라면 더 큰 문제로 불거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리아의 이야기는 문화적 차이 뿐만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와의 간극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다. 좀더 자기의 입장이 아닌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소수민족으로 농사만 짓던 그들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겪어야 했던 충돌은 리아가 자신이 병마와 싸우던 충돌처럼 가슴 아프다. '리아는 원래 정말 귀여운 아이였어요. 간질을 심하게 앓긴 해도 '생기' 넘치는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그땐..., 그냥 거기 있을 뿐이었어요. 보통 혼수상태면 평화롭게 잠든 모습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잠자는 공주처럼 예쁘고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게 아니었어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어요. 건드릴 때마다 몸이 굳어졌어요.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고 할까요.' '타문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얼마나 큰 일을 자초했는지 보여주는 리아이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힘이 없는 자가 어디서든 당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립심 강하고 지배받는 것을 싫어하는 몽족인 리 부부였기에 딸의 긴 싸움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사람이나 문화 사이에 소통이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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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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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저격사건이 있었던 때, 난 초등생 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일이 일어난 것인지 무척이나 슬프고도 무서웠던 때였다. 하지만 진실은 무엇인지 병풍뒤에 가려진 채 정말 김재규 그가 말한 것처럼 미국의 조정에 의해 꼭두각시 놀음을 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일반적인 사건도 아니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이기에 늘 쉬쉬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흘러간듯 하다. 사건이후 참으로 많은 시간동안 우린 민주화의 급물살에 휘말려 이곳까지 왔지만 정말 1026 진실은 무엇인가?

그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흥미롭다. 진실이 밝혀지지 보다는 수면위로 떠 오르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들을 그만의 날카로움으로 다루고 있어 더욱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는 듯 하다. 얼마전에 읽은 <천년의 금서> 또한 재밌게 읽었다. 그는 작품에서 우리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진실에 대하여 좀더 가깝게 접근하려는 그만의 방법으로 극적재미를 더 해 주는것 같다. 이 작품 또한 대통령들이 나오고 꺼내 놓으면 '블편한 진실' 이 될 사건이기에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어쩌면 책 속 주인공인 변호사인 경훈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밝히려 한 '진실' 처럼 작가 또한 우리에게 속 시원하게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며 독자에게 '알아야 할 권리' 를 말해주는듯도 하다.

미국 보스턴에서 얼마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변호사 경훈은 후배 수연이 판소리를 하는 모습에 왜 그녀가 판소리를 택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지 묻는다. 아마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것처럼 어쩌면 그들에게 이국적인 문화인 '판소리' 가 먹혀 들어갔는지 그녀의 수입은 짭짤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밤 외출이 있다며 꼭 받아야 할 전화라며 그에게 돌려 놓고 외출을 하고 그는 새벽에 갑자기 걸려온 낯모를 남자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그 전화는 죽어가는 남자의 '유언' 이었던 것. 그 유언속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바..박 대통령... 비밀...10.26..... 비밀을... 내가...수연....하...하... 하우스....으..으...헉.' 그가 남긴 마지막 말에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남자의 유언에 빨려 들듯 비밀을 캐기 위하여 나선다.

'과연 10.26의 진실은 무엇인가? 표면으로 드러난 사실과는 다른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한 노인의 헛소리에 불과한가?' 수연에게 노인에 대하여 물어보지만 그녀 또한 노인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노인은 모든 유산을 그녀에게 남겨 놓았다. 과연 그 남자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겨우 이름을 알아내고 장례를 치르고 집에 찾아가 보지만 그의 정체를 파악해 낼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노인을 추적하여 들어가다가 커다란 나무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 것처럼 거대한 진실들이 쏟아져 나오고 경훈이 몸 담고 있던 곳의 캡틴은 그에게 심부름을 해 달라고 하고는 갑자기 사라진다. 어떤 진실이길래 캡틴도 사라지고 노인은 한국에서 미국까지 피신을 하여 살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10.26의 비밀이 무엇이든 간에. 의리의 사나이 김재규가 유독 자주국방론을 잠꼬대 같은 것이라고 폄하했다면 거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론' 을 싫어했던 김재규, 그것이 그를 죽인 이유일까. 아님 미국의 배후를 업고 자행한 일인가. 10.26 사건이 있었던 때 왜 '제럴드 현' 은 입원중었고 사건 이후 바로 퇴원 후 미국으로 향하였을까. 그를 담당한 의사는. 그가 미국에서 수집한 고국의 정보는. 경훈은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부분들을 사건추리를 영특하게 해 나가고 수연은 꼭 필요할때 그에게 열쇠를 풀 듯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풀어주어 그들은 점점 '10.26사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추적해 낸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제럴드 현, 현강일이라는 남자가 죽음 직전에 밝히려 한 '비밀과 진실' 은 무엇일까? 경훈이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동안 책은 술술 스피드를 더해가며 빨리 읽혀 나간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라는 진실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가 죽음 직전에 진실을 토해낸 제럴드 현의 진실은 무엇일까?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제2의 10.26' 이 일어날 것인가. 소설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닌 태평양을 건너서까지 그 무대를 넓혀 흥미진진하게 진행이 되어 더욱 스릴감이 있다. '대중? 김대중은 있을지 몰라도 그냥 대중은 없는 거요. 대중이란 늘 선전과 공작에 이용당하는 존재들 아니오.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소?' 그의 말처럼 그동안 대중은 없었던 것인가. 진실이 묻혀질만큼 대중은 선전과 공작에 이용을 당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불편한 진실' 로 지금 대중을 일깨우고 있는 것일까.

오류는 어디에나 있다. 역사에도 진실에도 오류는 있다. '그들은 10.26을 김재규 부장의 우발적 범행으로 규정하고 발표했지만, 정작 기소할 때는 내란 목적 살인죄를 적용했습니다. 김재규의 범행이 우발적이 아닌, 치밀하게 계획하여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살해한 범행이라고 봤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젠 오류를 수정할때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진실에 가까운 상상력이지만 잘못된 역사의 오류라면 이젠 바르게 수정되고 '진실' 이 발혀져야 한다. '경훈은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필립 최는 그렇게 어설픈 몇 가지 행적에 기초해서 곧바로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경훈이 신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몇가지 드러나는 사건의 행적을 보고도 누군가는 '진실' 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할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그렇게 역사속에 묻힌 진실들이 얼마나 많을까.

'경훈은 모순으로 점철된 10.26에 대한 결론을 그냥 덮어둘 없었다. 그것은 한민족의 수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신이 10.26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단순히 감추어진 현대사를 들춰내는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민족사를 가다듬고 치유하는 일인 동시에 재발을 막는 일이기도 했다.' 그랬다. 어쩌면 이 소설은 10.26에 대한 치유의 소설이며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한민족의 수치다. 그런면에서 진실은 더 정확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듯도 하다. 정치에 대하여 깊은 내막을 잘 모르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우리나라 국민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은 드물다고 한다. 모두가 정치라면 한소리 쓴소리 하루에도 몇 번은 날리며 살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왜곡되어 국민을 속이고 앙금처럼 가라앉는다면 우리가 갈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남.북으로 대치되어 있어 늘 불안을 안고 살고 있는 한반도, 더이상의 아픔도 진실을 숨겨서도 안될 것이다. 소설과 현실이 실제처럼 쓰여져 궁금증을 유발하게도 하지만 소설은 소설의 재미로 덮는다. 작가 때문에 다시금 그때의 추억에 젖어보며 흥미진진함 속에 재밌게 읽고 여운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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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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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걷기여행도 낭만적이지만 '자전거 여행' 도 한번은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하지만 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자전거 하면 먼저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때 아버지는 늘 자전거로 날 등교를 시키는가 하면 하교시에도 데리러 자주 학교에 오시곤 했다. 농사일을 하시다 오신 아버지의 뒤에서 떨어질까봐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바람을 느끼며 함께 미루나무길을 달리던 그 추억은 정말 잊을수가 없다. 그런 자전거가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이의 출퇴근용이 되면서 자전거는 나와 좀더 친숙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내가 다칠까봐 자전거를 못배우게 했던 아버지에 비해 남편은 이제라도 자전거를 배워 함께 타고 여행을 가자고 하는 것을 보면 자전거란 꽤나 매력적인 것이면서도 산을 하나 넘어야 할 존재로 남아 있다. 

얼마전에는 우리가 가끔 가는 산을 자동차길로 걷기를 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하게 있어 난 걷기에 좋다고 했더니 그는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혼자서 와봐야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남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매력적인 모습으로 쌩하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우린 오르막이었지만 그에겐 내리막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스릴을 느꼈을 것일까. 그가 그 내리막을 만나기 위해선 그동안 힘들게 올라왔던 것에 대한 보답처럼 알맞게 경사지면서 구불구불 하던 그 길은 그가 남기고간 '물음표' 의 자태처럼 내게도 물음표로 남겨지게 되었다. 정말 자전거를 배워볼까. 하지만 그 일은 아직은 내겐 먼 이야기다.

늘 한 자 한 자 꾹꾹 연필로 눌러써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음을 아리게 하는 작가 김훈, 자전거 사랑이 남다른 그가 1999~2000년에 떠난 자전거 여행, 십여년 전의 글이지만 방금 다녀온듯한 따끈따끈 하면서도 그가 온 몸으로 눌러 쓴듯 하여 가슴에 새겨지는 맑고 흙내음 물씬 풍기는 언어들이 신선한 바람과 함께 마구마구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는 듯 하여 그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얼마전에 그의 신간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어서일까 그 소설은 마치 이 에세이의 일부인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의 작품들을 모두 만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일까. <칼의 노래>이며 <현의 노래>이며 혹은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인듯 <바다의 기별> 아님 <밥벌이의 지겨움> 같기도 한 글들이 내포되어 있는 듯 하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이 산천으로 끝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이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2000년 7월에 풍륜을 퇴역시키고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값 할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그렇다면 그는 십년이 지났으니 물론 새로 장만한 자전거 할부값은 모두 갚았을 것이고 혹시 또 다른 자전거로 바뀌진 않았을까. 카메라 마니아이면서 자전거 마니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솔직하게 털어 놓은 마지막 말이 너무 솔직담백하여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자전거 여행을 했으면 자전거를 퇴역시켰을까. 그정도로 신나게 달리고 함께 하며 그가 길따라 아니 그가 만든 길로 자전거를 이끌고 다니며 만난 산천과 사람들 이야기는 너무도 인간적이고 역사적이며 지리학적이라 읽은 후에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여수의 '향일암' 그가 들려주는 향일암 이야기는 그때의 추억을 다시 되살리게 만들었다. 비에 젖어 우비를 입고 겨우겨우 많은 계단을 오르며 바위사이를 지나 빨간 동백꽃이 반기는 그 길을 지나 바다를 향하여 있던 향일암을 만났던 기억은 정말 잊을수가 없다.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꽃은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봄빛 부서지는 먼 바다를 쳐다본다. 바닷가에 핀 매화 꽃잎은 바람에 날려서 눈처럼 바다로 떨어져 내린다.' 정말 멋진 표현들과 그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눈길이 느껴지는 글들이 가슴에 꽃잎처럼 떨어져 수 놓인다. 다시금 향일암에 가서 동백꽃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지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려 바다로 떨어지는지 확인을 해봐야할것만 같은 향일암의 글들은 그 길을 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갔다면 아름다운 남해에 가다 쉬면서 만났을 다도해가 그에겐 어떻게 비쳤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그의 섬세함은 비단 동백꽃 그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매화 꽃잎 한 장에 머무르지 않고 봄나물을 먹으며 그 깊은 땅 속의 기운마져 끌어 올리듯 하여 몸서리 쳐진다. '냄비 속에서 끓여지는 동안, 냉이는 된장의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또 거기에 저항했던 모양이다. 냉이의 저항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 속으로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오르는 풋것의 비린내를 된장 국물속으로 모두 풀어 내놓는 평화를 이루고 있다.' 어디를 읽어도 정말 좋다. 자전거 여행을 하니 흙과 좀더 친숙한 시간이었겠지만 봄국 한사발에 그 긴 이야기를 봄국의 깊은 맛을 우려내듯 풀어내어 쓴 그남자의 가슴속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글이다. 소설속에서 만나던 작가 김훈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은 요리연구가의 글처럼 맛깔스럽고 빨리 냉이를 넣은 봄국 한그릇을 얼른 뚝 비우고 그 맛을 느껴봐야 할 듯 하며 그 국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는 나른한 기지개라고 켜야 할 듯 하다.

그의 여행은 사소한 것들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이 모두 그의 뷰파인더 안에 가두어 놓듯 모든것들을  글 속에 가두어 둔다. 그냥 흘러가는 가는 강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 숨쉬는 갯지렁이 하나라도 생명이라는 것으로 존재감을 들어내 놓고 그는 또 다른 길을 만들며 떠난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좋은 것일까. 소설 <개>에서 느꼈던 세심함이 이 여행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면서도 어느것 하나 소홀히 놔두지 않고 그의 글속에서 살아 숨쉬게 만드는 그만의 재주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갯지렁이의 구멍은 밀물에 쉽게 쓸려버려서 갯지렁이는 끊임없이 흙을 뱉어내며 새 집을 지어야 한다. 갯지렁이의 이 기구한 무주택의 운명이 갯벌에 지속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 갯벌은 모든 살아 잇는 것들의 터전이 된다. 갯지렁이는 온몸의 마디를 뻘밭에 밀면서 기어간다. 갯지렁이는 죽음을 통과하듯이 온몸을 뒤틀면서 뻘 속을 헤치고 나간다. 갯지렁이가 기어간 뻘 위의 자국은 난해한 문자와도 같고, 고통스런 글쓰기의 흔적과도 같다.' 갯지렁이의 흔적에 비유한 자신의 글쓰기의 고통이 느껴지는 한 줄의 글에서 작가가 남모르게 느꼈던 고통이 전해진다. 

그는 풍륜과 바람을 가르며 산을 넘고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듯 길을 달려가며 생명과 숲과 나무와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무엇보다 그가 전해주는 '사람' 이야기가 너무도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많아 가슴에 남는다. IMF의 직격탄을 맞고 아직도 방황하는 생활을 살고 있지만 희망을 일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섬진강가에서 희망을 빛내며 반짝반짝 날마다 새롭게 커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너무 인간적이라 좋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신간 '내 젊은 날의 숲' 처럼 그의 숲사랑은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편에서 너무도 세세하게 그려진다.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만 같다.' 그 한 줄에서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숲의 신성은 멀고 우뚝한 것이 아니라 가깝고 친밀해서 사람의 숨결을 따라 몸속으로 스미는 것임을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알겠다.' 해풍을 이겨내는 소나무숲에서 그가 느꼈던 친밀함은 글처럼 숲이 연결되는 느낌이다. '숲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숲의 시간은 퇴적의 앙금을 남기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흐르고 쌓여서 역사를 이루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오는 소멸과 신생의 순환으로서 새롭고 싱싱하다.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풋것의 시간이다.' 이 글에서 이미 '내 젊은 날의 숲' 은 예견된 글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한다면 어떤 자연과 우리나라를 만날까.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자연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며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있는 사람 또한 한 생명으로 더욱 빛날것만 같은 그의 자전거 여행 이야기는 길이 없어도 끝이 없을듯 하다. 전국 어디를 가도 이야기가 있고 자연이 있고 생명이 있고 생명의 냄새가 있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그가 속한 자연과 닮아 가면서 자연화 되는 그림같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인간적이면서 섬세함을 함께 하는 이야기는 풍륜을 타고 가는 물음표의 그의 모습처럼 물음표의 그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느낌표' 로 가슴이 훈훈해진다. 그가 가는 길은 언제고 열려 있어 모든 것들이 살아 숨쉴것만 같은 자전거 여행은 십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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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
이새인 지음 / 청어람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연애엔 젬병인 여자가 있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도 친구에게 빼았기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끼,아름다움을 아직 끄집어 내지 못하고 자신안에 가두어 놓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조금은 어리버리 하면서도 떨어지는 듯 하고 너무 순진하면서 도통 연애는 너무도 모르는 그런 미워할래야 미워할수 없는 사랑스러운 그녀가 있다. 스물 아홉의 그녀는 박스티에 무릎이 한참은 기어 나와서도 몇 번은 나온듯한 츄리닝에 운동활르 신고 코끝엔 빨간테 안경을 쓰고는 머리는 질끈 동여매어 여성스러움이란 찾아볼래야 어디에 박혀 있는지 모른다. 그런 박우민, 그녀가 왜 사랑스러운 것일까.

건축설계를 하는 훈남에 포커페이스이며 어디 구김이라고는 한 곳 찾아보려고 해도 없고 모든 일에 각이져 있을 정도로 말끔한 전진호, 그에겐 어린시절부터 집에서 짝을 맞추어 놓아 형제처럼 지내고 있고 당연히 결혼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나혜미라는 여자가 있다.그녀는 엄격하면서도 깔끔한 진호와는 다르게 연애도 그렇고 모든 생활이 너무 개방적이다. 남자문제를 일으키기만 하면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그녀는 한국에 있는 진호에게 피신을 오듯 와서 몇 개월 지내다 간다.그런 그녀가 갑자기 또 진호를 찾아 쳐들어왔다. 그녀를 피하기 위하여 갑자기 방이 필요했던 진호는 방을 구하러 다니다 건축계에서는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저명한 교수의 집에 방을 얻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 집은 바로 우민이 부모님이 영국으로 나가셨기에 연애에 지치지 않고 모든 일상에 보탬이 되는 게이남자 룸메이트를 원해 방을 내 놓았는데 그 집에 바로 들어가게 된 것이며 그 집은 다름 아닌 우민의 아버지 박교수가 예전 집을 다시 개축한 것으로 건축계에서는 알아주는 집인데 그 집은 비밀에 쌓여 있는 공개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집에 방을 얻게 되었으니 진호는 정말 하늘이 도왔다 생각하게 되는데 그 집의 주인은 다름아닌 그냥 내 놓아도 아무도 집어갈것 같지 않은 털털한 우민이 살고 있는 것, 여자 세입자를 원한다는 말에 자신은 게이이니 관심 끊으라는 말에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던 사람을 하늘이 보내 주신듯 넙죽 들이게 된 것이다.

그들의 '적과의 동거' 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진호에겐 십년지기 같은 일을 하는 상준이라는 친구가 있고 우민에겐 디자이너인 인희라는 친구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동거날에 모이게 되면서 상준은 우민에게 인희는 진호에게 맘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게이커플' 임을 어찌하랴. 아쉬움에 헛물만 켜는 것이 아니라 털털하고 조심성 없는 우민은 그와의 동거에 너무 흡족해 하며 그와 이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함께 술도 마실 수 있음에 좋아한다. 아마도 정이 그리웠던 모양이다.하지만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고 모든 일은 오해와 꼬임으로 그들을 불편한 관계가 되게 만드는데 그러면서 알 수 없는 가슴 울렁거림과 무언지 모를 온 몸에 힘이 들어오는 듯함은 어찌할 것인가.

자신의 이상이 아니라 다해으로 여겼던 우민이 차츰차츰 진호의 눈에 들어오게 되고 게이지만 아깝다며 부딪히던 진호가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그들, 하지만 인연의 끈은 그들을 갈라 놓질 못하고 꼬이면서도 단단하게 엮어간다. 조력자들의 힘을 얻어 둘의 사랑도 확인하고 몸과 마음을 모두 열게 되지만 진호가 일부러 박교수의 '상고재' 에 들어가 그의 상고재를 카피하고 예솔 미술관 공사 일을 따냈다는 오해가 불거짐에 따라 진호는 자신이 모든 일을 뒤집어 쓰고 일을 원상복귀 시키려 하지만 그런 와중에 그의 능력이 들어나고 그가 진실로 우민을 사랑함이 밝혀져 그들이 오해는 풀리고 결혼에 골인, 물론 미술관 공사까지 멋지게 마루리 해 주신다. 저명한 박교수의 사위로 미술관 공사까지 깔끔하게 마루리 했으니 그야마로 그의 유명세는 '승승장구' 그리고 그들의 결혼전선에도 햇빛이 비추어 2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정말 재밌다. 둘의 밀고 당기도 치고 박고 하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게 읽고 만다. 19금의 이야기도 있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정말 맛깔나게 잘 그렸다. 밀당을 적당히 하면서 적당히 꼬이면서 꼬인것들이 스스로 풀리게 만드느는 것까지 그리고 해피엔딩이 무엇보다 좋다는 것. 연애엔 젬병일것 같았던 진호와 우민이 알고보니 변강쇠와 옹녀 커플 다음으로 굉장한 커플이었다는 것. 우민이 진호를 게이로 보면서 어쩌면 더 거짓없이 그를 받아 들이게 된 듯 하다. '게이의 취향' 에서 '개인의 취향' 이 된 것이다. 게이라는 것이 정말 아까울 정도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진호를 갖고 싶지만 어딘지 모르게 꼭 한부분 빠진듯이 하는 그녀가 또한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웠던 그들은 너무도 잘 맞는 커플이다. 남녀가 닮거나 비슷한것보다 반대이면 더 잘 맞듯이 우민의 컴플렉스를 진호가 보완해주는 그들은 상호보완의 관계이면서도 찰떡궁합처럼 모든 면에서 잘 맞는 커플이었던 것.요리는 못하는 그녀 대신 핸섬한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김치찌개를 맛나게 끓인다면 그에 반하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여자의 로망같은 진호, 그를 한 눈에 사라잡은 어딘가 어리버리의 우민의 좌충우돌 연애사는 정말 재밌고 짜릿하다. 우민의 능청맞은 말들이 너무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너무 완벽함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빠지는 듯 하면서도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발휘하는, 그녀가 가진 매력이 아닌가 한다. 무릎나온 츄리닝을 벗고 하늘하늘 원피스에 목을 다 들어낸 머리에 반짝반짝 메이크업을 하고 가끔 발목을 삐기는 하지만 하이힐을 신을 줄 아는 그녀, 어찌 사랑스럽지 않은가. 멋진 진호에게 눈을 맞추어 읽어도 재밌지만 '어리버리의 대명사' 인 우민에 맞추어 소설을 읽으면 정말 더 재밌고 웃음이 나오며 가슴이 찡하다. 역시나 연애사나 인간사나 너무 계산적인 것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덜떨어져 보여도 계산보다는 자신을 마음을 들어낼 줄 알고 진심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 한표를 던지지 않을까. '당신과 있으면 나는 게이만큼이나 충분히 금욕적이 될 수 있으니 안심하시죠....불량식품 같은 여자 따위에게 내가 왜..' 그랬던 진호였는데 너무 금욕적이었나 한번에 폭발하듯 터진 욕정을 쏟아내는 진호와 우민, 정말 웃기면서도 사랑스러운 커플이다. 가을이 가기전 이런 로맨스를 한 편 읽어 보는 것도 참 좋다. 나의 사랑전선에 혹은 연애전선에 윤활유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난 소설속 커플도 부럽긴 하지만 소설속에 등장하는 '상고재' 라는 집이 더욱 부럽다. 그 집에 후원과 같은 곳에 있던 툇마루에 우민이 붙인 이름은 '세월의 속삭임' 이다.조상들이 밟고 다녔던 고재를 다시 이용하여 만든 툇마루, ' 아빠도 가끔 일이 안 풀리시면 여기 와서 이렇게 누워 계시곤 했어요. 그러면 모든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기분 나쁘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여기 와서 이렇게 누워 있곤 했죠. 그러면 마루의 나무들이 삼,사백 년 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는 기분이 들어요. 그 얘기들을 마음으로 듣다보면 내가 겪은 일들이 정말 우습고 사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좀 더 대범해지고 너그러워진다고 할까?' 그녀는 겉으로만 어리버리 했지만 사실은 속은 꽉 찬 고재처럼 세월의 단단함을 안고 있던 여자였던 것이다. 겉 멋에 치중하는 그런 값싼 여자가 아닌 내면을 더 중요시할 줄 아는 고재와 같은 여자 우민, 그런 여자를 대번에 알아보고 자신의 '불량식품' 으로 삼은 진호 그들은 정말 사랑스러운 커플이다. 한동안 소설의 여운이 잔잔히 남을 듯 하다. 가을은 역시나 로맨스의 계절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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