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라사와 나오키 오피셜 가이드북 -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18년 12월
평점 :

요즘 나는 우라사와 나오키에 푹 빠져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명성이야 전부터 수없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화를 찾아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다 <파인애플 ARMY>를 읽고 <20세기 소년> 완전판을 읽기 시작하면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몬스터>와 <MASTER 키튼>을 읽으며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세계에 홀딱 반해버렸다. 좀 더 일찍 우라사와 나오키의 진가를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세계가 워낙 성숙하고 성인 취향이라서 이제 안 게 다행인지도...

나처럼 우라사와 나오키의 진가를 새롭게 발견한 독자는 물론, 오랫동안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들을 탐독해온 팬들에게도 큰 선물이 될 만한 책이 나왔다. 바로 <우라사와 나오키 오피셜 가이드북 -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이다. 이 책에는 14만 5천 자에 달하는 인터뷰를 비롯해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표작 컬러 일러스트, 유년 시절에 그린 그림들, 러프화, 비장의 한 컷, 한국어판에만 특별 수록된 해설집이 실려 있다. 데뷔 32년, 직접 그린 원고 3만 페이지, 누계 발행부수 1억 2662만 부의 정수가 이 책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12시간 38분에 걸쳐 이뤄진 우라사와 나오키 인터뷰다. 이 인터뷰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만화에 푹 빠져 있었던 유년 시절부터 데즈카 오사무를 흠모했던 학창 시절,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만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대학 시절, 편집자 시험을 보러 갔다가 엉겁결에 만화가로 데뷔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대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 돈은 못 벌어도 예술적인 감각은 뛰어나서 아들에게 좋은 만화를 골라 읽혔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오랜 팬이라면 작품 하나하나에 얽힌 뒷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이 책에서 우라사와 나오키는 초기 단편들을 비롯해 <파인애플 ARMY>, <YAWARA>, <MASTER 키튼>, <HAPPY!>, <MONSTER>, <20세기 소년>, <PLUTO>, <BILLY BAT> 등의 탄생 비화를 낱낱이 들려준다.
이토록 많은 작품, 다양한 작품을 그리는 동안 우라사와 나오키는 단 하나의 원칙을 지키려고 애썼다.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만화는 그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최고의 인기 작가답게 편집부와 출판사는 물론 방송국, 독자들로부터도 수없이 많은 압박을 받았다. 잘 팔리는 소재를 그려라, 누구나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 전개를 택해라, 모두가 원하는 결말을 보여줘라 등등 온갖 말들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MONSTER>, <20세기 소년> 등 그의 대표작들이 30년 전에 발표되었는데도 여전히 새롭고 세련된 것은 그의 감각이 그만큼 앞서가고 깨어있기 때문이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1960년생으로 올해 59세(일본 나이)가 된다. 금전 면에서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그가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왜 공부를 할까? 같은 거예요.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니까, 그러기 위해 공부한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런 것처럼 나는 만화를 그려 왔어요. 만화를 그리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돼 버리거든." (264쪽)
여성 스포츠물은 안 된다, 역사물은 안 팔린다, 미스터리 만화는 외면받는다 등등 온갖 통념을 깨부수며 일본을 대표하는 인기 만화가로 자리 잡고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까지 확립한 우라사와 나오키. 뒤늦게나마 그의 작품을 모두 읽을 각오를 세운 신규 팬인 나로서는 이 책이 몹시 마음에 든다. 앞으로 이 책을 가이드북 삼아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세계를 즐겁게 유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