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일어나라]

눈을 뜨자 고양이 상태의 프릭스가 얼굴을 핥고 있었다. 비라고 생각했던 게 고양이의 침이다. 나는 그를 밀어내며 짜증을 부렸다. 그러나 그는 빙글빙글 미소를 머금고 생각을 보내왔다.

[잘 잤어?]
[잘 자긴..니 꿈꾸느라 고생했다]
[내 꿈?]

순간 고양이의 입이 이 이상은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벌어지며 야옹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앞발로 내 머리카락을 긁으며 팔짝팔짝 뛰었다.

[아야! 너 왜이래?]
[니가 꿈에서조차 나를 생각해준다니 기뻐서!]
[미안하지만..니가 창고에서 도망치던 순간이라서 악몽이었어]
고양이의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확히 들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그 비슷한 행동을 한 것 같았다.
[난..너에게 그런 거 보낸 적 없는데..]
[자면서 꾼거 아닐까?]

그는 앞발을 혀로 핥으며 고개를 베게에 박았다. 자세히 보니 푸른색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너랑 나랑은 좀 이상해. 프릭스니까 고양이일 때의 생각은 주고받을 수 있다고 쳐도, 니가 말해주지 않은 부분이 어떻게 나에게 전달되는 거지? 혹시 우리는..무의식까지 연결되어 있나?]

내가 계속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리는데 프릭스는 갑자기 깜깜한 어둠의 장막을 보내더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슬쩍 보니, 그는 잠이 들었다. 이제 막 밤이 시작되어 창가에서 들어오는 가녀린 달빛은 베개를 베고 잠들어버린 프릭스의 흰색 털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나도 모르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분홍색 가슴에 손을 올려보았다. 뱀파이어에게는 없는 따뜻한 온기. 살아있다는 증거. 나는 그의 부드러운 털을 만지며 한숨을 쉈다.   


********************


스승님은 아침을 먹자마자 나에게 외출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셨다. 나는 가지고 있는 옷을 모두 꺼내 침대 위에 늘어놓았다. 경찰서에 출두하는 일이라 데이트와는 무관하지만, 스승님과 함께 나간다는 게 기뻐 어른스럽게 보일 수 있는 갈색 정장을 골라 입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스타킹도 신었다. 구두와 백을 손에 들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래를 보니 스승님과 아줌마, 사람으로 변신한 프릭스가 함께 거실에 있었다.

[예쁘네~모델 같아]

프릭스는 손뼉을 치며 칭찬 했고, 아줌마는 흐뭇한 미소로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으나 스승님의 표정은 별 차이가 없었다.

[신발을 왜 들고 있니?]

현관문을 열고 나설 때도 내가 신발을 그대로 가지고 있자, 스승님이 물었다. 나는 스타킹만 신은 발로 바닥에 내려섰다.

[뛰어갈 때 높은 힐은 불편해요. 삐끗하거나 넘어지면 꼴볼견이잖아요]
[차로 갈꺼니까 신어]

스승님은 팔짱을 낀 채 내가 구두를 신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쭈뼛쭈뼛 바닥에 구두를 내려놓고 발을 넣으면서 올려다보았다. 말없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재촉하니 결국 두 발을 모두 높은 힐 위에 얹었다. 그 즉시 세상이 10센티만큼 낮아졌고, 대신 나는 스승님의 어깨 근처까지 키가 커졌다.

[가자]

나는 기우뚱거리며 앞장 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꼭 새끼 오리 같아요. 엄마 뒤를 따라가는..]

오늘은 구름이 많아 달빛이 매우 흐리다. 몇 걸음쯤 앞에 있는 스승님의 그림자 역시 경계선이 무너질 정도로 약해 왠지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스승님이 저 그림자처럼 내 앞에서 서서히 사라지면 어쩌지..하는 기분과 왠지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에 외출이 영 내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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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읽기 2010-07-2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전히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때로는 좀더 빨리 이야기가 올라왔으면 할만큼요.. 하지만 글쓰는 분은 힘드시겠지요?... 더운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건필 하세요..
 

 

 

 아기 머리 크기의 수갑은 그 순간 터져나갔고, 철장은 갑자기 커진 몸을 감당하지 못해 울룩불룩하다가 결국 거칠게 부셔졌다. 나는 잽싸게 철장을 빠져나와 입을 벌린 채 올려다보고 있는 검은 머리 뱀파이어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그는 뒤로 넘어지며 스테인레스 탁자에 머리를 부딪쳤다.

나는 검은 머리 뱀파이어의 몸을 밟고 탁자 위로 올라갔다.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바로 뛰어올라 내 팔을 낚아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나는 딱딱한 흙바닥에 허리를 부딪치며 근처에 있는 철장들 앞으로 굴러갔다. 내 가슴이 가장 아래에 놓인 철장에 부딪히자, 그 반동으로 높게 쌓인 철장들이 부르르 떨리다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순간 최대의 힘을 발휘하여 몸을 탁자 밑으로 굴렸다. 바닥이 울리자 다른 벽에 있던 철장도 연쇄 반응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일부는 탁자 위로, 일부는 솥 쪽으로 떨어져 유리병이 깨졌다. 반짝거리는 유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는 호수처럼 바닥에 고여 낮은 지대 쪽으로 움직인다.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짐승처럼 거칠게 표호하며 탁자를 들어올렸다. 탁자가 반대편으로 날아가 박힌 후, 나에게 세 명의 뱀파이어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본능은 위험을 감지하자 피가 고인 바닥 쪽으로 구르게 만든 후 고양이로 변신시켰다. 그들 셋은 내 몸이 사라지자 마자 머리와 팔 등을 서로 부딪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솥 위로 뛰어올라 창고에 유일하게 있는 창문으로 돌진했다. 창유리는 내 속도 때문에 박살 났고, 그 덕분에 창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뒤쫓아 따라오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은 뱀파이어 보다는 고양이에게 더 친숙하며, 숨을 곳 천지다. 그러나 내 몸에 가득 묻은 피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흙 위로 몸을 굴렸다. 검은색 흙 위를 뒹굴며 최대한 많은 흙을 몸에 발랐다. 가슴쯤에서부터 풍기는 거북하고 강한 거름 냄새가 피의 향을 덮어 주리라 믿으며..

가장 심각한 문제가 그럭저럭 해결되자, 토굴을 생각해냈다. 근처를 살펴 나무 밑의 땅을 고른 후, 잽싸게 굴을 만들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 옆에 쌓아 논 흙을 발로 찼다. 흙은 무너져 내리며 침침한 어둠을 만들고 입구를 덮은 후 내 몸 위로 쏟아졌다. 그들이 근처에 왔는지 땅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무섭게 다가왔다. 임시로 만든 굴은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흙이 조금씩 떨어졌다.

[어디로 간 거지?]

흙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는 텔레비전처럼 어눌하게 들렸다. 그들은 인공 굴에 매우 근접한 상태였으나 내가 땅 속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한 듯 다른 곳만 살피는 기척이 느껴졌다.

[너희 둘은 저쪽을 찾아라]

땅 위로 누군가가 다시 움직이는 듯한 진동이 다가오다가 이내 점점 멀어져갔다. 그들은 정확히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내가 도망쳐 나온 창고로, 나머지는 서쪽으로. 마침내 발자국의 진동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들이 멀어지자 나는 긴장했던 근육을 풀고 한숨을 내쉈다. 곧바로 앞발로 흙을 파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숲 속의 밤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하고 축축한 공기가 코로 가득 들어왔다. 나는 이 향기를 몇 번 더 들이마신 뒤, 나머지 몸을 동굴에서 빼내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들의 기척을 살펴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마음이 놓이자, 눈을 감고 몸을 돌리며 내가 미리 맡아두었던 향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황의 냄새와 개미집 냄새. 그들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이정표라 찾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코로 냄새를 찾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기 전에 느껴지는 습기 가득한 내음을 전혀 맡지 못했기에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어둠은 쏟아져 내리는 비에 뭉개지고 축축해져 보여 기분이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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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들면 꿈을 꾸는 일이 극히 드물고 내가 지금 꿈속에 있다는 사실 또한 모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고, 처음 보는 작은 공간에 묶여 있음을 알았다. 또한 머리 속이 아파오는 게 코로 들어오는 피의 향 때문이었다. 고개를 바짝 들고 앞을 보니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커다란 솥 안으로 도마뱀들을 집어넣는 중이다.

[저 놈은 안 써요?]
[일단 그냥 둬]

옆에 서 있는 검은 머리 뱀파이어가 나를 가리켰다. 나는 이 꿈속에서 프릭스였다. 어떻게 이런 꿈이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이야기 해주지 못했던 나머지임에 틀림없다. 검은 머리 뱀파이어는 신호를 받자 무거운 뚜껑을 두 손으로 낑낑거리며 들어 솥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뱀파이어가 위로 뛰어올라 마개를 잠그는 것처럼 뚜껑을 쾅쾅 밟았다. 내 예민한 청각은 솥 안에 들어간 도마뱀이 비명을 지르며 발로 철을 긁는 걸 뇌에 전달해주었다. 이어 바로 옆 솥에는 거북이와 토끼들을 집어넣고 같은 행동을 취했다.

[유리병 가져와!]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솥 아래에 달린 수도꼭지를 헝겊으로 닦으며 소리쳤다. 대기하고 있던 뱀파이어들은 스테인레스 쟁반에 유리병을 가득 담아와 수도꼭지 옆에 내려놓았다. 솥 위에 올라가있는 뱀파이어가 뚜껑에 달린 펌프를 누르자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수도꼭지를 돌렸다. 붉은 선홍색의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유리병에 4/5쯤 담기면 다음 유리병을 가져와 새로 받는 모습이 1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뱀파이어 상점에서 파는 생혈액이 바로 저것이었다. 내가 장애 수당으로 사다가 먹는 피. 그런 것들이 저렇게 만들어지다니..입에서 구역질 소리가 저절로 나오며 위액을 뱉었다.

[저 놈, 토하는데요. 피가 맛 없나?]

검은 머리 뱀파이어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살짝 고개를 돌려 확인한 갈색 머리 뱀파이어는 미소를 지었다.

[반은 사람이라 구역질이 나겠지]

나는 이 끔찍한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몸에 채워진 수갑을 뺄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몸부림을 쳤다. 배 쪽의 얇은 털과 분홍색의 맨 살이 수갑에 쓸리며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흘러내렸다. 쓰리고 아린 느낌은 이 더럽고 추한 곳에서 맡아야하는 피의 향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피까지 흘리네. 발작하나?]

검은 머리 뱀파이어가 내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꺄우뚱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입 안에 침을 가득 모아 그의 눈을 향해 뱉었다.

[윽..이 놈이..]

눈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내던 손이 철창 안으로 들어와 매섭게 얼굴을 강타했다. 그 반동으로 갈색 머리 뱀파이어의 피가 떨어져 있는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원하지 않았지만 뱀파이어의 피가 입술에 묻었다. 순간 지독하게 더러운 냄새가 목구멍을 통과해 위와 장으로 들이쳤다. 몇 초 후, 그 냄새가 도화선이 되어 내장이 뻥 터지는 듯한 느낌이 온 몸으로 퍼지며 갑자기 사람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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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 2010-09-1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수갑 찬 채로?? @ㅁ@;;;;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밤 사건을 떠올렸다. 가슴을 타고 흘러내린 스승님의 피를 정신없이 먹고 또 먹었다. 나는 스승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피에 더 끌렸던 걸까? 프릭스도 지금 내 기억을 보고 있을 텐데 아무 말이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내가 울음을 코 속으로 삼길 무렵, 그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미안해, 쓸데없는 걸 물었다]
[나 그만 자야겠어. 다음에 마저 이야기 하자]
[...응...]

그는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듯 머뭇거리며 대답했지만, 나는 모른척했다. 이번에는 내가 연결을 끊으려고 하는데 작은 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은..기웅이야. 김기웅]
[이름같은건 중요하지 않아, 이젠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 니가 어떤 모습이든, 넌 너야. 니 이름은 너만의 거니까, 잊어버리마. 그리고 내 이름도 기억해주고..잘자]

그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묘하게 우리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연결의 시작과 끝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마치 영화의 시작 지점에서 지직거리는 갑작스런 잡음이 들리는 것처럼 그의 생각이 다가올 때 노이즈가 먼저 도착하고, 연결이 끝날 때는 어두운 막이 드리워졌다. 지금 그는 나를 혼자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장막이 확실히 보였다. 그의 마지막 말이 스승님과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너는 너만이 아름다움이 있다. 민시영]

내가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걸 마침내 받아들였을 때, 스승님이 들려준 말, 이 세상의 유일한 시영이.

[자니?]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자 문가에 서 있던 스승님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는데 깨웠나 보구나]
[아니요. 안 잤어요. 그냥..이런저런 생각을 좀 하느라..오신 걸 몰랐네요]

스승님은 다가와 침대 가에 앉았다. 그는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 몸을 침대 기둥에 기댔다. 나 역시 내 가슴팍에 베개를 두고 그것만 쳐다보았다.

[내일 경찰을 만나야한다]
[혹시..그 검은 양복을 입은 뱀파이어들이 경찰인가요?]
[그래]

기억을 되짚어보니 데려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그 사건과 관련되었으니 내일 응해야하지만,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남자를 혼자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스승님쪽으로 몸을 내밀며 팔을 잡았다.

[같이 가주시는 거지요?]
[널 혼자 보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고맙습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에게 사과를 해야만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입가에서만 맴돌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질 않았다. 용건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지 스승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침대에서 내려와 발끝을 바라보며 소곤거렸다.

[죄송해요..지난 번 일..]

눈을 꼭 감고 기다렸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눈을 뜨고 얼굴을 들었더니 스승님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서 있었다.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작은 바람이 들어와 스승님의 머리를 살짝 건드리며 돌아나갔다. 이어 시리도록 차가운 달빛이 그의 얼굴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멍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매만져주시는 스승님의 행동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그 일은 잊어버리자. 그럴 수 있겠니?]
[노력해볼께요]

우리는 달 빛 속에서 서로를 말 없이 응시했다. 프릭스처럼 스승님과도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에게 내 가슴 속의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꼭꼭 숨겨둔 마음까지, 모든 걸 보여주고 싶었다. 스승님의 검은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데,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와 동시에 스승님도 내게서 떨어졌다. 뒤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서는 모습에 혼자 남은 나는 몹시 추운 기분이 들어 부르르 떨었다.

나는 스승님을 사랑한다. 그 사실을 이 밤에 또 한번 각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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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의외의 수확물인데..]

차가운 뱀파이어의 손이 철창 속으로 들어와 머리를 쓸어 올리자 프릭스는 이를 드러내며 만지지 말라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 크르르 거리다가 뱀파이어의 손가락을 물어 피 몇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야생의 습성이 강하군. 내 피를 마시면 변종 뱀파이어가 될 수 있는데 마실래?]

실험이라도 할 것처럼 피를 손가락에 묻혀 프릭스의 입 근처에 가져갔다.

[먹었어?]
[맞혀봐]

나는 참지 못하고 또 끼어들었다. 프릭스는 바로 영상을 정지시키고 약 올리는 답변을 보내왔다. 나는 조바심이 나서 장난하지 말고 빨리 말해..라고 외쳤다.

[안 먹었어.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무슨 냄새? 내 피도 그런가?]

질문이라기보다는 중얼거림처럼 낮게 속삭였다. 그가 이 말에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반은 긍정일 듯한 침묵이라 기분이 나빠야 하지만 나도 그의 냄새에 화를 냈었음으로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다.

[그는 흥미를 잃었는지 창고를 나갔어. 난 철창 바닥에 그대로 있는 피 때문에 속이 울렁거릴 만큼 힘들었지]

그는 고통의 강도를 알려주고 싶은지 부르르 떨리는 음파를 연속으로 보내왔다. 나는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은 프릭스는 영상을 틀었다.

1시간 쯤 지나자 풀숲에서 사람을 물던 뱀파이어를 양 쪽에서 잡고 들어서는 이들이 보였다. 프릭스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자, 이를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어디다 두지?]
[데리러 올 때까지 적당히 묶어두자]

그들은 늘어진 뱀파이어를 프릭스가 든 철장 옆의 쇠기둥에 묶었다. 그리고는 허밍을 하며 지나가려다가 철장 바닥에 있는 피를 보았다. 그들은 철장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저 놈 건가?]
[글쎄..]

서로 눈치를 보다가 앞머리를 붉게 물들인 뱀파이어가 먼저 손을 뻗어 피를 찍어먹었다. 그러자 쳐다보던 검은 머리의 뱀파이어도 슬쩍 맛을 봤다.

[대장님꺼잖아!]

둘은 화들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데..피를 먹어보면 누구 건지 어떻게 알아?]

프릭스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나는 그가 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뱀파이어의 피에는 자기만의 독이 들어있어서 맛이 달라. 그래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지문 대신 피를 보관시켜. 기억을 잃은 뱀파이어가 있으면 피를 대조해서 신원 파악을 하거든. 너, 피가 당긴다는 속담 들어본 적 있지? 우린 가족이나 연인들이 특히 그래]
[신기하네. 너랑..그도?]

프릭스는 묻고 싶지 않은 걸 묻는 것처럼 말을 질질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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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 2010-09-1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릭스는 이미 시영이 올인이네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