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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는 조금 모자라
아베 토모미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요츠바랑!>처럼 유쾌하고 <바라카몬>처럼 따뜻한 만화라는, 띠지에 적힌 말을 그대로 믿고 읽었다가 중간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2015년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베르사유의 장미>, <월간 순정 노자키 군> 등을 제치고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제18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부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타이틀은 결코 괜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치이는 중학교 2학년인데 말투나 행동이 어린아이 같고 기본적인 나눗셈도 잘 못한다. 처음에는 제목처럼 '조금 모자란' 아이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 지적장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책에는 치이한테 지적장애가 있다는 언급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치이의 주변에는 치이를 잘 대해주는 나츠, 아사히 같은 친구들이 있다. 나츠와 아사히는 치이가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고 학습능력이 많이 뒤처져도 타박하거나 무리에서 소외시키지 않는다. 때로는 언니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치이를 돌봐주고 가르쳐준다. 덕분에 치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소외되는 일 없이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치이의 소꿉친구이자 같은 아파트 이웃이기도 한 나츠에게 '이변'이 생긴다. 항상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치이를 대하는 나츠의 속마음은 사실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나츠는 항상 친구들보다 성적도 낮고, 친구도 많지 않고, 외모도 예쁘지 않고, 가족 관계도 좋지 않고, 돈도 없고... 등등의 생각을 하며 자기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고 자신을 비하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급기야 나츠는 치이를 보면서 '그나저나 우린 왜 같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또래에 비해 학습능력도 낮고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인 채로 있을 것만 같은 치이. 그런 치이와 단짝 친구로 지내는 것은 나츠에게 '조금 모자란 치이를 잘 돌보는 착한 아이'라는 명예를 부여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들 나츠와 치이를 비슷한 수준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치이와 비슷한 수준'이란 건 대체 뭘까. 나츠는 고민에 휩싸인다. 이 와중에 '문제의 사건'이 발생하며 나츠의 열등감과 죄의식은 폭발 직전에 다다른다.
나츠가 친구들이 하나둘 어른스러워지거나, 이성 교제를 하거나, 장래 계획을 세워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초조함을 느끼고 급기야 열등감을 가지는 모습이 남 같지 않았다. 나도 중학교 2학년 때쯤에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다. 아니 그전에도, 그 후에도, 지금도 시시때때로 남들과 나 자신을 비교한다. 내가 남보다 못하면 괴롭고, 내가 남보다 나으면 우월감을 느끼는 한편 우월감을 느낀 것에 대해 죄악감을 가진다.
작가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로 풀었지만, 이 만화는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껴보고 경험해봤을, 가장 원초적이고 통제하기 힘든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못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나츠의 모습이,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어른으로 점점 더 성장해가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 큰 슬픔과 고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