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리커버 특별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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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의 데뷔작 <저지대>를 리커버 특별판으로 읽었다. <저지대>가 줌파 라히리의 장편 소설 제목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헤르타 뮐러의 생애도 처음 접했다. 1953년 루마니아 니츠키도르프에서 태어난 헤르타 뮐러는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이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 년간 노역했다. 이후 뮐러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으며, <저지대>가 루마니아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고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남편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저지대>는 1982년 루마니아의 크리테리온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당국의 엄격한 검열로 인해 출간하기까지 무려 4년을 기다려야 했으며, 그나마도 <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게>, <불치만 씨>가 삭제된 채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내가 읽은 한국어판 <저지대>는 검열로 삭제된 네 편의 이야기가 실린 것은 물론, 작가의 검토와 수정까지 거쳤다. 검열을 통과한 <조서>, <슈바벤 목욕>, <우리 가족>, <저지대> 같은 작품들은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루마니아 시골 마을의 정경을 담고 있다. 일인칭 화자인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식구들의 일상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 - 가난과 폭력, 도살과 강간 - 을 예리하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게>, <불치만 씨>에는 사회주의 정부 치하의 답답하고 경직된 생활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정부 입장과 다른 글을 썼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퇴직을 종용당하고 결국 해고당하는 이야기가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작가는 루마니아의 정부와 국민들을 비판하는, 자국의 명예를 더럽히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정부와 국민들에게 탄압당하고 결국 망명길에 올랐다. 당시 루마니아 정부의 입장이나 기조가 전부 틀렸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도 루마니아 사람들은 뮐러를 배신자, 반역자라고 생각할까. 작가가 경험했을 핍박과 고통에 비하면 노벨문학상이라는 명예는 하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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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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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한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내 일처럼 환호해주는 친구. 슬프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두 발 벗고 달려와 위로해주고 같이 화내주는 친구. 이제 더는 내게 그런 친구가 없지만, 언젠가 그런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일본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예 작가 데라치 하루나의 소설 <같이 걸어도 나 혼자>에는 그런 친구들이 나온다. 남편과 별거 중인 서른아홉 살 유미코와 유부남과 연애 중인 마흔한 살 카에데는 낡은 맨션의 같은 층 옆집에 사는 이웃이다. 성격도 다르고 취향이나 관심사도 전혀 다르지만, 둘 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유미코는 사실상 이혼한 상태) 아이가 없고 변변한 직업도 없다는 이유로 금방 의기투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미코의 남편 히로키가 고향인 작고 먼 섬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진작부터 이혼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실종되는 바람에 이혼하지 못했던 유미코와, 성추행을 일삼는 사장 때문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카에데는 히로키를 찾으러(만나서 따지러) 작고 먼 섬으로 떠난다. 


마흔 살 전후의 두 싱글 여성이 친구가 되고 여행을 떠나는 단순한 줄거리 속에는 예상외로 예리한 관찰과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입만 열면 '여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런 존재야'라고 떠드는 유미코의 남편 히로키, 자기 주제도 모르고 카에데가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고 착각하는 장아찌 회사 사장, 남자 없는 여자는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 줄 알고 집적대는 술집 남자, 결혼이야말로 여자가 누릴 수 있는 지상 최대의 행복이라고 믿으며 비혼 여성을 무시하는 섬마을 여자 시즈 등 여자라면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인물 유형이 줄줄이 등장한다. 


여자는 일정 나이가 넘으면 결혼 상대로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고, 구직 시장에서도 외면받는 현실도 지적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 나이 든 여자는 나이 어린 여자를 질투하고 괴롭힌다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같이 걸어도 나 혼자>를 읽고 홀딱 반한 독자로서, 앞으로도 계속 "왜?"라고 질문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변치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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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박연준 지음 / 북노마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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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명랑한 줄로만 알았던 사람의 어두운 맨얼굴을 봤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이제까지 나는 박연준 시인에 대해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에서 남편인 장석주 시인과 시드니에서 대판 싸우고 와인 먹고 쓰러져 토한 이야기도 그렇고,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에서 글 쓰려고 토지 문학관까지 내려갔다가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읍내에서 예쁜 플랫 슈즈나 샀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어쩌면 그렇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친한 언니 입에서 흘러나오는 수다 같은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유쾌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박연준 시인이 2014년에 발표한 첫 산문집 <소란>을 읽은 지금은 저자에 대한 인상이 퍽 다르다. 길게 늘여 쓴 시 같은 산문을 통해, 저자는 생모 슬하에서 자라지 못한 어린 시절과 가난한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의 오랜 투병 생활과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고통을 슬며시 고백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와 청년기를 살아내면서 저자는 대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 '소란'하다고 일컬을 만큼,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시절에 느낀 감정을 단정하고 예리한 단어들로 벼려서 사람들 앞에 선보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외로운 투쟁을 해왔을까. 


그동안 여러 권의 산문집을 읽으며 박연준 시인의 단편적인 모습만 봐왔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집을 읽으며 박연준 시인의 내밀한 감정들과 치열한 사유를 들여다봐야겠다(요즘 들어 박연준 시인, 김소연 시인, 오은 시인 등 시인들에게 부쩍 관심이 간다). 어지러운 마음의 풍경들을 간결한 언어로 정제해 표현하는 솜씨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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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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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외국어>의 저자 조지영은 스스로를 '외국어 방랑자'라고 부른다. 외국어 배워보기라는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주말에 끝내는 스페인어 첫걸음> 같은 교재를 사다가 출퇴근 길에 들여다보면서 혼자 흐뭇해한다. 저자의 방랑은 대학 시절 전공이었던 프랑스어를 비롯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로 이어진다. 저자의 오빠는 '그 시간에 영어를 배웠으면...'이라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과 흥분은 한 가지 언어에 천착하며 느끼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외국어 배워보기라는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다. 시작은 아마도 일본어였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시청 또는 주민센터에서 한 달 남짓 배우고 내팽개친 일본어 교재를 동생과 함께 열심히 독학했다. 그 덕분에 몇 년 후 동생은 혼자서 일본 만화책을 읽고 NHK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정도가 되었고, 나는 좋아하는 일본 아이돌이 나오는 잡지를 사서 읽고 일본 드라마를 찾아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일본어에 이어 두 번째로 손을 댄 외국어는 중국어였다. 일본어와 달리, 중국어는 반강제적으로 배웠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제2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중국어와 프랑스어뿐이었다.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었던 나는, 선택지에 없는 일본어 대신 일본어와 그나마 비슷한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택했다. 그때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과목이라서 마음에 썩 들지 않았는데, 이후 <꽃보다 남자>를 비롯한 대만 드라마에 빠지고, <랑야방>, <보보경심> 같은 중국 드라마에 빠지면서 이때의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그 후 한동안 다른 외국어에는 손대지 않다가 최근 몇 년 동안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같은 유럽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봤자 인터넷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교재를 구입해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들여다보고 유튜브로 해당 외국어의 동영상을 찾아보는 정도이지만, 티끌만 한 노력이라도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면 태산만큼 쌓여서 통역 없이 해당 국가를 여행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 않을까 하고 멋대로 기대하고 있다. 이따금 이 기대가 무너지려 할 때면 이 책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잡을 생각이다. 외국어를 얕고 넓게 배워도 괜찮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이 책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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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하지 않는 기술 -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을 깨우는 과학적인 방법 21가지
고바야시 히로유키 지음, 한양희 옮김 / 이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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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시험, 시합 등 중요한 순간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 앞에만 서면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순간에 떨지 않고 제 실력을 백 퍼센트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 <의식하지 않는 기술>을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쓴 고바야시 히로유키는 준텐도 대학 의학부 교수이자 일본체육협회 공인 스포츠 닥터로 재직 중이다. 자율신경 연구의 일인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의식을 다스리고 무의식을 활용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일설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 가운데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90퍼센트는 무의식이 관장한다고 한다. 숨을 쉬거나 눈꺼풀을 깜빡이거나 이를 닦거나 몸을 씻는 행동 등을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몸이 자유롭게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일이나 생활, 스포츠 등의 분야에 활용한다면 폭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야구 선수가 열심히 연습해서 '의식하지 않아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면 시합에 나가서도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실력을 발휘할 것이다. 회사원이 프레젠테이션을 열심히 연습해서 '의식하지 않아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면 실전에서 실수 없이 프레젠테이션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내 안의 숨은 가능성을 깨워줄 4가지 기술'로 멍하니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갖기, '천 번 노크' 방식으로 끊임없이 단련하기, 무의식적으로 하게 될 때까지 반복하기, 사소한 것까지 철저하게 자동화시키기 등을 소개한다.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 정하고, 정한 것을 무의식적으로 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하라는 것이 요점이다. 무의식의 힘을 키우려면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한 '의식'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은 가능한 한 멀리하고, 패션이나 소지품은 간결하게 정리한다. 하루 세 줄 일기 쓰기, 손글씨 쓰기 등의 습관도 무의식을 발달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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