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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기 전에 - 프루스트 단편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현암사 / 2022년 2월
평점 :
N22059
˝그녀가 나를 사랑하거나 아니면 내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를, 하지만 이 중 한 가지는 불가능하고, 저는 다른 나머지는 원하지 않습니다.˝
사실 프루스트 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 읽어봤다. 그가 남긴 다른 책들은 없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그의 미발표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구매하려고 했으나, 여차여차 해서 구매를 미루다가 저번주에 동네 독립서점 구경을 갔다가 이 책이 있길래 구매를 했다.
일단 결론은 ‘대단히 좋다 ‘는 거다. 책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축소판 감성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좋았던 작품 리뷰를 간단히 써보자면...
1. <무관심한 이>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한 남자에 대해 여성의 관점에서 쓴 짤막한 단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호감을 갖지만, 오직 그만이 나에게 무관심하다. 그래서인지 더욱 그에 대한 마음은 커져만 가지만 그는 최소한의 선의만 보인다. 언제까지 그를 사랑할 거라고 편지를 쓴다.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 다짐한다. 하지만 모든 기다림은 끝나기 마련이다.
[그녀가 도저히 낄 수 없도록 그의 일정을 꽉 채우는 그 무엇에 대한 질투일까? 아니면 그가 떠난다는 사실로 인한 괴로움, 그때까지 그녀를 하루에 열 번 보러 오게 만드는 욕망을 그가 느끼지 않고 그저 한 번만 올 것 이란 사실로 인한 괴로움일까?] P.24
2. <밤이 오기 전에>는 이제 죽음을 앞둔, 사랑하지만 이룰수 없었던 여인 ˝프랑수아즈˝와아의 마지막 대화를 그리고 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언제나 프랑수아즈를 우정으로 지켜주던 주인공은 그녀로부터 ˝당신을 많이 좋아했지만, 당신에게 준 것은 없었지요.˝ 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나는 ˝내게 준 것이 없다고요? 내가 당신에게 요구하지 않을수록 당신은 내게 더 많이 주었어요. 우리의 우정에 감성이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는 만큼 당신이 내게 준 것은 실제로 더 많습니다.˝라고 화답한다.
그리고 두사람은 밤이 오기 전까지 대화를 하고 그녀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고백한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이유. 그리고 두사람은 함께 운다.
[우리는 함께 울었다. 슬프면서 무한한 조화의 일치. 우리의 합체된 연민은 이제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대상을 향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마음껏 자유롭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가여운 눈물로 흥건히 젖은 그녀의 두 손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새로운 눈물로 젖어들었고 그녀는 한기를 느꼈다. 그녀의 손은 분수대에 떨어지는 창백한 나뭇잎처럼 차가워졌다. 우리는 그 순간만큼 그렇게 아파했던 적이, 또 좋았던 적이 없다.] P.44
3. <대회 1>은 지나간 사랑을 못잊는 ˝앙리˝와 그에게 마음이 있는 ˝프랑수아즈˝와의 대화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식사를 하러 가자는 ˝프랑수아즈˝의 제안에 감성적인 ˝앙리˝는 예전 연인과 함계 가던 장소를 가기로 한다.
[어떤 장소들 중에는 마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행복을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는것 같지요] P.103
하지만 ˝앙리˝는 자신의 추억이 담긴 곳을 방문했지만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지 못하고 어딘지 모를 슬픔에 빠진다. 어딘가에서 그녀가 다른 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를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순간 그의 감정을 감쌌기 떄문이다. 언제쯤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를 멈출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고통은 즐거움의 이면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만약 즐거움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다면 질투도 몰랐을 겁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와 나누는 즐거움을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타인의 삶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네 삶을 투영합니다.] P.109
<밤이 오기 전에>에는 표제작을 포함해서 총 1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단편들이 약간 짧다보니 줄거리를 요약하는것 자체가 불가능해서 리뷰로 못남기는게 아쉽다. 그래도 모든 단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이라고 할까?
(위의 문구는 최승자 시인의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에 있는 문장이다.역시 시인의 감성이란...)
이 책은 지난주말에 읽었는데 이제야 리뷰를 쓴다. 책을 읽는것도 그렇고 리뷰를 쓰는것도 그렇고 뭔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거란 생각이 든다. 프루스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프루스트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프루스트의 감성이 너무 부럽다.
[되돌려받길 기대하지 않으면서 줄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분명 감미롭단다. 사람들이 네게 상냥하지 않아도 너는 그들을 상냥하게 대할 기회를 누릴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자비를 품은 자의 자부심을 느끼며 고통받는 자들의 지친 발에 신비하고도 놀라운 향기를 아낌없이 뿌리게 될 거야.] P.165
윤상 < My cinema paradise>
https://youtu.be/tsBNr8K6c8o
곳곳마다 너의 기억들 투성이라서 피해다닐 길이 없어
모퉁이를 돌면 눈 앞에는 그 시절의 거리 앞서가는 너의 모습
바람에 나풀거리는 짧은 머리카락 이따금 나를 돌아보는 그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