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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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고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알라딘에서 어떤 분이 쓰신 서평을 읽고 겨우 이해했다. (북다이제스터 님 서재 http://blog.aladin.co.kr/713413104/9473632) 이렇게 잘 쓴 서평이 있는데 굳이 나까지 서평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마는, 나는 나대로, 이해가 딸리는 대로 서평을 써보는 것으로. 


이 책은 유발 하라리의 전작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가 워낙 좋았기에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읽었다. 구입해 놓고 보니 이 책은 신작이 아니라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가 출간되기 7년 전인 2008년에 나온 구작이었다. 유발 하라리가 역사 학자인 줄은 알았지만 역사 중에서도 중세 역사, 그중에서도 군사 문화 전공인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책이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 비해 주제가 좁고 내용이 깊은 것은 이때만 해도 저자가 전공 분야에서 자리 잡기 바쁜 '초보' 학자이자 작가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전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경험'이다. 저자는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다양한 문헌 자료를 통해 고증한다. 중세만 해도 전쟁은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신의 뜻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전쟁 또한 신의 섭리이며 전쟁에 나가는 것은 신의 섭리에 따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쟁에 나가 생사를 넘나들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도 그뿐이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이러한 풍조가 바뀐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사이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사유하는 인문주의가 자리 잡고,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감성 문화가 유행했다. 근대인들 사이에서 전쟁에 나가면 개인적 성숙을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소문이 퍼졌고, 전쟁 체험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전쟁에 나가려고 했다. 이들에게 전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계시(revelation)'로 여겨졌다. 


이렇게 된 것은 전쟁이 실제로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전쟁을 특별한 경험으로 해석하면서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부풀리기 때문이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이 몇십 년에 걸쳐 군대 이야기를 우려먹거나,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틈만 나면 "전쟁을 못 겪어봐서 배부른 소리 한다." 같은 말을 꺼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사람이 실제로 특별한 경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이 그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특별하고, 누구나 할 수 없는 강렬하고 숭고한 경험으로 가치를 높였을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쟁을 긍정적으로 보는 체험담뿐 아니라 전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체험담도 마찬가지다. 전쟁에 대한 환멸이나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체험담 역시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안다 한들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이 '주관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겪은 것을 남이 그대로 겪을 순 없다. 내가 겪은 것을 남에게 이야기한들 그대로 알 순 없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체험하거나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남에게 이해받고 있을까. 내게 이 책은 전쟁 그 자체를 다룬 책이라기보다, 전쟁을 통해 소통과 공감의 암울한 민낯을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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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6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합본, 특별판)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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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의 순서만 바로잡으면 아쉬움이 없었을 듯. 작품 자체는 좋습니다. 책에 함께 실린 후기와 해설도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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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합본, 특별판)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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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남이 쓴 서평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읽기 전에 남이 쓴 서평을 먼저 읽는 편이 좋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책의 구성이 잘못되었다. 이 책은 존 르카레의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함께 실은 합본이다. 문제는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가 먼저 나오고(1961년 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나중에 나왔다는 것이다(1963년 작). 두 소설이 아무 관련이 없으면 모를까, 등장인물도 일부 겹치고 줄거리도 연결되는데, 굳이 나중에 나온 작품을 앞에 배치하고 먼저 나온 작품을 뒤에 배치한 출판사의 의도는 무엇일까. 현명한 독자라면 (나처럼) 책에 실린 순서대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고 나서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읽지 말고, 331쪽부터 나오는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읽고 나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기를 간곡히 권한다. 


둘째, 내용이 어렵다. 존 르카레의 소설은 똑같이 동서 냉전기의 영국이 배경인 첩보물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달리 선악 구분이 모호하고 다른 요소 없이 오로지 두뇌 싸움에만 치중한다. 그러니 책을 읽기 전에 간략하게라도 내용을 알아두면 좋다. 


먼저 존 르카레의 데뷔작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존 르카레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지 스마일리가 주인공이다(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게리 올드만이 맡은 역할이 조지 스마일리다). 영국 정보부 소속 첩보원인 조지 스마일리는 공산주의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외무부 직원 페넌을 면담하게 된다. 면담 결과 스마일리는 페넌이 결백하다고 확신하지만, 이튿날 페넌이 자살한 채 발견되어 스마일리는 충격을 받는다. 페넌의 집에 찾아간 스마일리는 자살이 아닌 이유를 몇 가지 찾게 되고 이를 상사에게 보고하지만, 상사는 사건을 묻으려고만 해 결국 스마일리는 사표를 낸다(이 소설 뭔가 국정원 마티즈 사건과 비슷하다. 왜인지는 소설에서 확인하시길...) 


존 르카레의 세 번째 작품이자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주인공은 영국 정보부 소속 첩보원인 앨릭 리머스다(조지 스마일리는 조연으로 나온다). 한때 독일 지부 제일의 실력자였던 리머스는 동독 정보부 소속 첩보원 문트에 의해 첩보망이 파괴되어 한직으로 밀려난다. 이때 영국 정보부로부터 '관리관'이라는 자가 나타나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해 문트를 제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이를 받아들인 리머스는 긴 준비 끝에 영국 정보부에서 쫓겨나 원한을 품은 인물로 보이는 데 성공하고, 자신에게 접근한 첩보원을 이용해 동독 정보부에 잠입한다. 과연 그는 무사할 수 있을까?


첩보전을 치르면서 서방은 개인을 희생시켜 왔다. 집단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서방의 위선이다. 나는 그것을 철저히 비난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평가하는 데 점점 더 공산주의적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558쪽)


셋째, 존 르카레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면 작품이 더 잘 보인다. 알려져 있다시피, 존 르카레는 영국 정보부 M16에서 근무한 적 있는 전직 첩보원이다(제임스 본드가 M16 소속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쓴 이언 플레밍 역시 영국 해군 첩보원 출신이지만, 존 르카레는 이언 플레밍처럼 영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지도 않고 첩보원을 영웅시하지도 않는다. 동서 냉전에 대해서도 어느 한 쪽을 편들지 않고 양쪽 모두 단점이 있으며, 정확히는 자유 진영이 점점 공산 진영을 닮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로 인해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비슷한 첩보물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존 르카레의 소설이 다소 심각하고 암울하고 비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장벽은 무너졌고 냉전은 끝이 났으며, 제임스 본드 시리즈조차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아닌 존 르카레의 세계관에 점점 가까워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최근 개봉된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대부분 적이 내부에 있고, 제임스 본드는 자신을 영웅으로 인식하기 보다 구시대의 퇴물로 여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소설을 읽으면 훨씬 잘 읽힐 것이다(아니어도 돌은 던지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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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7-08-1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키치 2017-08-15 21:25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 가깝지만 낯선 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2
후촨안 지음, 박지민 옮김 / 애플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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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음식의 역사 외에도 일본의 문화, 일본 음식 기업의 특징 등이 자세히 나와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일본 음식 먹을 기회 있을 때마다 생각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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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 가깝지만 낯선 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2
후촨안 지음, 박지민 옮김 / 애플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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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음식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껏해야 생선회나 초밥을 파는 정통 일식집이나 이자카야 정도. 일본 가정식이나 라멘, 돈부리 등 일본인들이 평상시에 즐겨 먹는 음식을 국내에서 맛보기가 힘들었다. 요즘은 다르다. 일본 가정식을 직접 만들어 파는 음식점도 많이 생겼고, 일본 현지의 맛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라멘이나 우동, 소바, 카레 집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일본 음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본 음식은 생선회와 초밥이 전부일까? 라멘이나 돈가스는 일본인들이 예부터 먹어온 음식일까? 기왕 먹는 일본 음식, 제대로 알고 먹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을 찾았다. 대만의 역사학자 후촨안이 쓴 교양 인문서 <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이다. 


우리는 '전통'을 문화 속에서 변하지 않고 늘 그대로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인, 프랑스인 또는 영국인 중에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 순수한 중국식, 프랑스식, 영국식 문화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 각도에서나 사회적 변화의 방식으로 '전통'을 관찰해보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요리를 알고 싶다면 음식과 사회와 외래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고 이것이 바로 이 책이 견지하는 시각이다. 


일본 음식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72년 육식해금령 이후다. 불교의 영향으로 1200년 동안 육식을 하지 않았던 일본인들에게 육식해금령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육식을 먹지 않다가 먹게 되는 일은 고양이나 개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 먹게 하는 것처럼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메이지 정부가 육식을 허락한 것은 제국주의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인이 서양인에 비해 체구가 작고 체력이 약한 것은 육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메이지 정부는, 육식해금령과 함께 다양한 조리법을 개발해 육식을 적극 장려했다. 그 결과 탄생한 음식 중에 대표적인 것이 돈가스다. 고기를 튀기면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줄어들고 반찬으로서 밥과 함께 먹을 수도 있다. 일본산 소고기를 일컫는 와규, 스테이크용 고기를 잘게 잘라 철판에 구워 먹는 데판야키도 이때 탄생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깃코만 간장은 오사카성 함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성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했고, 전투에서 진 히데요리와 가신들은 할복자살했다. 이때 히데요리를 지지하던 무사 중 한 명이었던 마키 요리노리의 가족들이 고향을 떠나 간장 장사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훗날 깃코만 간장이 되었다고. 


중국에서는 이미 사라졌는데 일본에는 여전히 전해지는 고서나 문화, 사상처럼 두부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지만 진짜 두부의 맛과 전통은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에 관한 설명도 흥미롭지만, 저자가 실제로 일본을 여행하면서 직접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라멘이나 소바 등 서민들이 즐겨먹는 음식부터 미슐랭이 인정한 고급 음식과 쇼진 요리, 가이세키 요리 등 특수한 상황에서 먹는 음식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음식점 정보도 실려 있으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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