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6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희동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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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함과 달콤함이 한데 뒤엉킨 이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나는 망설인다.'
처음 시작부터 무언가 무겁다. 울적함과 달콤함, 그에 반하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것만 같아 빨리 읽고 싶어지는 부피가 작은 책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을 읽어본다는 것이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다 만난 그녀가 19세에 발표한 18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슬픔의 무게처럼 무겁기도 하면서 한참 사춘기의 그녀가 겪어야 했던 사랑이 담겨 있어 달콤한 이야기에 금방 빠져들게 되었다.

마흔이 넘은 바람둥이 아버지와 18세 소녀 세실은 엄마를 잃어 둘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 15년 동안 홀아비로 살아온 아버지는 늘 여자가 있었고 지금 또한 엘자라는 스물 아홉의 여자가 있다. 세실은 기숙사에 생활하다 나와서 아버지와 엘지와 함께 휴가를 간다. 그런데 그 휴가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의 친구인 패션일을 하는 안느를 부른 것이다. 엘자라는 여자가 있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딸 세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안느는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와 비슷하지만 결혼실패후 혼자 사는 그야말로 정숙하면서도 틀에 박힌 것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여자로 한때 세실이 그녀에게 가서 머무르기도 했다. 

그들이 휴가를 간 곳은 남프랑스 어느 해변, 아버지와 엘자는 역으로 안느를 마중나가고 세실이 그곳에서 사귄 대학생 오빠인 사릴르와 달콤한 시간을 보낼때 그녀가 도착한 것이다,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그렇게 그녀가 도착하고 역에 마중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아버지와 엘자, 아버지는 안느를 보면서 표정이 너무도 확연히 달라졌다. 밝은 얼굴의 아버지,옆에 있는 엘자를 생각지도 않고 새로운 여인에 흡족한 아버지를 세실은 못마땅한듯 받아 들인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이상한 휴가생활은 계속되고 세실은 뜻하지 않게 만난 옆 별장의 시릴르와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어느날 아버지는 파리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즐기고 오자고 한다. 야유회복으로 갈아 입은 안느의 모습은 정말 고혹적이면서 엘자와의 젊음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야유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와 안느, 세실과 엘자는 아버지를 찾아 보다가 세실이 그 둘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의 사이가 이상하게 발전한것을 감지하게 되고 엘자는 그런 그들 곁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별장에 돌아온 세실에게 아버지는 안느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자유로운 생활에 젖어 있던 세실에겐 아버지의 정착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동안 엘자와 살고 있었기에 갑자기 나타난 안느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이 되기도 했지만 결혼 결심후에 달라진 안느의 태도에 무척 반향심을 가지게 된다. 사춘기의 특성이 나타나듯 세실은 안느를 아버지에게서 떼어 놓으려 작전을 짠다. 자신의 공부와 모든 것에 시시콜콜 참견을 하는 그녀가 밉기도 하다가 의지가 되기도 하는 세실, 아직은 그녀의 본심을 모르기에 어린 세실은 엘자와 시릴르를 이용하여 아버지에게서 안느를 떼어 놓고 엘자와 함께 하던 예전의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가고픈 생각에 집착한다. 그런 어느날 엘자가 옷가방을 가지러 오고 시릴르와 그녀에게 자신의 작전을 모두 이야기를 하여 총지휘자로 나서며 안느를 떼어 놓기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좋기도 하여 점점 자신의 의도했던 대로 돌아가는 작전을 멈추고도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급기야 엘자에게 눈을 돌린 아버지가 그녀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안느에게 들키게 되고 안느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차에 오른다. 그런 그녀에게 비로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세실, '안느, 가지 말아요. 잘못했어요. 내 탓이에요. 이제부터 모른 걸 설명할 테니..... 우린 당신이 필요해요.' 했지만 그녀는 '너에겐 아무도 필요치 않아. 너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하며 안느는 기어이 떠나고 만다. 

안느가 떠난 후에에 비로소 자신들에게는 안느가 필요했음을 절실히 느끼지만 안느를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다. 세실은 아버지에게 안느에게 편지를 쓰자며 함께 후회의 편지를 쓴다. 그런 도중에 전화를 받게 되고 안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전해듣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의 죽음은 교통사고를 가장한 자살이란 말인가. 실연의 아픔에서 오는 감정의 폭발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가 스스로 택한 죽음 앞에서 비로소 안느가 자신들에 했던 모든 것들이 진심이었고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세실과 아버지, '안느! 안느!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그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 본다. 그러자 무언가가 내 안에서 솟아오르고, 나는 그것을, 눈을 감츤 채 '슬픔' 이라는 이름으로 맞이한다. 이제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 이라고 말하는 세실. 그들은 안느의 죽음 이후 예전과 같은 자유생활에 돌아간다. 슬픔을 뒤로 한 채.

세실이라는 소녀가 숙녀로 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과 같은 이야기와 아버지의 재혼문제가 얼히면서 그녀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 자신 또한 옆 별장의 대학생 오빠인 시릴르와 육체적인 사랑까지 나누게 되면서 아버지와 안느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안느가 죽고 난 후 시릴르와 자신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닌 육체만 원했던 것이란 것을 깨달게 된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동안 누렸던 자유생활,방탕함 속에서 정착하려 했던 여인인 안느는 그들에겐 자유스런 삶을 종지부를 찍게 해주는 그런 울타리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런 삶이 이제 막 성장을 하려는 세실에겐 그동안 누린 자유를 한꺼번에 박탈당하는 듯 하여 싫었던 것이다. 엄마의 죽음이후 그녀가 누렸던 자유가 하루아침에 울타리가 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것이 또한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인생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슬픔이여 안녕' 은 소녀 세실 뿐만이 아니라 안느나 그외 인물들에 대한 감정 묘사가 탁월하다.19세가 썼다고 보기엔 정말 성숙한 소설로 1950년대 전쟁후 젊은이들이 겪어야 했던 공허와도 일맥상통한다니 다시금 소설속을 들여다보게 한다. 만약에 안느가 죽지 않고 아버지와 연결이 되어 세실의 새엄마가 되어 새로운 삶에 그들이 갇히게 된다면 소설은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슬픔도 이별도 인생의 한 길인 것처럼 그녀의 죽음을 뒤로 하고, '슬픔이여 안녕' 을 고하고 다시금 그들만의 생활로 돌아가는, 다시 시작되는 인생 이야기가 얼마전 아버지와의 이별을 한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슬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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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스토리
황경신 지음 / 북하우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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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겐 아직 낯선 이름 황경신, 그녀의 책은 솔직하게 처음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무언가 달콤함이 가득할 듯 하여 구매를 했다. '황경신의 한뼘 스토리' 라고 부제가 붙어 있어 무얼까 했는데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해야할까 달콤하면서도 생각의 깊이를 가지게 하면서 상상의 날개를 퍼득이게 하는 단편들이 봄,여름,가을,겨울 편으로 나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요즘은 사진이 함께 곁들여지는 포토에세이가 많은데 계절을 나타내는 사진이 있고 색이 있고 짧지만 여운을 깊게 줄 수 있는 단편들이 있으니 포토에세이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화라고 하기엔 그렇고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해야할지 성장을 한참 하고 있는 그런 글들인듯 하다.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코끼리편에서는 생각이 얼마나 긍정적이냐에 따라 목표로 한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우리의 생각에 무거운 코끼리가 스케이트를 탈수 있다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 그렇게 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동물들은 그런 코끼리의 꿈을 이뤄주기 위하여 모두가 긍정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내어 놓는다. 그렇게 하여 한가지 한가지  맡아서 하기도 하고 모두가 함께 어울려 그가 어떻게 하면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지 실행에 옮긴다. 코끼리가 스케이트를 탈만한 장소가 있을까, 그렇다 북극에 가면 북극곰도 많고 항상 얼음에 덮여 있으니 코끼리에게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그러면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과 코끼리에게 맞는 스케이트를 장만하면 된다. 그렇게 하여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코끼리의 소원인 스케이트를 타게 해 준다. 얼마나 기발한 상상인가. 동화로 나온다면 아이들에게는 멋진 상상을 줄 수도 있는 참 이쁜 동화 한 편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난 이 글에서 '긍정적 사고' 를 끌어내고 싶다. 며칠전 큰딸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열심히 노력을 했으니 자꾸 시험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자신이 없어진다고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긍정적인 생각과 자신감,나는 할 수 있다.' 였다. 그렇게 자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넌 할 수 있어. 최선을 다했고 너의 노력의 결과가 보여지고 있잖아. 할 수 있어.할 수 있다는 마음이 문제야.' 라고 해주었는데 녀석도 그런 엄마의 말이 좋았던지 밝게 웃었다. '엄마 내가 성적이 부쩍 오르고 있는거 모르지. 중간고사도 많이  오르고 모의고사도 오르고 기말고사도 잘볼께.' 엄마의 힘을 실은 한마디에 부쩍 화색이 돌던 녀석의 얼굴이 이 글을 읽으며 생각이 났다. '코끼리야, 기억해, 이 세상에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면 이룰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 그리고 우린 지금 막 그 중의 한 가지를 해낸 거야.' 라는 마지막 글이 여운을 길게 남겨준다.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아니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행복하다고 아니 내 인생은 온통 불행뿐이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갔더라면 내 인생은 다르게 변했을 터인데... 그런데 만약에 다른 길로 갔다고 해도 지금과 똑같은 생을 살게 된다면 무어라 말할까. 물음에 답처럼 그런 따듯한 단편 소설이 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부제로 '그남자,불행했을까?' 이다.지금 막 결혼을 한 젊은 부부가 있다. 그들은 가진것이 없어 곰스크로 가는 열차표밖에 살 수가 없었다. 그곳은 멀기도 하여 가는 중에 열차가 작은 역에서 섰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떠난다는 기차,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언덕을 산책하고 내려왔는데 기차가 가버렸다. 다음날에나 오는 기차를 위해 식당에서 방을 얻었는데 숙박비가 없다. 식당의 일을 도와주고 숙박비를 지불한 그들은 다음날 기차를 타러 갔지만 전날 표이기에 기차를 탈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여 뜻하지 않게 식당에 머무르게 되었지만 여자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곰스크에 간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던 그들에게 그곳은 종착역이 되었던 것이다.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작은 학교의 교사가 되어 뿌리를 내리게 된 그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타야만 했을까?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갈림길에 설 때가 무척이나 많다. 이쪽일까 아님 저쪽일까? 어느쪽을 택한다 해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자신이 노력하며 살기에 달려 있는듯 하다. 먼저 생각하고 선택한 곳에 가지 못한 미련이야 남겠지만 그 길을 택한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는 따듯한 봄날에 파릇하게 솟아 오르는 새싹과 같은 삶의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에게 남겨진 동전하나, 불행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동전하나가 있다. 먼저 행과 불행을 맛본 사람이 다른 이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가는 동전, 그리고 그 동전을 주운 사람이 전화를 하면 전의 주인에게 전화가 간다. 그렇게 그 동전의 쓰임을 이야기 해주고 다음 사람에게 일어날 행과 불행의 비율을 이야기 해준다. 그렇게 우연하게 마법과 같은 동전이 하나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제일 먼저 시작된 것은 불행이다. 모든것이 들어 있던 가방을 잃어버린 것이다. 불행이 먼저 닥쳐왔다. 그렇지만 방금 주운 동전이 하나 손 안에 있다. 전화를 하니 전 주인이 불행을 맛보았으니 이젠 행운이 올것이라 한다. 그럴까? 그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자 정말 우연처럼 친구가 자신의 잃어버렸던 가방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백화점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낯익은 가방을 주운 친구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려다 전화가 걸려와 받았더니 이벤트 당첨을 알리는 전화였다며 그녀에게 행운을 전해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불행이 닥쳐올까. 동전을 계속 가지고 다녀야 할까. 그냥 전화박스에 두고 나오는 동전 한 닢, 행과 불행을 점쳐 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니 인생은 어쩌면 행운과 불행이 조화롭게 연속되는 그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이야기는 짧지만 이 또한 긴 여운을 남겨준다. 어떻게 자신에게 달콤한 행운만 취득할 수 있겠는가. 초콜릿이 가득 든 상자에서 하나를 꺼내어 먹다보면 맛있는 것도 맛없는 것도 먹을 수 있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취사선택없이 모두를 먹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 책에는 그런 느낌의 글들이 가득하다. 재미있을 수도 있고 혹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의미를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그런 '초콜릿 상자' 같은 많은 단편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듯한 봄햇살을 전해주듯 한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동심을 잃어버리듯 상상의 날개를 스스로 접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 성장점을 지금 막 글들에서 흡수를 하듯 따듯한 수액은 모세혈관을 타고 온 몸 구석구석 흘러가는 듯 하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초콜릿 상자속 같은 '초콜릿 우체국' 은 그야말로 제목처럼 따듯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햇살이 스미는 이야기' 로 무언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것을 충전시켜 준다. 한뼘 따스함을 전해 받을 수 있음이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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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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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접해보는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책은 나오자마자 바로 구매를 해 놓아 책장 한 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추리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때문에 빠져 들게 되었고 가을과 겨울은 스산함 때문인지 추리소설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며 늦은 시간에 읽는다면 특히나 그 맛을 두배는 더할 수 있어 추리소설에 빠져들수 있다. 이 소설은 늦은 시간에 읽기 시작하여 밤시간에 읽게 되었으니 <생존자,1명>을 읽을 때는 왠지 모르게 혼자 깨어 있어서일까, 문득 어디선가 살인자가 날 노려 보고 있는 착각이 들어 가끔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무섭다면 낮에 읽었어야 했는데 좀서 스릴을 즐기기 위해 늦은 시간에 잡아 든 것이 스릴있게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와 <생존자,1명>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라는 세 편의 이야기는 모두 '밀실트릭' 이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눈 오는 산장이며 생존자 1명은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숨 막히는 살인이면서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탐정소설을 좋아했던 친구 네 명이 한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탐정소설속의 직접적인 주인공이 되어 보는 소설로 반전이 숨어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고 하여 어렵다거나 하지는 않다. 읽다보면 재밌게 빠져 들 수 있으며 범인을 추리해 낼 수 있지만 '멋진 반전' 이 숨어 있어 작가만의 독특하면서도 생생한 상상력 속에서 풍부하게 부유하며 한동안 긴장감과 오싹함에 잠시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가게우라라는 명탐정과 그의 조수 노릇을 하는 다케우라가 어느 행사에 초대되어 그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자신의 화려한 명탐정 생활은 하지만 돈이 되지 못해 늘 돈의 부족함에 허덕이는 가게우라는 돈이 되는 일만 찾아 하고 싶다. 좀더 풍족한 삶을 살려는 그에 비해 백수처럼 빈둥빈둥 하던 탐정소설을 좋아하는 다케우라는 명탐정인 그의 조수가 되어 한편으로는 지금의 삶을 그보다는 좀더 즐기며 살고 있다. 돈보다 좀더 재밌고 탐정일을 하면서 직접 자신이 그 상황을 추리할 수 있음이 좋은 다케우라, 그들에게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초대된 산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가게우라는 그들이 자신을 고용하지 않는다면 돈이 되지 않는다면서 일을 회피하듯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조수인 다케우라는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난 일에 열심으로 뛰어든다. 너무 돈돈돈돈 하는 가게우라가 미울지경이다. 초대된 손님으로 명탕정인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살인사건을 해결해 줄 수도 있으련만 돈을 좇는 그는 엉뚱한 범인을 지목하고 다케우라는 그런 그가 이상하다고 여기다가 마침내 그런 그를 죽이고 자신이 그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을 하여 새로운 '명탐정' 이 된다. 돈의 욕심이 불렀던 명탐정 가게우라의 죽음, 인간의 욕심이 어떻게 그 끝은 맞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반전이 있기도 한 이야기며 정상이란 누군가는 늘 노리고 있으며 그 정상을 지킨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 또한 보여준다. 정상을 노려서 벌어진 사장의 죽음이나 명탐정 가게우라의 죽음은 좀더 욕심을 놓았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삶을 뒤돌아 볼 수 있음도 전해준다.

생존자 1명, 신흥 기독교 집단에 휘몰려 가족과 지인들에게 자신들이 어디로 떠난다는 말도 없이 지하철 폭파로 많은 희생자를 낸 이들이 함께 어느 섬에 버려지게 된다. 말이야 현실이 좀더 잠잠해지면 해외로 빼돌려 주겠다는 책임자들의 말을 믿고 '배합사료' 와 같은 식량을 실고 섬에 갇히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이나 그외 섬을 탈출해 보려는 시도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해외로 나가게 될 것이란 안이함에 빠져 무방비 상태로 있지만 그들의 책임자도 섬을 빠져 나가고 그런 후에 한 명 한 명 죽음을 맞이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와 비슷한 구도이기도 한데 약간은 변형이 있다. 남자 둘 여자 둘이 버려지게 된 사람들, 그들은 그곳에서 원하지 않으면서도 몸을 섞게 되고 그러면서 많은 시간이 지난후에야 자신들이 버려졌고 죽게 될 것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섬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그 섬 또한 사람들 머리에서 잊혀진 섬이라 오가는 배 또한 볼 수가 없다. 봉화도 올려보고 뗏목도 만들어 보지만 육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언젠가는 죽게 되고 만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섬을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한 명 한 명 죽어 나가다가 최후에 두 명의 여자 두명만 남았는데 한 명의 여자는 몸에 살이 붙고 한 명의 여자는 빼빼 말랐다. 이유인즉슨 한 명은 임신을 했던것, 그런가 하면 빼빼 말랐던 여자 또한 훗날 임신을 알게 되고 식량은 점점 바닥이 나지만 뱃속의 아이만은 살리고 싶은 모정이 반건의 결말을 가져온다. 자신들은 누군가에 의해 자의든 타의든 남의 목숨을 무참히도 앗는 그런 인물이 되었지만 자신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은 어쩔 수 없이 꼭 지키고 싶었던 그녀들, 그들의 이야기 또한 재밌게 펼쳐진다.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어릴적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어릴때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그가 야구선수가 되어 있을까.그렇지 않다는 것이 인생이고 우리네 삶이다. 그렇다면 어릴적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한 사람들은 무엇이 꿈일까. 그 명쾌한 해답이 여기 이 소설에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동호회 활동처럼 함께 모여 늘 함께 하던 그들이 한남자와 한여자가 사귀게 되면서 모임활동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그러다 그들의 소식은 뜸하게 전해지고 그들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게 되고 아내마져 큰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에게서 초대장이 날라왔다. 관과 같은 큰 저택을 완성하기에 앞서 모임을 갖고 싶다며 친구들을 초대한 것이다. 그런 주인장 남자는 오래전 전설속에 나오는 듯한 관을 짓고 그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명탐정놀이' 를 하기 위하여 학예회처럼 친구들과 그들 부부 또한 모두 소설속 주인공이 되듯 놀이를 해 나간다. 관과 함께 전설속 이야기와 놀이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풀리지 않을것만 같던 명탐정놀이의 해답을 풀어 내는 순간, 친구인 주인 남자는 마지막 커튼콜처럼 그들에게 편지 한 장을 남겨 놓고 사라진다. 지금까지 모든 것은 그들 부부의 마지막을 위한 '쇼' 였던 것이다. 중병에 걸린 남자와 암이 재발한 아내가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어 더이상 이승에 끈을 이어갈 희망이 없자 마지막을 우위하여 친구들을 추리소설속 주인공이 되게 불러 그들을 직접 끓여 들었던 것. 전설이 점점 현실이 되어 가면서 작가의 노련미가 보여지는 듯한 이야기였던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는 결말이 서글퍼 슬픈 이야기였다. 

하지만 위 세 편의 이야기는 '밀실' 이라는 트릭이 있어 읽으면서 더욱 재미를 준다. 명탐정도 별 수 없는 한 인간이라 언젠가는 그 명성을 남겨 놓고 죽을 수 있고 섬에 갇혀도 언젠가는 무슨 방법으로라도 탈출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함께 하며 그들이 그렇게 죽어가야 했나 하는 반문도 가져보게 한다. 좀더 미리 살기 위하여 서로의 머리를 맛대었다면 죽음이 아닌 모두의 생으로 보답을 받을 수 있었을테인데 '원죄' 가 있기에 그 원죄에 대한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없엇던 그들의 마지막 처참함은 쓸쓸했다. 그런 반면에 친구들이 모두 모아 놓고 죽음을 맞게 된 부부의 슬픈 이야기 또한 재미와 스릴이 있으면서도 인생 한토막을 훔쳐 본 듯한 서글픔이 있어 쓸쓸했다. 작가는 밀실트릭을 재밌게 그려나갔고 그에 준하는 반전을 주어 읽는 재미를 더했기에 처음 접한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그의 책을 눈여겨 봐야 할 듯 하다. 겨울의 문턱에서 추리소설을 읽었다는 것은 겨울의 그 쌉쌀한 맛을 본 것처럼 좋았다. 작품속에 언급된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은 읽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책이고 눈여겨 보고 있는 작가인 엘러리 퀸이라 올겨울에 꼭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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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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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주 씨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의사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죠. 서인주 씨는 유복녀였습니다. 서인주 씨의 모친 이동선 씨는 그 후 10년간 보상금과 유산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통원치료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때 서인주 씨의 나이가 열한 살이었고, 그 후로는 외삼촌 이동주 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동주 씨가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죽었을 때 서인주 씨는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불편하고 불행한 가족사다. 정희의 친구 서인주의 가족사는 왠지 화가 '뭉크' 의 가족사를 보는 듯 하다. '절규' 의 작가 뭉크의 가족사 또한 죽음과 일관된 불안과 공포였다.그 역시나 죽은 가족들처럼 그런 불행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여 그의 그림에는 불안과 공포를 여실히 들어내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뭉크의 생과 가족사가 떠오른 것은 그림과 죽음과 연관되어서일까.

작가의 작품은 세번째 마주한다. <붉은 꽃 이야기> 라는 단편을 처음 접하고 강한 느낌을 받아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단편이면서 연결된 연작 또한 그림과 관련된 작품이면서 살고 싶어 하지만 식물처럼 말라가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강한 '삶의 의지' 를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나 강한 여운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이 작품 또한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 불행하지만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화가가 미시령 고개에서 자살을 하여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야기로 그녀와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이며 그녀의 죽음에 대한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간다.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 어쩌면 절망도 희망도 이합 한지에 번지던 검은 먹물처럼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듯 서서히 번져나갔는지 모른다. 절망의 터널을 잘 통과한 자는 살아 남지만 그 터널속에서 '희망' 을 붙잡지 못하고 우주의 먼지가 되듯 스스로 자멸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바람에 흔들리듯 아릿하면서도 애매함 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거센 미시령의 눈보라가 한차례 지나고 나면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처럼 통각의 터널을 벗어나야 만날 수 있는 희망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한듯 하다.

서인주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인정해 그녀를 상품화 하려는 강석원, 하지만 그녀가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는듯 다시금 인주의 과거를 하나하나 들추나가는 정희,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녀가 어떤 삶은 살아 왔는지 그녀가 어떻게 하여 유복녀로 태어나고 어머니가 왜 알콜중독자가 되었는지 이야기는 확실함 보다는 편린들을 이어가듯 세밀화를 그려 나간다. 육상선수여서 여성적이라기 보다는 남성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인주가 다리에 난 사고로 인하여 육상을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과 어머니가 죽고 외삼촌 손에서 커가면 그에게서 받았을 영향, 그리고 정희와 외삼촌 인주가 함께 하며 그동안 나누었던 추억과 시간들 속에서 그들이 어떤 삶과 생각을 가졌었으며 정희와 외삼촌과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했는지 바람에 흔들리듯 조심조심 들어난다. 

'당신의 그림 속에 떨고 있던 모세혈관들처럼.'
이합 한지에 먹물의 번짐으로 광활한 우주를 표현해 냈던 외삼촌, 그런 외삼촌에게 잠깐 그림을 배웠지만 미대를 포기하고 국문과를 가게 된 정희와 달리 인주는 사고로 인하여 육상을 포기하게 되면서 침체의 시간을 거쳐 그림에 빠지게 된다. 늘 서로의 거울인양 함께 했던 그녀들, 그녀들에게 어머니란 존재 또한 닮아 있다. 인주의 엄마는 알콜중독자로 생을 마쳤지만 정희의 엄마는 늘 담배냄새와 파스 냄새를 풍기며 잘되지 않는 지하에서 돈까스 레스토랑을 하며 비가 오면 늘 침수되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성애를 느끼거나 받기 보다는 어머니들의 삶의 질곡 때문에 둘은 서로에게 더욱 가깝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 어머니가 울타리도 되지 못하다가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시고 외삼촌 손에 맡겨지면서 외삼촌 또한 혈소판 부족으로 인해 남자이면서 여성적인 조심조심하는 삶은 산다. 정희에게 마음은 있지만 다가가지 못하고 안지도 못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외삼촌의 그림과 세계는 우주적이다. '공수래공수거' 를 의미하듯 광활한 우주적인 그림이지만 그의 말과 그림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한 점 먼지' 와 같다. 자신의 삶이 그러했기에 욕심을 부릴 수 없고 갇힌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더 우주적이지 않았을까. 그런 외삼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인주는 외삼촌의 그림을 모방하듯 똑 같은 그림을 그려내다가 죽음에 이른것. 우리의 피 속에는 희망도 절망도 모세혈관을 타고 서서히 흘러 삶을 잠식해 들어가듯 어느 부분이 더 많이 지배를 하느냐에 따라 절망적인 삶이 될 수 있고 절망을 벗어나 희망적인 삶은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외삼촌에게 향하던 마음으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생활을 하지만 세 번의 유산을 하고 파경을 맞이한 정희를 비롯하여 인주 또한 알게모르게 결혼생활을 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아들 민서를 남편에게 빼앗겼다 그녀가 짧은 시간 키우게 되지만 그 아들 또한 혈소판이 부족한 유전적인 병을 물려 받고 태어나고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아빠에게 돌아가 외국으로 떠나고 만다. 인주의 불행은 미리 예고된 듯 그녀의 엄마의 불행을 전해듣게 되는 '유인섭 소장' 의 등장으로 인해 엄마의 과거가 들어나고 미시령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며 인주가 미시령에 가게된 이야기는 점점 퍼즐조각들을 맞추어 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밝혀내는 것을 꺼리는 한남자 강석원은 그녀를 못마땅해 하면서 그녀의 뒤를 쫓는다. 외삼촌의 '네가 그리는 모든 게 실은 네 자화상이야' 라는 말처럼 자신들은 모두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들의 자화상을 그림에 남겼던 그들은 그렇다면 그림속에 자신들의 '죽음' 또한 표현해 내고 있었던 것일까. 유인섭 소장을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퍼즐을 찾은듯 인주엄마의 과거가 합쳐지면서 그리고 인주가 엄마의 피를 물려 받아 미시령을 되밟게 되면서 드러나는 죽음의 의문, 그 죽음의 물음표가 풀리면서 강석원은 정희로 인해 드러난 자신의 모든 것이 짓밟혀진다고 생각하며 그녀와 생과사의 결판을 시작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헤쳐 나오는 정희, 그녀는 죽음과 인주의 사랑이라는 터널속에서 헤쳐나오며 모든 것을 빗물에 씻겨 흘려 보내듯 삶의 희망과 마주한다.

'물이 그린 거지. 난 잘 흘러가게 터주고 막아주고 한 것밖에 없어.식물 키우는 거랑 비슷한 거야.갓 태어난 불꽃이 하얗게 타오르는 그의 그림을 향해 나는 다가갔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에는 모세혈관들 같은 무수한 섬유질의 길들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길들을 따라 퍼져가는 먹의 모양을 이런저런 방법을 잡아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가끔은 그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종이의 핏줄들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아마도 외삼촌 또한 먹물이 한지를 타고 서서히 모세혈관들 같은 섬유질의 길을 타고 흘러가듯 자신 또한 그런 강한 피의 흐름을 타고 다시 태어나듯 그런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야 사랑고 이룰 수 있고 그림 또한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물의 흐름처럼 자신의 피의 흐름이 강하지 못했던 그가 택한 길은 한가지,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일. 그런 외삼촌과 엄마를 옆에서 지켜봤던 인주가 택할 수 있던 마지막 길 또한 똑같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듯 그녀를 미시령고개로 밀고 갔던 바람은 무슨 바람일까. 

작가 한강의 작품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살아야겠다' 는 불굴의 의지를 강하게 태울 수 밖에 없다. 애매모호하면서도 건조한듯 죽음에 이르는 길 속에서 나도 모르게 탈퇴를 하여 삶에 급회전 하듯 빠르게 선회를 해야만 할 것만 같은 그녀의 섬세하면서도 건조함은 그녀만의 소설이 갖는 매력인듯 하다. 강하지 않으면서 알고 나면 약함 속에서 강함이 돋보이는 그녀만의 문체의 매력도 그렇고 동성간의 사랑이 위험하지 않으면서 그 속에서 삶의 희망으로 발버둥치는 나 자신을 만날 때 그녀의 '바람' 은 약하면서도 거세게 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가 작가 '한승원' 의 딸이기에 주목하기도 했지만 그녀만이 가지는 약한듯 하면서도 강함에 반하여 자꾸 그녀의 소설을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몇 작품을 읽어보려고 준비해 놓고 있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검은 사슴> 이나 <여수의 사랑>을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더 가져본다.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동안 밖에서 겨울바람이 거세게 불기도 했지만 그녀 소설속 곳곳에서 몰아치는 바람은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정희처럼 삶은 어쩌면 흔들리면서도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인주를 몰랐다. 인주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라는 정희의 통한이 서린 말처럼 삶이란 어쩌면 알고 나면 허무한 것인지 모른다. 그녀만큼 모르기에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삶, 불구덩이를 헤치고 나온 그녀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겨울바람이 몹시 부는 날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한강의 <바람이 분다,가라>는 <채식주의자>를 읽고 났던 때처럼 여운이 길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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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월드비전 희망의 기록
최민석 지음, 유별남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0월
품절


'이곳에서는 물이 생명이에요. 우리는 물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죠. 우리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물 때문이죠.'
볼리비아, 그곳은 우유니소금사막이며 티티카카호수로 여행서에서 만나 무척인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꿈은 가난한 자의 빵이다.' 라는 글을 읽고 나니 여행자의 눈이 아닌 좀더 낮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그들의 글과 사진으로 인하여 모든것은 다시 수정이 되었다. 15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위험한 일을 하는 아밧, 그 형을 따라 죽음을 눈앞에 두면서도 살기위해 일을 도와주는 형제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어떻게 하면 '영양실조 제로' 로 만들까. 참 아이러니 하다. 지구촌 반대편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살을 빼기 위하여 다이어트가 열풍이라면 알게모르게 1달러가 없어 영양실조에 굶어서 죽음에 이르는 아이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하루에 한 잔의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지구촌은 어떻게 변할까. 월드비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집에서 너무도 쉽게 정수기에서 컵만 대면 나오는 물을 마시는 일조차 미안하고 꺼려진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모두의 생명이 되는 물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고를 들이는가. 집나가면 제일 고생인것이 무엇보다 첫번째가 '물' 이다. 늘상 마시던 물이 아니면,물만 갈아 마셔도 탈이 나서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흙탕물이어도 그 물을 얻기 위하여 가족이 모두 나서거나 하루를 왠종일 물을 길러 가야만 하니 너무도 쉽게 물을 마시는 우리는 좀더 물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해봐야 한다. 언제 우리도 물부족으로 인하여 수도꼭지에서가 아닌 몇 시간씩 걸어 다닐지 누가 아는가. 에티오피아편에 실린 물을 긷기 위한 그들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옮겨보면 ' 우리가 온 이곳에는 다섯 마을을 통틀어 단 하나의 식수원만 빼고 모두 오염되거나 말라버렸다. 딱 하나 남은 식수원이라 해봐야,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식수 펌프가 아니라 개울물을 끌어다 쓰는 일종의 샘물이다. '아잔치' 라는 마을에서는 예전에 왕복 30분이면 물을 길을 수 있었는데, 지금엔 10시간에서 12시간 걸려 물을 길어 온단다. 물을 길으러 가는 데 1시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데 8~10시간 남짓 걸리니 살아남기 위해 물 긷고, 물 긷다가 삶을 다 보낸다.' 이렇게 하여 한모금의 물을 마셔야 한다면 글쎄, 쉽게 물을 낭비하고 한 잔의 차나 물로 만든 물로 할 수 있는 그 모든 일들이 소중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자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환경이 오염되어 제일먼저 만나는 기본적인 문제인 '물부족'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느 할머니는 팔순의 잔치를 알지도 못하는 지구촌 어느 동네에 우물을 파주는 일에 쓰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훈훈해졌는지, 산다는 것은 높은 곳 보다는 낮은 곳을 쳐다보며 살면 정말 살만한 곳이며 더 많이 나누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부족에 이은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문제는 '가난' 이다. 아버지도 아들도 거지가 되어 거리도 나가 구걸을 하는 삶, 어떻게 해서든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속에서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병든 부모님을 대신하여 일을 하는 형을 도와 램프 달린 핼맷이 없이 광산에 나오는 아밧의 동생 미하엘은 ' 1주일에 한 번씩은 형을 돕겠다며 광산에 내려가는 미하엘은 지옥 같은 암흑 속에 의지할 작은 빛도 없이 광산에 내려가는 것이었다. 오로지 형만 의지한 채, 그래서였는지 15살 형은 자신이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보다, 2살 어린 동생이 목숨을 잃을 뻔 했을 때를 더 아프게,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참 부모의 품에서 받아 먹기만 할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형제들, 그들에게 가난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형틀과 같은 것일까. 한달에 나 자신부터 3만원을 절약한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내 주머니를 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슴은 열려도 주머니는 좀더 기다려야 열리는 현실이 밉기만 하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소설을 읽으며 무척 가슴이 아팠는데 그들이 간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장미' 및 그에 관한 글과 함께 가족이 모두 구걸을 하여 먹고 살아가는 로마족의 이야기, 직업이 '거지' 라는 말을 꺼내기 위하여 긴 시간이 필요했던 엄마와는 다르게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도 이쁜 아이들,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 가난속에서도 자신은 필요없다며 소중한 것을 내주는 나눔의 마음은 정말 아름다움이란 그런것이다. 모두를 위하여 단번에 가난을 벗어나게 해 줄 수는 없지만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 면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고 가족이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을 위하여 그들은 신발보다 비행기를 더 자주 갈아타며 지구촌을 누비며 생생함을 담아 우리에게 전해주고 마음을 열어주고 있으니 마음이 움직였다면 큰 것이 아니어도 작은 정성을 보태는 방법을 물색해봐야 한다.

<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라는 책을 읽으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구나 생각을 했는데 아프리카나 그외 조혼이 성행하고 있는 곳에 가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정말 많은가보다. 아직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시집을 가고 혹은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는 상대를 만나 일찍 과부가 되어 홀로 가난을 떠 안고 살아가야 하는 젊은 여자들의 삶은 정말 가슴 아프다. 누주드 또한 죽음을 무릅쓰듯 하여 겨우 이혼을 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그와 같은 용기를 발휘하며 사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거기에 과부가 된 그들이 다시 재혼을 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풍습 때문에 그들이 겪어야 하는 삶의 고초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린 나이에 아기 엄마가 되어 어린애가 애를 키우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여아들의 삶은 나쁜 풍습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고쳐져야 한다. 어린나이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린엄마의 꿈은 학교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를 하는 것, 그 단순한 꿈조차 이루어질 수 없음이,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선택하고 선택당해진 삶이 더 어려움에 처해질 때 같은 여자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염된 식수를 마셔 질병에 걸린 아이를 아무리 치료하고 영양식을 먹인다 해도, 오염된 식수를 마시면 또 질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즉, 문제의 원인인 오염된 식수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 일시적인 지원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먹는 식수 다음으로 또한가지 문제라면 '에이즈', 아버지는 물론 어린 자식들까지 에이즈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일을 하여야 할텐데 에이즈로 인하여 격리되거나 일을 못하게 된다면 그 나머지 책임을 누가 질것인가. 가족이 모두 연대 어려움에 빠지게 만드는 에이즈, 아이는 자신이 말로만 들어도 무서운 병인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그 눈빛이 너무도 맑다. 삶에 희망이 없을듯한 그에게 에지즈보다 우선적인 것은 하루를 연명할 수 있는 먹을것일 것이다. 슬픔은 한꺼번에 겹쳐온다고 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답답하다. 내가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고 너무 과소비하고 있고 행복에 겨워 낮은 곳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미안해진다. 하지만 가슴이 열렸다면 언젠가 그들을 향해 나의 행동도 열릴 것이다. 내겐 필요없는 포인트 기부나 그외 작은 기부는 내 자신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기 위하여 하고 있지만 좀더 많은 나눔을 하고 싶게 만든다. 그런 이야기 또한 부록처럼 담겨 있어 심금을 울린다. 나눔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가진것이 너무 많아서라기 보다는 내가 가난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주머니를 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십대소녀가장 이야기 또한 그렇고 고시원에서 살면서 잔고가 없어 한달 못내게 되어 미안하다는 이십대의 이쁜 청춘 이야기 또한 내가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내가 아픔을 겪어 보았기에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있어 지구촌 어딘가에서 굶거나 아픔으로 져야하는 생명에 다시금 심지를 돋을 수 있는 희망이 충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일들을 위해 발로 뛰고 피부병과 싸우고 공황에서 몇 시간씩 공황에 빠지기도 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연말이라 그런지 더 와 닿는다.

작가와 함께 사진을 찍은 '유별남' 사진작가는 EBS테마기행 세계여행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더 낯설지 않으며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가 사진찍기 보다는 아픔이들을 위해 의사가 아니면서 가방을 열어 치료를 해 주는 이야기는 살짝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민석씨, 전요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사람을 찍고 싶어서거든요. 우리의 삶이요. 그런데 우리의 삶이나 사람이 고통 받는다면 일단 그것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아깐 아무튼, 사진 못 찍어드려서 죄송해요.' 얼마나 인간적인 사진가의 이야기인가. 가슴이 열린 두 남자의 좌충우돌의 희망로드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고 목울대가 울컥하게도 만든다. 일생에 고기를 세 번 밖에 먹어보지 못했다는 소녀 때문에 쌀국수에 들어간 고기를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게 화장실에서 대성통곡하듯 하는 남자들을 떠 올리면 코 끝이 찡해지지 않는가. 어떤이는 삼시세끼 고기를 먹는 이도 있는데 아니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성인병의 요인이 되어 채식을 부르짓고 있는 세상에서 늘상 반찬이 소금이며 '밥' 만 먹다가 일생에서 세 번 겨우 고기를 먹어 보았다는 그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부모와 함께 농사일을 해야만 한다. 그녀의 어깨가 얼마나 가녀리게 보였을까. 하지만 눈빛만은 정말 그 어느 누구보다 맑고 깨끗했다. 그들에게 희망을 충전해 주고 싶은 마음, 비단 나 혼자만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월드비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정말 어떻게 해서든 내 주머니를 열고 싶게 만든다. ' 대륙별 방문을 하는 1년 동안, 나는 7만 8천 킬로미터를 비행했고, 1만2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주행했고, 세 켤레의 신발을 바꿔 신었고, 7만 2천 자의 기사를 썼고, 우리는 62기가의 사진을 찍어댔고, 4개월 이상 피부병과 장염으로 병원을 다녔고, 적어도 2리터 이상의 땀과 눈물을 쏟아냈다.' 라는 말 뒤에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감동은 얼마로 해야될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2리터의 눈물과 땀을 흘려가며 전해준 감동의 쓰나미는 희망의 쓰나미로 변해 좀더 많은 이들이 웃으며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음으로 변한다면 다음엔 좀더 가슴아프지 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리라. '한 여가수가 남자 연애인을 동시에 5명을 사귀고, 부동산 투자 전략이 바쁘게 바뀌고, 모 가수가 모 배우와 헤어지고, 다이어트에 효능이 좋은 한방 약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사이, 하루에 3만 5천명이 죽어간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슬픈 현실이다. 누군 배불러 죽고 누군 배가 고파 죽고, 하지만 어디엔가 분명 희망은 있다. 그들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음을 지금,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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