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 머신 - 블록체인과 세상 모든 것의 미래
마이클 케이시.폴 비냐 지음, 유현재.김지연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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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사막의 아즈락 캠프에는 3만 2000여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수용되어 있다. 이곳은 다른 도시들이 갖추고 있는 질서나 안전이 부재하며, 제도와 인프라 같은 사회적 기반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 반면 이곳은 블록체인 기술, 즉 분산 장부기록 시스템에 기반을 둔 실험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유엔세계식량계획(UNWFP)은 이곳에서 난민 1만 명을 대상으로 식량 분배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은 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에게 공정한 식량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홍채인식 기술을 도입했다. 신분증이나 현금, 바우처, 직불카드, 스마트폰 같은 매개체 없이도 홍채만 있으면 누구나 식량을 구입할 수 있고 그 내역이 자동으로 투명한 거래 장부에 기록되는 방식이다. 덕분에 캠프 내에 만연해 있던 약탈이나 도둑질, 식량을 몰래 빼돌리는 현상이 눈에 띄게 줄었다. 


<트루스 머신>은 현재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분산 장부기록 시스템, 즉 블록체인 기술이 은행, 정부 및 수많은 중개자들의 기록 관리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즈락 캠프의 사례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린다면, 우버(한국으로 치면 카카오 택시)의 사례는 어떤가. 예전에는 택시 기사와 승객 사이를 택시 회사가 중개했다면, 이제는 기사와 승객의 사이를 우버라는 앱이 중개하고 일정 수수료를 떼어간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낯선 이가 운전하는 차에 탈 용기를 낼 사람이 아무도 없었겠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앱을 통해 타인의 평판이나 신뢰도를 확인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버라는 앱이 중간에서 중개할 필요 없이 기사와 승객이 바로 연결되는 세상을 상상한다. 택시만이 아니다. 주택, 차량 등 자산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거대한 장부가 생긴다면, 현금이나 증권 거래를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부나 특정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신원증명이 가능해진다면, 클라우딩 컴퓨터나 웹 호스팅 서비스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분산된 컴퓨팅 파워를 이용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고 얼마나 달라질까. 어떤 산업이 생겨나거나 없어지고, 어떤 기업이 새롭게 부상하거나 위기를 맞을까. 


이 책에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줄 금융, 기술, 법규, 경제 전반에 걸쳐 나타날 변화가 자세히 나와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가 쓴 책인 만큼 서구의 사례가 대부분이며, 전문 지식을 다룬 책인 만큼 읽기가 썩 쉽지는 않다. 하지만 워낙 중요하고 중대한 기술이고 변화이기 때문에 사례 위주로라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블록체인 기술 하면 오로지 비트코인만 떠올렸던 사람이라면 블록체인 기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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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클래식 클라우드 2
이진우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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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나 출신 학교, 숨을 거둔 집,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묘소에 가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몇 년 전에 좋아하는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학창시절을 보낸 일본 고베의 한신칸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졸업한 학교를 둘러보고, 그가 들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서점에 들르거나 거닐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해변을 따라 걸어보니, 작가는 물론 작품에 대해서도 전보다 많이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좋아한다면, 한국 니체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진우 교수가 쓴 <니체 :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를 읽고 니체의 자취를 따라 여행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이 책에는 1844년생인 니체가 35세가 된 1879년, 바젤 대학 교수직을 스스로 버리고 방랑의 길을 택한 후 9년 반만에 토리노에서 몰락하기까지 그가 지나갔던 자취를 따라 여행한 기록이 담겨 있다. 그가 따라간 니체의 여정은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스위스 질스 마리아, 프랑스 니스를 거쳐 이탈리아 토리노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 


니체의 이름이야 익히 들었지만 그의 생애나 사상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이 책을 통해 니체의 삶과 철학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니체는 결코 외향적이거나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지만 언어와 음악에 관해서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열정을 불태웠다. 특히 바그너가 주도하는 음악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사람들은 니체가 바그너가 아니라 바그너의 아내 코지마를 흠모한다고 의심했는데 이는 사실이었다. 이후 니체는 유명한 삼각관계 소동을 한 번 더 일으킨다. 이때의 상대는 니체 외에도 릴케, 프로이트 등을 매혹한 유럽의 뮤즈 살로메와 파울 레다. 


두 번의 삼각관계, 두 번의 실연을 겪으며 크게 낙담한 니체는 고통을 부정하거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고통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니체는 사실 대단한 마조히스트인지도 모른다...). 이때만이 아니다. 가난이 괴롭히면 가난에 대해, 병마가 덮치면 병마에 대해, 죽음의 공포가 밀려들면 죽음에 대해, 니체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끈질기게 답을 찾았다. 이 과정을 통해 니체의 사유는 허무주의의 질곡을 통과해 영원회귀 사상으로 나아갔다. 인간이 초인(超人)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쓴 책들은 당대엔 널리 읽히지 못했으나, 현재는 전 세계인들이 읽고 연구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니체는 토리노를 매일매일 다른 감성으로 받아들인다. 모네가 하루의 리듬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는 풍경의 분위기를 화폭에 담았던 것처럼 니체는 토리노를 다양하게 체험한다. 우리가 도시의 길을 매일 반복해서 걸을 수 있는 것은 그 길이 매일매일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287-9쪽) 


이 책이 기존의 니체 해설서와 다른 점은 니체가 실제로 머물렀던 곳들을 저자가 직접 가보고 느낀 점까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니체는 우쭐거리듯 늘어서 있는 개성 없는 건물로 가득한 베니스나 독일의 도시보다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많고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니스나 토리노 같은 도시를 사랑했다.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낙타의 삶보다 위험하지만 변화무쌍한 사자의 삶을 동경했던 니체의 사상을 꼭 닮은 도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현재 셰익스피어 편과 클림트 편이 출간되어 있다. 향후 페소아, 오스카 와일드, 가와바타 야스나리,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편 등등이 출간될 예정이다(작가진도 김사과, 최민석, 이다혜, 정여울, 이현우, 김경희, 이정모 등 쟁쟁하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팟캐스트, 팟빵 등에 업데이트 되는 '클래식 클라우드 -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 '으로 먼저 만나볼 수도 있다. 1회부터 한 회도 빠트리지 않고 애청하고 있는 방송이라서 시리즈 출간이 반갑다. 앞으로 출간될 책들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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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역사 꿈이 되는 직업 - 초등 한국사 진로역사스쿨
박정화 지음, 김은주 그림, 김명선 감수 / 리프레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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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용과 진로를 준비하는 과정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학교 교육은 입시에 필요한 성적을 받기 위한 과정일 뿐이고, 교육 수혜자인 학생의 인생에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직업 체험이나 진로 교육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하니 합리적이지 않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살아 있는 역사 꿈이 되는 직업>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한국사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망한 직업과 진로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콘셉트의 책이다. 학교 현장에서 나온 자유학년제, 자유학기제 수업안을 바탕으로 학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들이 다 함께 살아 있는 역사를 공부하고 미래 직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살아 있는 역사 꿈이 되는 직업>은 고조선부터 조선까지 역사적 사건, 유물, 발명품, 건축물 등이나 위인들의 업적, 정통 음식 등을 배우고 이를 통해 미래 유망 직업을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조선의 글씨 천재 한호(한석봉)과 김정희를 소개하면서 캘리그래퍼의 직업 세계를 설명하고, 이성계의 한양 천도를 소개하면서 도시 계획가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식이다. 


모두 5개 분야 28개 직업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고, 소개된 직업은 인문, 사회, 건축, 공학, 의학, 문화, 예술, 패션, 뷰티, 법률, 공공 서비스 분야를 총망라한다. 인문 사회 분야의 직업으로는 쇼핑 호스트, 외교관, 머천다이저(MD), 네이미스트, 파티플래너가, 건축 공학 의학 분야의 직업으로는 건축가, 금속 공학자, 수의사, 도시 계획가, 로봇 공학자, 빅데이터 전문가, 유비쿼터스 도시 기술자 등이 소개되었다.





문화 예술 분야의 직업으로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애니메이터, 큐레이터, 이모티콘 디자이너, 캘리그래퍼, 음식 메뉴 개발자 등이, 패션 뷰티 분야의 직업으로는 패션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조향사, 메이크업 아티스트, 텍스타일 디자이너, 컬러리스트가, 법률 공공 서비스 분야의 직업으로는 변리사, 소방관, 경호원, 프로파일러 등이 소개되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직업도 있지만, 빅데이터 전문가나 유비쿼터스 도시 기술자, 이모티콘 디자이너, 음식 메뉴 개발자, 프로파일러처럼 최근 들어 급부상해 각광받는 직업도 적지 않다. 이런 직업은 초등학생들은 물론 중, 고등학생, 대학생, 사회인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직업인지, 앞으로는 어떤 직업이 등장할지 등에 대해 배워보면 좋겠다.







<살아 있는 역사 꿈이 되는 직업>의 장점 첫 번째는 낯설고 어려운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고조선의 중계무역, 백제의 왕인 박사, 고려의 대외무역, 이자겸의 난, 정조의 업적 등을 하나하나 교과서를 통해 배우면 딱딱하고 재미없다. 이 책은 그런 딱딱하고 재미없는 교과서 내용을 재미있는 이야기와 귀여운 그림으로 풀어서 설명한다. 


쉽고 재미있다고 내용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개성상인들이 가게 주인을 '가게쟁이'라고 불렀고 이 말이 변해 '깍쟁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자겸의 난은 전부터 알았지만, 난을 일으킨 후 전라도 영광으로 귀양간 이자겸이 조기를 포장해 '굴비(屈非, 비굴하게 굽히지 않겠다는 뜻)'라고 써서 왕에게 보낸 것을 계기로 영광 굴비가 생겨난 것도 처음 알았다(설마 나만 몰랐나 ㄷㄷㄷ).





<살아 있는 역사 꿈이 되는 직업>의 장점 두 번째는 역사 공부와 직업 교육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계무역을 통해 나라의 부를 늘린 고조선의 역사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를 연결해 매출을 올리는 쇼핑 호스트의 직업 세계를 소개하고, 왜에 문물을 전파하는 외교관 역할을 했던 백제의 박사들을 통해 국가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와 좋은 관계를 지키는 활동을 하는 외교관의 직업 세계를 소개하는 식이다.


단순히 직업에 대해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직업을 가지는 데 필요한 적성과 구체적인 준비 과정은 물론, 이 직업은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 학생에게 적합한지, 비슷한 직업은 무엇인지 등도 세세하게 알려준다. 참고로 쇼핑 호스트는 국어와 영어, 외교관은 국어와 영어, 사회를 좋아하는 학생에게 적합하다. 쇼핑 호스트와 비슷한 직업으로는 아나운서, 강사, 머천다이저가 있고, 외교관과 비슷한 직업으로는 검사, 국회 의원, 법관 등이 있다.





<살아 있는 역사 꿈이 되는 직업>의 장점 세 번째는 학생들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직업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쇼핑 호스트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부모님께 선물하고 싶은 효도 상품은 무엇인지, 효도 상품을 팔기 위한 홈쇼핑 방송 대본을 미리 써 보자. 수의사가 꿈이라면 동물 사전 만들기를, 로봇 공학자가 꿈이라면 나에게 필요한 로봇 비서 만들기를,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꿈이라면 캐릭터 빵 만들기를 해보자. 


혼자서 해도 좋고, 친구들과 함께 해도 좋고, 부모님 또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해도 좋을 듯. 특히 진로는 아이 혼자서 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님과 함께 의논해서 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해당 진로로 나아감에 있어서 부모님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으니, 아이와 부모가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아이의 적성은 무엇인지, 요즘 어떤 직업이 새로 생겨났는지, 해당 직업을 가지기 위해선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등을 이야기 나누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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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미쳤다 1
안도 나츠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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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나츠미의 전작 <ARISA>는 눈앞에서 자살한 쌍둥이 동생 아리사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언니 츠바사가 동생인 척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학원 서스펜스 만화다. <ARISA>를 읽으며 이 작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신작 <우리들은 미쳤다>를 읽으며 확신으로 굳었다. 어쩌면 심장이 쫄깃쫄깃 해지는 설정과 전개를 잘 생각해낼까(막장 설정, 막장 전개 좋아하는 한국에서 드라마화되면 인기 있을 듯!), 





나오는 다섯 살 때 봄, 화과자 기술자인 엄마가 입주해 일하게 된 가게에서 츠바키를 처음 만난다. 츠바키는 4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가나자와의 유서 깊은 화과자 가게 '코게츠암'의 외아들로, 장차 아버지를 이어 코게츠암의 주인이 될 운명이다. 츠바키는 나오를 사쿠라라고 불렀고, 나오는 그런 츠바키가 좋았다. 언젠가 자신도 엄마처럼 화과자 기술자가 되어 츠바키를 위해 예쁜 화과자를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평화로운 나날도 잠시. 어느 날 츠바키의 아버지가 방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유일한 목격자는 츠바키. 범인이 누구냐는 경찰의 질문에 츠바키는 나오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나오의 어머니는 범인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그녀의 무죄를 증명할 알리바이는 없었고, 그녀 이외의 용의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오의 어머니는 감옥에서 병사했고, 혼자 남은 나오는 코게츠암에서 쫓겨나 고아원을 전전하다 엄마처럼 화과자 기술자가 된다. 





화과자 기술자로서 나오의 솜씨는 제법 대단하다. 주문한 손님의 마음에 쏙 드는 화과자를 척척 만들어내 벌써부터 나오를 따로 지명해 주문하는 손님마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오가 일하는 가게에 '하나오카 나오의 어머니는 살인자입니다.'라고 적힌 괴편지가 배달되면서 즐거운 일상도 끝이 난다. 이대로라면 어떤 가게도 나오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고용되지 않으면 먹고 살아갈 수 없고, 무엇보다 엄마와의 약속인 화과자를 만들 수 없어 괴롭다. 


그런데 이때, 좌절에 빠진 나오 앞에 뜻밖의 인물이 찾아온다. 그는 바로 한때는 친남매처럼 가까웠지만, 나오의 어머니를 살인자로 몰아서 나오 모녀의 인생을 망친 남자 츠바키. 츠바키는 나오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고, 나오는 무슨 생각인지 츠바키의 프러포즈를 덥석 받아들인다. 츠바키의 신부가 되어 츠바키의 집안으로 들어간 나오는 나오 자신과 어머니의 인생을 망친 이 집안의 비밀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전개가 상당히 빠른데, 이제 겨우 1권의 절반을 설명했을 뿐이다. 가난한 고아인 나오와 부잣집 외아들인 츠바키의 결혼을 츠바키네 집안 어른들이 반대하는 건 당연지사(아직 이들은 나오의 정체를 모른다). 나오를 눈엣가시로 여긴 집안 어른들이 나오를 쫓아내려고 별짓을 다하는데 정말 무섭다(인성이 거의 XX항공 오너 일가 수준 ㄷㄷㄷ). 츠바키는 츠바키대로 나오를 좋아해서 신부로 맞이한 게 아니라 나름 계획이 있어서 꿍꿍이속을 가지고 나오를 집으로 데리고 온 거라서 이 둘 사이도 냉랭하다(아니 무섭다. 츠바키 인성도 ㄷㄷㄷ). 


대체 츠바키의 속셈은 무엇일까. 1권 전개가 무척 흥미롭고 스릴 넘쳐서 앞으로 2권, 3권은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기대된다(다시 한 번 드라마화 원츄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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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0-07-13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은 읽지 않았지만 이번 분기에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된다고 하여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게 인터넷상에서 흔히들 말하는 성지순례 글인가요? 😆
 
처음엔 사소했던 일 VivaVivo (비바비보) 37
왕수펀 지음, 조윤진 옮김 / 뜨인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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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 수많은 지옥을 경험한다. 첫 번째 지옥은 대체로 가정일 것이고, 두 번째 지옥은 대체로 학교일 것이다. 대만 작가 왕수펀이 쓴 <처음엔 사소했던 일>은 평범한 교실이 서로 의심하고 싸우는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월요일 오전, 중학교 1학년 1반 교실. 린샤오치는 금색 볼펜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없어진 볼펜은 같은 반 천융허의 필통에서 발견된다. 이때만 해도 몇 명만 천융허를 의심하고, 다수는 사소한 일이라고, 실수이거나 오해일 거라고 웃으며 넘긴다. 


그런데 얼마 후 급식비, 회식비, 버스카드, 학급비가 차례로 사라진다. 아이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말은 안 해도 천융허가 범인이라고 믿는 눈치다. 이 사건이 학부모들에게 알려지면서 결국 담임인 왕 선생님은 학급 회의를 연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천융허가 범인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왕 선생님은 아무 증거 없이 같은 반 친구를 도둑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한다. 그렇게 진짜 범인을 찾지 못한 채 학급 회의가 끝나자 아이들은 이제 천융허를 대놓고 따돌리기 시작한다. 천융허는 천융허대로 반격을 시작한다. 


소설은 이후 린샤오치, 리빙쉰, 차이리리, 장페이페이, 저우유춘, 뤄추안, 왕 선생님, 천융허 등 사건 관련자들의 사연을 하나씩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이제까지 일어난 도난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왜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했는지 그 진실이 밝혀진다.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결코 사소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부모의 무관심 또는 지나친 간섭, 가정 내 불화와 폭력, 빈부 격차, 아이들 간의 질투와 경쟁심, 허세와 열등감 등이 뒤엉켜 발생한 사건임을 독자는 알게 된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학교뿐 아니라 어느 조직, 어느 집단에서든 일어날 법한 일, 존재할 법한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런 일 있지', '이런 사람 꼭 있어'라며 공감한 대목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 괴물이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지를 너무 잘 표현했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처럼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지만 연상되는 면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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