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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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작가의 <눈감지 마라>는 총 49편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집이다. 주인공인 박정용과 전진만은 지방대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사회로 나오기 전에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부터 떠안은 이들은 월세 30만 원짜리 방에 둘이 살면서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편의점은 기본이고 음식점, 출장 뷔페, 택배 상하차, 고속도로 휴게소 등 장소와 날짜를 안 가리고 돈 주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 


이렇게 보면 노동과 생계 걱정으로 얼룩진 어두운 이야기일 것 같지만, 의외로 코믹하고 유머가 많다. 일단 정용과 진만의 캐릭터가 재미있다. 정용은 성실하고 정의감이 높은 만큼 분노도 많은 반면, 진만은 정용에 비해 헐랭하지만 그만큼 정도 많고 실수도 많다. 그런 두 사람이 집에서 일터에서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생활하는 모습이 유쾌하고 푸근하다. 내복보다 싸고 따뜻하다며 성인 남자 둘이 집에서 팬티 스타킹을 입고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ㅋㅋㅋ 


정용과 진만이 일상에서 또는 일터에서 맞닥뜨리는 사람들도 하나 같이 개성 있고 재미있다. 특히 나는 이들의 옆방에 사는 아저씨가 웃겼다. 어떤 사정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고 혼자서 사는 이 아저씨는 딸과 통화를 할 때마다 어떻게든 딸을 웃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통화 끝에 항상 회심의 유머를 날린다. 정용과 진만은 처음엔 아재 개그라며 무시하다 점점 어이가 없어서 웃고 나중에는 진심으로 웃겨서 웃는다 ㅋㅋㅋ 


가난하고 힘들어도 열심히 사는 정용과 진만이 결말에선 형편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닌 점도 인상적이었다. 해피엔딩은 할리우드 영화에나 있는 것이고 현실에는 없다는 비관 또는 체념일까.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자신의 젊음을 희생하고 있고 심하게는 신체와 목숨을 잃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그저 소설의 글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소설이라서 더욱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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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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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누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나'는 누나에게 곧 손님이 온다는 말을 듣는다. 손님은 누나가 전부터 알고 지낸 오픈리 게이로, 애인과 헤어진 후 생업을 접고 외국을 여행하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누나는 손님에게 잘해주라고 신신당부하지만 '나'는 왠지 그 남자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첫 만남부터 어색한 건 물론이고, 친동생인 자신보다 누나한테 더 싹싹하게 구는 그의 태도가 점점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 둘 사이에서 완충재 역할을 해주던 누나가 일 때문에 집을 떠나게 되고, '나'는 그 남자와 단둘이 집에 남아 긴 밤을 보내게 된다. 어색함을 달래려고 열심히 들이부은 술기운 탓이었을까. 시종일관 싹싹하고 자못 명랑해 보이기까지 했던 남자가 '나'의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울고 싶지만 울지 않고 잠든 '나'는 이튿날 남자가 떠난 걸 알게 된다. 울고 싶을 때 우는 남자와 울지 않는 남자의 차이는 뭘까. 울지 않는 쪽이 사실은 더 울고 싶은 건 아닐까. 


박선우의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 첫 번째로 실린 <밤의 물고기들>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누나의 손님과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사건이랄 게 없는 소설이다. 그런데도 인상적이었던 건 화자인 '나'가 드러낸 감정보다 드러내지 않은 감정이 더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 꺼렸던 그 남자를 직접 만난 후 그 남자가 예상보다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이어지는 단편 <우리는 같은 곳에서>도 어떻게 보면 인물들의 관계가 비슷하다. '나'의 아내는 대학교 때 잠깐 사귀었고 지금도 계절마다 한 번은 만나는 '나'와 영지의 사이를 의심한다. 그러다 우연히 영지를 만나 영지와 '나'가 자신이 의심하는 사이가 아니란 걸 알게 되지만 그뿐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좋은 사이가 되는 건 별개라는 걸 우리는 언제부터 알게 되는 걸까. 그런 한계는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소설집을 읽는 내내 공감이 되면서도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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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세 매일과 영원 6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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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날 때부터 이야기꾼인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글을 쓰면 소설이 되고 명작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십 년 이상 한국 문학, 외국 문학 가리지 않고 수많은 소설을 꾸준히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타고난 이야기꾼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 어쩌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서 -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정용준 작가님은 후자에 속하지 않나 싶다. 


2022년 민음사 '매일과 영원' 시리즈로 출간된 <소설 만세>는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선릉 산책>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 정용준의 첫 에세이집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해온 노력과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 중견 소설가로서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소설에 대한 애정과 각오, 의지 등이 담겨 있다. 


저자는 어릴 때 말더듬증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주인공 소년처럼 말더듬증 때문에 남들 앞에서 말하기를 꺼렸고, 자연히 남이 말하는 걸 보거나 자기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러다 소설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소설을 만나 더 나은 입술을 얻었다." 2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오직 소설을 쓰기 위해 2년 동안 인터넷이 되지 않는 방에 칩거할 정도로 지독하게 썼다. 


저자에게 소설은 "단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설명하고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이지만, 허구인 그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과거와 미래의 어떤 날 어떤 순간의 현실이고 실제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 있어도 계속 살아갈 여지를 남긴다. 소설은 끝나도 인물에게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창작한 허구의 이야기 속 인물조차 함부로 다루지 않는 마음은, 저자가 그동안 읽은 소설과 저자를 가르친 스승들에게서 배웠다. 글은 작가가 쓰는 것인 동시에 독자가 읽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가로서 충분히 숙련된 지금도 꾸준히 다른 책을 읽고 공부한다. 배우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한승원, 나희덕, 이장욱, 이승우 등 좋은 스승, 선배를 모범으로 삼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떤 소설가들은 자신을 '소설가 000'라고 소개하는 대신 '소설 쓰는 000'이라고 소개한다. 이는 겸양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때 소설을 썼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식이기도 하다. 저자 또한 자신을 '소설 쓰는 정용준'으로 소개하고, 이 소개 문구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이런 마음, 이런 태도로 살아왔고 써와서 그의 소설이 그토록 좋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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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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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들 순간들>은 배수아 작가가 15년 전부터 머물고 있는 베를린 인근의 한 정원 딸린 오두막에서의 생활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이 오두막은 동네 주민들도 잘 모를 만큼 외진 곳에 있어서 독서와 집필에 몰두하기에는 최적의 공간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저자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인물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요리를 하고, 아주 가끔 외출을 하거나 손님을 초대한다.


배수아 작가의 글 하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어렵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다행히 이 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소설가가 그중에서도 깊은 정이 든 공간에서 소중한 사람과 보낸 한 시절을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주는 듯해 오히려 다정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장소는 다르지만 작가님도 나처럼 집에서 책 읽고 집 근처 호수를 산책하는 조용하고 안정된 생활을 좋아하신다니 반가웠다(그러실 것 같았지만).


바흐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도보로 연주회장에 가다가 뜻하지 않은 체험을 한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집에서 연주회장까지 10km 밖에 안 된다는 말만 믿고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섰는데 점점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군사 시설처럼 보이는 짓다 만 콘크리트 건물뿐일 때, 얼마나 공포스럽고 불안했을까. 그러다 마침내 익숙한 황금빛 밀밭이 보였을 때는 안도감 정도가 아니라 황홀감까지 느껴지지 않았을까(길을 잃어본 적이 많아서 더 깊이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 스위스 실스마리아에 다녀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실스마리아라고 하니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떠올랐고, 그곳의 풍경과 작가님의 오두막이 있는 곳의 풍경이 꽤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에도 두 사람이 작은 집에서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산책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극적인 사건이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느낌이 이 책과도 비슷하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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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아로새겨진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7
다와다 요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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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는 청년 크누트는 흐린 날씨를 창 너머로 보면서 소파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여자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크누트의 시선을 고정시킨 여자의 이름은 Hiruko. 한때는 '중국 대륙과 폴리네시아 사이에 위치한 열도'였으나 이제는 없어진 나라에서 왔다고 밝힌 Hiruko는 난민 신세로 북유럽의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살다가 스스로 '판스카'라는 언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살게 된 나라의 언어를 그대로 배워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온 나라의 언어들을 혼합해 사용한다는 Hiruko의 말에 언어학자로서 깊은 흥미를 느낀 크누트는 곧바로 방송국으로 달려가 Hiruko를 만난다. 그러자 Hiruko는 독일의 소도시 트리어에서 '우마이 페스티벌'이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축제의 주최자인 텐조라는 사람이 아무래도 자신과 같은 나라에서 온 것 같아서 이제 곧 그곳으로 갈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Hiruko의 여정에 크누트가 동행하게 되고, 독일에서 유학 중인 인도인 아카슈, 트리어의 박물관에서 일하는 독일인 노라 등이 끼어든다. 이들은 국적도 다르고 모어도 다르고 여행을 하게 된 동기나 목적도 다르다. 하지만 완전히 서로를 알지 못하고 완벽하게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여행을 계속하고, 종국에는 이들처럼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로 말하며 살고 있는 그린란드 출신의 텐조/나누크, Susanoo를 만나 각자의 여행의 의미를 찾는다.


<지구에 아로새겨진>은 다와다 요코의 'Hiruko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이다. 다와다 요코는 1960년 일본에서 태어나 1982년 독일로 이주했다. 오랫동안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쓰면서 문학뿐 아니라 연극,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다와다 요코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주요 관심사인 언어와 정체성, 경계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을 보여준다.


Hiruko의 판스카는 북유럽 국가들의 언어를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북유럽 사람은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매끄럽고 완벽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Hiruko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크누트처럼 기꺼이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한 판스카는 언어로 존재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언어를 말하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태도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사용하는 호쿠사이와 모네, 후지산과 콜소스산에 대한 비유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호쿠사이의 후지산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은 모네가 콜소스산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후지산 그림인가 콜소스산 그림인가. 호쿠사이의 후지산 그림이나 콜소스산을 원본으로 보면 그 그림은 호쿠사이의 아류 또는 콜소스산의 복제본으로 볼 수 있지만, 모네가 그렸다는 점에선 분명한 원본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세계가 글로벌화 될수록 모어가 무엇인지는 점점 덜 중요해질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필요로 하는 언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습득해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언어뿐 아니라 지식, 문화, 사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Hiruko처럼 나라가 없어지고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이 적어져도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유연성과 담대함이다.


소설 자체는 Hiruko를 중심으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라서 즐겁게 읽힌다. 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적이고 단 한 명도 전형적이지 않다. Hiruko가 태어난 나라(일본)가 없어졌다는 것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점점 더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주요 산업이 어업인 그린란드에서 더 이상 바다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불황이 심해지고 주민들의 이탈이 가속화된다는 것도 이미 현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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