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은 뭐지?]
[글쎄..대장이 보면 알겠지. 뭐든 관련된 건 다 데려오라고 했잖아]

프릭스를 잡은 뱀파이어가 코를 킁킁거리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몸통을 꽉 잡고는 입술을 뒤집어 이를 살펴보고 꼬리를 바짝 들어 항문을 보는 등, 뭔가 겉으로 이상한 점은 없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아얏!]
[멍청하긴. 고양이가 가만있을 줄 알았냐?]
[이건 그냥 고양이가 아니야. 사람이었다고]

손가락으로 입술 근처를 눌러보다가 꽉 물려 피가 나자 반사적으로 프릭스의 얼굴을 친 뱀파이어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프릭스의 입술에서 피가 떨어졌다. 그것을 본 뱀파이어들은 침을 소리 나게 삼켰다. 그들은 트렁크에 갇혀있는 뱀파이어가 발광을 하며 뚜껑을 발로 찰 때까지 넋을 놓고 피를 바라보다가 그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후, 피가 뭍은 시트를 통째로 뜯어 달리는 차 밖으로 던졌다.

차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섰다. 달이 구름에 가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푯말을 볼 수 없었으나 예민한 후각으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들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고양이일 때는 거칠고 무자비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한 냄새를 피해 다녔고, 자신이 머무는 곳에 존재하는 모든 냄새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훈련의 성과가 이런 상황에서 발휘될 줄 상상도 못했지만 낡은 창고에 도착할 때까지 흙에서 나는 황 냄새, 나무에 뿌려진 비료의 시큼한 냄새와 막 지어진 개미집의 향까지 머리에 담았다. 운이 좋아 도망칠 수 있다면 이 냄새들을 거꾸로 추적하여 길을 찾을 계획이다.

쿵..

차가 웅덩이에 빠졌는지 거칠게 요동쳤다. 프릭스를 든 뱀파이어는 머리를 천장에 찧으며 그 반동으로 고양이의 몸통을 죄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그 순간, 엄지를 있는 힘껏 깨물어 손이 완전히 풀리자 프릭스는 반쯤 열려있던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빨리 잡아!]

뒤에서 차가 키익 소리를 내며 서고, 흙탕길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무조건 앞으로 내달렸다. 지금은 방향을 바르게 잡을 여유가 없어 일단 뱀파이어들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는 게 목표였다.

[음?]

뭔가 차고 날카로운 물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강철 같은 단단함에 뇌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자 몸이 의지와는 다르게 뒤로 넘어갔다. 거친 흙바닥에 뒹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차가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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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개니? 이 근처에선 못 보던 놈인데..]
[헤헤..] 

내 물음에 바로 대답을 안 하고 웃기만 하던 새지는 뭔가 엄청난 발표라도 하는 사람처럼 가슴을 쫙 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제 말입니다!!!]
[뭐? 말? 이건 갠데..]
[물론 개죠. 하지만!! 오늘부터는 제 전용 말이라고요. 요즘 요괴들 사이에 말 하나 없음 가난뱅이라고 놀림받거든요]
[너희들은 날아다닐 수 있으면서 굳이 말이 왜 필요하지? 살아있는 생물은 먹이고 재우고 신경써야 할 게 많은데..] 

내 말에 새지는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시 당당하게 말했다. 

[입 하나 더 는다고 도련님 살림이 망하기야 하겠어요? 지금도 어차피 한 끼 먹잖아요] 

새지는 결국 자신의 말이라고 부르는 개 마저도 내게 의탁시키려는 수작이었다. 그럼 그렇지..라고 중얼거리며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 자리를 떠나려 몸을 돌렸다. 

[이랴!!!이랴!!] 

새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얇은 막대기를 들고 검은 개 위에 앉아 엉덩이를 때렸다. 물론 개는 말처럼 히이이힝 거리는 대신 멍멍 거리며 몸을 뒤흔들어 새지가 물에 풍덩 빠졌다. 

[널, 주인 취급을 안하네, 쯧쯧] 

큰 소리로 웃는데 새지가 씩씩거리며 개를 발로 찼다.


                                                                 *


밤이 되자 하늘은 구름이 가득해져 달빛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어디선가 갑자기 돌풍이 물어오자 숲을 가득 매운 나무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듯 몸을 심하게 떨었다. 나뭇잎들이 인적이 없는 길 위에 흩날려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가벼운 돌들은 돌풍에 내리막길을 굴러가다가 나무 기둥에 부딛히며 생채기를 만들었다.  


돌풍이 점점 더 세지며 작은 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휘어지자, 거대한 머리를 가진 요괴가 입을 벌리고 숲속을 헤치며 날아간다. 그의 몸집이 만들어낸 그림자와 구름에 가린 달빛 때문에 보이지 않던 요괴 한 마리가 바로 앞에서 잡힐 듯, 잡힐 듯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는 중이다. 


거대한 머리의 요괴가 입 속에서 뿜어낸 바람을 정통으로 맞자,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간신히 도망가던 요괴가 나무에 부딛히며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의 몸 위로 거대한 머리의 요괴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
 

나는 마당의 평상 위에 누워 팔배개를 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중이고, 새지는 아직도 저녁 밥그릇에 미련을 못 버렸는지 마당까지 끌고와 핥는다. 가끔 사람이 지나가면 평상 밑에 엎드려 있는 검은 개가 고개를 바싹 들고 으르렁 거리려 목을 가다듬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도련님, 저 나갔다 올께요]
[지금?]
[네. 마루랑 약속을 했는데 좀 늦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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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읽기 2010-06-0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음 문게판에서 님의 학마을 이야기를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입니다..ㅎㅎ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 님의 서재에까지 와 버렸네요..
고구려 대장간 마을은 잠시 뒤로 하고 뱀파이어 이야기를 읽고 있는 중 입니다.
음..님의 글에 대한 느낌이면 느낌이랄까.. 마치 기름기 쏙 뺀 담백하고 달지 않고도 맛있는 간이 제대로 맞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분이랄까?...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계속 건필해 주세요...

최현진 2010-06-07 21:36   좋아요 0 | URL
아..꿈읽기님..오랜만입니다. 여기서 뵙다니..놀래습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우니 지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최현진 2010-06-07 21:36   좋아요 0 | URL
아..꿈읽기님..오랜만입니다. 여기서 뵙다니..놀래습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우니 지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너하고 헤어져서 사람들을 구경을 하는데 풀 밭 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어. 고양이로 있을 때면 5킬로미터까지는 감시가 가능하거든. 어떤 남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흡혈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혀 모르더라]
[뱀파이어들은..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환각을 만들어]
[아..]

달빛이 자정을 지나면서 더욱 짙어졌다. 은색에 푸른빛과 흰색을 섞어 내려 보내니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좀 전에 그런 말을 들어서 일까..나도 모르게 심장이 약간 빨라졌다. 서로의 생각이 활짝 열려 있는 상황에서 내 두근거림이 들키면 곤란해질 것 같아 헛기침을 하며 그의 말을 재촉했다.

[그 때는 사람의 모습이라 뱀파이어를 떼어내려고 달려드는 데, 갑자기 2명의 뱀파이어가 뚝방 쪽에서 뛰어왔어. 그 중 한 명이 달려들어 손톱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나는 나무에 부딪히면서 고양이로 변했어. 프릭스는 위험한 상황이 되면 자동적으로 변신하거든. 그 덕분에 니가 준 옷이 찟어졋는데도 나는 약간의 상처만 입고 살았지]

벤치에서 발견한 파자마가 기억났다. 걸레조각 보다도 더 자잘히 찢겨진 게 뱀파이어의 짓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가 죽을 뻔한 그 순간에 나는 돈 받을 생각으로 룰루랄라 했으니..또 한번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내가 빨리 갔어야 했는데..]
[아니, 그렇지 않아. 만약에 니가 그 때 왔다면 같이 잡혀갔을 꺼야. 그들은 그만큼 강했어]

내 머릿속에서 그가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볼 수 있었다. 그는 고양이로 변신하자마자 뒤에 서 있던 뱀파이어에게 잡혔다. 또한 피를 빨던 뱀파이어도 질질 끌려 뚝방 쪽으로 갔다. 그들은 그 곳에서 잠시 서 있었다. 흐릿한 달빛 속에 긴장감이 높아질 무렵, 검은 차 한대가 낮은 엔진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검은 머리의 뱀파이어가 뒷 트렁크를 연 후, 피를 빨다 잡힌 뱀파이어를 거칠게 집어넣고 문을 쾅 닫았다. 또한 달려가 풀밭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함께 데려왔다. 그의 목은 다른 뱀파이어가 독으로 뒷정리를 하여 약간의 상처가 남아있었지만, 이미 죽은 상태였다. 차안에는 운전사와 두 명의 뱀파이어, 그리고 목이 물린 희생자와 프릭스가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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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이렇게 달빛 아래에서 바라보면..모든 게 평화롭고 고요해서 눈물이 나곤 했어]

그는 혼자 독백을 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그의 생각을 들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나는 고양이의 눈으로 이 모든 것들을 봤어. 하얀 달도, 검은 숲도, 귀에 들려오는 작은 벌레의 움직임도..경이로움 그 자체였어. 내가 고양이의 모습이나마 감사하며 살기로 했을 때, 자연은 가장 훌륭한 친구고 부모였지. 너에게..스승님이라는 사람도 그런 거니?]

그는 마지막 말을 끝낼 때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 나는 입을 열다가 다시 닫았다. 아마도 고양이의 모습으로 그는 좀 전의 상황을 모두 듣고 있었을테니, 지금은 말보다 생각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뱀파이어가 된 후 눈을 떴을 때, 스승님이 내 몸을 감싸 안고 집으로 데려오셨을 때, 송곳니가 없어 고통스러워 할 때, 그리고 그와 함께 공부하고 여행을 했을 때..

[스승님이라는 분..지금 너에게 전부인 걸 알지만, 앞으로는 나에게도 다가갈 기회를 줘. 너와 나는 풀어야할 숙제가 많잖아?]

나는 그런 말을 들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의 눈이 저토록 깊은 바다를 품고 나를 바라보다니..내 마음은 지금 이 순간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을 만큼 백지가 되었다.

[너하고 내가 이렇게 연결되는 게..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해. 너로 인해 내가 다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믿어]

그는 자신의 앞발을 내 손 위에 올렸다. 뱀파이어의 차가운 피부와 고양이의 뜨거운 손은 서로의 체온에 녹아들었다.

[어떻게 돌아온 거야? 어디 있었어?]

그는 화제를 전환하려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 다시 머리를 정면으로 돌려 정원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쉈다. 아마도 좀 더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겠지만 지금의 나는 혼란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이 가득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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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괭이 좀 보여줘]
[네~] 

아직 해가 덜 떴지만, 일찍 일을 시작하는 농부들이 대장간에 들렀다. 떡보가 대장간 앞의 평상에 호미, 삽, 낫 등을 펼칠 동안에 곡괭이를 가지러 창고에 다녀왔다. 

[어제 새로 만든건데, 조금 뻑뻑하지만 길만 잘 들면 열 사람 몫을 할거에요] 

나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며 자랑했다. 사실, 이 물건은 만들 때 조금 도왔기 때문에 꼭 내가 팔고 싶었고, 만약에 사간다면 왠지 오늘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았다. 농부는 곡괭이를 들고 위에서 아래까지 꼼꼼히 살폈다. 그동안 쓰던 것과 비교도 해보며 가격도 물어보더니 내 바램대로 샀다.  

[그렇게 좋냐?]
[그럼요!] 

떡보가 정리를 마치고 손을 탁탁 털며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신나게 소리쳤다. 

*

 [도련님~물 놀이 해도 되요?] 

아직 본격적으로 여름은 아니지만, 화로 속에 불이 가득하다보니 대장간 안은 푹푹 찐다. 내가 풀무질을 시작하자, 새지는 대장간 반대편의 제일 으슥하고 그나마 시원한 기둥가에서 머리를 축 늘어트린 채 헥헥거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휘리릭 날아와 외쳤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지는 바람처럼 대장간을 나가버렸다. 

[물 채워라] 

[네~]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전히 대장간의 막내라 예전에 비해 조금 대우가 좋아졌다고 해도 허드렛일을 피할 수 없다. 풀무질하던 것을 옆 사람에게 맡기고 물통을 찾아들고 대장간 문을 나섰다.  

[시원하다...] 

마치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한차례 세게 불어 기분이 한 결 좋았다. 이마에 맺혀있던 땀방울들을 대충 훔치며 물레방아 쪽을 보니 새지가 웬 검정 개와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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