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라는 책에서 천재 통합사상가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역이자 화폐, 경제적 지대의 제거·공유자원 고갈에 대한 배상, 사회·환경 비용의 내부화, 경제·통화의 지역화, 사회배당금, 경제 역성장, 선물문화와 P2P 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신성한 경제가 분리문명, 그러니까 백색문명을 극복하고 재통합 세계를 여는 중요한 요소라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허황한 낙관론 같지만 매우 근원적인 문명비판이면서도 당장 개인적 실천까지 가능한 톡톡한 담론이다.
저자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나는 의학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 한다. 이미 <녹색의학의 경제적 기치>에서 개론 수준의 이야기는 했다. 분리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게 분리의학은 몸의 병과 마음의 병, 병과 병 있는 사람, 병 있는 사람과 치료자를 포함한 병 없는 사람, 병 있는 사람과 사회정치, 병과 자연, 병 있는 사람과 자연을 철저히 갈라놓았다. 진단 기준과 치료(?) 약물의 보편성을 통해 병 있는 사람의 고유함과 관계적 존재성을 제거했다. 이렇게 병과 병 있는 사람을 클론으로 찍어낸 다음, 값을 매김으로써 불멸의 화폐가 다스리는 영원한 수탈제국에 의료 봉토를 헌정했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내용 전반을 관류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선물 개념이다. 선물 경제 복원 문제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제21장 「선물 속에서 일하기」가운데 <신성한 직업>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선물 모델은 무형의 가치를 전달하려는 직업에 특히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음악인, 화가, 성판매자(매춘부로 번역된 것을 인용자가 바꿈), 치유자, 카운슬러, 교사. 이 모두가 값을 매김으로써 가치 저하된 선물을 제공하는 일들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이 신성하다면, 그것을 명예롭게 제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선물로 주는 것뿐이다. 아무리 높은 가격도 무한한 것의 신성함을 반영할 수는 없다. 내가 구체적인 강연료를 요구한다면, 내 선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위의 직업들 중 하나에 종사한다면 선물 모델을 한 번 실험해보아도 좋다.”
한의사지만 하고 있는 일의 내용으로 따지면 나는 치유자, 카운슬러, 교사다. 나아가 인터뷰의 전설 오리아나 팔라치가 한 ‘인터뷰는 사랑 이야기다. 섹스다. 너를 홀딱 벗기고 나를 홀랑 들이붓는 싸움이다.’라는 말에 인터뷰 대신 숙의치유를 집어넣어 바꾸고, 숙의 또한 예술인 측면을 감안하면, 나는 위 모든 직업에 해당한다. 나는 그 동안 숙의치유에서 선물 모델을 꾸준히 실험해왔다. 물론 성공한 경우보다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여태까지는(!), 생각하고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결과는 “값을 매김으로써 가치 저하된 선물을 제공하는” 관습으로 정착되었다.
10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한의사가 숙의로 마음병을 치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숙의 1회에 90-120분, 심지어는 식사까지 해가며 5-6시간 넘게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이른바 ‘상담료’ 문제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장 큰 고민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지난주에도 상담료에 부담을 느낀 어떤 사람이 예약을 취소했다. 좀 더 세밀하게 선물 모델을 연구해서 다시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 준비 없이 무조건 선물로 제시했다. 그러니까 숙의를 진행하고 나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만큼 사례하고 가도록 했다. 그냥 가는 사람, 5천원 내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까짓 대화하고 나서 무슨 돈이냐?’며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까지 있었다. 감사를 느끼며 성의껏 내는 경우도 대개 5만원을 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모했다.
그 다음부터는 설명을 붙였다. 상담치료의 본질과 가치, 상담치료의 일반적인 풍경, 역술인의 예, 의료인 아닌 상담사의 예, 정신과 양의사의 예, 외국의 예, 상담 시간의 비교 들을 간략하게 했다. 공감하고 수긍하면서 내고 가는 돈은 대략 5-10만 원 선이었다. 희귀한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30만 원 선뜻 낸 사람이 더러 있었다. 심지어 100만 원을 내며 ‘이런 상담은 처음 받아본다.’ 한 경우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상담해보지도 않고 먼저 값을 물어보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화로 예약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상담치료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이 비용 문제 때문에 포기했다. 반대로 돈깨나 있는 강남 사람들 가운데는 한 번에 몇 백만 원 씩 카드로 긁고 가는 패키지 상품을 원했다. 그 상황을 타개하려고 홈페이지에 상담료 문제로 공개 글을 써 올리기까지 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적절한 금액을 원칙으로 분명히 제시하고 경제적인 상황을 포함한 조정 요건을 설명해주는 정도로 타협을 보았다. 지금도 이 문제는 표류 중이다.
찰스 아이젠스타인도 현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남들도 다 같이 실천한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타당한 생각이며 합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다. 다만·······당신의 마음이 이성 너머 무언가에 이끌리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바랄 뿐이다. 이성, 현실성, 안전함의 추구가 이끄는 대로 살아온 지금의 결과를 보라. 이제는 다른 무언가에 귀 기울일 때인지도 모른다.”
고백건대 선물 모델 실패 의식에는 저평가된 내 선물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과 더불어 기천 만 원대에 이르는 치료비를 받지 못한 기억이 작용하고 있다. 기존의 분리 모델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아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거다. 문제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나는 내 선물을 눈물의 포옹으로, 자신의 삶을 전복함으로 받아준 사람들에 새삼 정색하고 감사한다. 나는 내가 받은 고귀한 선물을 감동과 함께 기억한다. 무엇보다 내가 참으로 막다른 길로 몰렸다는 섬뜩한 느낌에 시달릴 때, 기적으로 찾아온 선물469 앞에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선다. 이성 너머로 나를 이끄는, 그 다른 무언가에 귀 기울인다. 신성한 경제‘의’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