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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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중에 우연하게 티비에서 ’강가자’ 씨의 요리에 대한 것을 뒷부분이라 할 수 있는, 잠깐 보게 되었는데 그녀에 대하여 잘은 알지 못하지만 핏줄은 한국이지만 일본에서 자란듯 하고 현재 멕시코에서 사는지 그곳 신랑신부를 위한 식탁을 차리기 위하여 약선요리와 한국적인 것을 배우는듯 했다. 우리의 요리는 다른나라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이 책에도 언뜻 언급되었지만 왕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도 제 고유의 맛보다는 ’양념’ 에 의한 맛이 강조되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가 많았다고 했다. 그것은 옛날 원재료를 운반하는 운송수단이 느리기도 하고 저장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되지 않으니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다 보면 상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런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나 하는 글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에도 나왔듯이 ’도미선’ 등 그외 많은 요리들이 나열되었지만 강가자씨가 나오는 프로에서 ’도미선’ 에 대한 요리가 유독 내 눈길을 잡았다. 약선요리가를 찾아가 그녀가 배운 도미요리, 신랑의 원기를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도미에 복분자즙을 발라주고는 호박잎을 밑에 깔고 갖가지 재료들을 얹어 쩌 내고는 다시 그 위에 더 많은 고명을 얹어 보기도 좋고 맛도 좋고 더구나 건강에서 좋은 약선요리를 선보였다. 그 요리를 배워간 강가자씨는 멕시코에서 신랑신부를 위한 요리에 그 ’도미선’ 을 넣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요리가 건강을 생각하여 음양오행에 맞추어 한다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들에겐 낯선요리였지만 맛은 만국공통이었는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우리의 요리는 흔히 오방색을 사용하며 음양의 조화를 맞추어 한다. 그 이야기들이 정치와 관련된 것들도 있어 흥미로웠다.

임금의 수라상으로 읽는 지역경제및 민심
왕의 수라상은 흔히 12첩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라상의 의미는 조선 말기에 전해진 것이라 하니 아쉽다. 좀더 오래전부터 전해진 ’수라상과 음식 그리고 요리’ 에 대한 풍부가 자료가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의 궁중요리나 궁중음식은 더 많은 이야기들로 넘쳐나지 않았을까 한다. 12첩이라 하면 그 많은 반찬들을 모두다 먹지도 못할 듯 한 생각이 들었는데 늘 그렇게 먹는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일년에 몇 번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외에 철선이니 감선 또한 많이 강행을 하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수라상에 오르는 많은 반찬들이 결코 왕의 입맛을 위한 것이 아닌 지역경제를 밥상으로 읽고 민심 또한 그 밥상으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어찌보면 지금처럼 매체가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왕의 밥상’ 으로 모든것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음이 경이롭기도 하다. 왕의 밥상을 위하여 많은 식재료가 지역에서 한양으로 올려졌을 터인데 그 재료들이 많이 나고 적게 남으로 하여 그 해의 풍년과 흉년및 백성들이 어떻게 먹고 지내는지 알게 되는 왕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해당 지역에서 올린 보고를 눈으로 읽는 것보다 혀끝으로 느끼는 편이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절절히 느낄 수가 있다.’

자신을 위한 밥상이냐 아님 백성을 위한 밥상이냐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밥상을 받으려 외국에 귀한 재료들을 들여오도록 한 왕이 있는가 하면 선대에서 맛보던 귀한 것을 잊지 못하여 눈치를 보며 그 음식을 즐겨 먹기로 하고 신하나 그외 백성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철선이나 감선을 하여 왕의 건강을 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보며 ’밥상’ 이 얼마나 건강에 중요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글을 좋아하는 왕은 글에 열정을 쏟느라 밥상을 소홀히 하여 건강을 해하고 밥상 외에 첩이나 그외 술에 빠진 왕은 그것으로 건강을 해하였다는 것이 지금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영조를 뺀 나머지 왕들이 결코 긴 삶을 살지 못한 것에는 어쩌면 밥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약이 되어야 할 밥상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독’ 이 되는 밥상이 되기도 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 왕의 자리가 결코 편한 자리가 아니었음을, 늘 누군가가 호시탐탐 노려보는 가운데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얻는 자리임에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내 외적으로 결코 편하지 않으면 그 또한 밥상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맛과 건강이라는 두 축을 놓고 보면, 아무래도 왕의 밥상은 먹는 이의 건강을 우선하는 면이 강하다.’

역대 왕들의 밥상 중에서
3대 태종의 밥상 중에서, ’단지 조직만 정비했을 뿐 아니라 음양오행에 맞게 골고루 어선을 마련하는 궁중음식의 기본 원칙도 태종때 기틀이 잡혔을 것으로 추측된다.’ 4대 세종의 경우, 서른에 소갈증을 앓게 된 그는 ’밥상머리에서 책을 읽었다거나 신하들을 압박하기 위해 철선을 감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세종이 ’나날의 밥상’을 소홀히 여겼음을 엿보게 한다. 또 유독 고기반찬만을 찾는 식습관, 과도할 정도의 절식과 폭식을 반복하는 식습관은 양생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 5대 문종의 경우, ’문종은 더욱 일에 몰두하면서 음식 조절은 하지 않았고, 술도 대부분 끊고 살았다. 결국 그는 세종의 자리를 이어받은 지 2년 반 만에, 불과 열두 살의 아들에게 다시 그 막중한 자리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6대 단종의 경우, 먹골배 설화와 바가지 설화로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이들이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 유배에 대한 외로움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7대 세조의 경우, ’새조는 조선 왕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먹고 마시는 문제를 진지하게 여겼고, 균형 잡힌 식습관이 바람직하듯 일과 오락 문과 무 사이에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여겼다.’ 그외 전란의 시대를 겪은 선조에서 효종까지 살펴보면 국내외적으로 혼란을 가져온 전란이 그들의 밥상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충분히 보여준다. 남한산성에 피신을 갔던 인조는 혹독한 겨울을 그곳에서 나야했으니 먹을것이 어떠했는지, 또한 전란을 이겨내야 하기에 백성들과 그리 별다른 밥상을 받기는 어려웠을 듯 하다. 전란 뒤인 숙종, ’종이 시대가 길 수 있었던 까ㅑ닭은 일단 당시 조선 사회가 마침내 두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았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 나라의 안정과 임금의 수명이 무슨 상관이랴 싶지만, 재패가 거듭되고 전란까지 벌어지면 왕은 일단 감선을 해야 하고 심하면 선조나 인조처럼 당장 먹을 끼니도 곤란해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고민뿐 아니라 왕이된 입장에서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대책을 요구하는 신하들의 압력에서 발생하는 울화와 굴욕감등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전란중이거나 나라가 안정이 되어도 스스로 받는 스트레스는 자신의 건강을 해할 수 있다. 먹는다는 것은 즐거워야 하는데 밥상에 떨어진 밥 알 한 알도 세듯하던 왕처럼 어찌보면 민심을 생각한듯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도 된다. 여러 왕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슬기롭게 ’양생’ 을 한 왕들도 있지만 대부분 나라 안 팎으로 돌봐야 하는 많은 문제들과 자신이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눈들에 의해 결코 즐거운 밥상이 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왕의 수명을 단축하는 경우도 많았다.’백성들이 하늘처러 소중히 여기는 것인데 어떻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이 자신의 목을 조르다
’선조의 최후와 관련해서 전해져 오는 또 한 가지 음식물이 있다. 바로 약과인데, 광해군과 내통한 개시 김상궁이 선조에게 독이 든 약과를 올려 독살했다는 설이 한때 파다했다.’ ’고종의 경우, 그의 사인은 뇌출혈이었으나 바로 직전까지도 아무런 예후가 없었다는 점, 시신을 염습하던 사람들에 따르면 시신이 검게 변하고 터질 듯 부풀었으며 입안이 녹아 뭉그러지는 등 전형적인 독살의 증상을 나타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순간 올린 식혜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식혜를 담당했던 시녀가 의문사를 당함으로써 의혹은 더우 크게 남았다.’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이 자신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길이 되었다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그들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자연적 수명을 누렸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런 반면에 ’조선의 왕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스스로는 보람을, 나라와 백성에게는 혜택을 줄 수 있는지, 영조는 모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왕의 밥상이 있었다.’ 섭생이나 양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운동 또한 중요했다고 본다. 음식만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다른 것으로 보충하기 보다는 늘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그들은 자연수명으로 가장 긴 수명을 산 영조보다는 너무도 짧은 ’단명의 왕’ 들이 많다는 것이 음식과 적절한 운동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물론 자신을 옭아매는 ’스트레스’ 에 시달리지 말아야 한다. 왕의 밥상이라고 백성의 밥상과 그리 별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그들 또한 비슷한 수준의 음식을 먹고 좀더 풍족함을 누렸겠지만 마음만은 늘 풍요롭지 못한 것이 또한 화근이 된 밥상인듯 하다.

’조선시대 왕의 밥상의 역사’ 를 통해 보니 왕의 밥상이라고 결코 부러운 것이 아닌 먹는 것이란 누구와 함께 먹느냐와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가 더 중요함을 보았다. 아무리 값진 음식이라도 편한 마음이 아니면 그 음식이 ’약이 아닌 독’ 될 수 있음을, 마음이 풍요롭다면 김치에 밥을 먹어도 행복하게 먹어 약이 될 수 있는 서민의 삶이 더 행복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의 민심과 경제를 읽어야만 했던 중압감이 결코 편한 밥상이 될 수 없음이 왕의 밥상에서 보여진다. 지금 전해지는 궁중음식이나 궁중요리가 그 시대의 조선 왕 들의 밥상이 아니어도 우리네 음식문화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서민의 음식이 궁으로 전해졌는지 아님 궁중의 음식이 서민에게 전해졌는지 확실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탕평채처럼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음식들도 있는것을 보면 자고로 한가지 보다는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룸이 음식이나 사람사는 것이나 그 진실한 맛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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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2010-11-18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서란님!^^ 알찬 책놀이터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서란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덧글남기고가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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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길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인생에서 꼭 만나야 할 운명 같은 소울메이트를 만나야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만날까. 마법같은 이야기 파울로 코엘료는 ’브리다’ 를 통해 운명같은 사랑인 소울메이트를 만나는 방법을 내 안에 잠재 되어 있던 ’마법’을 통해 찾아간다. <연금술사> 에서는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 소년의 이야기로 신기하면서도 신화적인 이야기로 가슴을 울려 주더니만 이 이야기는 스물의 아가씨 브리다가 사랑과 이별을 몇 번 해 보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사랑이라 확신할 수 없고 사랑에 대한 망설임이나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는데 마법을 통해 그 모두를 극복하고 사랑을 찾는 길에 이르는 이야기를 마법을 겻들어 또한 신화적으로 풀어간다. 역시나 그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브리다, 그녀의 곁에는 로렌스라는 물리학과 조교수가 있지만 그를 사랑이라고 확신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지금까지 그녀가 겪은 사랑과 이별이 이 사랑 또한 금방 이별을 가져다 줄 듯 하면서 확신이 서지 않는 가운데 숲 속의 마법사를 찾아간다. 그 마법사는 브리다를 보자마자 그녀가 자신의 소울메이트임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그녀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숲 속 바위위에 그녀를 혼자 남겨두고 사라진다. 혼자 남겨졌다는 두려움에 몹시 움츠러 들었던 그녀는 차츰차츰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고 만다. ’밤은 하루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녀는 빛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느끼듯이, 어둠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혼자서 숲의 밤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 그녀 안에는 그녀가 모르는 큰 능력이 숨어 있었던 듯 하다. 

숲의 마법사에게 태양의 전승을 받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소울메이트임을 아는 마법사는 그녀에게 달의 전승을 해줄 위카를 소개해 준다. ’마법은 다리야...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 두 세계로부터 배움을 얻게 하는 다리.’ 그 다리를 통해 건너려 하는 그녀는 위카를 만나게 되고 위카 또한 그녀의 능력을 첫 눈에 알아 보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가르쳐 나간다. 과연 브리다, 그녀의 안에는 마녀의 기질이 숨어 있는 것일까. 

자신의 능력이 없음을 감지하고 포기하려는 전화를 위카에게 걸던 그녀에게 위카는 말을 끊임없이 건넨다. 위카의 말을 들어가며 자신도 모르는사이 마법을 경험하게 된 그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신비한 세계에 점점 빨려 들게 되고 그렇다면 과학과 마법은 어떻게 다를까, 로렌스와 대화를 해 보던 그녀는 로렌스와도 많은 부분 통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위카에게서 달의 전승을 받아가며 점점 자신은 태양의 전승자인 마법사에게 끌려 가는 것을 느끼게 되고 위카에게서 브리다 그녀가 ’마녀’ 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알 수 없는 마법에 더 빠져 들게 된다. 그렇다면 로렌스와의 사랑은.

’이제 앞으로 뭔가를 알고 싶으면 그 안에  푹 빠져보도록 해.’ 사랑이나 운명 그리고 마법에 푹 빠져들 수 있을까. 위카를 만나며 신비로운 달의 전승을 받는 그녀는 달의 전승을 마치고 태양의 전승을 받기 위하여 마법사를 찾아가지만 자신이 하려던 맘과는 다르게 행동하던 그녀는 마침내 그와 하나가 되는 의식을 치룬 후에 그가 그토록 찾던 자신의 소울메이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서 전해듣게 되는 그와 위카와의 이야기, 태양과 달의 전승자이지만 함께 하지 않는 그들, 그리고 엄마의 지난 사랑에 대하여 듣게 된다. 짧은 시간 자신의 평생의 사랑을 했던 엄마, 그리곤 눈에서 특별한 광채가 났던 아빠를 만나 ’ 아빠는 늘 내 곁에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나는 죽는 날까지 그의 곁에 있고 싶어.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그날 오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이 엄마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이것만은 알지. 그 만남이 내가 아직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는 것, 그럼으로써 내가 나 자신에 대한 더 큰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신의 사랑에 좀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되는 브리다.

자신의 사랑에 아직 망설이며 두려워했던 브리다, 하지만 자신의 온 마음을 열고 로렌스를 받아 들이던 순간에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들었음을 알게 된다. 마법사는 그녀에게 ’인생에 대한 믿음’ 에 대하여 알려 주었던 것이다. 사랑 또한 서로에 대한 ’믿음’ 이다. 운명적인 사랑었든 그렇지 않던 간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면 서로의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신이 점 찍어 주듯 첫 눈에 알아볼 소울메이트가 정해져 있다해도 어쩌면 운명적인 사랑은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로렌스에 대한 사랑에 흔들렸던 그녀가 달의 전승을 통한 마녀 축제로 인하여 마법사와 자신이 완전한 소울메이트임을 알게 되지만 서로 마법사와는 마법을 통한 소울메이트일지 모른다. 자신의 현실의 소울메이트는 지금 곁에 있는 로렌스임을, 그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게 되는 여행길을 마법을 통해서 더 단단히 하게 되는 브리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 ’이게 진짜 내의 사랑일까?’ 한번씩 의심하게 된다. 여자들을 특히나 결혼전에 더 몹씨 흔들린다. 불안전한 미래에 대하여 망설이고 두려워 하다면 자신앞에 나선 자신의 사랑마져 이루지 못한다고 그는 말하는 듯 하다. 

그런면에서 보면 마법이나 삶이나 인생의 한 방법이겠지만 마법을 통해 소울메이트를 찾아 나서는 브리다와 같은 경험도 있겠지만 두려움도 망설임도 풍랑을 만나듯 헤쳐나가다 보면 자신의 사랑에 믿음을 가지게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두려움보다는 먼저 ’믿음’ 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밤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마음에 있었듯이 사랑에 대한 믿음 또한 마음에 있다. 자신이 선택한 ’하나의 길’ 다른 모든 길을 포기하고 가지게 된 그 길에 아버지의 말처럼 푹 빠져 볼 일이다. 스무살이면 아직 사랑에 대한 확신보다는 흔들림이나 두려움과 망설임이 더 많은 시기이다. 사랑을 찾아 나서는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항해에서 어딘가에 있을 등대와 육지에 대한 확신이 있지 않다면 그 바다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내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모든 것은 환희로 빛날 것이다. 단 몇 시간에 평생의 사랑을 했던 엄마가 짧은 시간의 사랑이 아닌 평생의 사랑으로 선택한 아빠처럼 ’살아가면서 중요한 한가지를 찾았다고 해서 그 때문에 다른 중요한 것들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던 그녀에게 마법의 다리를 건너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듯 삶은 언제나 자신 안에 있는 ’ 믿음’ 이 중요한듯 하다. 마법을 터득했어도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다. 사랑 또한 자신의 선택과 믿음에 의해 온전히 내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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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
홍기원 지음 / 살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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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정말 그렇다. 일단 알면 관심이 생기고,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것이다.' 라는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책이다. 산이나 들에 나가도 들꽃 이름을 하나라도 알면 그 꽃이 들꽃이 아닌 내겐 정말 다른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으로 다가온다. 마치 김춘수의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싯귀처럼 무엇이든 좀더 알게 되면 그 부분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들여다 보게 되며 그 주위가 더 보이게 된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역사인듯 하다.

요즘은 조선이 역사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는데 읽어도 읽어도 자꾸 잊어버린다. 그만큼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고 필요없는 부분이라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꾸 읽다보니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도 많은 부분들이 일제에 의해 덮이고 날조되었다는 알게 되면서 이젠 바르게 고쳐지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묻힌 것이 있다면 복원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런면에서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는 비록 서울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살고 서울의 땅을 잘 밟아보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찾아 보지 못한 덕에 필자가 전해주는 글과 사진으로 대리만족을 해야 했지만 지금이라도 각성한 이들이 나선다면 우리 문화와 역사는 다시 바로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제주 올레길 걷기여행으로 걷기여행이 붐을 일으키면서 여기저기 걷기여행 코스를 개발하기에 바빠진 지자제들 덕분에 어쩌면 우리는 더 좋은 기회를 맞았는지 모른다. 그동안 묻혀 있거나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이 잘 정비되고 올바르게 복원되어 우리품에 안긴다면 더 좋을 일이고 너무 역사를 거스르는 복원이 아닌 진정한 역사를 들여다보는 눈으로 돌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여서 복원을 해야한다는 것을 공감을 한다. 얼마전 모방송의 '극한직업' 에서 성벽복원팀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보게 되었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성곽복원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힘들게 일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보았기에 이 책을 읽으며 더 공감할 수 있었지않나싶다.

서울은 조선왕조의 궁궐과 함께 성곽이 있어 성곽도시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더 깊게 알게 되었다. 그 역사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동안의 변화와 발전에 그리고 일제의 강점기에 그들의 힘에 의해 무너지고 없어지고 묻힌 곳들이 많기도 하지만 우리의 무지에서도 역사와 문화가 묻힌 곳들이 많음을 아쉽게 읽었다. 18.2km의 성곽이 완전히 복원된다면 예전에 행했던 '순성놀이' 를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40리나 되는 도성 둘레길 걷기를 하루에 마쳐야 소원을 이룬다는 놀이는 지금의 걷기여행과 딱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도성은 둘레가 대략 40리나 되며, 봄과 여름철에는 성 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둘레를 따라서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 경치를 구경한다. 한 바퀴 돌자면 하루해가 걸린다. 이것을 순성놀이라 한다.' 지금은 높은 빌딜에 가려 예전과 같은 조망은 없겠지만 그래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수도가 성곽도시였다는 것이,지금도 현대의 빌딩과 함께 고궁이나 옛 건물들이 이렇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 서울만한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모든 성곽이 잔존 구간과 복원 구간 그리고 헐린 곳을 모두 복원하여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복원하단면 정말 큰 문화아이콘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지키고 보존하는 일도 배로 더 힘을 들여야 함을 알아야 하겠지만 지금이라도 남아 있는 부분이나 그외 묻혀 있는 부분들을 제대로 파악하여 좀더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서울 성곽을 따라 필자는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우리가 우를 범하여 잘못 관리되거나 훼손된 부분들도 있지만 복원이든 그외 일이든 그만큼 더 정성을 기울여 한다는 말에 힘을 실었다. 600년의 역사가 담긴 성곽인데 어디 한부분 허물한 곳이 있겠는가. 그 모두가 역사라는 관점에서 관리되어야 하고 좀더 역사를 들여다보고 성곽길 걷기를 한다면 우리에겐 그 성곽이 남다른 의미로 남을것이다. 돌담을 쌓는 방법이나 돌을 고른는 방법에서 태조때 다르고 세종때 다르고 숙종때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일제시대에 다르고 그 이후에 또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돌 하나를 쌓으면서 선인들이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 힘 없는 민초들이었지만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각자' 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런 것이 있는줄도 몰랐는데 무수한 돌 사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실명제' 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이런 것 하나만 알고 성곽길 걷기를 한다면 좀더 문화를 지켜고 보존해야 한다는 애착이 생길 듯 하다.

변화의 물살에 서울 성곽 또한 급류에 휘말린듯 파란만장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지나쳐 와 우리앞에 있지만 지금이라도 복원이 되고 우리에게 돌려져 '순성놀이' 는 아닐지라도 역사와 함께 숨을 쉬며 걷기여행을 하는 문화코드로 자리잡는다 해도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왔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다. '문화재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는 그 완결미 자체로 감동을 주고, 일부만 남았을 때는 상상하는 즐거움을 통해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그러므로 문화재에 대한 복원은 신중해야 하고,문화재의 가치를 더할 수 있을 때로 복원을 제한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의 서울 성곽에 대한 역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앞으로 우리가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바른 길을 제시해 준 듯도 하다. 문화재는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어느 한순간 사라져 버릴 수 있음이 문화재이다. 돌 하나 하나에 깃든 민초들의 정성과 그리고 파란만장한 우리의 역사가 앞으로도 잘 지켜지길 바라며 언제 기회가 되면 꼭 성곽을 거닐고 싶다. 그곳에 어린 역사를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걷기여행을 떠나기전 한번 읽고 간다면 많은 보탬이 될 책이다.마지막으로 도성을 지키겠다는 영조의 비장함이 담긴 글을 옮겨 본다. ' 일단 도성을 떠나면 도성의 백성들이 장차 여육이 될 것이니, 내가 편안하겠는가? 도성을 지키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것이 나라의 임금이 사직을 위해 죽는 다는 뜻이다.' 그만큼 도성이 중요했던 시기에 그가 한 말이겠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잘 지키라는 말처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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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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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書遊堂)...... 책과 노니는 집? 홍교리 집 사랑채를 나서며 장이는 문 위의 현판을 읽어 내렸다. '서유당(書遊堂)' 이라는 현판 글자가 장이의 머릿속에서 즐겁게 노닐었다. 필서를 하던 아버지가 고심 고심하던 끝에 지은 이름 '문장' 그랬다. 이름처럼 아버지는 그의 운명을 이미 예측이나 한듯이 이름 또한 그에 걸맞게 지어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한참 '천주교쟁이' 라고 하여 '천주교박해' 가 심하던 때에 필서를 하던 책 속에 그런 책이 있었다는 이유로 관가에 끌려가 훔씬 매를 맞고 와서는 장독이 풀리지 않아 장이만 혼자 남겨 놓고 죽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어서 쾌차하게, 미안하고 부끄럽네. - 서(西)' 라는 편지와 함께 얼마간의 돈이 마루위에 놓였다. 서西 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했던 장이 앞에 아버지가 필서를 하던 책방 주인인 최 서쾌가 나타나고 아버지는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장이를 그에게 부탁을 하고 그만 먼저 가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옆에서 늘 보던 것이 글 읽는 것이요 필서를 하는 것이요. 장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버지가 만들어 주고 가신 것이다. 천주교박해가 한번 휩쓸고 나고 난 후 최 서쾌는 아들의 약방 한귀퉁이에 다시 책방을 차려 예전과 같은 호황을 맞게 되었고 아들이 번창하여 다른 곳이로 나가고 그는 그 자리에 번듯하게 책방을 내게 된 것이다. 책방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장이, 그가 자주 가는 곳은 기녀들의 분냄새가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도리원' 과 '홍교리댁' 이다. 도리원에는 '미적' 이라는 정말 선녀처럼 아름다운 기녀가 있고 그녀의 마음씨 또한 너무도 고아서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그녀에게 언문으로 필사한 책들을 심부름 가다가 그곳에 딸만 내리낳다가 남동생을 보게 된 집의 딸인 낙심이가 남동생 돌잔치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팔려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동생처럼 여기게 되지만 낙심은 장이에게 통통 삐치기도 잘하지만 점점 장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이가 된다.

한편 장이가 '꿈' 처럼 여기는 책장을 가지고 있는 홍교리댁에 귀한 것을 전해주라는 심부름을 이행하던 그는 가던 길에 귀한 것이 무엇인가 보다가 날랜 허궁제비에게 상아찌를 빼앗기고 만다. 허궁제비는 그에게 닷전이 돈을 가져오면 '상아찌'를 돌려주겠다고 하고 그에겐 한푼의 돈도 없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장이는 슬기롭게 위기를 묘면하기 위하여 혼자서 끙끙거리며 돈을 마련하느라 노력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 마련하지 못한 돈, 하지만 중간에서 낙심이가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도리원 청지기 아저씨에게 고해바쳐 그 일이 알려지게 되고 허궁제비도 붙잡히고 그는 그 일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장이는 홍교리댁에 전해주던 책들이 '천주교와 관련된 西책' 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천주교와 관련하여 죽게 되었기 때문에 점점 장이는 자신이 좋아하고 마음의 기둥처럼 생각하는 홍교리가 천주교 책을 본다는 것을 걱정하게 된다.

언문은 쉽고 재밌게 생각하는 장이는 어느날 홍교리에게 한문으로 된 <논어>나 <맹자>와 같은 책이 재밌는지 묻는다. ' 어렵고 재미없어도 걱정 마라. 네가 아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어려운 글도 반복해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조면 ' 아, 그게 이 뜻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담백한 맛을 알게 되지.' 최 서쾌 어른이 책거리 삼아 장이를 데리고 가서 사주었던 '닭곰탕집' 에서 먹었던 음식에서 나던 맛이 책에서도 날까? 하는 장이에게 홍교리 어른은 그를 눈여겨 보았다가 필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그의 인생의 롤모델처럼 생각하게 된다. 장이의 아버지에겐 필서란 '우리에겐 밥이 될 이야기. 누군가에겐 동무가 될 이야기, 그리고 또 나중에 우리 부자에게 손바닥만 한 책방을 열어 줄 이야기를 썼지.' 그랬다 아버지의 꿈은 배오개고개에 작은 집을 장이의 손을 잡고 가서 책방을 하면 안성맞춤인 집이라며 보여주었던 것이다.그 집을 장만하고 싶어하던 아버지는 천주교를 믿은것도 아니고 책을 읽은것도 아닌데 그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장독이 올라 죽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다시 불어닥친 폭풍, 천주교인들을 찾아 잡아 들이는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책방 주인인 최 서쾌 아저씨는 바쁘게 달아나며 그에게 마포나루로 오라 했지만 장이는 홍교리댁에서 보았던 '동東'자가 써진 책 속에 천주교 책이 들어 있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그집으로 달려가 책장앞에 이르러 책을 찾지만 쉽지 않다. 집안 하인들을 그를 끌어내려 하고 장이는 안주인에게 비밀이야기를 전하고는 장이와 함께 '東' 자가 써진 책들을 모두 찾아 불태우고 만다. 장이 덕분에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홍교리 덕분에 무사히 최 서쾌 어른고 함께 위기를 묘면하게 된 장이, 멀리 피신해 있는 그에게 어느날 최 서쾌가 찾아와 그에게 아버지가 그토록 사고 싶어하던 배오개 집으로 데려가고 홍교리는 장이가 천주교 박해로 도리원 또한 피해를 입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걱정하던 낙심이를 데리고 나타나 한시름 놓게 한다. 장이, 그가 꿈꾸던 '서유당(書遊堂)', 아버지가 꿈 꾸던 책방이며 장이가 꿈 꾸던 '책과 노니는 집' 은 홍교리가 언문으로 현판까지 써와 그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이 책은 천주교 박해와 더불어 영 정조시대의 역사를 볼 수 있어 더욱 재밌다.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많이 있던 '필사' 를 하던 사람들이며 장마다 돌아다니며 책을 읽어주던 '전기수' 이야기며 언문책을 보며 즐거워 하는 규방의 이야기며 그와 맞물려 '서책과 서학' 이라 하여 멀리 하게 하던 '천주교' 와 관한 이야기가 있어 재밌는 이야기로 발전을 하는데 거기에 '장이와 낙심' 이의 황순원 소나기처럼 애틋한 '사랑 감정' 이 깃들여져 더욱 재밌다. 역사로 끝나지 않고 서민이면서 출생이 확실하지 않은 장이가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사연과 아버지를 만나 글을 깨우치고 옆에서 글을 쓰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배운게 도둑질이 아닌 필사를 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는 강인함이 그 시대의 이야기와 맞물려 재밋게 어우러진 한 편의 감동 진한 동화이다.책 속에 등장하는 '장서가 이면서 애서가' 인 홍교리는 나 또한 부럽다. '책과 노니는 집인 서유당' 은 현재의 우리들이 꿈 꾸는 집이기도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집이 되게 하기 위하여 늘 책과 함께 하려고 하지만 늘 부족한듯 하면서도 넘쳐나는 책들에 즐거운 비명라도 지르고 싶은 요즘인데 '책과 노니는 집' 의 장이를 통해 좀더 책을 사랑하고 책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갖게 되었다.

천주교박해와 필사 이야기가 겹치니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한 갈래를 보는 듯 하기도 하고 한승원의 <흑산도 가는 길> 처럼 천주교 박해의 직격탄을 맞은 '정약용형제' 이야기를 만나는 듯도 하다. 서민이면서 글을 깨우치고 쓸 줄 아는 장이에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꿈인 '책방' 을 갖는것이므로 서민이 그런 꿈을 이룬다는 것은 어쩌면 신분상승과 같은 이야기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장이와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더 발전하고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 한다. 정말 강단진 장이 때문에 책을 읽으며 괜히 뿌듯함에 가슴이 따듯해졌던 어린이문학대상 책이었다. 어린이 뿐만이 아니라 어른이 읽어도 정말 재밌는 책이며 내게도 꿈을 가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더불어 소년과 소녀의 애틋함이 잘 이루어지게 되어 미소를 짓게 만들면서 천주교박해를 피해 모두가 안전하게 자신만의 삶으로 당당하게 돌아올 수 있어 흐믓했으며 양반과 서민의 격이 없는 이야기라 더 좋았다.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장이의 눈으로 장이의 꿈으로 장이의 사랑으로 잘 버무러져 정말 맛깔란 소설로 탄생한 책이다. 더불어 책 속의 그림 또한 동양화를 공부한 분이라 그런지 차분하면서도 안정적이 그림이라 참 좋았다. 어린이소설이 이렇게 역사와 만나도 정말 좋은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을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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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2 - 개정판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른쪽 신은 왼발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양쪽이 아니면 한켤레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혼한 남녀가 결혼기념일에도 결혼때처럼 만나 기념일을 챙기고 자주 만나 서로의 안부나 그외 연애상대를 골라주는등 친구와 같은 상태로 지낼 수 있을까. 더군다나 노래방에서는 그들의 십팔번노래인 '헤어졌지만 좋은 사람' 이란 곡을 열창할 수 있다는 것이 있을수 있을까. 유명한 극작가이며 미스터리 드라마의 거장으로 알려진 노자와는 우리나라에는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연애시대> 와 <연인이여>라는 드라마로 소개되어 연애소설작가로 알려 있지만 그는 미스터리 드라마의 거장이라니 그것도 2004년에 자신이 스튜디오에서 갑자기 자살을 하여 그 죽음마져 미스터리하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니 더욱 그의 소설에 구미가 당기며 <연애시대1>을 통해 그의 긴장감 넘치면서도 재치있으면서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안겨주면서 여자의 심리를 잘 표현하여 다음 작품에도 기대가 되기도 하고 연애물이 아닌 미스터리물을 읽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전편에서도 리이치로와 하루는 사산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이혼을 하고 마는데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이혼후에 더 극명했졌다.그들의 그런 사랑을 알게 된 가이에다와 시즈카 와 사유리등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사랑이 다시 이루어질 바라며 도움을 주웠지만 그들은 진실을 외면한채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듯 서로에게 맞는 상대라며 짝을 골라주고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다 리이치로가 동창회에 갔다가 예전 짝사랑인 다미코를 만나면서 둘의 사이가 갑자기 급진전되고 급기야 둘은 결혼을 서두른다. 그런 와중에 하루는 기타지마 교수의 아내에게서 '이혼합의서' 를 받게 되고 자신의 손에 부부의 앞날이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지만 끝내 그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고 아내에게 기타지마교수를 돌려 보낸다. 기타지마에게 결별을 선언한 것이 다름아닌 리이치로가 결혼을 하던 날, 그가 주례를 서겠다며 나섰던 날이다. 하루는 그날 기타지마가 자신이 상대가 아니란것을 알게 되고 돌려보내기도 하지만 리이치로의 친구인 가이에다로부터 아기를 사산하던날 리이치로가 영안실에서 죽은 아기와 함께 하루종일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품었던 모든 오해를 풀면서 그를 비로소 다미코에게 보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주례를 서면서 참았던 눈물을 보여 결혼식을 눈물바다로 만들뻔 하였지만 다행히 잘 마무리 하여 성대한 결혼식으로 만든다.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리이치로를 다마코에게 보내면서 자신안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메우지 못하여 허겁지겁 음식을 먹게 되고 옆에서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동생 시즈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행을 가자고 한다.

리이치로가 결혼을 하였지만 그 곁에서 배회하는 하루, 그런 그녀에게 다미코는 자신들의 '혼인신고서'를 그녀의 손에 맞긴다. 기타지마교수 부부의 앞날도 그녀의 손에 달렸었는데 리이치로와 다미코의 앞날 또한 그녀의 손에 의해서 결정나게 된 것이다. 어찌해야 옮은 일인가? 라디오 방송을 하는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듯 자신이 신분을 속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하지만 그녀에겐 큰 힘이 되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다미코 역시나 결혼전에 접었던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리이치로에게 일년여 미국생활을 해야 한다며 떨어져 지내게 될 것을 말한다. 하루가 리이치로 부부의 혼인신고서를 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망설이게 되면서 시간을 흘러 이브날이 되었고 갑자기 리이치로를 찾아온 시즈카의 말에 리이치로는 하루가 떠났다는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찾아 기차역으로 달려가 그녀탄 기차에 올라타 그녀와 함께 홋가이도 여행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걱정할 일은 아니고 시즈카가 벌여 놓은 일이란 것을 알면서 그들은 '우리는 이혼 후에도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애매한 상태로 연애시절과 결혼시절의 연장전을 펼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 그랬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지금까지 정말 애매한 관계로 주의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여 삼각 사각 오각까지 가는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이제 그 애매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그동안 가슴에 꼭 꼭 숨겨 두었던 '진실' 을 둘은 꺼내어 놓고 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나는 내 입술을 꼬집어보았다. 재앙만 불어오는 입. 아니, 재앙의 원흉은 입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언제나 마음이었다.' 사산아를 낳던 날 리이치로가 자신의 곁을 떠나 근무를 했다고,자신의 아픔을 함께 하거나 감싸주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품고 있던 오해가 산부인과 의사인 가이에다로부터 풀렸고 그 또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하루는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기에 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아직 화살은 과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리이치로와 하루가 어떻게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연결이 될 수 있고 안될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예전으로 돌아갈까봐 불안해 하는 하루, 하지만 그들은 '연애시대' 라는 이혼후에 서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지나왔기에 그리고 처음보다 더 어쩌면 자신들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기에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여컨대, 내가 리이치로의 목에 걸린 가시라고 다미코 씨는 말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그 가시를 빼낼 수 있다면 빼내고 싶다. 이건가.' 리이치로와 다미코의 사랑에 걸림돌처럼 아니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자리했던 '하루' 의 진정한 사랑은 리이치로를 벗아날 수 없었던 것, 아니 리이치로는 마찬가지로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서로에게로 온 사랑은 어쩌면 더 뜨겁게 달구어질 일만 남은건가. 둘은 다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평온한 나날속으로 들어간다. 어찌보면 현시대의 이야기며 평범할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같기도 하지만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혼을 했다고 친구처럼 지내지 말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짧은 결혼생활에 비추어볼때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혼후에 자주 만나다 보면 서로 보지 못한 사각지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자신들이 정말 싫어해서 이혼을 한것이 아닌 아직 사랑의 싹을 틔우지도 못했음을 인정할수도 있는 일이다.

작가는 남자이면서 여자의 심리묘사도 뛰어나다. 그렇다고 남자인 리이치로나 그외 남자들의 심리묘사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나리오처럼 대화체 속에 재치도 있고 강한 긴장감을 늘 늦추지 않으면서 요새말로 '밀당' 이 밀고 당기는 맛이 잘 표현되어 그야말로 재밌다. 가을에 이런 로맨스소설을 하나 읽으면 왠지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연애시대>는 딱 안성맞춤이면서 웃음만 있는 것이라 리이치로의 진실을 전해듣는 장면이나 그외 장면들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어 휴지를 준비하고 읽어도 좋다. 그만큼 소설에는 연애뿐만이 아니라 따듯한 장면도 있고 웃음과 울음을 함께 선사하며 마음이 고운 사람들이 등장을 하니 그들이 모두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한다. 시즈카는 혹시나 가이에다와 잘 된다면 어찌될까 하는 기대심리도 가지게 하며 가스미 또한 아야와 잘될것이다. 미스터리물에 능통한 작가여서 그런지 연애사 또한 그 긴장감과 끝까지 진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물음표를 가지게 하여 읽는 재미를 준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리이치로와 하루의 진실게임과 같은 '연애시대'를 읽고나니 가을앓이처럼 무언가 가슴에 들어차 있던 것이 쑥 내려간듯 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이참에 찾아 읽어보고 싶다. 연애물보다는 미스터리물로. 더불어 그들의 사랑이 해피하게 끝나 다행이다. 그들의 사랑이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 가을이 얼마나 쓸쓸했겠는가.가을엔 가슴 따듯해지는 연애소설을 한편 정도 읽어도 좋다. 물론 연애시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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