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이 있는 말의 원칙
아오키 사토시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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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말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말은 그 내용이나 형식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고 실제로 어떤 성과를 가졌는지가 더 중요하다. 골프를 논하는 자리라면 타이거 우즈의 말이 백종원의 말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다. 반대로 음식을 논하는 자리라면 타이거 우즈보다 백종원의 말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다. 듣는 사람이 누구이고 무슨 얘길 듣고 싶은지도 중요하다. 타이거 우즈가 백만 불짜리 골프 레슨을 해줘도 골프를 안 치는 사람에겐 쓸모가 없다. 백종원이 요리 잘하는 법을 백 번 알려줘도 라면 한 번 끓이지 않는 사람에겐 소용없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사람이다.


<울림이 있는 말의 원칙>을 쓴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 아오키 사토시의 주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서 40년 넘게 프로 스피커로 일하면서 알게 된 '울림이 있는 말'의 원칙과 비결을 소개한다. 저자는 십 대의 나이에 사회에 진출하여 세일즈맨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세일즈를 하려면 상대를 움직이는 말솜씨가 필수다. 말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유창하게 말을 잘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헛수고다. 세일즈맨이라면 물건을 팔고, 연예인이라면 상대의 마음을 얻고, 정치인이라면 표를 얻어야 진정한 말의 고수라고 할 수 있다. 결과를 내지 못하는 말하기는 단순한 '화술' 수준에 머물 뿐이지 울림이 있는 '전달력'을 발휘한다고 볼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원하는 결과까지 얻어내는 말하기 비결을 소개한다. 첫째는 상대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욕구와 관계있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상대가 관심 없는 것은 아무리 열변을 토하면서 설명해도 원하는 반응을 얻을 수 없다. 그러니 말을 하기 전 또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이 사람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이 사람은 어떤 결과를 생각하고 있는가?'를 탐색해야 한다. 둘째는 상대의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귀로 들은 말을 뇌에서 이미지로 처리한다. 그러므로 상대의 뇌 속에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이야기를 해서는 상대를 움직일 수 없다.


셋째는 작은 에티켓으로 전달력을 높이는 것이다. 말을 할 때는 상대의 눈을 보면서 말해야 설득력이 높아진다. 말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리지는 않은지, 말을 할 때 "어...", "그게..." 같은 쓸데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지는 않는지 점검하는 것도 좋다. 넷째는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겸손하게 군답시고, 또는 솔직하게 행동한답시고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거나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는 말을 하면 상대는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게 된다. 이 밖에도 40년 프로 스피커의 연륜이 빛나는 조언이 많이 있다. 말하기 때문에 고민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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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배윤민정 지음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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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머니가 뉴스를 보시고는 크게 한숨을 쉬셨다. 결혼한 여자가 시댁 식구들을 부르는 아주버님, 형님, 서방님, 도련님 같은 호칭이 잘못된 걸 이제야 아셨다고, 그런 줄도 모르고 삼십 년 넘도록 '존경하지도 않는' 시댁 식구들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붙였던 세월이 너무나 아깝다고 하셨다.


아마도 어머니는 이 책을 쓴 배윤민정의 뉴스 인터뷰를 보셨던 것 같다. 저자 배윤민정은 2018년에 시가 구성원들에게 가족 호칭을 바꿔보자고 했다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자신이 참고 입을 다물어야만 가정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사실에 좌절했다가, 여성차별적인 사회의 관습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이후 광장에 나가 가족 호칭 개정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홍보물을 통한 캠페인을 펼쳤다. 이때의 경험을 글로 엮어서 한국여성민우회 누리집과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이 책은 저자가 2018년 한 해 동안 한국 사회의 차별적인 가족 호칭을 바꾸려고 싸워온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아주버님', '도련님', '형님' 같은 호칭을 바꿔보려고 했을 때, 저자는 곧바로 '어떻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그런 제안을 하냐'는 강한 거부반응에 부딪쳤다. 사회로 나가서 가족 호칭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결혼한 여자가 시가 구성원들을 부르는 호칭을 바꾸면 가족의 '위계'가 무너질 거라고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며느리는 원래 '낮은 위치'이니 다른 식구들을 높여서 부르는 게 맞다고, '그깟 호칭' 때문에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비난받았다.


가족에 위계가 필요할까. 가족 구성원 중에 누가 윗사람이고 아랫사람이며 그건 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선 연장자 남성이 가족 집단에서 가장 위에 있는 존재이고, 나머지 구성원은 나이와 성별에 따라 각각의 지위를 부여받는 것으로 여겼다. 이 경우 '며느리'의 자리는 가장 말단이다. 며느리들 사이에도 배우자인 남자의 나이를 기준으로 위계가 만들어진다. 형의 아내가 남동생의 아내보다 나이가 어려도 무조건 호칭은 '형님'이다(반대로 언니의 남편이 여동생의 남편보다 나이가 어려도 '형님'이라고 불리는지는 정해진 바가 없다). 이는 매사를 남성 위주로 판단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결과다.


저자는 기존의 가족 호칭을 대체할 표현을 찾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 중립적인 호칭이 아예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 화제가 된 가수 설리의 사건에서도 보듯이, 한국 사회에선 '씨'라는 표현을 낮춤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님'이라는 표현이 남용되고(마이클 잭슨 선배님?), 공공기관 등에선 아무에게나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전 선생님이 아닌데요?). 정리되지 않은 호칭의 폐해는 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게 된다. 가족 관계 내에선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여성'인 며느리들이 권위적이고 불평등한 호칭의 희생자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깟 호칭' 때문에 시끄럽게 군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깟 호칭'이라고 생각한다면 까짓것 못 바꿀 것도 없지 않나. 불편하고 부당한 일을 참지 않고 공론화한 저자가 멋지고 존경스럽다. 나도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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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천재 작곡가의 뮤직 로드,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 클래식 클라우드 7
김성현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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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만큼 유명하고 모차르트만큼 오해받는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이 책 덕분에 그동안 모차르트에 대해 오해했던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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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천재 작곡가의 뮤직 로드,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 클래식 클라우드 7
김성현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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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만큼 유명하고 모차르트만큼 오해받는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팟캐스트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 모차르트 편을 들으며 든 생각이다.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도 모차르트는 알 만큼 모차르트는 유명한 음악가다. 나 역시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모차르트를 배웠고, 방과후 피아노 레슨을 받을 때에도 통과의례처럼 모차르트의 곡을 익혔다. 그런 나조차 모차르트 하면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뽐낸 타고난 천재, 도전하는 일마다 성공했던 팔방미인, 라이벌 살리에리의 질투와 음모로 인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비운의 사내 정도의 인상이 전부였다. 


클래식 클라우드 <모차르트> 편의 저자 김성현은 이러한 인상 또는 이미지가 대체로 오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책에서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비롯해 모차르트가 연주 여행을 하고 작곡의 영감을 얻은 독일 뮌헨,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밀라노 등을 직접 발로 누빈 여정을 소개한다. 아울러 수많은 자료와 연구 문헌을 조사해 찾아낸 모차르트의 생애와 음악에 관한 진실을 밝힌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읽고 음악 좀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흐릿하고 모호한 인상으로부터 벗어나, 모차르트의 맨얼굴, 진정한 실체를 만날 수 있었다. 


남들이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64쪽) 


모차르트를 이해하려면 보통 사람과는 달랐던 복잡다단한 그의 생애부터 알아야 한다. 모차르트는 1756년에 출생해 1791년에 사망했다. 모차르트는 35년 생애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10년 2개월 2일을 여행으로 보냈다. 모차르트의 생애에는 세 번의 중요한 여행이 있다.  첫 번째 여행은 어린 시절 아버지, 누나와 함께 떠난 '1차 그랜드 투어'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나름 유명한 궁정 음악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교육자였다. 일찌감치 아들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챈 레오폴트는 모차르트가 만 6살이 되던 해인 1762년에 모차르트와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르를 데리고 유럽 전역을 순회하는 여행을 떠났다. 말이 여행이지 사실상 오늘날 뮤지션들이 하는 순회공연에 가까웠다. 왕과 귀족들 앞에서 모차르트 남매가 연주를 하는 것이 여행의 주된 일정이었다. 이 여행은 장장 3년 5개월 하고도 20일, 총 1269일 동안 이어졌다. 이 여행을 통해 모차르트 가족은 레오폴트의 연수입의 몇 배에 달하는 수입을 올렸고 유럽 전역에 모차르트의 뛰어난 재능을 알렸다. 모차르트 또한 유럽 각지의 최고 수준의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안목을 키우고 기량을 갈고닦았다.


두 번째 여행은 십 대 시절 아버지와 함께 떠난 '2차 그랜드 투어'다. 유럽 여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모차르트 가족은 모차르트의 성공을 시기한 기성 음악가들이 모차르트에 관한 비방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를 '신동 음악가'가 아닌 '오페라 작곡가'로 키우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모차르트와 함께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모차르트는 베네치아, 나폴리, 로마를 돌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들로부터 최신 음악의 조류를 배우고 이탈리아어를 익혔다. 유력 인사들 앞에서 연주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리고 연회를 즐기며 문화를 익혔다. 모차르트가 오페라를 공부하는 동안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취업 자리를 알아보았다. 이 두 차례에 걸친 그랜드 투어는, 요즘으로 치면 현지 유학 겸 구직활동이었던 셈이다. 


사회학자 엘리아스는 모차르트가 1756~1777년에 유럽 전역과 이탈리아로 두 차례에 걸쳐 그랜드 투어를 다녀온 시기를 '모차르트의 수련기'라고 부른다. 모차르트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가 아니라 장기간의 힘든 수련기를 거치면서 유럽 최고의 작곡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111쪽) 


세 번째 여행은 이십 대 시절 어머니와 함께 떠난 구직 여행이다. 두 번의 그랜드 투어를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모차르트는 그만한 실력과 명성이면 순조롭게 취업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자신을 받아줄 만한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모차르트는 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오스트리아를 떠났다. 이 여행은 처음부터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재능을 칭찬해주고 자신을 귀여워해줬던 사람들을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해보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신동'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의 모차르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마음이 급한 레오폴트는 점점 더 아들을 채근했고, 그럴수록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하라는 구직 활동은 안 하고 연애에 빠져들었다. 결국 힘든 여행에 지친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면서 모차르트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오스트리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모차르트는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프리랜서 음악가로 경력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아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멀쩡한 '정규직'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한 게 여간 아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고정된 후원자나 꼬박꼬박 급료가 나오는 직장 없이도 자신의 경력을 차근차근 잘 만들어나갔다. <후궁 탈출>을 시작으로 <대미사>,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같은 오페라 작품이 연이어 대성공을 거두며 모차르트의 명성은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모차르트의 활동 반경은 잘츠부르크와 빈을 넘어 베를린,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프라하로 점차 넓어졌고, 수입 또한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문제으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았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상류층과 어울리며 생활한 탓인지 화려한 생활을 좋아했고 모차르트는 고가의 악기와 의상, 신발, 가구, 말과 마차, 와인과 음식 등을 엄청나게 사들였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선 스스로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과로에 시달리던 모차르트는, 마치 자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기도 한 듯, <레퀴엠>을 작곡하던 도중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숨 가쁘게 쫓아온 모차르트의 생애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그는 '타고난 천재'보다는 '만들어진 천재'에 가깝다. 그를 천재로 만든 건 우선 아버지 레오폴트였고 그다음엔 '18세기 유럽'이라는 드넓은 세상이었다. (314쪽)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차르트가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그 재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다행히 모차르트에게는 자신의 재능을 눈여겨봐주고 기꺼이 지원해준 아버지 레오폴트가 있었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도 그 방식이 고루한 편견이나 인습을 따르는 것이었다면 아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레오폴트는 모차르트가 유럽에서 가장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히길 원했고 그러려면 비좁은 잘츠부르크를 벗어나 유럽 전역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두 번이나 여행을 감행했다. 오늘날로 치면 모차르트는 평생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아버지에게 직접 '홈스쿨링'을 받고 '해외 원정 유학'까지 다녀온 셈이다. 모차르트라는 불세출의 천재를 키운 건 팔 할이 아버지였고 여행이었다. 


여행을 통해 모차르트는 음악가로서도 성장했지만 인간으로서도 성숙했다. 모차르트는 여행을 하면서 자라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모차르트는 만 6세 때부터 어머니의 품을 떠나 유럽 전역을 여행했다. 기차도 비행기도 없었던 시절이다. 어른에게도 불편한 마차를 타고 먼 길을 누비는 여정은 어린 모차르트에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같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언어로 대화하는 일이 힘에 부치기도 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때로는 부담과 압박으로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레슨이나 연습 따위는 까맣게 잊고 또래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실컷 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평범한 소년이나 청년들처럼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고 연애하는 꿈도 꿔봤을 것이다. 모차르트에게 여행은 이런 부담이나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부담이나 욕망에 못이기는 척 넘어가보는 기회이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구직 여행 당시 모차르트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몇 명의 여인을 만나고 그 중 한 명과는 결혼을 약속하기까지 했다. 결국 아버지의 만류로 결혼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모차르트가 느낀 희로애락은 그의 음악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모차르트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반짝 스타가 아닌,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위대한 음악가로 만든 것 역시 여행이었다. 모차르트는 연주자로서의 기량도 뛰어났지만 작곡가, 창작자로서의 영감과 창의성도 대단했다. 이는 모차르트가 어려서부터 유럽 전역을 누비면서 수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한 덕분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최고의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그들로부터 좋은 영감과 창의성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보통 음악가들보다 한참 커버린 모차르트에게 잘츠부르크는 너무나 비좁은 무대였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생활하는 걸 답답하게 여겼다. 잘츠부르크의 음악가들은 전통에 갇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도 못한다고 한심해 했다. 모차르트의 이런 태도는 결코 오만이나 허풍이 아니었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오스트리아는 물론 당대 유럽 전역에서도 보기 힘든 최고 수준의 작품이었다. 모차르트가 현재까지도 많은 음악가들의 귀감이 되고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모차르트가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누구보다 많이 보고 넓게 배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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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의 곤충생활 1
아메갓파 쇼죠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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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시즈미 나나코와 구직 중인 사쿠라노 마이의 농촌 생활을 그린 만화. 9년 전 절필 선언을 한 만화가 아메갓파 쇼죠군의 복귀작이기도 하다. 일견 <논논비요리>, <리틀 포레스트> 같은 힐링 만화처럼 보이고 또 그런 면모가 없지 않지만, (미소녀가 잔뜩 나오는) 남성향 만화답게 수위 높은 장면이 제법 있다.


입사 1년 만에 정리해고 당하고 현재 백수인 마이는 틈날 때마다 친구 나나코의 밭일을 돕는다. 나나코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농사로 생계를 잇는데,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지면서 나나코 혼자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지 못하는 마이로서는 나나코의 밭일을 도우면 나나코가 주는 채소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까지 사이 좋게 농사를 지어온 나나코와 마이 앞에 동네 유지의 딸 스도 라이카가 등장한다. 마이한테 다정하게 구는 라이카를 보면서 나나코는 왠지 모를 질투심을 느낀다(삼각관계의 예감?!).


나나코는 오랫동안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그런지 곤충에 해박하다. 매 에피소드마다 무당벌레, 차주머니나방, 짱구개미, 애호랑나비, 배추흰나비, 목매붙이 등의 곤충이 등장하고, 각 곤충의 특성을 살린 재미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어느 날에는 곤충의 예쁜 날개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곤충 때문에 농사를 망쳐서 울기도 하는 나나코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라이카는 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애호랑나비의 알을 지키는 활동을 하는데, 그동안 이런 활동이 있는지도 몰랐기에 신기하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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