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설(전 육군 군사연구소장)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패권국은 전쟁으로 무너지고 또 새로 생겨난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패권이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이란전쟁이 미국패권 붕괴의 결정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란이 미국의 가장 핵심적인 이익인 전략적 중심(center of gravity)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적 중심은 금융을 기반으로 한 전세계적인 경제체제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걸프지역 국가들을 압박함으로써 미국 경제체제의 중요한 한축을 붕괴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레바논 친 헤즈볼라 방송을 통해 미국과 협상을 위한 다음 세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번째, 향후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
두번째, 이란 핵시설에서 완전한 핵연료 순환을 보장할 것이라는 합의
세번째, 전쟁배상
이란이 미국에 제시한 조건은 사실상 무조건 항복이다.
첫번째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인데 첫째는 걸프지역에서 미군기지의 철수이고 둘째는 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키니 그것을 못하게 하라는 것인데 사실상 그것은 이스라엘군의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란은 걸프지역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두번째 핵연료 순환보장 요구는 이란이 사실상 핵무기 보유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은 미국이 자신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란은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가와 상관없이 핵무장의 길로 갈 것이라고 전망된다. 이란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여러번 있었다.
세번째 배상문제다. 배상은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하는 것이다. 이란이 미국에게 배상을 요구한 것은 패전국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배상이란 강화조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이란이 요구하는 배상은 단순하게 돈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한 새로운 질서의 공식적인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과 휴전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종전을 하자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의 이런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이란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놀랍다. 이미 걸프지역에서 군사적인 균형은 무너지고 있다. 기존의 미사일과 드론으로 하는 군사작전은 이란이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은 점점 더 강력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 방공망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최근의 전쟁상황을 보면서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방공미사일의 기능적 한계다. 방공미사일은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에는 효과적이지만 드론과 같은 체계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기술적 발달로 레이다가 드론과 항공기 그리고 탄도미사일을 구분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미국의 국방전략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만든 고가의 방공무기들이 무기체계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 같다. 수적인 우세가 질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고갈을 주장하는데 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럴 상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란은 깊숙한 지하갱도에서 미사일과 드론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고 그 생산량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게다가 이란은 부족하면 받아올 국가라고 있지만, 미국은 자체적으로 급속하게 생산을 늘릴 능력도 없고 어디서 받아올 국가도 마땅치 않다.
이란의 내부 혼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처럼 이란 혁명수비대가 확고하게 전쟁을 하겠다고 나서면 내부혼란이란 별 의미가 없다. 어떤 사회적 동요도 군대가 확고하게 대응하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사회적 동요가 체제를 흔드는 것은 군대의 태도와 입장이 어정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권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으면 그 어떤 사회변혁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란은 대중소요를 적대행위로 규정했다. 앞으로 이란에서 대중소요는 당분간 불가능하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금 내부가 위태위태하다. 강력하던 이스라엘 대중의 결속력도 흐트러지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자 네타냐후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도 내부 단속하기 어렵다. 지금 미국 경제는 점점 더 위기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조금만 더 지속되면 미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부에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다.
이란 전쟁이 끝나는 경우의 하나가 미국내부에서 경제적 붕괴가 발생하여 전쟁에서 물러나는 것도 될 수가 있을것이다.
이번 전쟁이 어떻게 끝나던 그 후과는 예상하던 것보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는 미국이 붕괴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방 언론이 보여주지 않는 항공모함 아브라함 링컨.

제국 파멸을 상징하는 듯 처참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07번째 3·1혁명일 아침, 길 위의 인문학 운동을 펼치고 있는 지승룡 님이 페이스북에 쓴 글 한 편을 우연히 접한다. 날이 날이라 백용성 스님과 대각사, 그리고 3·1혁명 이야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글을 읽고 즉시 오늘 걷기 경로를 정한다: 충무공 생가터-> 대각사-> 종묘-> 창경궁-> 창덕궁-> 탑골공원. 이만하면 오후 나절 걷기로 팽하다고 여긴다.

 

한양 풍수상 남산이 안산(案山)이다. 안산 북쪽 줄기를 안산룡(案山龍)이라 한다. 안산룡 기슭과 이 기슭 끼고 흐르는 건천(乾川)을 따라 명당이 형성된다고 한다. 진위를 떠나 정인지, 양성지, 김수온, 노수신, 허균, 유성룡같이 뜨르르한 인물을 배출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늘날 필동 중북부와 인현동1가인데 바로 이 인현동131-2가 충무공 탄생지다.


 

민중이 자발로 탑을 세워 보존한 인헌공 낙성대에 비하면 안내판 하나로 남은 충무공 탄생지는 못내 아쉽다. 물론 생가터 아니어도 충무공은 우리 영혼에 각인돼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안내판만 달랑 보고 마는 심사가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토착 왜구와 잔류 왜구가 여전히 왜장독장치는 현실이라 3·1혁명은 여태도 계속된다고 느끼니 그저 울가망하다.

 

연휴 즐기는 표정 일색인 사람 사이를 걸어 대각사에 다다른다. 오래전에 스치고 지나간 기억이 있다. 겉모양만 보고 껄렁한 신흥 불교 절집이려니 했음에 틀림없다. 백용성 스님과 3·1혁명, 그밖에 독립운동, 불교개혁에 얽힌 사실을 알고 나니 내 행망쩍음이 점직하기만 하다. 3·1혁명 그림으로 올린 특별한 단청에 삼가 예를 표해서 새 순례지로 새겨 둔다.


 

대각사와 종묘는 지척 간이라 도리어 새삼스럽다. 3·1혁명 기리는 날 종묘 걷는 일은 각별하다. 곧장 정전·영녕전으로 들어가 3·1혁명이 이 두 신성 공간과 만나 어떤 서사를 구성할지 곰곰이 생각한다. 조선과 대한민국, 그 사이 3·1혁명은 연속과 불연속 역설을 창조하는 카이로스다. 어쩌면 우리 통념보다 3·1혁명은 훨씬 더 중대한 사건일는지도 모른다.

 

3·1혁명 직전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관련 기록이 없어 역사 맥락과 사회 지평을 정확히 알지 못하나 당시 여성이 남성을 능가하는 정치 각성을 이루었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3·1혁명이란 사건은 이런 변화 모두를 아우르는 새 이름으로 우리 역사에서 다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본다. 기회가 왔으니 말이다.


 

창경궁으로 건너가기 직전 나무 한 그루를 유심히 살피는데 누군가 관심을 보인다. 상가롭게 설명하자 그가 갑자기 관심사를 넓힌다. 이야기는 궁·능과 숲으로 번져간다. 날이 날인지라 나는 문맥을 자연스럽게 이끌며 왜놈 제국이 궁·능과 숲을 어떻게 약탈했는지 자분자분 말해준다; 언제 어디서든 사소한 인연에서조차 반제 전사로서 증언하며 살아간다.

 

창경궁과 창덕궁 거쳐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익히 아는바 이 신성한 공간은 언제부턴가 남루하거나 너절한 인간들 볼모가 되었다. 밖은 뜻 모를 왜자김에 들뜬 술판으로 어수선하고, 안은 정체 모를 3·1절 기념행사로 게저분하다. 소음일랑 귓등 송가 삼고 나는 3·1혁명 새 기상을 발원한다. 3·1혁명 당시도 세상 한가운데에 물색없는 분대질은 있었으리라.


3·1혁명 순례 회두리로 삼일문 앞에 선다. 어라? 현판 글씨가 달라졌다. 오래 전이지만 내 기억은 꽹하다. 박정희 졸필임을 알아보고 쌍욕을 퍼부었으니까. 즉시 검색한다. 2001년 민족 단체 회원이 낫으로 뜯어내 버린 뒤 2003년 독립선언서에서 채자(採字), 다시 걸었단다. 속이 확 풀린다. 내친김에 뜨끈한 국밥에다 소주 한잔으로 몸을 마저 풀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무를 읽는 법(트리스탄 굴리), 이 책은 읽고 나서 숲으로 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든다. 지식을 지혜로 이끄는 힘은 마음이 아니라 몸에서 나온다는 진실을 깨닫게 하기에 팽한 책이다. 오늘은 쉽게 접근해 크게 체력 소모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서울 둘레길 열째 마디(우면산)를 이 책과 더불어 걷는다.

 

내가 숲에 드는 목적은 공부와 연동돼 바뀌어 왔다: 숲 자체에 깃들기, 비인간 식물 생명 우러르기, 지의류와 버섯(균류 자실체) 기리기, 숲속 물 모시기, 그리고 이제 나무가 건네는 말 듣기. 이렇듯 목적이 남과 달라서 숲에 들 때는 늘 혼자다. 겉보기론 등산이지만 속보기론 윤림(淪林)이다: 숲에/~서 스미기.

 

숲에 스며든 들머리,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는 소리 쪽으로 다가간다. 두 줄기가 접합한(inosculate) 나무다. 우리는 연리목(連理木)이라고 부른다. 오른쪽 나무줄기가 분기해 자라면서 왼쪽 나무줄기와 만나 비비다가 마침내 서로 부둥켜안으며 잘리고(오른쪽) 파인(왼쪽) 상처를 아물려 한 생명을 이룬 듯하다.


 

동물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생명 현상이다.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식물이 동물보다 훨씬 풍요로운 생명력을 지녔다 할 수 있다. 종 편견을 깨닫지 못하고 식물 함부로 대하는 인간이란 동물이야말로 편향된 양성 되먹임 진화가 빚어낸 오만에 휘감긴 괴물 생명체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고요히 절한 뒤 물러난다.

 

어느 순간 누가 나를 응시한다는 육감이 파고든다. 느낌 따라 본 건너편에 내 몸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기이한 눈 하나가 있다. 나무는 생애 중에 빛을 수확하는 데 도움 되지 않는 가지와 스스로 작별한다. 진이나 액으로 헤어진 자리 밀봉해 방독하고 사람 눈 모양 표지를 남긴다. 이 눈으로 남쪽을 알려준다.

 

빛이 들어오므로 남쪽에는 가지가 많다. 그 많은 가지가 다 유용하지는 않으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눈으로들 남는다. 더 아득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인간은 이 눈을 인식하고 지남력을 이용할 줄 알게 됐다. 눈 모양 표지가 아니었다면 인간이 훨씬 더 일찍 알아챘으려나. 나무가 무심하니 인간만 덕 본다.


 

둘이었다 하나 되든, 하나였다 둘이 되든 나무는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다. 불완전한 채로 완전하다. 오늘 숲에서 겪은 일만으로도 내 영혼은 거늑하고 말고다. 인간으로 살면서 인간사 바깥으로 떠도는 일이 배회일 수만은 없다. 이렇다 할 표지 없이 아뜩하게 떠내려왔으나 결국은 인간도 거기서 왔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