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 무너지는 거리 - 주택과잉사회 도시의 미래
노자와 치에 지음, 이연희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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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의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 연표>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 따르면 2024년에 일본 국민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되고, 2033년에 세 집 중 한 집이 빈집이 되고, 2040년에 지자체 절반이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2033년에 세 집 중 한 집이 빈집이 된다는 예측은 일본 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다. 노자와 치에의 책 <오래된 집 무너지는 거리>를 두른 띠지에도 같은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저자는 앞으로 일본이 '인구 감소 사회'를 맞음과 동시에 '주택 과잉 사회'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주택 과잉 사회란 주택 수가 세대 수를 크게 웃돌고 빈집이 점점 늘어나는데도 미래 세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거주지가 아닌 땅들을 무분별하게 택지로 개발해서 주택을 대량으로 신축하는 사회를 말한다. 책에는 2010년에 이미 인구 감소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에서는 초고층 맨션이 건설되고 도시 외곽과 지방도시에서는 무분별하게 임대주택, 단독주택이 개발되고 있는 현상이 나온다. 일본 사례가 대부분인데 한국 사례를 보는 듯한 건 나의 착각일까. 


주택 과잉 사회는 단순히 빈집이 늘어나는 현상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신규 주택이 건설되면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학교, 도로, 공원 등의 인프라가 함께 조성되기 마련이다. 새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이러한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한 지출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빈집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러한 인프라도 버려진다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현 세대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무분별하게 택지를 개발하고 신규 주택을 건설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부동산이 아니라 부(負)동산, 즉 빚동산을 남기는 일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주택 과잉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신규 주택 건설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이요, 다음의 7가지 방안을 함께 실천하자고 제안한다. 첫째,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갖는다. 둘째, 주택 수와 거주지 면적을 더 이상 늘리지 않는다. 셋째, 생활 서비스를 유지하는 마을 정비 구역 설정. 넷째, 주택 입지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를 도입한다. 다섯째,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적극 추진한다. 여섯째, 수리나 철거 등 주택 말기 대응책을 조속히 마련한다. 일곱째, 주택을 구입할 때는 수십 년 후를 생각한다. 


생활 서비스를 유지하는 마을 정비 구역 설정은 <미래 연표>에도 나온 '콤팩트시티' 정책과 관련이 있다. 콤팩트시티는 인구밀도의 저하와 초고령화, 노동력 부족 등을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마을의 일부를 정비 구역으로 정해놓고 그 안에서 응급의료, 쓰레기 수거, 방문 간호, 재택 의료, 택배 등의 생활 서비스 등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도 인구감소와 주택 과잉 사회, 지방 소멸 등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배울 점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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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눈치 없는 사람과 대화는 어렵습니다만 -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말눈치 대화법
김범준 지음 / 위너스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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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을'을 위한 대화법을 다룬 책이 많이 보인다. '갑'을 표현하는 말도 눈치 없는 사람, 불편한 사람, 무례한 사람 등등 다양하다(눈치 있는 갑, 편한 갑, 매너 있는 갑은 정녕 없는 걸까?). <저도 눈치 없는 사람과 대화는 어렵습니다만>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을 쓴 김범준은 유수의 대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이야기하는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저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답게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해도 막힘이 없지만, 이따금 대화하기가 무척 어려운 상대를 만날 때가 있다. 바로 '눈치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 눈치는 그냥 눈치가 아니라 '말눈치'다. 말눈치란 '말하는 가운데 살며시 드러나는 태도'를 일컫는다. 나한테 말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다면 저자가 제시한 체크리스트를 확인해보자. 하고 싶은 말을 내뱉어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무조건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한다, 상대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또 한 적이 있다, 내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말을 듣는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대화 중에 갑자기 흐름과 맞지 않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내가 남에게 잘 해준 건 기억해도 남이 나에게 잘 해준 건 기억하지 못한다, 말을 잘못 전달해 종종 오해를 산다, 상대가 실수하자마자 바로 논리적으로 지적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체크했다면 말눈치가 없는 사람이다(으악 나도!!!). 


말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 없다. 이 책에는 배려하는 말눈치가 필요할 때, 세심하게 살피는 말눈치가 필요할 때, 공감하는 말눈치가 필요할 때, 절제하는 말눈치가 필요할 때, 힘 있게 대화하는 말눈치가 필요할 때 등등 각각의 상황에 필요한 말눈치와 그에 부합하는 예시 문장이 잘 나와 있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슬프다, 힘들다, 속상하다 같은 말을 하면 "그건 늘 있는 일이야. 그냥 네가 참아.", "뭘 그 정도 갖고 그래. 별일도 아닌데." 같은 말 대신, "그런 일이 있었어? 정말 슬펐겠다(힘들었겠다, 속상했겠다).", "괜찮아? 내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 같은 말을 하자.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공감과 위로라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하자.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캐치하는 능력만큼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캐치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한테 굳이 시험 이야기 꺼내는 사람, 취업 못한 사람한테 굳이 취업 이야기 꺼내는 사람, 아직 결혼 안 한 사람한테 굳이 결혼 이야기 꺼내는 사람 꼭 있다. 이런 사람은 눈치 없이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고 갑질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좋고 편하다고 계속 갑질하다보면 언젠가 자신의 고함 소리가 녹음된 음성 파일이 인터넷상을 떠돌고, 그동안 숨겨왔던 치부(어쩌면 비리와 부패, 범죄까지)가 온 천하에 드러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것도 꼭 기억하시길. 그때까지 세상의 모든 '을'들은 참은 게 아니라 힘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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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디블 가족 - 2029년~2047년의 기록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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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이라면 1997년 외환 위기, 이른바 IMF 사태가 일어났던 시절의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조차도 그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국가 부도나 금융 구제 같은 어려운 말은 몰랐지만, 나라가 외국에 진 빚을 갚으려는데 달러가 부족하다, 그러니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달러나 금을 모두 내놔서 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어린 마음에도 큰일이 난 줄 알았다. 


그렇다면 경제력으로 보나 군사력으로 보나 세계 1위이자 부동의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이 경제 위기를 맞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케빈에 대하여>를 쓴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신작 <맨디블 가족>은 2029년 미국에서 중국으로 세계 패권이 이동하고 기축 통화가 달러화에서 위안화로 바뀌면서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된 미국의 중산층 가정 맨디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아주 약간의 국제 경제 지식이 필요하다. 2018년 현재 기축 통화는 미국의 화폐인 달러화다. 기축 통화란 금과 더불어 국제 외환시장에서 금융거래 또는 국제결제의 중심이 되는 통화다. 전 세계의 화폐는 달러에 대비해 가치가 매겨지고 달러를 매개로 거래된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은 달러화를 찍어내고 달러화를 빌려주는 것만으로 자국 경제를 꾸려갈 수 있다.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는 21조 달러로 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달러화가 기축 통화인 이상 미국의 국가 신용도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미국은 부채를 당장 갚을 필요도 의지도 (어쩌면 능력도) 없다. 


문제는 미국이 언제까지나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현재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따라잡고 있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2024년 '스톤에이지' 사건으로 주요 인터넷 인프라가 마비되며 미국 경제 시스템의 허점이 노출되고, 2029년 중국과 러시아가 금융 쿠데타를 주도해 미국을 세계 패권의 지위에서 몰아내고 새로운 기축 통화를 대신 세울 것이라고 내다본다(물론 전문가로서의 예측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상상이다). 


이 경우 1997년 한국이 외환 위기를 겪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이 미국 경제, 아니 미국 사회 전체에 가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작가는 이때 벌어질 법한 일들을 13세 소년 윌링 맨디블과 윌링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세대의 모습을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가정 내에 실직자가 속출하고, 밀린 월급이 나올 기미가 안 보이고, 물가가 치솟고 가처분 소득이 낮아지고, 사립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공립학교로 전학하고, 대학에 진학해야 할 아이는 입학을 미루고 취업을 하는 등의 모습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국가 부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결혼반지나 부모님이 물려준 귀금속 등 개인이 가진 금붙이까지 전부 국가에 바치는 모습까지 똑같다. 


주목할 점은 소설의 배경이 1997년이 아니라 2029년이라는 것이다. 2029년이면 현재 진행 중인 제4차 산업혁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심화된 상태다. 지금도 로봇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 등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2029년에 경제 위기가 닥치면 1997년보다 더한 대량 해고, 고용 한파가 일어날 것이다. 국가가 망했으니 공무원도 더 이상 철밥통이 아니고, 대학도 문 닫을 상황이니 정년 보장받은 교수도 안심할 수 없다. 소득은 줄었는데 물가는 오르고, 세금 부담은 커졌는데 복지 혜택은 반토막으로 줄고...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국민들은 '탈조국'을 꿈꾸게 될 것이고, 국가는 이들을 붙들어 맬 명분이 없을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47년의 모습까지 상상해 보여준다. 이 시대에는 직업을 가지려면 칩을 이식받아야 한다. 이는 사회보장번호(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칩은 개인 정보뿐 아니라 개인의 금융 정보, 거래 내역, GPS 좌표, DNA, 정신 상태 등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디지털 처리해 정부에 보고하는 데 이용된다. 말도 안 되는 상상 같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이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의 <1984>보다 훨씬 실감 넘치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탄생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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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이미화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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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취향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만나야 하고 대화는 해야 하기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찾아서 - 이를테면 음식이나 맛집,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 연예인 가십 등등 - 열심히 떠들지만, 인사하고 돌아서서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오늘도 쓸모없는 말,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만 하다 끝났구나 하는 허무감을 느낀다.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취향이 딱 맞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이미화의 여행 에세이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를 집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영화를 사랑해서 영화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저자는, 사랑하는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들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는 여행에 도전했다. "어떤 속도로 어느 시간을 살아가고 있든, 영화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을 당신도 느꼈을 거라는 생각은 나를 덜 외롭게 했다."라는 서문의 고백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내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저자가 고른 영화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 <노팅힐>, <어바웃 타임>, <클로저>, <원스>, <카모메 식당>이고(어쩜 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일까!), 저자가 가본 나라와 도시는 포르투갈 리스본,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아일랜드 더블린, 핀란드 헬싱키 등이다. 


하도 오래전에 봐서 영화의 줄거리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영화의 배경이 된 나라와 도시에 가본 적이 없어서 공감이 안 될 것 같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물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장면, 감동을 느꼈을 만한 문장이 저자의 글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에, 저자의 글을 읽으면 영화 내용이 저절로 떠오르고 영화 속 장면이 생각날 것이다. 글과 사진만으로 도시의 풍경과 분위기를 모두 알기는 어렵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라면 저자가 아침을 먹고 거리를 걷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리 위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그 모든 과정을 따라가면서 마치 내가 그 도시를 여행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의 배경이 된 도시를 찾는 여행을 즐기기 때문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스크린 너머로 본 풍경 속을 직접 걷고 느끼는 저자가 얼마가 부러웠는지 모른다. 저자가 엄청 유명한 맛집에서 진수성찬을 먹은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좋은 숙소에서 대단한 체험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비포 선셋>에 나온 서점에 가고 <원스>에 나온 거리를 걷고 <카모메 식당>에 나온 식당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은 것뿐인데 나에게는 최상의 여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영화 취향을 가진 친구, 이런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 애인이라면 밤새도록 같이 있어도 질리지 않을 듯. 저자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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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4-3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책 제목도 좋아요!)
 
당신의 진짜 인생은
오시마 마스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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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를 좋아한다.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면 비현실적인, 단정하면서도 우아하고,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이 말도 안 되는 앙상블이 가능하도록 연출하는 감독의 솜씨에 매번 놀라고도 또 놀란다. 


오시마 마스미의 소설 <당신의 진짜 인생은>은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와 닮은 점이 많다. 어느 날 신인 작가 구니사키 마미는 베테랑 편집자 가가미에게 이런 제안을 받는다. "구니사키 너 말이야, 모리와키 홀리 선생이 그렇게 좋으면 제자가 돼보는 건 어때?" 모리와키 홀리는 베스트셀러 '비단 배' 시리즈의 작가이자 판타지 소설의 대가로, 구니사키는 홀리 씨를 흠모해 작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홀리 씨의 열성 팬이다. 구니사키는 잔뜩 들뜬 마음으로 홀리 씨의 대저택으로 가는데, 홀리 씨는 구니사키를 보고 자신의 소설에 나오는 고양이를 닮았다며 처칠(소설 속 고양이 이름)이라고 부르고, 홀리 씨의 비서인 우시로는 제자인 구니사키를 일꾼이나 하녀 취급하고, 이래저래 황당하고 실망스러운 일만 이어져 결국 구니사키는 제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구니사키가 우여곡절 끝에 홀리 씨 제자로 복귀해 작가 수업을 받고 유명 작가가 되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웬걸 상상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단련된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던 홀리 씨에게는 아무에게도 쉽게 내보이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있었고, 홀리 씨를 수행하는 비서인 줄로만 알았던 우시로에게는 그 어떤 사람도 감히 짐작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구니사키에게는 글쓰기 말고 또 다른 재능이 있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것은 바로 고로케 튀기기이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평범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 천천히 드러나는 것도, 이야기의 중심에 소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있는 것도, 종국에는 모두가 제 자리를 찾고 행복해지는 이야기라는 것까지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와 어쩜 이리 닮았을까. 덧붙이자면 제 캐스팅은 홀리 씨 역에 모타이 마사코, 우시로 역에 고바야시 사토미, 구니사키 역에 이치카와 미카코, 구니사키의 소중한 사람 역에 카세 료, 가가미 역에 미츠이시 켄입니다(영화화 기대해 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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