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에 히가시노 게이고만큼 다작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발표하는 작품의 수와 작품의 완성도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 모양인지 점점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언젠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뛰어난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에는 변함이 없다. 이를테면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백야행>을 뛰어넘는 놀라운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은 역시 대단하다. 전남편과 이혼하고 도시락 집에서 일하며 중학생 딸 미사토를 키우고 있는 하나오카 야스코는 어느 날 끔찍한 사건에 휘말린다. 야스코의 전남편 도가시가 야스코의 집으로 찾아와 돈을 내놓지 않으면 딸을 괴롭히겠다고 협박하며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참다못한 미사토가 우발적으로 도가시의 목을 졸랐고, 딸의 모습을 본 야스코도 함께 도가시를 살해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옆집 남자 이시가미가 야스코를 찾아와 야스코 모녀를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야스코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기도 한 이시가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시가미의 청을 받아들이고, 그 즉시 이시가미는 모녀의 완전 범죄를 위한 알리바이를 마련한다. 


천재 수학자이기도 한 이시가미가 단 하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교수의 등장이다. 사건의 수사를 맡은 구사나기 형사는 테이토 대학 물리학과 소속의 유카와 교수에게 자주 조언을 구하는데, 사건 관련자 중에 이시가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유카와가 평소와 다르게 사건에 큰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테이토 대학의 2대 천재라고 불렸을 만큼 지능이 뛰어나고 자신이 몸담은 학문에 대한 열정도 엄청난 유카와와 이시가미는 오랜만에 사건을 계기로 재회해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의문의 살인 사건을 사이에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인다. 


그저 한 여자를 사랑했을 뿐인 남자와 그저 여러 남자에게 사랑을 받았을 뿐인 여자가 뜻하지 않은 우연이 겹치고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중대한 일들을 저지르면서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이 안타깝고 비극적이다. 그렇다고 애초에 이시가미가 야스코 모녀의 일에 개입하지 않았기를, 야스코 모녀가 도가시에게 속절없이 당했기를 바랄 수도 없다. 그랬다면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이 되고, 그렇다면 살인으로 시작된 이 소설이 사랑으로 끝나는 일도 없었을 테니.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의 서사시'라는 홍보 문구가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작품 자체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부디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을 꼭 다시 써줬으면 좋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ULIE 2023-01-2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미유키도 다작 작가네요 ^^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당장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면 당신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존 그린의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주인공인 열여섯 살 소녀 헤이즐은 말기 암 환자다. 열세 살에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고, 그 후 몇 년을 수술과 입원, 통원 치료로 보냈다. 학교에 다니는 것도, 친구를 사귀는 것도 헤이즐에게는 몸에 큰 무리를 주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헤이즐에게 한 소년이 다가온다. 암 환우 모임에서 만난 어거스터스는 골육종을 앓고 있고 한쪽 다리가 의족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잘생겼고 다정하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서로 첫눈에 반하고 급속히 친해진다.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헤이즐과 비디오 게임에 매진하는 어거스터스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10대 청소년이다. 또한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책을 무척 좋아하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서로가 가장 좋아하는 책 -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 어거스터스는 <새벽의 대가> - 을 함께 읽기로 한다. 거의 매일 만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이야기를 나누던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장엄한 고뇌>의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사는 작가를 직접 만나러 가기로 한다. 당연히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부모는 맹렬히 반대하고,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을 준비한다. 


죽음을 실감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자기 자신의 죽음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남겨질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까지 부담 져야 하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상황이 무척 슬프고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드리우는 그림자에 짓눌리지 않고 살아있는 한순간 한순간을 최대한으로 즐기려고 애쓰는 어린 연인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감동적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얕잡아 봤다가 눈물 줄줄 흘리며 책장을 덮은 어른들이 많았다는 이유를 알겠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안녕 헤이즐>도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직업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6
The School Of Life 지음, 이지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떻게 하면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내 직업, 내 일을 사랑한다'는 생각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에서 출간한 책 <인생 직업>에 따르면 그렇다. 이 책에 따르면 오랫동안 인류는 그저 먹고살기 위해 일을 했다. 밭을 갈고, 가축을 기르고, 광산을 파고, 물고기를 잡는 일을 사랑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베네치아의 예술가 타치아노(1485~1576)는 돈과 만족을 모두 추구한 선구자들 중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타치아노는 일을 하면서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즐겁게 그린 그림을 가장 높은 값에 파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타치아노는 직업이 좋아하는 일인 동시에 쏠쏠한 수입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직업이 개인의 물질적 욕구와 자아실현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늘날 지배적인 생각으로 자리 잡았다. 사랑과 결혼이 별개가 아니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근대에 들어서야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돈벌이 이상의 직업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는 총 다섯 장에 걸쳐 직업을 대하는 자세, 천직을 찾기 어려운 이유, 내게 즐거운 직업 찾기, 올바른 직업 선택의 장애물, 직업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 등이 담겨 있다. 인상적이었던 조언은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면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가능한 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사가 되고 싶다면,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즐거운 건지,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좋은 건지,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는 직업을 가지고 싶은 건지 등등 구체적인 이유를 떠올려 보는 것이 좋다. 만약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즐겁다면 교사뿐 아니라 작가, 방송인, 언론인 등의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좋다면 교사 외에도 아동, 청소년 상담사 등 다른 진로를 모색해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각각의 내용을 재확인할 수 있는 '연습 문제'도 다수 실려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부모의 반대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 사회적 여건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내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얼마나 중요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이 내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얼마나 중대한 일일까?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대가로 사랑하는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건 나 자신,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도 나 자신이다. 인생 직업을 찾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을 내가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끌림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7
The School Of Life 지음, 이주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무능한 사람, 재미없고 시시한 사람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을까.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그렇게 꺼릴 만한 일일까.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의 새 시리즈 <끌림>은 착한 사람에 관한 지혜와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제1부 '인트로'에는 착한 사람을 삐딱하게 보게 된 역사적 뿌리를 파헤친다. 저자에 따르면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을 삐딱하게 보게 된 것은 기독교, 낭만주의, 자본주의, 에로티시즘의 영향이 크다. 기독교는 착한 사람을 무능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낭만주의는 착한 사람을 재미없고 시시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자본주의는 착한 사람을 실패한 사람, 가난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에로티시즘은 착한 사람을 몸이 끌리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제2부 '다정한 사람'과 제3부 '매력적인 사람'에는 착한 사람의 진정한 의미와 착한 사람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이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착함'이라는 특성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자비로운 사람, 공손한 사람, 솔직한 사람, 겸손한 사람 모두 착한 사람에 포함될 수 있다. 착한 사람이 되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본인의 의사나 감정과 상관없이 항상 공손하고 친절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호구다.


이 책에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관계 정리하는 법, 과잉 친절을 보이지 않는 법, 수줍음을 극복하는 법 등이 나온다. 이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조언은 약점을 꼭꼭 숨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자신의 별난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려 애쓴다. 하지만 자기에게 별난 구석이 있음을 감추지 않고 대담하게 털어놓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고 매력을 느낀다.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상대에게 벽을 세우지 않고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고, 상대가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에게 매력을 느낄 만한 유인을 마련해야 한다.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별난 구석(=매력)을 꼭꼭 숨겼던 사람이라면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땅의 역사 2 - 치욕의 역사, 명예의 역사 땅의 역사 2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7년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직접 답사하며 취재하고 글을 써온 여행문화 전문기자 박종인의 책 <땅의 역사> 1,2권이 출간되었다. <땅의 역사> 1,2권은 저자가 그동안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신문에 연재한 글들 중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 땅의 역사에 큰 상처를 입힌 사건들에 관한 글을 주로 엮었다. 그중에서도 1권은 자기 자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과 나라를 배신한 소인배들과 그와 반대로 민족과 나라를 위해 사리사욕을 부리지 않은 대인들에 관한 글이, 2권은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찬란한 5000년 역사만 알고 있는 독자들은 잘 모르는 치욕의 역사, 명예의 역사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땅의 역사> 2권은 민족과 나라를 배신한 친일파들의 행적을 다룬 '나쁜 놈들', 사람이었으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여성들의 역사를 다룬 '여자, 그녀들', 역사에 크게 기록되지 않았으나 굵직한 행적을 남긴 남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남자, 그들', 조선 시대 당시 왕실 안팎을 뒤흔든 사건을 소개하는 '왕조 스캔들', 우리 땅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흔적을 담은 '식민 시대', 비루하게 태어났으나 품격 있게 살다간 민중들의 역사를 소개하는 '민초, 우리들' 등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 내가 제일 먼저 펼친 장은 '여자, 그녀들'이다. 제주는 돌과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해서 예부터 '삼다도'라고 불렸다. 제주에 여자가 많은 것은 남자들이 험한 뱃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어서이기도 하지만, 조선 정부가 지나치게 과한 공물을 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피하기 위해 아들이 태어나면 죄다 뭍으로 보내니 제주에는 여자만 남은 것이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여성의 지위가 낮지 않았으나 성리학이 보급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크게 낮아졌다. 같은 양반집 규수인데도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생애가 크게 달랐던 걸 생각하면 성리학이 여성 인권에 미친 폐해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우리 땅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 세 왕조 흥망사가 있는 삼척, 의정부 함흥차사의 진실, 고양 칠공자 묘와 연산군 금표비, 재동 헌법재판소의 비밀과 경술국치, 식민 흔적이 남은 목포와 현대판 문익점 와카마쓰, 문경새재 강도 사건과 혁명가 허균 등 제목만 보아도 흥미가 생기는 글이 가득 실려 있다. 우리 역사에 관심 있고 지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