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울의 고백 ㅣ 인문학 클래식 3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이건수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N22086
"남들 마음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네, 사랑도 아름다움도, 영원에게 되돌려 주려고..."
우울한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 봐서는 밝아 보이더라도 내면에는 우울이 한가득 쌓여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어느정도 우울한 감성이 있다. 겉으로 봤을때는 활발하고 운동하는걸 좋아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우울이 약간은 있다. 그래서 밝은 노래 보다는 슬프고 우울한 노래를 좋아하고, 해피엔딩 보다는 새드엔딩에 더 끌린다.
가장 결정적인 건 이제는 혼자 있는걸 즐긴다는 거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혼자 있는게 더 편하다.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 맞춰줄 필요도 없다는게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다. 혼자인 시간이 점점 편해진다. 이건 선천적인걸까? 아니면 시간이 이렇게 나를 바꾼걸까?
보들레르의 편지 모음집인 <우울의 고백>을 읽으면서 나의 우울을 생각하게 되었다. 보들레르 처럼 많은 시련과 고통, 사랑의 아픔, 사람에 대한 배신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마음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보니 보들레르랑 나랑 얼굴도 약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는 고통 없이 자살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고통이라 부르는 혼란스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빚이 있다고 고통받은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런 혼란들은 제겐 별것이 아닙니다. 제가 자살하려는 진짜 이유는 잠들고 깨어나는 삶의 피곤함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남들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이며, 나 스스로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 P.56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 내가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나와 비슷한 감정선을 가진 작가의 책이 오히려 힘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간 보들레르 역시 살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애썼는데, 내 우울 쯤이야 보들레르의 우울에 비할수야 있을까?
[당신을 잊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애지중지하는 이미지 하나에 매달려 두 눈을 고정한 채로 평생을 살아온 시인들이 있다고 말들 합니다. 정말이지 이 점에 관련되어 있는 저로서는 변함없는 사랑이란 천재의 특징들 중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P.100
고등학생 때 (20여년 전?) <악의 꽃>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읽고 우와! 했었는데, 이후에 재독을 못했다. 이번 기회에 멋진 양장본의 <악의 꽃>을 구매해야 겠다.
보들레르의 일대기에 대해 모른다면, <악의 꽃>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우울의 고백>은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한 남자가 평생 쓴 편지를 훔쳐보는 기분만 느낄 수도 있다. 이 책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악의 꽃>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짐작도 못했던 당신에게 악의 꽃 이라는 이 잔혹한 책 속에 내 모든 심정과 내 모든 애정과 내 모든 왜곡된 종교와 내 모든 증오를 담았음을, 그런 당신께 말해야 하나요?] 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