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쟁의 목격자 -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앙투아네트 메이 지음, 손희경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한국 해병대를 상징하는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미국의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앙투아네트 메이의 책 <전쟁의 목격자>는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콩고 내전, 베트남전쟁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한 전설의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마거리트 히긴스는 1920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마거리트의 부모는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성품을 지닌 분들이었다. 마거리트는 부모를 따라 홍콩뿐 아니라 베트남,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지냈고, 정규 교육을 받을 때가 되어 미국에 정착했을 때는 자유롭게 여행하며 지냈던 시절을 몹시 그리워했다. 이후 사립 학교를 거쳐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마거리트가 그 시절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처럼 바로 결혼하지 않고 언론사 취업이라는 길을 택한 것은,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몇 안 되었고, 전쟁 중에 외국에 나가려면 언론사에 취업해 해외 특파원 또는 종군 기자가 되는 길 정도뿐이었기 때문이다.
마거리트는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 기자로서 수많은 차별과 제약에 부딪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언론은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며, 남성 우월주의에 물든 업계였다. 남성들이 혈연, 지연, 학연 등을 동원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받는 혜택을, 여성인 마거리트는 조금도 누릴 수 없었다. 오히려 남성들은 마거리트가 성적 매력을 이용해 고급 정보를 빼내고 일감을 따낸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마거리트의 평판을 더럽히고 마거리트를 괴롭혔다. 그때마다 마거리트는 남성들에게 바로 반격하는 대신, 남들보다 두 배나 많은 자료를 읽고 세 배나 많은 질문을 하면서 일에 몰두했다. 마거리트가 그저 베갯머리송사로 일하는 기자였다면, 그 많은 전쟁에 종군기자로 따라나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많은 기사들을 그토록 빠르게 써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거리트 히긴스의 개인사도 흥미롭지만, 마거리트 히긴스가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1950년 마거리트는 극동 아시아를 취재하라는 명을 받고 도쿄에 왔다. 도쿄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북한이 38도 선을 넘어 남하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마거리트는 기자의 본능으로 큰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당장 한국으로 날아갔다. 마거리트는 이승만 정부가 한강 철교를 폭파해 그 즉시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하고 피난길이 막히는 현장에 있었다. 한국에 막 도착한 맥아더 장군과도 직접 만나 인터뷰했고, 인천상륙작전이 실행될 때도 군인들과 함께 도쿄에서 출발한 수송선을 타고 인천으로 왔다. 한국전쟁의 중요한 대목마다 마거리트 히긴스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인데도 후대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건 마거리트가 '여성의 몸으로 감히' 남성의 영역에 도전해 남성보다 뛰어난 성취를 보였기 때문이다. 1951년 마거리트는 한국전쟁을 취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여전히 마거리트의 실력과 열정을 신뢰하지 않았고, 마거리트가 성적 매력을 이용한다고 비방했다. 남성 기자 중에도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는 사람이 많고, 정작 그런 남자들은 '남자답다', '남자로서 능력이 있다'고 추켜세워지는데 말이다. 심지어 남성들은 마거리트의 공적을 가로채거나 아예 마거리트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신문사에선 남성 기자를 보낼 테니 마거리트는 돌아오라는 성화가 대단했다.
한국인으로서는 "한국은 여자들이 갈 곳이 아닙니다."라는 걱정 어린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와서 한국전쟁을 취재해준 마거리트 히긴스에게 감사하다.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시각으로 전쟁을 경험하고 관찰하고, 자신이 만난 한국 여성들의 일화를 기록으로 남긴 것도 고맙다. 전쟁 중에 마거리트를 도와준 열일곱 살짜리 남한 소녀 김성영은 미국 군인과의 사이에 아이를 하나 낳았으나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아이를 쏴 죽이는 일을 겪었다. 만약 마거리트가 아니라 남성 기자가 종군기자로 왔다면 이런 사연이 기록으로 남았을까.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지만 사적으로는 행복하지 못했고, 마흔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부디 그의 뜻을 기리고 따르는 여성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