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다이브 소설Q
이현석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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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경은 발리의 이름난 서핑 강습소 중 하나인 '민스서프'에서 메인 강사로 일한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서핑의 매력에 빠져 발리에 정착한 태경은 강습소 사장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조만간 지점 하나를 물려받을 예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홍보를 위해 유명 인플루언서인 '민다'를 섭외했다고 전한다. 태경은 서핑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서핑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데 급급한 민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태경에게 민다가 다가와 자신을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어리둥절해 하는 태경에게 민다는 자신의 진짜 이름은 다영이라고, 몇 년 전 두 사람이 같은 병원에서 일했다고 알려준다.


다영의 말을 들은 태경은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백화점에서 휴일도 없이 일하다 번아웃이 온 태경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휴일이 보장된다는 이유만으로 한 종합병원의 직원으로 취직했다. 다영은 같은 병원의 신입 간호사였는데, 일머리가 없고 눈치가 빠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선배 간호사에게 직장 내 괴롭힘, 일명 '태움'을 당하고 있었다. 태경과 다영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지만, 태경은 괴롭힘을 당하는 다영을 그저 두고 보기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근데 그 때의 그 다영이 지금의 밝고 화려한 인플루언서 민다라니. 태경은 달라진 다영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 어렵다.


이현석 작가가 2022년에 발표한 소설 <덕다이브>는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를 배경으로 서핑 강사와 인플루언서 수강생으로 만난 두 여자의 기이한 관계를 그린다. 고졸 출신의 비정규직 직원이었던 태경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는 다영을 구해줄 입장이 못 되었다. 명문대 간호학과를 나온 정규직 간호사인 다영을 어떻게 자신이 '감히' 구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방관을 합리화했다. 그런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뀌는 건 서핑 강사인 태경이 자신의 수강생으로서 다영을 만나고 나서이다. 강사로서 다영을 돕거나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태경은 고압적인 태도로 다영을 대한다. 그런 태경에게 다영이 수강생이 아닌 소비자, 고객의 입장을 들이밀면서 둘의 관계가 역전된다.


만약 이들이 고졸과 대졸, 비정규직과 정규직, 강사와 수강생,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가 아닌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났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사회적 지위나 계급 다 떼고 그저 발리에 서핑하러 온 한국인 여자 대 한국인 여자로 만났다면, 두 사람은 며칠 동안 기막히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평생 추억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는, 시스템은, 개인이 그저 개인으로 살아가고, 그 어떤 구분이나 차별 없이 다른 개인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핑하듯 신나게 읽히지만, 다 읽고 나면 묵직한 고민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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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더하면
은모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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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심화되고 식량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가족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 2040년대. 부모로부터 독립해 혼자서 살고 있는 이심은 더 이상 '독신세'를 내지 않기 위해 자신을 받아줄 '집합가족'을 찾으러 '무도회'에 간다. 막상 무도회장에 가보니 가정의학과 의사인 이심을 탐내는 가족은 많은데, 정작 이심의 마음에 드는 가족이 없다. 가족이 된다는 건 그저 한 집에 같이 산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정신적 공동체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가족 구성원의 직업과 경제력은 물론 정치 성향, 문화적 소양, 인성 등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모든 작가의 소설 <한 사람을 더하면>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가정한 SF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면 식량 공급이 줄어들어 식량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 심해질 것이다. 정치적 우경화가 심화되어 의료 민영화가 실시되면 의료 서비스와 약의 가격이 상승해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계층이 늘어날 것이다. 임신, 출산, 육아에 따르는 비용이 지금보다 증가하면 기존 가족 제도가 붕괴되는 건 시간문제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칠수록 진짜 뉴스의 가격이 상승해 시민들의 언론 접근성이 줄어들고 민주주의가 망가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이심은 점점 더 높아지는 독신세를 더 이상 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결합가족을 찾기 시작한다. 결합가족은 혈연 또는 혼인 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법적, 사회적 구속력을 가지는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인데, 몇 년 전부터 논의되고 있는 생활동반자법의 확장된 형태처럼 보인다. 이심은 무도회장에서 만난 한 가족을 후보로 올리고 그들과 여러 번 만나면서 결합 가능성을 따져보는데 좀처럼 흔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심이나 가족 구성원에게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 가족이 되는 행위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 이심 자신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생 한 명 한 명은 착해도 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 놓으면 난장판이 되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개인도 다른 개인과 만나면 없던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 이러한 리스크를 기꺼이 감당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주체가 정부인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정부를 원하고 리스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개인과 개인의 결합은 점점 더 줄어들고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 소설 속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 한국의 미래를 비관하는 나로서는 소설 속의 상황이 차라리 유토피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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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자세 소설Q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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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는 어릴 때 엄마와 함께 공중목욕탕에서 살았다. 사연은 이렇다. 유라의 엄마 오혜자는 남편을 잃고 사기까지 당하면서 전 재산을 잃었다. 친정 부모에게 받은 돈으로 집을 구하는 대신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의 지하 1층 여탕 세신사 자리를 샀다. 매일 목욕탕에서 어린 딸과 함께 먹고 자고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빚을 갚고 집을 산 후에도 엄마는 세신사로 일했다. 먹고 살려면 계속 돈을 벌어야 하기도 했지만, 여탕에서 만난 여자들과 쌓은 우정과 의리 때문이기도 했다. 


김유담 작가가 2021년에 발표한 소설 <이완의 자세>는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는 엄마의 딸로 살아온 여자의 삶을 그린다. 주인공 유라는 엄마가 세신사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한때는 거액의 빚과 어린 딸자식 밖에 가진 것이 없었던 엄마가 인생 역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나 아빠가 없는데도 돈 걱정 없이 비싼 과외를 받으며 무용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엄마가 휴일도 없이 여탕에서 여자들의 때를 밀며 열심히 일한 덕분인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라는 몸에 대한 거부감을 느낀다. 누가 자신의 몸을 보거나 만지는 것도 불쾌하고, 자신이 남의 몸을 보거나 만지는 것도 께름칙하다. 다른 전공도 아닌 무용을 전공하는 유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무용가는 결국 몸을 보고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연애까지 안 풀리자 유라는 무용을 아예 그만둘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유라가 전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엄마는 유라의 고민이 마뜩잖다.


이 소설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여탕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목욕탕에서 몸만 씻는 것이 아니라 수다도 떨고 남몰래 울기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고 간다. 밖에서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목욕탕 안에선 잘 씻고 잘 쉬다 가는 사람이 승자다. 몸이 잔뜩 긴장하면 때를 밀어도 밀리지 않고 몸만 아프듯이, 인생도 긴장할수록 일을 그르치고 고통만 커진다. 그러니 힘들 때는 오히려 힘을 빼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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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층의 하이쎈스
김멜라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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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 청소년 아세로라는 부모의 집을 뛰쳐나와 남산 타워가 보이는 상가 건물 2층에서 산다. 아세로라의 옆방에 사는 '동거인' 할머니 사귀자는 '하이쎈스'라는 필명으로 명필 교습소를 운영한다. 좋아하는 음식부터 외모를 꾸미는 방법까지 무엇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는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세로라는 사귀자가 외출한 틈을 타 교습소를 뒤지다가 사귀자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것은 사귀자가 '하이쎈스'라는 이름으로 남한에서 오랫동안 활동 중인 간첩이라는 것이다.


김멜라 작가의 첫 장편 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는 가출 청소년과 명필 할머니라는 기이한 조합으로 시작한다. 성격도 취향도 맞지 않는 두 사람이 상가 건물에 숨어 산다는 설정도 우스운데, 심지어 할머니가 간첩이라고 적힌 문서가 청소년의 눈에 띄면서 이야기 전개가 급물살을 탄다. 사실 사귀자 할머니는 군사 독재 시절에 지금의 상가 자리에서 하숙집을 운영했다. 사귀자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혼기가 차자 마자 결혼했다. 다행히 괜찮은 남편을 만나 딸 하나를 얻었고, 남편이 구한 하숙집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갈 계획을 품었다.


그랬던 사귀자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면서 인생이 뒤집혔다. 어느 것도 자신의 탓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앞에 사귀자는 무너졌다. 순식간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사귀자의 사연을 알게 된 아세로라는 자신의 '없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는 바로 얼마 전에 죽은 남동생 '칭퉁이'다. 어려서부터 희귀 면역 질환을 앓아서 과자나 고기도 못 먹고 외출도 자유롭게 못 했던 칭퉁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세로라는 칭퉁이 몰래 고기를 먹고 횡령 사건을 벌인 부모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진정으로 용서할 수 없었던 건 칭퉁이가 죽었는데도 살아 있는 자신이었다.


자신처럼 어쩌면 자신보다 더 큰 상실과 고통을 겪었다고도 볼 수 있는 사귀자가 지금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세로라는 자신도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죄를 짓게 되기도 하고,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죄인으로 몰리기도 하고, 힘들게 얻은 걸 빼앗기기도 하지만, 살다 보면 빼앗긴 걸 다시 얻게 되기도 하고, 죄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지은 죄를 갚을 기회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니 살아 있을 것. 살아 갈 것. 최근에 읽은 한국 장편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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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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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의 중앙역에는 밤마다 다양한 연령대의 노숙인들이 모여 든다. 이들은 매일 밤 익숙한 모습으로 역에 나타나 익숙한 자세로 자리를 잡는다. '나'는 그런 노숙인들 중 한 명이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나'는 비록 지금은 자신이 노숙을 하는 처지이지만, 자신은 주변의 노숙인들과 다르다고, 아직 젊고 건강하니 조만간 이곳을 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난다. 언제나처럼 박스를 깔고 누워 잠을 청하던 그를 깨우며 쥐가 있다고, 도와 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여자가 사라진다. '나'가 끌고 다니던 캐리어도 보이지 않는다.


<중앙역>은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불과 나의 자서전> 등을 발표한 소설가 김혜진이 2014년에 발표한 첫 책이자 첫 장편소설이다. 선의로 하룻밤을 함께 보내준 여자가 자신의 캐리어를 가지고 도망친 것을 알게 된 '나'는 거리를 헤매고 또 헤매다 결국 여자를 찾아낸다. 처음에 '나'는 자신에게 단 하나 남은 것을 가져간 여자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늙고 병든 여성의 몸으로 노숙인의 삶을 살고 있는 여자에게 점점 연민을 느끼고 이 감정은 사랑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나'도 여자도 사랑을 하기에는 조건이 열악한 정도가 아니라 암담하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를 위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중앙역에 모이는 노숙인들을 지원하는 강팀장에게 부탁해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게, 재개발 지역의 철거 용역으로 일하며 원주민을 쫓아내고 농성하는 사람들을 진압하는 것이다. 돈이 급한 '나'는 죄책감을 느낄 새도 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돈을 번다. 그렇게라도 여자와 함께 살 집을 구해서 오순도순 살아갈 꿈을 꾸지만, 여자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한다. "누군가에게는 삶이 끔찍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중략)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정말 끔찍한 건 삶이 아니라 죽지 않고 꾸역꾸역 견디고 있는 스스로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262쪽)


이 소설은 점점 더 비참한 상태로 추락하는 '나'와 여자의 모습과는 반대로 공사를 거듭하며 점점 더 거대해지고 화려해지는 중앙역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집이 없어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나'가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을 쫓아내는 일로 돈을 버는 상황 또한 모순적이다. 김혜진 작가는 국 사회에서 부동산으로부터 야기되는 문제들과 일이 개인에게 미치는 정신적, 사회적 가해를 꾸준히 그려왔는데, 이러한 점들이 데뷔작 <중앙역>에서도 엿보인다. 1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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