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스승님도 프릭스도 없으니 스스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데, 그동안 그들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며 운동이나 연습을 하지 않고 지낸 나의 자만심이 후회되었다.
제일 앞에서 다가오던 뱀파이어가 가구 그늘 속에 서 있는 걸 알아차리고는 개구리가 점프하듯 펄쩍 뛰었다. 그가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나도 옆으로 도망치려고 움직였으나 다리가 붙들렸다. 바닥으로 함께 넘어져 구르면서 낮선 뱀파이어의 거친 숨소리가 코앞에서 들리자 두려움이 솟아올라 평소보다도 더 힘을 쓰지 못했다. 허리를 붙들고 팔을 뒤로 거칠게 제쳐 나를 고정한 뱀파이어는 다른 이들에게 잡았다고 말하며 일으켜 세웠다. 나는 비틀거리는 시늉을 하다가 숨을 고르며 다리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불시에 당한 공격에 나를 잡고 있던 손이 약간 느슨해지자 근육에 힘을 불어넣어 그를 옆으로 밀었다. 아까 그와 함께 넘어질 때, 흔들리는 유리 창문을 보았고, 그것이 내 희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잠시 균형을 잃자, 나는 그와 함께 유리 창문으로 돌진했다. 우리 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유리는 바로 깨지며 흙바닥으로 어깨부터 떨어졌다. 우리의 뒤로 다른 뱀파이어들이 착지해, 도망치려는 나를 둘러쌌다.
[변신괴물은 어디 있어?]
누군가가 물어보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일부러 비명만 질렀다. 사실, 희한하게도 그들의 폭력이 상상했던 것 보다는 덜 아팠다. 어쩌면 요즘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공격을 수차례 받다보니 맷집이 생긴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왼쪽으로 딩굴다가 손에 잡힌 다리를 있는 힘껏 물었다. 소프라노의 비명과 함께 몇 배쯤 거센 폭력이 돌아왔다. 얼마나 맞았는지, 온 몸에 생긴 피멍이 욱신거릴 무렵, 경찰들이 뛰어오는 게 뱀파이어들 사이로 보였다. 그들은 도망치라는 말을 하며, 그 중 한 명이 나를 어깨에 들쳐 멨다. 그들이 뛰기 시작하자, 내 몸은 말을 타듯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균형이 무너지자마자 구역질이 올라와 등에 위액을 잔뜩 뱉었다. 옷이 축축해진 느낌이 들었는지 나를 업은 뱀파이어가 그르렁거렸다. 경찰들은 겨우 두 명으로 뒤늦게 출발한 뱀파이어들과 싸움을 하는 게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보였지만, 이내 그들이 무리에 다시 합류하자 내 계획이 틀어졌음을 눈치 챘다.
숲길은 울퉁불퉁한데다가 거친 나뭇가지들이 머리와 어깨를 건드려 생채기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프릭스가 말하던 창고에 도착할 무렵에는 피까지 흘러내리는 큰 상처가 이마 왼 편에 생길 정도로 그들은 나를 거칠게 다뤘다. 1시간 쯤 낮선 뱀파이어의 어깨에서 고생을 하다 땅에 내려오니 지독하게 어지러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오는 도중에 계속 토해 나올 것이 없는데도, 내 위는 폭풍우 속 난파선에 있다고 착각하는지 요동을 치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고통스럽게 쥐어짰다. 그들은 여전히 바닥에서 꺽꺽거리는 나를 흘끔 본 뒤 창고 문을 열고 대장을 불렀다. 저벅저벅 콘크리트를 울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는데 머리 속에 프릭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쳐다보지 말고 들어. 나 지금 왼쪽 나무 위에 있어. 타이밍을 찾는 중이니까 힘들어도 기다려]
약간 진정된 상황이었지만, 아직도 쏟아낼 것이 많다는 연기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이라고 불린 갈색 머리 뱀파이어는 팔짱을 낀 채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릭스를 잡아오라고 했을 텐데?]
[집에 이 여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오는 것 보다는 누구든 잡아오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검은 머리 뱀파이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
[찾으러 올 겁니다]
[안 나타나면?]
갈색 머리 뱀파이어의 말에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대답이 없었다.
[니가 옆에서 지키다가 나아지면 데리고 들어와]
나를 둘러싼 원에서 제일 멀리 서 있던 뱀파이어는 “내가?”라는 표정으로 대장을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끄덕였다. 나는 그들이 어서 들어가기를 바라며 흙바닥에 얼굴을 바짝 대고 침을 뱉었다.
[그만 가자. 나도 바쁘다고!]
그는 참을성이 부족한지 겨우 몇 분이 지났을 뿐인데,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하며 발로 툭툭 쳤다.
[이대로 들어가면..안에서 토할거에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는 더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데?]
[20분쯤?]
그의 입에서 생전 처음 듣는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내가 눈을 감으며 욱..소리를 내자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이에 질세라 더 크게 어깨를 들썩이며 그의 옆으로 기어가 욱욱..하자 그는 몸을 뒤로 뺀 후, 숲을 바라보며 빨리 끝내라고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