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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1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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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1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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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14: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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炳彦屍唯迸齴

歲月痛哭鷄蛻越

買獨改聯永改年

檀園英靈眞永永

 

위 한시를 가장 정확히 멋지게 해석하시는 분께

엄청난(!) 선물을 드립니다. 선물은 추후 대공개

* 비밀글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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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2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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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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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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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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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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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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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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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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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2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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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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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이 아닌 것은 세계가 고통 속에 있다는 사실 뿐이다. “고통의 절대성만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온 유일한 것이다.”(아도르노)·······그래서 우리에게 여전히 유물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고통의 유물론이어야 한다.·······(61쪽)

 

무한중첩의 역설이 세계의 진실을 구성합니다. 역설은 대칭, 가령 전자electron와 광자photon의 마주함과 같은 것입니다. 이 대칭의 어름에 온새미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고통, 엄밀히 말해 통痛, 그러니까 아픔입니다. 아픔은 세계의 숙명입니다. 숙명은 절대의 관통력으로 세계를 향해 들이닥칩니다. 세계는 숙명을 자발적으로 흡수해 들여야 합니다. 흡수하면 넘어섭니다. 넘어서면 창조의 지평선이 열립니다. 요컨대 고통은 창조의 전제입니다.

 

결론이 명쾌하다고 거기 쉽게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가 단도직입으로 고통을 흡수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실패합니다. 고통은 본디 자타自他와 상변常變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미끄러짐과 엇나감, 간단히 말하면 접힘의 사건입니다. 이 접힘의 사건을 저와 같은 의자醫者는 병이라고 부릅니다. 병은 고통을 심화·증폭·재생산합니다. 그 심화·증폭·재생산의 갈래는 이렇습니다.

 

고통을 느낄 때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타자 쪽으로 기울여 잡으면 경계가 강화되고 자기 보호로 편향되어 실패합니다. 분열형의 병입니다. 고통을 느낄 때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자기 쪽으로 기울여 잡으면 경계가 붕괴되고 자기 포기로 편향되어 실패합니다. 우울형의 병입니다. 세계의 공시적synchronic 지평에서 대칭이 무너져 생긴 경계선의 병입니다.

 

고통을 느낄 때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상, 곧 불변 쪽으로 기울여 잡으면 고착이 강화되고 반복적 규칙성으로 편향되어 실패합니다. 강박형의 병입니다. 고통을 느낄 때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변화 쪽으로 기울여 잡으면 지속성이 붕괴되고 변덕으로 편향되어 실패합니다. 전환형의 병입니다. 세계의 통시적diachronic 맥락에서 대칭이 무너져 생긴 변곡점의 병입니다.

 

 

절대 고통, 그러니까 유물론적 고통에서 발원한 이런 구조적인 실패/병에 편승하여 세계를 억압과 착취, 종당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는 세력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풍요, 그리고 구원의 탈을 뒤집어쓴 권력·자본·종교가 바로 그 저주의 삼두마차입니다. 이들에 맞서려면 단 하나의 대오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몰락의 에티카가 인용한 김훈의 남한산성서문에 있는 표현을 재인용함.)에 서는 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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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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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는 존재론적으로 확실하고 인식론적으로 모호하다.·······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의 고통은 윤리적이다.·······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조급과 허영이 세상을 불행에 빠뜨린다·······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가히 해부학적이라고 해야 할 시선으로 파고들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는·······유물론적 타자론·······(47-51쪽)

 

세월호 국정조사 자리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이란 자가 “유족보다 더 가슴 아프다”며 허풍떨자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조급과 허영이 세상을 불행에 빠뜨리는 경우의 전형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언급은 아무리 천천히 해도 언제나 조급이며, 아무리 알뜰히 해도 언제나 허영입니다. 

 

 

마음병을 앓는 사람들의 고통과 마주할 때 정직한 의자醫者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막막함”입니다. 저 고통에 가 닿을 수 없구나, 가 가장 먼저 들이닥칩니다. 곧 이어, 건넬 말에 비해 고통이 너무 크구나, 가 몰려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을 뻘뻘 흘리는 정신 줄을 놓지 않고 하염없이 듣다 보면 예기치 않은 어떤 순간 홀연히 작은 틈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 틈에 깃들고서야 인연 지어갈 길을 보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는 중에 모순된 진실을 도처에서 만납니다. 어느 때에는 말이 턱없이 무디고 모자라는구나, 하다가, 또 어느 때에는 말이 지나치게 번다하고 장황하구나, 합니다. 앞의 경우는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느낌입니다. 뒤의 경우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느낌입니다. 이 뒤집어짐에서 오는 자책으로 격한 우울감에 빠져들곤 합니다. 마음치유의 길을 걷는 자에게 문학과 명상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치유자의 길을 걷는 자는 시를, 소설을, 비평을 다만 읽지 않습니다. 살과 뼈를 발라내며 읽습니다. 마음치유의 길을 걷는 자는 그저 웰 빙으로 소비하는 고요를 누리지 않습니다. 침묵을 창조하는 고요에 깃듭니다. '조급과 허영으로 세상을 불행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해부와 침묵을 가로지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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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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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윤리학과 진실의 윤리학이 있다. 선의 윤리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호벽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진실의 바이러스를 선의 이름으로 퇴치한다. 반면 진실의 윤리는 시스템을 다시 부팅하는 리셋 버튼이다. 그것은 때로 선이라는 이름의 하드디스크가 말소될 것을 각오한 채 감행되는 벼랑 끝에서의 한 걸음이다.(18-19쪽)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2013년 프랑스 대학 입학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 문제입니다. 프랑스 아이들이 이런 문제에 논문 식 답안을 쓸 수 있는 철학을 배우는 동안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국민윤리를 주입식으로 배웁니다. 바로 이 차이가 세월호 참극을 낳은 것입니다.

 

국민윤리라는 교과목은 지배이데올로기 아래서 ‘선’한 국민으로 이이들을 길들이기 위해 정당성 없는 정권이 만들어낸 홍보수단입니다. 선이 애당초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사회 현실에서 본다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호벽이라고 선을 규정한 것은 지극히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선하다”는 표현처럼 어려서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가치 개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선한” 사람처럼 시스템적인 악에 잘 순응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선의 반대말이 악인데도 이렇게 길들여진 “선한” 사람들은 분연히 악의 편에 섭니다. 사회정치적 스톡홀름증후군이랄 밖에요.

 

선은 길이 아닙니다. 선은 접힌 현실을 펴지 않은 채 “차카게” 머리 조아리는 것입니다. 진실이 길입니다. 진실은 접힌 현실을 펴기 위해 내디디는 벼랑 끝에서의 한 걸음입니다.

 

 

마음치유의 일선에 선 사람의 처지에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한 것은 약한 것이다. 약한 것은 악한 것이다.”

 

무엇보다 우울증 앓는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주위에서 언제나 착하다는 말을 듣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착함은 거절하지 못 하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퍼주고, 보살피는 드넓은 오지랖으로 나타납니다. 그 오지랖은 본인의 진정성과 무관하게 타인에게 ‘봉’으로 각인됩니다. ‘봉’은 착함의 경계를 한참 지나쳐 약함으로까지 나아갑니다. 그 약함은 끝내 자신을 파괴하고 맙니다. 우울증의 본령이자 최후입니다. 제 생명을 이렇게 파괴하는 것이 어찌 악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우울증 앓는 사람들에게 우선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를 보냅니다. 이것은 자기 파괴적 선에 빠져 있는 진실을 알아차리게 하려고 내는 틈입니다. 그 틈을 통해 불편한 진실이 배어들도록 합니다. 그 다음, 선이라는 이름의 하드디스크가 말소될 것을 각오한 채 감행할 무엇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모순에 맞닥뜨린 그들이 혼란에 빠져들 때 곁을 지킵니다. 혼란의 소용돌이가 빚어내는 “숭고한 표정”(5쪽)에 함께 물들어 갑니다. 더 이상 ‘봉’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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