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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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라는 것이 어디서 오느냐? 를 자세히 살표보는 거예요. 결국 외로움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생겨납니다.'  법륜스님의 주례사라 하지만 주례사 보다는 남녀사이에 아니 부부간에 정말 보약같은 말씀이 담겨 있어 공감을 하며 읽었다. 이제 결혼을 결심한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어느정도 지나고 한참 밋밋하다고 아니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그외 감정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면 좋다. 외로움 또한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생겨난다고 하지만 모든것은 사람사이에 감정이 교류하는 '마음' 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랑 또한 달라진다고 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결심한 결혼을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본다. 마음을 얻지 못하고 믿음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모두를 취하지 못한 것처럼 언젠가는 금이 갈 수 있다. 

우리도 처음 결혼을 결심하고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남자쪽에서 궁합을 보았다. 좋지 않다며 그리 좋은 표정들이 아니었지만 난 그런것을 믿지 않기에 그 궁합이 어떻게 변할지 보여주겠다며 남편과 결혼을 하고 지금은 이십여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무리없이 잘 살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을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궁합' 때문에 헤어지거나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는 듯 하다. 그런 일로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는듯 한데 그게 상관이 있는 사람들에겐 필요하겠지만 서로의 마음이 중요한듯 하다. 서로 굳게 믿는다면 미래는 자신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결혼을 하기 위하여 남자나 여자에 많이 따지는 것은 인물 재력 능력등 겉모습에 치중을 많이 한다. '사랑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살아 보면 사랑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사랑만 있으면 모든게 가능하리라 보며 무모하게 결혼을 서두르기도 한다.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날 수 있다. 남들은 정말 쉽게 결혼을 한듯 한데 유독 나만은 무척이나 결혼이란 것이 어려운 관문처럼 여겨지고 결혼이란 환상이 점점 깨지게 된다. '사람들이 복 많다고 하는 일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돈도 있고, 인물도 괜찮기 때문에 이런 남자는 이성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욕심을 낸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왜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을 해도 잘 살았을까? '시집가면 죽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었다 생각하고 시집을 가보니 그래도 생각보다 살 만하니까 웃고 사는 거예요. 반면 요즘은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좋은 일이 생기겠지.' 라고 기대하고 갑니다. 하지만 결혼해서 함께 살아 봐도 별볼일없으니까, 괜히 결혼했다고 후회하는 겁니다.' 너무 많은 부분을 기대했기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거기에서 오는 틈을 메우지 못하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결혼은 어쩌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배려하고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자는 남자가 돈 벌어오는 기계로 남자는 여자를 돈만 아는 사람으로 취급을 하다보면 서로의 콩깍지는 금방 벗겨지고 환상이 깨지면서 서로의 단점을 장점으로 채워나가지 못하여 힘든 결혼생활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주는 행복과 불행은 달라집니다. 자기의 삶을 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늘 놀이로 생각하세요. 이게 가능할 때 인생도 행복해집니다.' 서로 단점만 보여 나의 결혼생활은 남들과는 다르게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행복만들기' 를 하며 살면 된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데 너무 자신을 너무 높은 곳과 비교 하며 산다면 그사람은 영원히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밑을 보고, 나보다 못한 아래를 바라보면서 서로에게 행복한 순간이 없다면 하나씩 만들어가며 산다면 자신도 행복해 질 수 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우리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불행한 순간들이 있다. 보여지는 겉모습만으로 모두를 평가할 수는 없다. 무척 힘들게 사는것 같지만 마음이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들 사이엔 믿음이 강하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또 다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 를 가진다면 인생이 무한히 행복해 질 수 있다.

'이렇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그사람은 늘 불행하고 괴롭고 자신이 제일 못나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양손에 쥐고 있는 욕심을 내려 놓고 마음을 비우는 순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는듯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런 순간을 나 또한 여러번 느꼈다. 쪼들리고 있지만 부모님께 조금 보태드려야 할 때, 그 돈은 내것이 아니고 아예 없었던 돈인듯 그냥 얼른 이체 시켜 드리고 나면 한결 가볍다. 세상의 짐을 모두 벗어 버린듯 홀가분하다. 비록 쪼들리며 조금 부족하게 살아야 하지만 마음은 행복하다. 하지만 욕심을 내고 있다면 결코 보탬을 드릴 수가 없다. 내것이 아니라고 비우는 순간, 행복은 내게로 온다. '무엇을 선택하든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욕심을 부릴수록 과보는 클 수밖에 없어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얻으려고 할수록 큰 화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상대에게 받으려는 마음부터 줄여야 합니다.' 요즘은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들도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자식들에게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자식들은 부모님에게서 유산을 조금이라도 더 물려받기 위하여 앞에서는 잘하는듯 하면서도 뒤에서는 계산을 한다. 하지만 얻으려고 하지 않고 진심에서 우러나 한다면 '현대판 고려장' 같은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이고 물론 부모와 자식간에도 마찬가지일터 모두의 사이에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흔히 착각하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겁니다. 단지 내가 사랑할 뿐이에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지,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니 내가 행복할 분인 거에요.'  내가 사랑한다고 상대가 사랑해줄 것이라, 아님 사랑을 강요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무리하게 요구한다는 것은 마찰을 빗게 된다. 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베푸는 사랑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사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이렇듯 이 책에는 좋은 말들이 너무도 많다. 사랑에 아니 결혼생활이나 그외 남녀사에 양념이 되고 맛을 가미할 수 있는 다양한 말씀이 김점선 화가의 이쁜 그밀과 함께 하니 더 좋다. 책장에 꽂아 놓고 생각날때마다, 아니 마음이 더러워졌다고 생각이 들 때 꺼내어 읽어 본다면 좋을 듯 하다. '인간도 이와 같이 흔적을 남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처럼 비린내가 나는 사람도 있고, 향을 쌌던 종이처럼 향내가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나간 인생은 다 흘러가 버린 줄 알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쌓이게 됩니다.' 흔히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내 못난 것을 따라하기 전에 향내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욕심을 버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좀더 행복을 만들어 가기 위하여 노력하며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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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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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이 앙증맞게 귀여운 봉오리를 손끝으로 가만히 건드려보다가 나도 이제는 내 빛깔을 조금 낮추기로 합니다. 강렬한 빛에서 담담한 빛깔로 옮겨가기로 합니다.' 정말 그 산방에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언젠가 티비에서 '집배원과 시인' 인가 하는 제목으로 작가의 일상이 나온적이 있다. 한참이나 그 속에 갇혀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던 적이 있는데 사람이 드문 곳에서 그가 세상소식을 접하는 것은 '집배원' 과의 소통이었다. 그 집배원 아저씨는 세상소식만 물어다주는 반가운 사람이 아닌 '정' 까지 듬뿍 나누어 주기도 하였는데 글 속에도 그 나눔의 정이 나타나있다. 자연속에서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자연과 맞추어 사는 것인지 모든것들의 주인양한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빛깔을 낮추지 못한것, 덜어내지 못한것으로 본다.

나 또한 산행을 못하는 체력이라 산을 즐긴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처음 첫발부터 천천히 갈 수 있는 곳까지 오르며 다른 사람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아닌 내게 전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하며 리듬을 맞추어 가다보니 나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자연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내 눈 높이를 낮추어야 볼 수 있는 자연에 반하기 시작하면서 산은 그야말로 내 전부처럼 느껴져 가지 못할때는 몸살이 날 정도이고 한번 다녀오면 한마디로 저질 체력 때문에 몸살이 나는 사이클을 반복하면서도 다시금 산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속에 있으면 겸허해지고 나 자신이 너무 작고 모두가 대등소이해지며 철마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것들은 정말로 엄청났다. 초보 산행꾼에게도 산과 자연을 그렇게 다가왔으니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에게는 자연은 어떠할까.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느끼고 보았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는듯 하여 너무도 좋았다.

이 책은 가을이 깊어 지고 있는 나무숲 의자에 앉아 가을바람과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읽었다. 정말 자연속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자연의 이야기로 쓰여진 글들을 읽다보니 그대로 그 순간에 놓여있는것만 같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속으로 들어간듯한 이상한 감정이입에 빠져 들게 되었다. 한참 지금 산에 분홍빛 노란빛 물봉선이 피어 있는 시기라 그런지 그의 글들은 내 눈 속에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듯 하여 산으로 달려 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날마다 다섯알씩 밤을 나누어 먹는 다람쥐도 친구이고 주인이 없는 집에 내려와 마당을 헤집어 놓은 산짐승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가끔 산나물을 뜯으러 오르내리는 분들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며 아침이면 자명종처럼 노랫소리로 아침잠을 깨워주는 산새 또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도회지에서 가졌던 욕심이 필요할까. 두 손안에 쥐었던 것도 놓아야 비로소 자연을 자연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산방, 그곳이 왠지 부럽기만 하다. 무엇이 이유가 되었건간에 누구나 마지막 소망은 '전원생활' 이 로망처럼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몸도 마음도 자연과 더불어 살찌우는 시인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처럼 느껴졌다.

' '선생님, 그냥  두 글자로 된 거요.' . 나는 어묵, 튀김, 라면,김밥, 만두.. 이런 두 글자들을 떠올리다. '그래, 좋다. 사줄게.' 하고 대답을 하고 학교 근처 식당으로 몰려갔는데 문을 들어서며 큰 소리로 음식을 주문하는 미란이의 목소리, '아줌마, 우리 탕슉!' ' 정말 '빵' 터졌다. 요즘 아이들을 어찌 당하랴. 두 글자 정확하게 맞다. 삶이란 내가 예견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외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선생님을 했다고 하여 자연속에서도 모두가 그를 '선생님' 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런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는지 새소리마져도 '선생선생선생..' 하고 지저귀는듯 듣는다. 자연속에서는 그가 꼴찌일 수 있다. 선배들에게 배워야 하고 자연에게 배워야 그 속에서 정착하고 그들의 일부가 되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졌던 지위와 부는 자연속에서 아무가치도 없다. 두발로 흙위에서 서기 까지는 내 온전한 힘과 그들과 적절히 힘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지 내가 가진 어깨의 힘이 아닌것이다. 

'상처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
'처음 이 산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꽉 다물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봄을 맞을 때는 너무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맞은 봄이라 진달래꽃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 번째 봄을 맞을 때는 뒤뜰의 산벚나무를 보며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 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번째 봄을 맞으면서는 소생의 힘에 대해 생각했고 고마워 봄 햇살에 절했습니다. 이제 또 봄을 맞으며 나는 다시 고요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무들처럼 자신의 표피를 벗어내며 더 단단해져 가는 방법을 그가 봄을 맞으며 깨달아가는 과정속에 모두 담겨 있다.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정말 마음이 '청안' 해 진다. '그러나 돌아오면 늘 잘 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방에 와 있으면 마음이 다시 청안해집니다. 맑고 편안해집니다. 이 숲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부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이 적당히 길들여진 사람이 적막한 숲에 적응하며 살기란 힘든 것이다. 한 두번 산행을 하거나 산에 갈때는 물론 좋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곳에서 자연과 적응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힘든 것이다. 하지만 자연속에서 몸은 점점 자연과 닮아가고 자연과 같이 해마다 나이테를 가지듯 편안해져 가는 그의 글 속에서 문득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며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내 짐을 내려 놓듯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다람쥐가 밤 알 다섯개를 먹기 위하여 찾아 오는 툇마루에 앉아 그와 생강나무꽃차를 한 잔 마시며 많은 대화가 아닌 눈빛만으로도 족할 그런 시간을 나눈 듯한 마음이 맑아지는 산방 이야기는 마음이 때를 씻어 준것처럼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숲 초대장을 받고 바로 달려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니, 이 녀석들이 진짜, 이렇게 마당을 파 헤쳐 놓으면 어떻게 해,' 하고 잔소리를 칩니다. '누가 여기에다 똥을 싸놓았어.' 하고 주위를 둘러 보지만 아무도 손드는 녀석이 없습니다.' 자연과 내가 살아가는 길은 기생이 아닌 '공생' 이다. 가끔 마당에 와서 똥을 싸 놓아도 밭을 헤집어 놓아도 그녀석들의 터전에 내가 들어와 사는 것이기에 나의 일부를 내어주며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아야지 그들의 길을 막으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헛웃음만 나오는 부분을 읽다가 마당에서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웃음이 그치지 않고 나왔다. 누가 손들겠는가. 내 마음을 비워야지.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그들이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창밖에는 풀풀 눈발이 날리는데 나는 배춧국 한 그릇에 이 저녁이 행복합니다. 다른 이들은 어디서 무얼 먹으며 행복을 찾고 있을까요.' 나 또한 요즘 친정엄마가 주신 시래기로 시래깃국을 끓여 먹으며 국 한사발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내가 족하면 세상이 다 내것이 되는 것이지 나의 행복은 남이 가치를 따져 준다고 행복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처럼 작은 것 하나에도 늘 감사를 잊지 않는 그의 삶을 보며 나의 하루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의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그리고 간접적이지만 그의 숲의 초대되어 '배춧국' 한사발 먹고 나온 듯한 개운함과 포만감이 일시에 몰려오는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더 가을 숲에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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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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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삼면이 바다이고 국토의 70%가 산이라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에는 왜 포장길인 찻길만 있고 걷기여행을 하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같은 길은 없을까? 하며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런데 나의 그런 생각을 바로 뒤엎는 '제주올레' 길이 열리고 우리나라엔 정말 '걷기 신드롬' 처럼 '걷기여행' '00 올레길' 이 여기저기 만들어지고 나타나고 그야말로 한국인 하면 '빨리빨리' 인데 음식에서도 슬로푸드가 유행이듯이 여행에도 그저 비행기 타고 '슝' 다녀오는 여행이 아닌 차를 타고 '쭉' 다녀오는 여행이 아닌 나의 발걸음 한 걸음으로 국토를 수 놓듯 자연과 이웃과 들꽃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여행길' 이 생긴 것이다. 걷기 여행의 새로운 지평을 연 (주)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씨의 올레길을 만들기까지의 역사라고 할까 배경이나 그외 올레길을 만들기 위하여 함께 한 사람들과 올레길에 깃든 사람이야기와 올레길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그런 전반적인 것을 읽을 수 있어 '올레길' 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재기재기 와리지 말앙 꼬닥꼬닥 걸으라게(빨리빨리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어라).' 라는 제주도 말이란다.
제목의 '꼬닥꼬닥' 이 무슨 뜻일까, 꼬꼬댁도 아니고 무슨 말일지 궁금했는데 '천천히' 라는 말이라니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지만 전혀 새로운 나라의 말처럼 들린다. 그래도 말이 너무 이쁘다. '세상일에 무지한 '퇴역기자'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고향이 제주였던 그녀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제주에는 자연이 더 아름다운데 하며 생각하여 일을 내게 된 사연, 우리나라는 무조건 길이라면 포장하고 보고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혀 놓고 본다. 그야말로 '하이웨이' 의 길이지 먼지가 폴폴 날리는 흙길을 찾기란 유명한 관광지라면 더욱 찾기 힘들다. 그런 곳에서 다른 힘을 빌리지 않고 흙길과 돌길로 자연이 살아 숨쉬는 길을 찾고 만들어 내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를 읽으며 때론 큰소리로 웃고 때론 목울대가 꽉 막히도록 눈물이 솟았다. <테초에 할망이 있었다> 라는 책에서도 제주도 신화속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읽고 웃었는데 제주도는 여자와 바람 돌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제주도의 탄생설화속 사람도 '할망' 이다. 그곳에 여성의 힘으로 '올레길' 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무언가 더 의미있는 일처럼 다가왔다.

'미션 임파서블이야! 우리가 정글 특공대도 아니고!'
제주에 관한 책은 몇 권 있는데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와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에서 부록처럼 다룬 '제주 올레길 걷기여행' 을 읽고 그외엔 '제주 올레' 는 사 놓기만 하고 읽지 않아 올레길에는 매체를 통해 듣거나 본것 외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내게 올레길을 만든 그녀의 지난 기억들을 되살려 놓은 이야기는 눈물이었고 감동이었다. 8코스에 해병대길이 있다면 13코스에는 '특전사길' 이 있다. '뜻하면 이루어진다' 라는 말처럼 길을 내야 하는데 장비도 사람도 만만하지 않은 참에 딱 200여명의 특전사들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그녀의 뜻을 이루어주게 되었다. '정말이지 하늘에서 딱 떨어진 것 같아요!.' '원래 특전사는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낙하산 타고요.' 이 부분 읽으며 '빵' 터졌다. 맏는 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들에 의해 아름다운 길이 또 하나 열린 것이다.

올레 마스코트 '간세' 탄생기.
'이 조랑말은 서이사장이 지중해보다 아름답다고 자랑하는 제주의 바다색으로 표현하고, 이름은 올레의 콘셉트 '간세다리(게으름뱅이)' 에서 따온 '간세' 로 부를 것이다. 장소를 설명하는 '설명 간세' 에는 안장을 얹겠지만, 방향을 가리키는 '방향 간세' 는 텅빈 그대로 놔둘 것이다. 간세의 여백은 구름과 하늘과 바다와 오름이 채우거나 풀들이 자랄 것이다. 재료는 전적으로 친향경 소재를 이용해서 만들겠다...' 산티아고에는 방향표시를 조개껍데기를 노란색으로 칠해 놓은 것을 보고 넘 이쁘다 했는데 매체에서 제주 올레길에는 방향표시를 해 주는 것이 제주 조랑말에서 따온 파랑색 디자인이 이쁘다 했는데 그 과정이 상세히 나와 있어 마음이 흐뭇해졌다. 뜻이 통하면 혼자의 힘보다는 여러갈래의 물이 보태지듯 물줄기는 점점 굵어지는 것인가보다. 제능기부를 해 주는 사람들도 늘고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도 늘고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아직은 우리 자연을 지키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처럼 거침없는 급물살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앉아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빠져 들게 했다.

그녀의 밥상에 수저를 얹어 놓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만큼 '제주 올레' 는 우리모두가 바라고 있었던 아니 언젠가는 실행이 되어야 할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필두로 하여 동생들을 비롯한 탐사대원들의 노고도 정말 대단했지만 그녀와 함께 했던 여러 분야의 전문인들 또한 자신의 일을 제처 놓고 와서 올레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뜻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이젠 불도저식 개발이 아닌 친환경적이고 자연을 생각하는 후손에게 물려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 일침을 가하는 그녀의 도전은 무모하기 보다는 서로가 살 수 있는 윈-윈 을 해야 한다는 좋은 예로 거듭난 듯 하다. 그녀의 특공대, 대포동의 뭐운 여자들, 올레의 비전에 투자를 한 여자들이 부럽기만 하다. '이제 그만 자요! 우리 근무시간이 넘 길어요. 눈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이란 말예요.' 라는 말처럼 그녀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제주의 올레' 가 '우리의 올레' 로 거듭났을 것이다.

그 길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다른 이야기도 속속 들어왔지만 '한비야' 님과의 이야기엔 더 솔깃했다. <그건 사랑이었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책들을 정말 감동적이게 읽었는데 <그건 사랑이었네>가 그 길에서 쓰여졌다니 다시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어느 해였던가. 아는 언니가 이끌고 간 모임에서 그녀, 한비야와 우연히 만났다. 첫 인상은 한마디로 '별로' 였다(그녀도 내가 '별로' 였다고 회상했다. 너무 딱딱하고 엄숙해 보였나다.)' 정말 읽다가 '빵' 터졌다. 몇 번 다시 읽어도 정말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그런 그녀들이 지금은 서로를 걱정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얼굴로 와서 올레길을 걷고 추억을 쌓았지만 그들이 마지막 돌아갈때는 모두가 하나 '치유 올레' 를 안고 간다는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분들도 휠체어를 타고 그 길 위에 서고 이별여행을 온 연인들은 올레길 덕분에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가족간에 틈이 있던 분들은 틈을 없애는 길이며 마음에 병을 얻는 이들은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올레길' 인 듯 하다. 나 또한 딸들과 한번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고등학생인 딸들은 수능에 시달리느라 마음과 몸이 무척이나 지쳐 있다. 대한민국에 학생들은 심신이 피로하지 않은 학생이 없겠지만 그녀들과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있고 마음을 터 놓고 진지한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 듯 하여 수능이 끝나면 한번 걸어보자 하였다. 나의 꿈이지만 꼭 이루고 싶다. 안된다면 남편과 함께 걸어도 좋을 길이다. '맛난 것을 먹을 때 생각나면 사랑하는 사람이란다. 그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는 뭘까? '멋진 경치를 볼 때 생각나는 사람' 이다.'

서로가 윈-윈하는 올레길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차근차근 여행하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여행보다는 '해외파' 들이 많아서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일텐데 '올레' 가 어쩌면 지역경제를 살리는 길일 수도 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를 걷기위해 스페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제주 올레' 나 그외 지역의 올레길을 걷는 이런 여행을 한다면 지역경제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거기에 사람이 그리운 분들인 할망들에게 '할망 숙소' 를 만들어 정도 나누고 용돈도 보탤 수 있고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외갓집에 온 듯한 할머니의 푸근함에 여행은 더 색다른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블로그등 개인의 웹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어디가 뜨고 나면 한동안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에서도 또한 발빠르게 대처하여 좀더 신경을 써서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준다면 서로가 사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길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다가 아니다. 관리하고 앞으로 더 좋은 길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게 관리해야 하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한가지 한가지 풀어 나가는 그녀만의 방식이 너무 좋다. 혼자서 좋은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하고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올레길' 을 보듬고 쓰다듬는 그녀가 너무 대견하다. 올레길을 찾는 여행객중에 '여자가 51%' 라고 한다. ' 길을 나서기 전에 여자는 남자보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걱정도 많다. 그러나 정작 발걸음을 떼어 놓는 순간, 여자들은 낯선 여행지 낯선 길에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놀라우리만치 잘 적응한다. 계급장과 원장의 힘에 기대지 않고, 인간적으로 소통하는 데 익숙한 여자들은 혼자서도 밥을 잘 먹고, 길동무도 빨리 사귄다. 그대, 떠나기를 두려워 말라. 바람에 걸리지 않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떠나라. 바람이 그대의 친구가 되고, 들꽃이 그대의 연인이 되어주리니. 떠난 자만이 목적지에 이르는 법이다.' 라는 말처럼 이 책을 읽고나면 여자인 나, 빨리 가방을 싸서 떠나고 싶다. 그 길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강인한 제주 할망도 만나고 저마다 추억을 간직한 이들도 만나고 나만의 추억도 만들어 오고 싶다. 그녀 혼자가 아닌, 올레길을 함께 하려는 이들이 있고 그 길을 지키고 보듬으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기에 올레길은 앞으로 우리만의 길이 아닌 세계의 길이 될 듯 하다. 올레길로 인해 제주의 자연이 새롭게 느껴지고 새롭게 다가오는, 우리가 잊고 있던 아니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 하나 되새겨질 때가 아닌가 한다. 너무도 좋은 글들과 가슴 뭉클한 사연들이나 일들이 많아 접어 놓고 밑줄 그어 놓은 부분들이 많다. 한자리에 앉아 잡는 순간부터 모두 읽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기가 아쉬웠던 책이다. 내가 지금 떠나지 못하지만 책으로 충분히 다녀온듯한 간접경험을 정말 충분히 하게 해주고 삶이란 것을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책이다. 더불어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 등 올레길로 인하여 제주의 자연이 더 지켜지고 더이상 훼손이라는 것에서 멀어지길 바라며 전작인 <제주 걷기 여행>을 읽어야 할 듯 하다. 그녀를 보지 않았어도 그녀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이심전심' 처럼 그녀를 훔뻑 느끼고 푸근한 그녀와 한번 올레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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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이성부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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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에서 작가가 지리산 종주시인인 이성부 시인과 함께 하는 부분이 나온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지리산을 오르고 그가 토해낸 <지리산>이란 시집에 이어 이 책은 '내가 걷는 백두대간'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연작시를 쓴다는 것은 어찌보면 정말 힘들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 또한 힘들지만 같은 주제를 가지고 연작시를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산행경험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역사와 자연등이 스스럼없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산' 을 만들어 낸 듯 하다. 

시인의 말 중에 ' 나는 의식적인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실행에 옮기면서 이 산행 체험과 대간 주변의 역사 문화 사람의 삶을 시와 산문으로 정리해 보겠다는 꿈에 사로잡혔다. 그 꿈은 현실이 되어 지리산에서부터 많은 시가 되어 나타났다.' 산행 경험이 시로 승화되어 나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산고를 거쳤을까. 어느 시인은 생에 단 한편의 시만 남겼다는 분도 있고 다작을 한 시인도 있지만 산행은 흔히 에세이나 여행서로 많이 다루어졌지 '연작시' 로 다루어진것은 흔하지 않은듯 한데 그 또한 詩로 읽는 맛이 괜찮다. 어쩌면 시가 더 솔직하게 맘을 표현해내지 않아 싶다.

'퇴계가 <유소백산록>에서 '처음에 울적하게 막혔던 것이 나중에는 쾌함을 얻는다' 라고 한 것은, 공부하는 과정을 산행의 과정에 빗대어 한 말이기도 하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나 또한 산행을 해보지도 잘하지도 못했지만 시작을 해 보았다. 시작이 우선 반은 산을 오른듯 하여 처음엔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게 되었는데 점점 그 길은 늘어나게 되었고 정상까지 가게 되었지만 처음엔 정말 무언가 꽉 막혀 있던 마음이 산행후엔 모든것이 후련하게 씻겨 내려간듯한 느낌을 받은 경험이 많아 산은 내 동경의 대상이며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 나는 산에 오를 때, '왜 내가 산에 오르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 내가 시를 쓸 때마다 '왜 쓰는가' 라고 묻지 않는것과 같다. 이 산에 오르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렵게 올라가는 과정이 좋고, 이것들이 되풀이 됨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말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의 연작시 중에 '산을 배우면서부터' 의 일부분을 옮겨 보면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느껴질 대는 이미/ 그것들 저만치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산과 내가 한몸이 되어/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잊어버렸을 때는/ 머지않아 이것들이 가까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집과 산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슬픔과 외로움도 산속에서는/ 저희들끼리 사이 좋게 잠들어 있음을 보았다/ ' 그의 시는 읽으면 그냥 산행을 느낄 수 있다. 산에서 흔하게 만나는 조릿대도 그의 시어가 되어 동행을 하던 친구가 늦어져 그를 기다리면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여유 또한 시의 일부가 된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왜 시를 쓰는가' '어떻게 시를 쓰는가' 가 아닌 '그냥 모두가 시' 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에게 산행은 시의 일부이기도 하다.

'거창 땅을 내려다보다' 에서는 우리의 슬픈 역사 또한 시가 된다. '우리나라 산골 마을 어디에도/ 육이오 때 숨져간 억울한 혼령들 없을까마는/ 이 산 아래 거창 땅은/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누가 들어도 노여운 역사 하나를/ 더 가지고 있어 내 발걸음 잠시 멈추어야 한다/...... 어른 남자 뼈 일백아홉 명/ 어른 여자 뼈 일백팔십삼 명/ 어린것들 뼈 이백이십오 명/ 저 눈망울 선한 아기들도 빨갱이라고?/ 이러고도 우리나라 여기까지 왔으니/ 참 요행타!/'  아픈 역사가 그대로 시속에 녹아 들어 구천을 떠도는 그 영혼들과 함께 하고 있는 듯 하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라는 시는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살아갈수록 내가 작아져서/ 내 눈도 작은 것으로만 꽉 차기 때문이다/ 먼데서 보면 크높은 산줄기의 일렁임이/ 나를 부르는 은근한 손짓으로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봉우리 제 모습을 감춘다/ 오르고 또 올라서 정수리에 서는데/ 아니다 저어기 더 더 높은 산 하나 버티고 있다/ 이렇게 오르는 길 몇번이나 속았는지/ 작은 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가두고/ 그때마다 나는 옥죄어 눈 바로 뜨지 못한다/ 사람도 산속에서는 미울이나 다름없으므로/ 또 한번 작은 산이 백화산 가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것도 하나의 질서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는 다산 정약용이 일곱살 때 지었다는 한시 '소산폐대한 원근지부동' 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다산은 일곱살때 깨달은 것을 시인은 예순이 넘어서 깨달았다며 쓴 시인데 산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인생의 굴곡및 삶의 진리를 보는 듯 하여 욕심 또한 부질없음을 느낀다. 전작인 <지리산> 또한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그가 시로 표현한 지리산은 또 어떤 맛일지 사뭇 기대가 된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을 읽고 바로 읽어서인가 '지리산' 으로 아니 가을 속으로 여행이나 산행을 가고 싶어졌다. 산속에 있음 무념무상으로 비운 후 자연으로 모두가 채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오로지 '자연' 이 내 몸을 다 지배하는 그 순간을 연작시로 만난듯 하다. 산행을 가며 이 책 한 권 들고 가서 다리쉼을 하면서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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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이혜영 지음 / 한국방송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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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의 천왕봉' 이라고 좋아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 산은 '오르는 산' 은 아닌가 보다. 대부분 '산 징그러워서 안 간다.' 는 대답이다. 그들에게 지리산은 국립공우너 1호도 아니고, 등산의 대상도 아니고, 마냥 '큰 산' 이다. '천왕봉에 세 번 눈이 오면 이 마을에 첫눈이 온다' 는 말처럼, 오고가는 시절의 기준점 정도랄까? 어느 할머니는 한 번도 그 꼭대기에 오른 적이 없다.' 워낙에 대장장이네 집에 칼이 무디고 없듯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늘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 보다는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살지 그것을 속속들이 탐한다거나 타인들 보다는 더 집착하지 않는다. 지리산 또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보다는 외지인들이 더 많이 종주를 하고 그곳을 올랐을 것이다. 요즘은 '걷기여행' 의 한 방편으로 '둘레길' 이 알려지면서 그들에겐 일상이던 것들이 외지인들에게는 여행의 별미처럼 찾게 되는 장소가 된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스페인에 '카미노 데 산티아고' 에 의한 영향처럼 제주도에 '올레길'  걷기여행이 생겨나고 지리산에 둘레길 걷기여행뿐 아니라 그외 많은 곳에서 잊혀졌던 서민의 길이 부각되고 있는 듯 하여 나름 너무 기분이 좋고 나 또한 그 길을 한번 꼭 걷기여행을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다. 

멀리 해외로 나가 걷기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하며 정 많은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맘껏 우리국토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다니 외화낭비를 하며 멀리 가는 것보다 우리것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듯 우리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이 길은 너무도 유명한 티비 프로인 '1박2일' 에서 출연진들이 제5코스' 를 나누어 여행을 하며 보여 주어서인지 더욱 생생하게 느끼며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지리산 그 기운을 난 올봄에 느끼고 왔다. 구례와 하동 등을 돌며 그 아름다움에 취해 아쉬움을 남겨 놓고 온 곳이라 그런지 책을 읽으며 더욱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정말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을 한번 꼭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며 빨리 지리산을 한바퀴 둘러 걸을 수 있는 찻길이 아닌 마을길 밭길 논둑길등 좀더 우리네 삶과 접촉할 수 있는 그런 사람냄새 하는 길이 열리길 바래본다.

'누구와 걷느냐에 따라 길도 표정을 달리한다.' 
맞는 말이다. 함께 걷는 이가 정말 맘에 드는 사람이라면 그 길은 향기를 더욱 진하게 발산할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서로 마음을 나누고 자연과 교감을 하면서 숨겨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삶을 조율하듯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걷다보면 모든것은 긍정적으로 그리고 밝게 변하지 않을까. 작가가 <지리산> 종주시인인 이성부 시인과 함께 하며 걷는 여행에서 한 말이 무척이나 공감이 가 밑줄 쫙 그으며 이성부 시인의 책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그가 발로 디디고 마음으로 써낸 <지리산>은 어떤 느낌이고 백두대간을 오르 내리며 쏟아 낸 느낌은 어떤지 느끼고 싶어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를 먼저 구매하여 읽게 되었다.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은 역시나 어머니 품 같고 할머니 품 같은 '지리산' 인듯 하다. 그곳을 봄여행을 하였지만 얼마 돌지 않았지만 너무도 갈 곳이 많다는 것을느꼈다. 그렇다면 사시사철 보여주는 그 맛 또한 다를 터인데 철마다 옷을 갈아 입듯 하는 '지리산' 은 또 어떤지 무척 궁금해졌다. 주로 봄에 많이 그곳을 찾은 듯 한데 다른 계절을 보고 싶어졌다. 한창 곡식이 풍성하게 결실을 맺는 계절인 가을 또한 그 풍경이 아름다우리라. 함께 하면 좋은 사람과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둘레길을 함께 한다면 어떨까.

'길과 연애하듯 콩닥콩닥 걸어간다.'
빨리 걸어서 좋은 길이 있는가 하면 연애하듯 천천히 콩닥콩닥 걸어가면서 그 길의 역사와 자연과 이웃과 함께 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연애를 할 때는 세상 누가 뭐래도 둘만의 행복감으로 두세 배 찰진 순간을 산다. 이쪽에서 가는 사람도, 저쪽에서 오는 사람도 모두 콩깍지에 씌인 듯 사랑에 빠진 표정이다.' 걸어서 행복한 길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자연에 맞추어 살기 위한 그들이 노력이 '집체예술품' 이 된 다랑이 논이 그곳에 있다. ' 돌을 골라내 논둑을 쌓고, 당을 걷어내 평평하게 만들고, 바닥에 자갈을 깐 후 점토를 채워 물이 안 빠지게 만들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뿌리고, 마지막에 논에 물을 대는 수로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게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옛날 산중 마을에서 사람 말고 동원할 힘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낸 다랭이 논의 아름다움을 일박이에서도 헬기촬영으로 미리 맛 보아서인지 마음은 누렇게 익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런 풍경과 마주하면 한참을 가만히 서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듯 침묵해야 할 것만 같다. 빨리 지나치면 그 모든것은 내것이 되지 않는다.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야 비로소 내것이 되고 내 안에서 녹아 내릴 수 있다. 연애하듯 작은 것에 감사를 하고 품에 안는다면 더없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이 나무가 200년이 넘은 배나무인데, 쉰여덟 살 먹었어.'
지리산 하면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많은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한 지리산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병주의 <지리산> 이태의 <남부군> 김동리의 <역마> 박경리의 <토지> 문순태의 <피아골>과 <철쭉제> 김주영의 <천둥소리> 송기숙의 <녹두장군>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의 무대이기도 한듯 하다. 이렇듯 셀 수도 없이 많은 문학작품의 무대가 되듯 그곳은 웅장한 자연이면서 역사이다. 봄 여행에서 악양의 '최참판댁' 을 들렀다. 그곳에서 만난 '박경리 토지문학관' 과 이병주 문학관은 들르지 못해 아쉬웠는데 <토지>를 무척이나 실감나게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멀리 악양 들판에 서 있는 부부송, 문학작품속이 아니어도 그저 걷다보면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그곳인듯 하다. 그 모든 것을 품에 안듯 하는 지리산, 어디를 가도 언제 가도 가고 또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봄에 들렀던 '운조루' 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와 반갑기도 했다. 그냥 지나치려다 운좋게 들렀던 '운조루' 금환락지형인 그곳에 아직도 후손이 살고 있고 넉넉한 인심인 '타인능해' 처럼 마침 우리가 여행을 갔던 날이 결혼식날이라며 우둘두둘하고 두박함이 돋보이는 역사를 말해주는 마루에 '떡접시와 과일접시' 는 누구나 와서 퍼 가도록 했던 뒤주인 타인능해의 마음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듯 했다. 

그녀가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것은 자연과 넉넉한 인심과 이웃 그리고 역사 그 모든것을 품고 있는 지리산이었다. 어떻게 여행을 해도 누구와 여행을 해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정말 좋은 여행지이며 걷기여행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내 발로 한 발 한 발 걸어서 지리산에 내 발자국을 수 놓을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마을길도 오솔길도 고갯길도 옛길도 강변길도 모두가 지나고 나면 우리 국토이고 올망졸망 우리네 풍경이니 더없이 좋을 듯 하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과 더불어 부록처럼 '제주도 올레길 걷기여행' 을 첨부해 놓았다. 둘레길과 올레길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는 그녀의 말처럼 올레길과 둘레길은 틈새여행상품처럼 갑자기 부각되어 멀리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 아닌 우리네 자연과 우리네 이웃을 느낄 수 있음이 더 좋은 여행이다. 산티아고에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둘레길과 올레길의 화살표와 숲길과 바닷길이 있다. 길과 연애하듯 함께 하는 이와 연애하듯 걷기여행을 한다면 정말 좋을 듯 하다. 나 또한 언젠가는 꼭 한번 연애하듯 하는 걷기여행을 갈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800리를 모두 걸어 볼 수는 없겠지만 한 부분이라도 내 발로 걸으면서 느낀다면 자연과 정과 건강까지 모두 챙길 수 있는 여행이 될 듯 하다. 오목조목 자세하게 지도와 함께 민박집 그리고 꼭 필요한 내용들이 알차게 들어 있고 올레길까지 있어 눈요기로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책이다. 직접 걷기여행을 할 수 없다면 책으로나마 그 기분을 간접적으로 풍요롭게 느낄 수 있으며 언젠가 훌쩍 떠난다면 그 밑바탕을 될 수 있는 책이다. 역사가 어렵다면 그저 자연과 이웃을 벗삼을 수 있는 여행으로 가을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아, 빨리 떠나고 싶다.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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