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날아든다 푸른도서관 32
강정규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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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반지하 집에서 살 적에, 집 마당 안쪽에 짐들을 잔뜩 쌓아놓은 곳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 곳을 배회하더니, 끝내 어머니가 짐들 속에서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발견하셨다. 한 마리는 눈 한쪽을 감고 있고 비실비실해 보이는 병든 쪽이었으나, 다른 검은 새끼 고양이는 매우 쌩쌩해 보였다. 하지만 어미 고양이가 아기고양이에게 사냥법을 가르친답시고 죽은 쥐를 그대로 그 곳에 버려 놓아, 쥐가 썩어서 냄새가 진동해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이 고양이들을 쫓아내었고, 그 과정에서 새끼와 어미가 길을 잃어 해어졌던지 오랫동안 슬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짐승들은 영물이다. 사람과 같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더 뛰어나다. 

그렇다면 새는 어떨까? 가끔씩 시골에 가면 간간이 세워져 있는 전봇대를 올려다 보았을 때 나뭇가지로 지어진 버려진 까치집을 자주 본 적이 있다. 가끔씩 이 까치집에 까치가 날아들기도 한다. 이 새들이 얼마나 신기한지, 이 새알을 잠시라도 인간의 손이 닿거나 그 위치가 바뀌어 있다면 어미새는 금방 알아차리고 더이상 그 알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도 모성애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동물들과 교감을 느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현재 동물이라곤 한 마리도 접촉할 수가 없다. 우리집에 개라도 있으면 모르지만, 인간과 친하다는 개나 고양이조차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어쩌겠는가? 어쩌다 가끔 발견되는 벌레들을 보면 그 움직임이 신기해서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가끔씩은 어릴 때로 돌아가 나만의 고향속에서 동물들과 함께 지내고 싶기도 한다.  



 

작가 또한 고향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나보다. 그래서 그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단편집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삼거리 국밥집이었다. 본디 사람중에서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많다.  이야기의 주인공 양순 씨는 이북에 갓난아이 때 열병을 앓아서 병신(책속에서 나온 글을 그대로 인용;;;)이 된 딸을 둔 국밥집 아주머니다. 그래서 의원을 찾아 월남하였다가 휴전선이 만들어졌고, 그래서 국밥집의 식모살이를 하다가 어느새 국밥집 사장이 되었다. 뭘 하다가도 이북에 남겨놓고 온 딸이 생각나 바람이 그녀를 데려다 주지 않을까, 바람이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주진 않을까 귀기울이며 지냈다. 어느날, 꼭 자기 딸처럼 장애를 앓고있는 춘자라는 한 여자아이를 만나고, 몇 번 국밥을 먹여주었다가 스스로 식탁을 닦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네가 내 딸이로구나! 하며 양딸로 삼는다. 하지만 문체가 일반적이지 않고, 내용도 좀 쉽지 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던지라 3번이나 읽어야 했던 난해한 부분이었다. 

책 전체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몇번이고 읽고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작가의 말을 읽고서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연관성을 가지는 게 아니라, 작가의 고향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쩐지 이야기마다 사투리가 많이 사용되고, 한 고향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남북이 나뉜지 오랜시간이 지났고, 그래서 마음 아프게 생각한 여러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게도 작가의 고향이 있듯이 이제 14세인 내가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낸 남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며 그리운 "고향"이란 단어가 크게 다가섰던 책이었다.  그 곳은 내 마음의 고향이며 그 고향 이야기를 유려한 글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책속 장면 하나하나에서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내고는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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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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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같은 유치원을 다니면서, 원장에게 같은 수법으로 성추행을 당했던 이름이 같은 두 아이, 이유진과 이유진. 그러나 한 명은 그 상처를 똑똑히 기억하면서도 그 상처가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모두 아물었지만, 한 명은 치료를 받지 못해서 그냥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뿐 아직 고름이 들어있는, 생명에 위험할 수 있는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주변의 관심을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모두 아물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리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 한 가정에서는 부를 위하여 딸을 거의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작은유진은 그 기억을 큰유진을 통해 다시 떠올리면서, 안 피우던 담배와 술까지, 그리고 공부는 안 하고 춤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나란히 성폭행을 당했으면서도 어찌 한 명은 그렇게 태연하게 자라날 수 있었을까? 자라났던 환경은 오히려 작은 유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큰유진이는 가정이 가난해 핸드폰조차도 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진과 유진을 읽으면서, 만일 나에게도 상처를 받은 자식이 있다면 주변의 물질적 이익을 얻기 위하여 스트레스받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작은 유진이 매우 불쌍하다. 하지만, 끝내는 그 부모님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결말을 맞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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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소매 바람을 따라 휘날리니 - 홍길동전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3
류수열 지음, 이승민 그림 / 나라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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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갈래는 고전 소설이자 최초의 한글 소설로, 영웅 소설이지만 주인공이 왕이 된다는 내용으로 인해서 반역 소설로 몰려 지은이 허균은 사형당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원본이 아닌, 약간 편집되고 각색이 되어 내려오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 그 점은, 홍길동이 말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

   
  길산은 소자보다 더한 천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세 살에 그 어미와 이별하고 운봉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온 장길산은, 지은이 허균이 죽고 난 후 훨씬 이후에 태어난 인물이다. 그러니 자연히 이 책이 각본되어 나온 내용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홍길동은 본래 홍 판서가 용꿈을 꾸고 태어난 출신인지라, 어릴 때부터 그 뛰어난 재주가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몸종인 춘섬에게서 태어난 서자인지라, 당시의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인하여 적서차별로 인해 그 뛰어난 재주를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잘 살펴보자면, 서자들이 전체적으로 공부를 잘 하고, 그 재주가 뛰어난 까닭이 있다. 서자는 막상 벼슬에 오를 수 있는 완벽한 양반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위 계층에 속하지도 않는 딱 어느 쪽도 아닌 중간 계급이었다. 이런 서자들이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질 수 있던 곳은 병법이나 공부를 하는 일밖에 없지 않겠던가? 이로 인해 길동이도 어릴 적부터 병법에 관심을 두어, 그 재주를 크게 키울 수 있었던 까닭이다. 

길동은 적서차별의 한이 깊고, 또 첩 초낭의 음모로 인하여 집을 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떠돌던 홍길동은, 산적의 무리를 만나 그 우두머리가 되어 의로운 도적단, 활빈당을 만든다. 

홍길동은 실제 역사적 인물을 토대로 만든 것이며, 그 또한 관군에 대항하여 싸웠고, 섬나라(일본쪽에 속한 지역)로 가서 그 곳에 작은 나라를 만들어 살았다고 한다. 이런 홍길동의 영웅적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한껏 기쁨을 누렸다. 홍길동전을 통해서 다양한 사실들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1. 홍길동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까닭은?  

 

2. 홍길동이 서러움을 느낀 근본적인 원인은? 

 

3. '홍길동전'에서 나타난, 당시 사회의 문제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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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처럼 문원 세계 청소년 화제작 5
쎄르쥬 뻬레즈 지음, 김주경 옮김 / 도서출판 문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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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귀"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었던 나. 언제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거라곤 끊임없는 고통뿐인 아이, 레이몽. 1년동안 요양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랑하던 소녀의 비밀을 알게 되고선 마음속엔 가득 상처만을 안고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만약 내가 레이몽이었다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갔던 곳에서, 상처만 더 받고 오게 된다면 나의 심정은 어떠할까? 아마 타는듯이 아프는 것도 모자라, 온 몸 전체를 불태워 재로 만들 것만 같을 것이다. 

그런 레이몽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고열로 쓰러졌다. 결국 대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침대에서 자신이 낫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늦었어. 당신들은 내 손을 잡아주려면 좀 더 일찍 잡아줘야만 했어.'라고 말하며 마음속으로 그들의 손을 뿌리친다. 얼마나 주변 사람들이 그를 미워했냐면, 끝내 그가 보고싶은 마지막 한 사람은 안느였다. 아, 불쌍한 레이몽! 그는 언제나 고된 삶속에 살던 이였다. 주변 사람이 조금만 더 일찍 그의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그의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해주려고 노력만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레이몽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후 이야기는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첫째는 레이몽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의 일상은 언제나 이렇게 반복되겠지, 두번째는 레이몽의 현재 심정, 그리고 세 번째는 레이몽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한다. 레이몽은 학교에서 자신이 직접 지은 시를 낭송해 모두를 감동시킨 멋쟁이였고, 집에서는 완벽한 가정을 가진 독자였다. 그런 레이몽의 멋진 삶은 한없이 기쁨밖에 없어 보인다. 

레이몽의 귀중한 상상은 어떻게 끝날까? 레이몽의 가족은 화창한 날을 잡아서 바닷가로 놀러간다. 거기서 식사를 하고 레이몽과 죠슬린이 세 시간동안 물에 발 끝도 담그지 않기 위해 모래 장난을 하는 동안, 레이몽의 엄마는 엉덩이가 거의 노출된 수영복을 입었기에 화가난 아빠에게 '그렇게 엉덩이를 보여주고 싶으면 아예 옷을 입고 다니지 마시지'라는 말을 들으며 모든 옷을 빼앗겨 나체가 된다. 그렇게 레이몽의 행복한 바다 여행은 끝이나고, 다시 앞길은 검은 연기속이다. 

레이몽의 가장 행복한 삶에서조차도 레이몽은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러면 레이몽은, 삶에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레이몽이 행복을 얻기위해 삶이 아닌 다른 길로 방법을 택한다면? 그래,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주었던 빵집 아저씨의 2마력 용달차를 타고 함께 떠나는거야! 그것이 마지막 레이몽의 선택이었고, 레이몽은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취한다. 

평화로운 죽음...  레이몽이 평화롭게 죽은 사람들 중 한명으로 과정은 힘들었어도, 어렵게 평안을 얻은 것 같은 레이몽. 그가 이런 새로운 방법을 택하며, 내 마음 속은 두가지 생각이 충돌했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채찍도, 선생님과 아이들의 놀림도, 엄마의 미움도 다 사라져 버린 상태에 놓였으니 진정한 평안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하나는 힘들게 살아 간다는 사실이 무조건 고행일까?라는 생각이었다.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살아갈 의지마저 잃게 만든다면 과연 살아갈 수 있겠는가!  레이몽의 가족들 모두가 레이몽에게 했 던 일을 모두 후회하고, 제발 레이몽이 깨어나 그 귀찮은 아들이 아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아들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물론 레이몽은 그런 일을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으므로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세계 속에선 끔찍한 반복의 연속일 뿐. 만약 내가 레이몽이었더라면, 홀가분하게 모든 짐을 벗어던지고 죽음을 향해 다가갔을까? 혹은 변화된 부모님의 사랑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다만 확실한 것은 내 입장이었다면 끔찍한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할 듯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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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2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나귀 귀 문원 세계 청소년 화제작 3
쎄르쥬 뻬레즈 지음, 박은영 옮김, 문병성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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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심지어는 사람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다. 뭐 유전 탓이라든지, 환경 요인이라든지, 아니면 어떤 사고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책의 주인공인 레이몽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1편을 제쳐두고 2편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레이몽이 전문 학교에 가야만 했던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그리고 레이몽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만약 당신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놀림받고 왕따당하며, 선생님에게는 언제나 멍청하다는 이유로 맞고 또 집에 가면 그것 때문에 허리띠로 채찍질을 잔뜩 당하며 이리저리 사정없이 차이는 그런 고통을 몇날 몇일동안 계속 당하면서도 견딜 수 있겠는가? 난 그런 고통을 견디는 레이몽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의 세계에 평화란 없다. 그렇게 함부로 때리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때가 어느 시대인지가 궁금했다. 아마도 어린이 보호법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이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읽다가 마지막 빵집 아저씨가 말하는 부분에서 크게 놀랐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은 아이들을 때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레이몽, 너 그거 알고 있니? 네 아버지한테 말해야 되겠다.

 
   

레이몽은 '선생이 아이를 때릴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시대에, 단지 조금 멍청하다는 이유로 수도 없이 학대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자랄 것도 아닐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학대를 당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면 레이몽이 하필 죠슬린이 태어난 후부터 학대를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빵집 아저씨가 말하길, 레이몽이 계단 입구에서 트럭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죠슬린을 배고 있던 엄마가 레이몽이 절대로 놀면서 길을 비켜줄 아이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뛰어서 레이몽 위를 점프해 지나가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대로 바닥으로 우당탕 넘어져버렸기에 죠슬린이 그 충격으로 저능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 때문에 레이몽은 찬밥신세, 아니 동네북이 되어 언제나 맞고 다니게 된 것이다.

나는 레이몽의 부모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자녀에게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결코 그 탓을 레이몽에게 돌리지 않을 것이다. 자식 하나가 엉망이 되었더라도 다른 자식까지 엉망으로 만들면, 더 슬프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샴 썅둥이를 생각해보자. 대부분은 뱃속에서 한 명이 죽어야만 한다. 그러면 부모가 살아남은 한 아이를 다른 한 아이를 죽였다면서 나무라고, 발로 차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정상적인 부모로 인하여 레이몽과 같은 피해자가 생겼다. 

제 3부작 이별처럼 에서 레이몽은 빵집 아저씨의 마지막과 같은 매우 평화롭게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죽음'. 레이몽은 언제나 난 죽지 않을 테야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을 보면 이미 자살하고도 남을 상황이다. 아, 레이몽. 한없이 고통받고 자란 불쌍한 그를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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