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의 짓이에요. 지난 번 그 사람 기억나세요? 그도 뱀파이어한테 당했었는데..] 

곁눈질로 보이는 스승의 표정은 눈썹 사이에 주름이 생겼고 입술 한쪽이 살짝 올라갔다.

[프릭스를 찾을 수 있을까요?]
[꼭 찾고 싶니?]
[네]
[찾아도..정부에서 데려가려고 할 텐데..]
[신고 안 하면 되잖아요. 그는 다른 프릭스들과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
[그는 착하고 똑똑해요. 누구를 헤치려고 하지도 않고요. 그리고..따뜻한 마음을 지녔어요]

나의 약점인 송곳니 부재에 대해 이해해주었다. 그 이후로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함께 있을 때 상당히 재미있었다. 문득 그가 내 머릿속에 마음대로 들어오던 일도 그리워졌다.

[시영아]

나는 생각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스승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뚫어지게 나를 응시했다. 스승님과 함께 생활하게 된 이래로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 일이 드물다보니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나는 스승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고,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어쩌면 조금쯤 내 마음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왔다. 지금 이 눈길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한편으로 그가 나에게 이성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짐작은 하지만 언젠가는..이라고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낮은 목소리로 부르자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며 손에 땀이 배어나왔다.

[그 녀석을 좋아하니?]
[네?]

나는 이 순간 무엇을 기대했을까? 스승님이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거? 뽀뽀해주는거? 도대체 왜이리 멍청하냐는 자책을 하며 고개를 저였다.

[제가 좋아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사항인가요?]
[너에게 의미가 있다면..중요하지]

스승님은 바람에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 뒤 나에게서 눈길을 거두며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내가 모르는 다른 나라 말로 1분쯤 통화를 하더니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말했다.

[스승님은요?]
[좀 더 알아보고 들어갈게]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이건 저도 관련된 일이잖아요]
[나는 혼자 일하는 게 편하고 좋아]
[제가 별 도움이 안 되는 건 알지만, 그녀석의 냄새를 아는 것도 저고, 그와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도 저 뿐이에요]
[텔레파시?]

스승님은 놀란듯 내 어깨를 움켜줬다.

[아야! 아파요]
[미안..]

어깨에서 느껴지는 압통에 몸을 흔들자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게 안 좋은 건가요?]
[이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거다. 다만..]
[다만?]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그는 말을 멈추며 나를 자신의 뒤로 오라고 잡아당겼다.

[당분간 비밀로 해라]
[네. 하지만 이유는 꼭 알려주셔야 되요]
[나중에..]

우리 앞으로 검고 중후한 느낌의 차가 다가와 시동을 껐다. 그와 동시에 차문이 열리며 스승님처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세 명이 내렸다. 그 중 한 명은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며칠 전에 내 허리뼈를 부러뜨린 검은 구두. 나는 놀라 스승님의 옷을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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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요괴들을 놓아주세요. 이 녀석을 살리기 위해서 붙잡아 두시는 것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요괴는 본래 여기에 속해있던 것이니, 살리고 죽이는 것도 제가 결정합니다. 또한 제 오랜 염원이 이번엔 이루어질 수도 있으니 멈출 수는 없습니다. 가라!]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느새 내 손에 있던 새지는 법사의 무릎에 놓여졌고, 나는 기둥에 묶였다. 이것은 모두 여인이 한 행동이다. 내가 바라보자 머리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풀어줘!]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지르지만 법사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단지를 가져다 팔색조를 넣고 다시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종이들이 타들어간다. 연기가 모인다. 안개가 사당 안으로 들어온다.  

내 눈앞은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요괴들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이봐! 너는 주인이 불쌍하지 않느냐! 더 이상의 살인을 하지 않게 해야한다. 나를 풀어다오! 나를 풀어줘!] 

밧줄에 묶인 손목에서 피가 흐른다. 이제 안개는 검게 물들고 있다.  

[저희 주인님을 살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옆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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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오늘..언제쯤 시작하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앞에 앉으며 물어보니 점심 무렵 부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안채를 나와 걸어가는데 사당 근처가 안개로 자욱하다. 이 곳만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가 낀 것이 꺼림칙하다. 사당은 어제와 다르게 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법사가 단정히 앉아 염불을 외우는 중이다. 그는 나의 기척을 들었는지 뒤는 돌아보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팔색조를 깨우는 제를 올릴 것입니다] 

나의 대답은 듣지 않고 두 손을 모으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옆에는 단지를 연 채 들고 있는 여인이 조용히 서있었다. 그의 소리에 따라 제일 앞 줄의 첫 번째 종이에 불길이 솟아올라 글자가 태워지며 연기로 변하였다. 마치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단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연기. 나의 귀에는 어젯밤 꿈에서 본 요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또한 그들의 원성도 들린다.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누구도 살아있는 존재를 마음대로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이 요괴라 하여도 생명이 있는 것은...그 스스로만이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나는 여인이 들고 있던 단지를 빼앗았다. 단지를 바닥에 던져 깨뜨린 후 바닥에 떨어진 팔색조를 안아 들었다. 단지 안에 들어갔던 연기는 쉬이익하는 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사라졌다. 

[팔색조를 내려 놓으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결박할 것입니다] 

얼굴을 찌푸린 법사는 엄한 목소리로 다그치듯 말하였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다른 요괴들을 죽이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인륜? 이것들은 요괴일 뿐. 죽고 사는데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도련님은 팔색조를 살리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지금 제를 올리지 않으면 이제는 하루도 살지 못할 만큼 약합니다] 

손안의 새지가 색이 희미해지고 있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무엇을 선택하여도 나는 평생 후회를 할 것이다. 그러나..새지와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면 그것 역시 받아들여서 마음에 간직하는 편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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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그녀가 새지를 몰래 꺼내 우리 동네 근처에 놓아주는 장면이 머리 속에 들어왔다. 그녀 역시 인간의 마음을 지닌 존재다. 그 마음이 새지를 불쌍히 여기고, 주인의 악행을 가슴아파하는 것이다.  

[그 녀석은 어디 있니?]
[저 단지 안에 있습니다]
[정말로..살아나는 데 그 방법 밖에 없어?]
[저도 팔색조에 대한 것은 잘 모릅니다. 온전한 세상에서는 팔색조를 보려면 몇 천년에 한 번이라서요. 아..주인님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빨리 돌아가십시요] 

 사당에서 급하게 나와 안 채로 돌아갔다. 이미 잠을 잘 수 있도록 모든 채비가 되어 있어 바로 자리에 누웠으나 여러 가지 생각에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새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천, 수만의 요괴들을 죽여야 한다. 그들의 희생이 없이는 저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다니...그 것만이 전부라니..  

 

어둡다. 주변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디선가 작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것은 요괴들..흐느껴운다. 울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그들의 검은 손들이 내 목을 조여온다.  

[으아악!] 

죽음의 고통을 느끼다가 눈을 번쩍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다. 하늘이 흐려 비가 내릴 것 같다. 바람도 제법 쎄게 불어 나뭇가지들이 끊임없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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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여인의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다가 눈을 감았다. 내 머리 속의 검은 화면에 과거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것은 법사의 모습이었다. 법사가 종이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중얼거리자 하나씩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종이의 글자가 사라지면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공중에서 휘돌며 메아리치듯 움직이던 연기는 바닥에 놓인 단지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 개씩 한 개씩 모두 불태워져 생긴 연기가 단지 안에 가득차자 종이로 입구를 봉하고 글씨를 썼다.  

그리고 다시 화면이 바뀌어 단지 중에 하나가 들썩이다가 종이가 뜯어지며 새지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야 어떻게 새지가 이 세상에 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법사가 새지의 다리에 상처를 내는 모습이 상세히 나타났다. 

[도련님이 가져오신 팔색조는 여러 번의 실패 속에 겨우 태어난 한 마리였습니다. 그러나 주인님이 기대하신 것과는 달리 아무 것도 하지 못하여 광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럼 법사는 그 녀석을 어쩌할 셈이었나?]
[아직 깨어나지 않은 또 팔색조 새끼를 위해 사멸시킬 예정이었습니다] 

현기증이 난다. 새지가 그럴 운명이었다니..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새지가 그 토록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던 곳으로 내가 다시 데려왔으니 앞이 캄캄하다. 

[너도 이름을 봉인당한 것이냐?]
[저는 본래 이름이 없었던 존재. 죽어가고 있을 때 주인님께서 구해주셨습니다]
[왜..이 모든 사실을 나에게 말해주니? 이것은 너의 주인을 배반하는 일인데..] 

그녀는 잠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본래 요괴란 동료의 개념이 없습니다. 각자의 삶을 사는 존재들이니까요. 제게는 주인님을 배반하면서까지 그들을 구해주어야하는 의무는 없으나...이만큼의 세월을 살다보니 무엇이 도리인지를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더 이상 무익한 살상을 하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러한 일을 계속하시는 것은 요괴들의 원한을 깊게 하는 일. 주인님의 신변에 위험이 생길까 걱정됩니다. 또한 팔색조를 데려오실 때 도련님의 눈을 보았습니다] 

[혹시..네가 그 녀석을 놓아주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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