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습관은 어렵고 나쁜 습관은 쉬울까?
에이미 존슨 지음, 임가영 옮김 / 생각의서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면서 가장 실망스러운 경험은 습관과 관련된 것이 많다.' 라이프 코치로 일하는 저자가 그동안 코칭해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린 결론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실망스러운 경험으로 꼽는 사건은 다양하다. 실업, 이혼, 부채, 파산, 중독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반드시 '습관'이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일도 나쁜 습관이 끼어드는 순간 제 궤도를 이탈하고 목적지에서 멀어진다. 나쁜 습관은 동기를 잊게 만들고 의욕을 좀먹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파괴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습관의 특징과 나쁜 습관 없애는 법을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나쁜 습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도박, 인터넷 중독, 폭식, 일 중독, 과소비, 폭력 같은 행동적 습관이다. 두 번째는 두려움, 공포증, 불안 같은 정신적 습관이다. 둘은 크게 달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둘 다 문제는 '생각'이다. 우리가 어떤 습관을 지속하는 이유는 그 습관이 어떤 충동이 일어났을 때 그 충동을 사라지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생각을 바로잡으면, 즉 그동안 해온 습관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충동을 없앨 수 있다는 걸 알면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다.


책에는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인상적이었던 사례 첫 번째는 니콜의 사례다. 니콜은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인내심을 잃고 난폭운전을 일삼는 습관이 있었다. 난폭운전을 하고 나면 기분이 안 좋아서 술까지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니콜은 차에서 대학 때 즐겨 듣던 오래된 CD를 발견했다. CD를 듣다 보니 난폭운전을 할 생각이 줄어들었고 운전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운전을 하고 나면 버릇처럼 술을 찾던 습관도 없어졌다.


두 번째는 제레미의 사례다. 제레미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면에선 늘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대학 때 룸메이트였던 빌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좀 봐." 제레미는 빌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했고, 자신의 처지를 열등하게 여기며 절망했다. 저자는 제레미에게 중독성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말고,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여러 목소리 중 하나로 여기라고 충고했다. 빌이 잘 하고 있는 건 맞지만 제레미도 잘 하고 있다. 나는 잘하고 있다, 나도 잘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내면에서 커질수록 부정적인 목소리에 감정이 좌지우지되는 일이 줄었다.


세 번째는 조안의 사례다. 조안은 누구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조안은 늘 혼자 남겨질까 봐, 남들에게 미움받을까 봐 두려워했다. 저자는 조안에게 남들이 왜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자 조안은 35년 전인 여덟 살 때 학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조안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난 여기 어울리지 않아. 걔들이 날 왜 좋아하겠어?'라는 생각이 35년 동안 떠나지 않고 조안의 인생을 갉아먹은 것이다. 이 외에도 나쁜 습관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상의 작은 실천법이 자세하게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
글배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변의 눈치나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많이 의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베스트셀러 <오늘처럼 내가 싫었던 날은 없다>,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등을 쓴 글배우의 신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이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걱정을 줄이고 인생의 중요한 가치에 집중하는 기술 등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전달한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면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나와 나와의 관계'다. 자존감이 낮다는 건 나와 내가 관계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고 해보자. 그 연예인에 대해 누가 안 좋게 말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뭐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해.'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 즉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똑같이 반응한다. 누가 자신에 대해 안 좋게 말하면 '뭘 안다고 떠들어.'라고 튕겨낸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즉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누가 자신에 대해 안 좋게 말하면 마음에 담아두고 끙끙 앓는다. 타인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꼭 하고 싶은 말도 못 한다.


자존감이 문제라면 해결책도 자존감이다. 자존감을 높이면,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많이 의식하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 내가 나와 관계가 좋아지는 첫 번째 방법은 지금부터 내가 나에게 자주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 주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면 좋아하는 음식 먹기, 보고 싶었던 영화 보기 같은 쉬운 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스위스 여행 가기 같은 거창한 일들만 떠오른다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작은 일부터 가볍게 도전해보는 게 좋다.


내가 나와 관계가 좋아지는 두 번째 방법은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은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고 그에 어울리게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타인이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똑같이 질문하면 된다. 이 사람이 나에게 진심으로 대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이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가. 아니면 이 사람이 나에게 진심으로 대해야만 나는 이 사람을 계속 좋아할 수 있는가. 전자라면 그대로 만나면 되고 후자라면 가벼운 만남만 이어가면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서운함을 느끼거나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을 반복한다면,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소통하는 방식이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소중한 사람일수록 가까이 다가가 마음을 표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소중한 사람일수록 거리를 두고 여유를 준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상대와 충분히 대화를 하면서 서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지 알아야 한다.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삐걱거리고 만날 때마다 불편하다면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게 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크게 두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한 본격추리 또는 사회파 미스터리물이고, 다른 하나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한 감동소설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3년작 <편지>는 후자에 속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형제가 있다. 형 츠요시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어머니의 속을 썩인다. 동생 나오키는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형이 자꾸만 엇나가서 답답하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몸으로 두 형제를 키워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츠요시는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이삿짐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오키는 너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는 형의 말에 따라 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생활도 끝이 난다. 츠요시가 살인강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그 후 나오키에게는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진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학교에서도 전학을 가거나 학교를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는다.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형의 전과가 드러나면 채용조차 안 된다. 그래서 나오키는 형의 전과를 숨기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데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임금이 싼 일자리를 전전하며 괴로운 날들을 보내는 나오키는 형이 매달 보내오는 편지가 귀찮고 부담스럽다. 감옥에 있는 형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바로 그 형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불행의 나락으로 빠졌다는 생각을 하면 원망스럽다.


나라도 형이 원망스럽겠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나오키는 제법 괜찮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오키는 지역에서 가장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잘생겨서 이성에게 인기도 많았다. 잘하면 인기 록그룹의 보컬로 신나는 인생을 살 수도 있었다. 부잣집 사위가 되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오키는 매번 형의 전과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 가족이 살인자라는 이유로 나오키에게 등 돌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스스로 먼저 도망치는 나오키를 볼 때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오키는 형을 핑계로 자신의 약함이나 비겁함을 가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만약 나오키가 어떻게든 음악을 계속했다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버텼다면 또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그 또한 불행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건 내가 선택한 일이니 형의 전과만을 탓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나오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빽'이 없어서, 명문대 간판이 없어서, 외모가 별로라서, 스펙이 남들만 못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고 말한다. 여자라서, 장애가 있어서,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서, 외국인이라서 등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말들은 대체로 사실일 것이다. 이 사회에는 불평등이 만연하고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예전부터 그랬고, 적극적으로 바로잡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불평등하고 차별이 있다는 이유로 좌절하고 포기하면 결국 자신만 손해다. 온 세상이 "너는 안 돼."라고 말해도 자기 자신만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줘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 행복해질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나오키만 봐도 스스로에게 행복해질 기회(대학 진학, 연애)를 주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졌고,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을 때 결국 불행해졌다. 허공에서 날아오는 돌을 막을 순 없지만, 돌에 맞았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는 직접 정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거지 소녀>라서 주인공이 거지 소녀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인공 로즈에게 부모도 있고 집도 있어서 언제쯤 거지가 될까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끝내 거지가 되지 않은 채 대학에 진학하고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즈의 첫사랑, 로즈의 전 남편 패트릭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패트릭이 그런 말을 한 의도를 모르지 않는 건 아니다. 부잣집 아들인 패트릭의 눈에는 가난한 집에서 힘들게 자란 로즈가 동화 속 거지 소녀와 겹쳐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거지라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패트릭으로 하여금 로즈에게 거지 소녀라고 말할 수 있게 한 건 무엇일까. 그가 부자여서일까, 아니면 남자여서일까, 그것들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그가 만약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여자였다면, 부잣집 아들에게 그런 말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본격적인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 곳곳에 여자라면, 그것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장면과 문장이 나온다. 학창 시절 로즈의 학교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여학생이 코트 보관실 바닥에 떨어뜨린 생리대를 누군가가 학교 중앙홀에 있는 트로피 케이스에 몰래 넣어두었다. 문제가 되자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남학생들은 낄낄거리며 여학생들을 조롱했다. 결국 한 여학생이 생리대의 주인으로 지목되자(그 생리대를 트로피 케이스에 넣어둔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은 듯하다) 남학생들은 이렇게 놀렸다. "오늘도 걸레 차고 있냐, 뮤리얼?" 여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 같으면 자살하고 만다." 측은함이 아니라 조급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로즈가 딸 애나를 낳은 산부인과 병원에서 알게 된 조슬린과 클리퍼드는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로즈는 현재 전업주부인 조슬린인 결혼 전까지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꿈을 포기한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자 조슬린은 이렇게 말한다. "(클리퍼드가 가진) 진짜 재능이 어떤 건지 보니까 난 그냥 펜이나 놀리며 노닥거리다 말 거란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을 돌보는 게, 그러니까 내가 그이를 위해 하는 이딴 일들이 다 뭐든 간에 좌우간 이걸 하는 게 낫겠더라고." 그러고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여자들은 대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잖아. 남자들처럼 그렇게는 말이야." 조슬린은 그때까지 로즈가 만난 여자들 중에 가장 똑똑하고 개방적이며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도 이런 고루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로즈는 조슬린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고, 조슬린 또한 그걸 알았다.


로즈의 삶에는 매질을 일삼았던 아버지와 배 아파 낳은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식을 은밀하게 - 때로는 공공연히 - 차별했던 새어머니, 한때는 달콤한 연인이었지만 결국 가식적이고 비겁한 속내를 드러낸 패트릭, 한 시절 매우 친하게 지냈으나 이제는 소원해진 조슬린과 클리퍼드 부부 외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랠프도 있다. 랠프와는 이름이 알파벳 순서상 비슷해서 가까운 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집안 환경이 비슷하고 유머 감각도 통해서 동지애 비슷한 감각으로 친하게 지냈다. 랠프가 집안 사정상 학교를 그만둔 후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겼는데, 한참 후 로즈는 랠프가 해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로즈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아는 소년들은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결국은 남자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갖춘 것보다 훨씬 큰 재능과 권위가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하도록 허가받을 거라는 사실을."


세월이 흐른 후 로즈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로즈를 가혹하게 매질했던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새어머니 플로는 양로원에 들어갔다. 배다른 동생 브라이언은 로즈처럼 진작에 고향을 떠나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고, 동창들은 장의사가 되거나, 회계사가 되거나,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로즈는 랠프와 아주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길게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동안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이렇게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은근한 기쁨과 감동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로즈는 여전히 흉내 내기를 잘하는 랠프를 보면서 자신이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랠프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은 비슷했지만 남자라서 수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던 랠프와, 남자가 아니라서 스스로 기회를 찾아야 했던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로즈는 살면서 자신에 대해 이렇다 또는 저렇다고 규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새엄마 플로는 로즈에게 건방지고 이기적인 여자애라고 욕했고, 헨쇼 박사는 로즈에 대해 유흥에는 관심 없는 학구파라고 말했다. 조슬린은 로즈가 제법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놀란 표정을 차마 감추지 못했고, 패트릭은 로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로즈가 마구간 같은 집에서 자란 거지 소녀라고 말했다. 그 말들은 모두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로즈 자신의 선택이다. 로즈는 새엄마가 건방지고 이기적이라고 욕하든 말든 고향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았다. 헨쇼 박사의 말을 듣지 않고 패트릭과 결혼했다. 예술가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조슬린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끝내 자신을 오랫동안 무시하고 능멸했던 남편 패트릭과 헤어졌다.


로즈의 삶에는 분명 불행의 씨앗이 많이 있었다. 생모는 일찍 사망했고, 계모는 사려 깊지 못했으며, 아버지는 무심했다. 집안은 가난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계모와 로즈가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했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으나 일찍 결혼을 하는 바람에 직업을 가지지 못했고, 이혼 후 직업을 가지려 했을 때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즈가 나름 만족할 만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남의 생각에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로즈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한 인간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고, 스스로 그것을 증명할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원제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Who Do You Think You Are?)>라는 사실을 알았다. 영미권에서 이 말은 상대의 오만함을 지적하며 욕보이고 싶을 때 쓴다고 한다. 로즈는 주로 새엄마에게 야단을 맞을 때 이 말을 들었다. 새엄마의 눈에는 똑똑하고 당찬 로즈의 모습이 오만하고 건방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당시만 해도 어리고 약했던 로즈는 미처 자신을 변호하지 못했지만, 먼 훗날 새엄마 앞에서 로즈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린다. 새엄마 말대로 자신이 오만하고 건방진 계집애인지, 아니면 제법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어엿한 직업도 있는 똑똑하고 당당한 여성인지를 새엄마가 보게 한다. 물론 새엄마는 성장한 로즈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다. 친자식이 아닌 로즈의 성공보다, 친자식인 브라이언의 성공을 더 크게 여긴다. 그래도 상관없다. 로즈의 삶은 온전히 로즈의 것이고, 로즈가 누구인지는 로즈 자신이 이미 결정했다.


패트릭도 끝내 바뀌지 않는다. 이혼한 지 몇 년이 지난 후 로즈와 패트릭은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로즈를 알아본 패트릭은 얼굴을 찌푸린다. 패트릭에게 로즈는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배신한 여자, 비정하게 딸을 버리고 떠난 여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패트릭이 아는 로즈는 로즈의 일부일지언정 전부가 아니다. 패트릭이 아는 로즈로 살기에 로즈는 너무 크고 대단한 존재다.


한때 자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입으로 동시에 자신을 거지 소녀라고 모욕했던 남자. 그 남자로부터 등을 돌리며 로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더는 누구도 나에게 거지 소녀라는 말을 못 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로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로즈는 더 이상 자신이 누구라고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로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중 누구도 타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규정할 자격이 없듯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삶으로 보여줄 뿐이다. 나는 거지 소녀가 아니라고. 나는 나일 뿐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스 바이 아마존 Death by Amazon - 새로운 유통 전쟁의 시대, 최후의 승자는?
시로타 마코토 지음, 신희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세계는 지금 '아마존'이라는 공룡과 맞서 싸울 준비로 분주하다. 여기서 아마존은 진짜 공룡이 아니라 미국의 거대 유통 기업 아마존(amazon)을 의미한다. 일찍이 아마존이 진출한 미국과 일본에서는 온, 오프라인 구분 없이 수많은 매장이 문을 닫으며 아마존의 위세에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아마존이 한국에 진출한다면 한국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아마존의 맹공격에 맞서 한국의 기업과 조직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본의 미래유통전문가 시로타 마코토의 책 <데스 바이 아마존>에 그 답이 나온다.


'데스 바이 아마존(Death by amazon)'은 아마존의 성장으로 위기에 처한 상장 기업 종목들의 주가를 지수화한 것이다. 미국의 투자정보회사 베스포크 인베스트먼트그룹이 처음 만든 용어로 '아마존 공포종목지수'라는 의미다. 아마존 공포종목지수는 아마존의 약진으로 실적 악화가 예상되는 소매 관련 기업 54개사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최대 소매 기업 월마트, 서점 체인점 반스앤드노블, 회원제 대형 판매점 코스트코 홀세일, JC페니, 메이시스, 노드스트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아마존이 과거에 진출했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 진출 예정인 산업 분야의 동향을 하나씩 살펴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존의 시작은 서적 분야다. 아마존은 1995년에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연 이후 현재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까지 세계 최대의 매출을 자랑하는 서점으로 성장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개인 서점은 4천 개에서 1,400개까지 감소했고, 대형 서점 보더스가 도산했으며, 또 다른 대형 서점인 반스앤드노블은 경영악화로 인해 정규직 1,800명의 해고를 발표했다.


이후 아마존은 IT와 유통 분야에 진출했다. 2018년 아마존은 클라우드 부문인 AWS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네트워크 스위치 기계를 판매할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이 분야의 유력 업체 시스코 시스템스의 주가는 6.1퍼센트 하락했다. 코스트코와 아마존 프라임은 유료 회원제를 도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93년 회원제 비즈니스를 시작한 코스트코의 회원 수는 전 세계적으로 9천만 명이 넘었지만 후발주자인 아마존은 이미 1억 명을 돌파했다. 아마존이 홀푸드 인수를 발표한 후에는 코스트코의 주가가 10퍼센트 이상 떨어졌다.


아마존의 약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성장세가 빠르고 기업의 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존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들에게 신선한 구매 경험을 선사하고 전에 없었던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직원도 계산대도 없는 무인점포 '아마존 고', 음성만으로 원하는 걸 주문할 수 있는 음성인식 비서 단말기 '아마존 에코' 등이다. 이밖에도 아마존이 가져올 변화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미래 트렌드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