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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마리코 2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어젯밤에 읽다가 폭풍 눈물 쏟을 뻔한 책. 오자와 유키의 만화 <80세 마리코> 제2권이다.
<80세 마리코>는 제목 그대로 80세가 된 노년의 여성 코다 마리코의 파란만장한 생활을 그린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들 부부, 손자 가족과 함께 살던 어느 날. 마리코는 가족들이 자신 몰래 집을 리폼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리폼한 집에는 자신의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아 방해만 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된 마리코는 그 길로 집을 나와 인터넷 카페(PC방)에 머무르며 생애 첫 독립생활을 한다.
배낭 하나를 매고 가출을 결행해 나름 잘 살고 있었던 마리코. 하지만 버려진 고양이 쿠로를 거두게 되면서 더는 인터넷 카페에서 살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작가로 일하며 모아둔 돈으로 살 만한 집을 구하던 마리코는 젊은 시절 좋아했던 야오사카와 재회하고 놀라운 제안을 받게 된다. 마리코처럼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된 자신과 함께 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야오사카 씨는 겉만 근사한 로맨스그레이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속까지 멋진 남자다. 마리코 씨가 야오사카 씨에게 반하게 된 계기만 봐도 그렇다. 젊은 시절, 마리코 씨는 야오사카 씨의 전부인 준코 씨와 친하게 지내며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어린 여자'가 쓴 글을 원하는 출판사는 어디에도 없었고, 있다 해도 젊은 여성 작가의 글은 남성 작가의 글만큼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마리코 씨가 절망하고 있을 때, 야오사카 씨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이해가 안 간다고? 그럼 더욱 여류 문학을 접해야지. 거기엔 새로운 감성,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어."
여성은 남성 작가의 글을 읽지만, 남성은 여성 작가의 글을 읽지 않는다. '여성'이 쓴 글이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 작가를 홀대하는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야오사카 씨의 발언이 너무나도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었다. 마리코 씨가 80이 넘도록 야오사카 씨를 잊지 못하고 좋아해왔던 이유를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동거를 시작한 마리코 씨와 야오사카 씨. 알콩달콩 즐겁게 살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마리코 씨를 인터넷 카페에서 쫓아낸 인터넷 카페 사장의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젊은이들끼리 동거하는 거야 결혼이든 임신이든 '늘어나는' 길이지만, 늙은이들의 동거는 '줄어드는' 거야."
동거를 시작한 처음에는 좋을 수 있다. 당장 마리코 씨한테는 돈도 없고 집도 없으니, 돈도 있고 집도 있는 야오사카 씨한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남까지 보살피며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남성은 여성에 비해 평균 수명도 짧고 (일반적으로) 살림도 서투르고 간병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자칫하면 여성이 '독박 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나이 80에 찾아온 새로운 사랑에 설레하던 마리코 씨는 갑자기 현실을 깨닫고 머리가 아찔해진다. 혹시라도 야오사카 씨가 갑자기 아프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그때 마리코 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편, 달라진 생활은 마리코 씨의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마리코 씨의 편집자 사이토는 마리코 씨의 글이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편집장에게 지면을 늘려달라고 부탁하지만, 편집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고령의 작가가 지금부터 성장한들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겠느냐며 가슴 아픈 말을 던진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이 만화 안 본 사람 없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