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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합본, 특별판)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기 전에 남이 쓴 서평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읽기 전에 남이 쓴 서평을 먼저 읽는 편이 좋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책의 구성이 잘못되었다. 이 책은 존 르카레의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함께 실은 합본이다. 문제는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가 먼저 나오고(1961년 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나중에 나왔다는 것이다(1963년 작). 두 소설이 아무 관련이 없으면 모를까, 등장인물도 일부 겹치고 줄거리도 연결되는데, 굳이 나중에 나온 작품을 앞에 배치하고 먼저 나온 작품을 뒤에 배치한 출판사의 의도는 무엇일까. 현명한 독자라면 (나처럼) 책에 실린 순서대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고 나서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읽지 말고, 331쪽부터 나오는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읽고 나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기를 간곡히 권한다.
둘째, 내용이 어렵다. 존 르카레의 소설은 똑같이 동서 냉전기의 영국이 배경인 첩보물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달리 선악 구분이 모호하고 다른 요소 없이 오로지 두뇌 싸움에만 치중한다. 그러니 책을 읽기 전에 간략하게라도 내용을 알아두면 좋다.
먼저 존 르카레의 데뷔작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존 르카레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지 스마일리가 주인공이다(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게리 올드만이 맡은 역할이 조지 스마일리다). 영국 정보부 소속 첩보원인 조지 스마일리는 공산주의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외무부 직원 페넌을 면담하게 된다. 면담 결과 스마일리는 페넌이 결백하다고 확신하지만, 이튿날 페넌이 자살한 채 발견되어 스마일리는 충격을 받는다. 페넌의 집에 찾아간 스마일리는 자살이 아닌 이유를 몇 가지 찾게 되고 이를 상사에게 보고하지만, 상사는 사건을 묻으려고만 해 결국 스마일리는 사표를 낸다(이 소설 뭔가 국정원 마티즈 사건과 비슷하다. 왜인지는 소설에서 확인하시길...)
존 르카레의 세 번째 작품이자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주인공은 영국 정보부 소속 첩보원인 앨릭 리머스다(조지 스마일리는 조연으로 나온다). 한때 독일 지부 제일의 실력자였던 리머스는 동독 정보부 소속 첩보원 문트에 의해 첩보망이 파괴되어 한직으로 밀려난다. 이때 영국 정보부로부터 '관리관'이라는 자가 나타나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해 문트를 제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이를 받아들인 리머스는 긴 준비 끝에 영국 정보부에서 쫓겨나 원한을 품은 인물로 보이는 데 성공하고, 자신에게 접근한 첩보원을 이용해 동독 정보부에 잠입한다. 과연 그는 무사할 수 있을까?
첩보전을 치르면서 서방은 개인을 희생시켜 왔다. 집단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서방의 위선이다. 나는 그것을 철저히 비난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평가하는 데 점점 더 공산주의적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558쪽)
셋째, 존 르카레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면 작품이 더 잘 보인다. 알려져 있다시피, 존 르카레는 영국 정보부 M16에서 근무한 적 있는 전직 첩보원이다(제임스 본드가 M16 소속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쓴 이언 플레밍 역시 영국 해군 첩보원 출신이지만, 존 르카레는 이언 플레밍처럼 영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지도 않고 첩보원을 영웅시하지도 않는다. 동서 냉전에 대해서도 어느 한 쪽을 편들지 않고 양쪽 모두 단점이 있으며, 정확히는 자유 진영이 점점 공산 진영을 닮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로 인해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비슷한 첩보물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존 르카레의 소설이 다소 심각하고 암울하고 비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장벽은 무너졌고 냉전은 끝이 났으며, 제임스 본드 시리즈조차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아닌 존 르카레의 세계관에 점점 가까워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최근 개봉된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대부분 적이 내부에 있고, 제임스 본드는 자신을 영웅으로 인식하기 보다 구시대의 퇴물로 여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소설을 읽으면 훨씬 잘 읽힐 것이다(아니어도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