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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518/pimg_7796361641910386.jpg)
지인 A는 약간의 소음이나 악취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누가 무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무뚝뚝한 반응만 보여도 '내 탓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자책부터 한다. 남한테 들은 비난이나 꾸중을 쉽게 잊지 못하고 두고두고 괴로워한다. 그 때문일까. A는 항상 표정이 어둡고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다. 목과 어깨의 통증을 호소하고 두통약을 자주 먹는다. 군것질을 달고 살고 술기운 없이 잠드는 날이 거의 없다.
A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일본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이다. 이 책을 쓴 와타나베 준이치는 1970년 <빛과 그림자>로 나오키 상을 수상하고 1997년 <실낙원>으로 일본 역사상 최초로 300만 부 이상 팔리는 대기록을 세운 작가다. 저자는 작가인 동시에 삿포로 의과대학 출신의 정형외과 의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이 작가이자 의사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로 '둔감력'을 든다.
둔감력이란 '인생을 살면서 괴롭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일이나 관계에 실패해서 상심했을 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나아가는 그런 강한 힘'을 뜻한다. 불의나 부정을 보고도 눈 감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태도와는 구별된다. 둔감력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가 있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개의치 않고 밀고 나가는 자세다. 살다 보면 주변에서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더러 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앞길을 막거나 훼방을 놓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일일이 상처받고 예민하게 굴면 나만 손해이고 시간 낭비다. 그저 "네~,네"하고 가볍게 답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편이 훨씬 이익이다.
둔감력의 다른 이름은 적응 능력이다. 요즘처럼 사람들의 성, 민족, 국적, 종교, 사회, 문화, 경제적 배경이 다양한 시대에는 취향이나 습관, 생각이나 행동이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거나 혐오하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 둔감력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건강의 첫 번째 조건은 원활한 혈액 순환이다. 혈액 순환은 혈관과 신경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나빠진다. 심리적 긴장이나 흥분, 불안, 불쾌감, 분노, 미움, 추위 등은 인체의 교감 신경을 활성화시키고 혈관을 수축하고 혈액 순환을 어렵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건강을 해친다. 저자는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 자체는 좋은 습관이지만,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은 도리어 건강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위생에 신경 쓰는 것 또한 그 자체는 권장할 만한 습관이지만, 완벽하게 깨끗한 상태는 오히려 면역력이 낮고 질병에 취약하다.
둔감력을 기르는 첫걸음은 너그러운 부모에게 칭찬받으며 자라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면 실수하거나 실패해서 상사의 질책을 받는 일도 생깁니다. 그럴 때 절망에 빠져 낙담하기보다는 마음을 다잡고 새로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죠. (262-3쪽)
여성이 남성보다 예민하다는 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질투는 여자가 더 강하고 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일이나 승진에 있어 남성의 질투는 여성의 그것보다 훨씬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하지 않다. 신체적인 아픔이나 고통에 있어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예민하다. 의학서에는 전체 혈액의 3분의 1을 출혈하면 사망에 이른다고 나오지만, 저자는 혈액의 2분의 1을 출혈하고도 멀쩡하게 살아난 여성 환자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의학 실습 시간에도 많은 양의 피를 보고 빈혈을 일으키거나 기절하는 건 대부분 남성이다.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다가 기절하는 남편도 많다.
저자는 신체가 망가지고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는 출산을 여성이 담당한 것이 인류 존속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남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면 인류는 이토록 오랫동안 번성하고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류 존속의 비결이 여성에게 달려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회가 여전히 남성 중심인 건 왜일까. 남성이 여성의 희생에 둔감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성이 그동안 '덜 민감하게' 굴었기 때문일까. 둔감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둔감해야 할 때와 둔감해선 안 되는 때를 구분하는 눈을 갖춰야 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