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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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조금만 읽다 자려고 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다 읽고 시간은 새벽 한 시... (덕분에 지금 좀 졸리다 ㅎㅎㅎ)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는 2015년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이며, 오카다 준이치와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 영화 <온다>로 제작되어 올겨울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주인공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다하라 히데키와 가나 부부. 얼마 전 아내로부터 임신 소식을 들은 히데키는 사랑스러운 아내 가나와 곧 있으면 태어날 딸 치사를 누구보다 아끼며 무슨 일이 생겨도 반드시 그 둘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히데키의 직장 후배 다카니시가 회사에서 원인 불명의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한다. 얼마 후에는 히데키의 집으로 정체불명의 전화가 오고, 히데키의 친구가 히데키의 신상에 관한 이상한 문자를 받는다. 


별일 아니라고, 우연이 겹친 것뿐이라고 웃어넘길 법도 하지만, 히데키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어린 시절 히데키는 와병 중인 외할아버지와 단둘이 집을 지키다가 소름 끼치는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현관 너머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 그림자가 계속 묻는 것이다. "긴지 씨 계세요? 시즈 씨 계세요?" 평소엔 정신을 못 차리고 헛소리를 늘어놓던 외할아버지마저 그 순간만큼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히데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그것이 오면 절대로 대답하거나 안에 들여선 안돼." 몇 년 후 히데키는 외할아버지가 말한 '그것'이 일부 지역에서 민담으로 전해지는 괴물 '보기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보기왕은 히데키의 가족에게 무슨 짓을 벌일까. 대체 보기왕은 왜 히데키에게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트릭>이나 <링>, <주온>처럼 일본의 전설이나 민담을 토대로 한 괴이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호러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소설 역시 마음에 들 것이다. 결혼과 출산, 육아와 가정생활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대립과 갈등이 결국엔 보기왕이라는 끔찍한 존재를 낳고, 비극적인 사건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보면 단순한 타임킬링용 호러소설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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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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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에 이어 읽은 구병모 작가의 신작이다.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공동주택에 한 가정이 이사를 온다. 이들이 입주하게 될 공동주책의 이름은 '꿈미래실험공동주택'.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부부들을 위해 정부가 일종의 실험 차원으로 시도하는 공동주택 프로젝트에 네 쌍의 부부가 선발되었고, 이미 입주한 단희와 재강, 효내와 상낙, 교원과 여산 부부에 이어 요진과 은오 부부가 입주를 마친다. 


출신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재정 사정도 다른 이들은, 비슷한 위치의 직장에 다니며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므로 쉽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각자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는 저마다 다르고, 각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 생활의 모습 또한 저마다 다르다. 첫 만남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불화의 기운은 점점 퍼지고 커져서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그 누구도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할 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이른다. 


세 자녀를 가지는 조건으로 입주가 허용되는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설정 자체는 비현실적이지만(서울도 아니고 경기도 외곽에 있는 주택에 입주하기 위해 자녀를 셋이나 낳겠다고 서약하는 부부가 실제로 있을까? 나는 아닐세...), 이곳에서 전개되는 상황들은 기혼자든 비혼자든, 유자녀든 무자녀든 간에 누구나 겪거나 보거나 들어서 알고 있을 법한 상황들뿐이다. 이를테면 공동생활이라는 핑계로 남의 집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간섭하는 이웃 여자라든가, 카풀을 핑계로 아내 눈을 피해 추근대는 이웃 남자라든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되는 경우라든가...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벌어지는 개별적인 이야기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나는 프리랜서 동화 작가인 효내와 영화감독 지망생인 남편 대신 약국 보조원으로 일하는 요진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프리랜서도 직업이고, 여자가 남편 대신 가장 노릇 할 수도 있는 건데, 그걸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 때에는 그 일 자체보다 힘들다는 걸 왜 다들 몰라줄까. 넘치는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오지랖과 관심으로 해소하는 단희, 남편이 벌어오는 적은 월급을 알뜰하게 사용하려다 인터넷 중고 거래 카페의 악성 회원으로 전락하는 교원의 인물상도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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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치 2018-10-29 18:28   좋아요 0 | URL
아아 정말 그래요 ㅎㅎㅎ 특히 민음사에서 만드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한 권 한 권이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좋아서 소장욕구를 불러 일으키죠. 이 책도 그렇고요 ^^

얄라알라 2018-10-2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소설 <소멸 세계>가 비슷한 설정인가봐요.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 출산관련한 개입....

‘나는 아닐세‘에서 고개가 절로 끄덕해지는 일인에 저도 포함시켜주세요^^

키치 2018-10-29 18:29   좋아요 0 | URL
비현실적인 설정 같은데 현실이기도 하죠. 출산율 장려라는 ‘미명‘ 아래 시행되는 폭력적인 정책이나 제도들을 보면요. 가임기 여성 지도라든가...

저만 아닌 게 아니었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ㅎㅎㅎ
 
250만 분의 1 -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이정모 지음 / 나무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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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 분의 1>은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기로 유명한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쓴 교양 수준의 과학 에세이다. 저자의 전작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 좋았기에 망설이지 않고 <250만 분의 1>도 구입했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 저자의 신변잡기에 관한 서술 비중이 높았다면, <250만 분의 1>은 (책의 목적인) 자연사에 관한 설명 비중이 훨씬 높고, 자연사 중에서도 공룡이 활약한 중생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과학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과알못'인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가 무척 많았다. 거대한 중생대 파충류 엘라스모사우루스를 둘러싸고 19세기 과학자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와 오스니얼 찰스 머시가 벌인 '추잡한' 경쟁을 벌였다는 것도, '쥬라기 공원'은 '쥐라기 공원'이라고 쓰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상 맞다는 것도, 새가 공룡의 후손이 아니라 새 자체가 공룡이라는 것도, 닭으로 공룡을 만드는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도, 낙타의 고향이 북아메리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곤충의 날개 덕분에 척추동물의 귀가 진화했고, 25억 년 전 바다에 산소 농도가 높아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며 발생한 탄산칼슘으로 인해 지구상 처음으로 삼엽충에 눈이 생기고 입이 생겼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백악기의 백악(白堊)이 분필의 원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루살이 수컷은 암컷을 찾는 데 짧은 삶을 온전히 투자하기 위해 먹는 것을 포기해 입이 없다. 펭귄 수컷은 다수의 암컷으로부터 구애를 받으며, 암컷의 투쟁으로 선택받은 수컷은 겨울에 새끼를 위해서 몇 달씩 굶고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오간다. 해마 수컷은 임신을 하고 출산까지 하는 지구상 유일한 수컷 동물이다. 해마 수컷은 육아주머니 안에서 알을 부화시켜서 새끼를 출산한다. 모든 젖먹이 동물이 월경을 하는 것은 아니며, 소나 말, 돼지 등은 배아가 단지 자궁벽의 표면에 붙는 정도라서 모체에 주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인간의 배아는 자궁내막을 파헤치고 깊이 들어가서 엄마의 혈액으로 목욕을 할 정도이기 때문에 모체에 주는 영향이 크다. 이 밖에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해 읽는 내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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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산책 - 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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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책을 보고 예뻐서 무심코 구입했는데 책 속에 예쁨 그 이상의 세계가 있었다. 저자 이소영은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식물세밀화가이자 식물학자다. 원예학을 전공으로 택한 저자는 학부 3학년 때 우연히 들은 식물 그림 수업에서 처음으로 식물세밀화를 그리게 되었고, 졸업과 함께 국립수목원에 취업해 본격적으로 식물세밀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책은 국내에 몇 안 되는 식물세밀화가인 저자가 지난 10여 년간 국내외의 여러 식물원과 수목원, 산과 들, 정원과 공터를 찾아다니며 만난 식물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식물, 식물학, 식물세밀화... 그 무엇도 나와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겼는데 의외로 내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매일 먹는 채소와 과일도 식물이고, 매일 마시는 커피와 약도 식물이다. 식물세밀화를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사용하는 포트메리온 그릇에 그려져 있는 꽃 그림이 바로 식물세밀화다. 저자는 바로 이런 식물들을 연구하고 관찰하며 이를 그림으로 기록해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것도, 싱가포르에는 전 세계에 분포한 생강과 식물들이 전부 식재된 생강정원이 있다는 것도, 유럽의 너도밤나무와 한국의 너도밤나무는 엄연히 다른 종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앞으로 저자가 쓰는 책마다 따라 읽으며 식물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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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대신 리스트 - 하루하루 가벼워지는 정리의 기술
도미니끄 로로 지음, 주형일 옮김 / 청어람Life(청어람미디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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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나는 다음 날에 해야 할 일 또는 하고 싶은 일들을 리스트로 작성해 놓고 나서 잠든다. 날이 밝으면 지난밤에 적어둔 리스트를 확인하고 적혀 있는 일들을 해결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것 말고도 더 좋은 리스트 작성법이 분명 있을 텐데 과연 뭘까. 마침 베스트셀러 <심플하게 산다>의 저자 도미니크 로로가 자신만의 리스트 작성법을 정리한 책을 냈기에 읽어봤다. 미니멀리스트 열풍이 불기 한참 전부터 간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지향해 온 저자는 왜 리스트를 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을까. 


심플하고 세련된 일상을 추구하는 저자는 다시 읽지도 않고 거추장스러운 일기 대신 기록한 것을 실천하고 지우고 버릴 수 있는 리스트를 선호한다. 리스트의 주제는 오늘 할 일,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가고 싶은 여행지 등 다양하다. 매일 주기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편집하기도 하지만,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듣고 싶은 음악 목록을 적는다든지, 샌드위치를 먹으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스무 가지를 적는다든지, 텔레비전 광고 시간에 휴가 기간에 하고 싶은 일을 적는다든지 등등의 방식으로 시간이나 형식에 구애됨 없이 편하고 자유롭게 쓴다. 


저자는 나처럼 오늘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적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 음식, 건강, 이미용, 집안일, 일상 탈출, 정리 등의 과제를 보다 쉽게 수행하기 위해서도 리스트를 활용한다. 나의 취향,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일들, 나의 꿈, 나의 욕망, 나의 추억 등을 기록하면서 나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체험을 하기도 하고, 화해하지 못한 과거와 만나거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리스트 작성법과 활용법이 나온다. 몇 가지쯤은 나도 오늘부터 실천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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