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아서 할게요
박은지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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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조언을 구하거나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남의 삶에 훈계 두는 사람들 꼭 있다. 그러고선 자기도 멋쩍은지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정말 그럴까. 실은 자기 기분 풀려고 하는 소리, 남 걱정하는 척하면서 자기 잘난 척하는 소리가 아닐까. 


프리랜서 에디터 박은지의 산문집 <제가 알아서 할게요>는 저자가 그동안 살면서 겪은 수많은 간섭과 오지랖을 고발하고 단호히 'NO!'라고 외치며 거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가족, 친척, 친구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온갖 조언과 걱정을 들었다. 취업하기 어렵다는 국문과에 진학했을 때,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저자의 주변 사람들은 "네가 아직 현실을 모르는구나.",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아?"라는 비난 섞인 말을 들었다. 


저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했다. 국문과에 진학한 것도, 퇴사를 결심한 것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저자의 선택이고 저자의 인생이다. 당사자인 만큼 저자가 가장 많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저런 훈수 두기를 멈추지 않는다. 저자도 때로는 주변에서 던지는 무성의한 말에 속이 상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보내는 우려 섞인 조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남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 너 잘 되라는 소리라며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의 말에 마음 쓸 여유도 없다. 


저자는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죽이느니, 남들한테 비난 좀 받아도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로 정했다. 필요하다면 갈등을 피하지 않고, 남편은 물론 시부모와 친정 부모한테도 싫은 소리 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답답한 상황을 조목조목 따지는 과정에서 점점 더 단단해지는 저자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박수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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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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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을 만나기 전에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더 이상 필요 없고 자리만 차지할 뿐인 물건일지라도 오래전 친구가 준 선물이라서, 한동안 좋아했던 뮤지션의 음반이라서,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간직했다. 이제는 '버림'의 다른 말이 '놓음', '떠나보냄'이란 걸 안다.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 전보다 덜 애착을 가지게 된 물건을 억지로 가지고 있느니, 나 아닌 다른 주인에게 보내주는 편이 여러모로 더 좋다는 걸 알고 실천 중이다. 


림태주의 세 번째 산문집 <관계의 물리학>을 읽다가 저자와 나의 생각이 겹치는 글 한 편을 읽었다. 저자는 친구들과 물건을 잘 버리느냐 못 버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자는 '버림'과 '놓음'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물건을 잘 버리는 성격이 아닌 저자는 관계 역시 잘 버리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관계를 물건처럼 버릴 수 있는 걸까. 사람과 사람은 서로 닿을 수만 있을 뿐, 서로가 서로를 가지거나 소유할 순 없다. 가지거나 소유할 수 없으니 버릴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닿았던 사이는 놓거나 놓아보내줄 수 있을 뿐이다. 


닿음은 서로 간의 틈새가 일순간 사라진 접촉이다. 그렇게 닿아서 접촉면을 넓혀갈수록 우리는 따듯해지고 안온해진다. 놓음은 서로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분리다. 그렇게 놓아서 여백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홀가분해지고 안온해진다. 그러므로 닿음과 놓음에는 집착이나 절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지나간 것을 놓아야 다시 새롭게 닿을 수 있다. (28쪽)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립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우주의 별과 별 사이에 빗댄 시도가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럴듯한 아포리즘 일색이 아니고, 저자가 이제까지 살면서 겪은 일이나 일상 속에서 경험한 관계를 사례로 들어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었다. 


저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어야 하는 게 사랑'이라는 믿음은 갖다 버리라고 조언한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오래 지속하고 싶은 관계일수록 자신이 원하고 생각하는 바를 구체적이고 자세하고, 상대방이 알아들을 때까지 수시로 끈질기게 알려야 한다. 인연이 끝난 뒤에 '그때 이 말을 할 걸 그랬어!', '그때 사랑하는 마음을 더 표현할 걸 그랬어!'라고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인력(人力)으로 어쩔 수 없는 게 인연이라지만, 서로 적당히 끌어당기지 않으면 멀어지는 것 또한 인연이다. 소중한 인연, 멀어지기 전에 잘 당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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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상회 - 거짓말 파는 한국사회를 읽어드립니다
김민섭.김현호.고영 지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 블랙피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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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인기 소비재입니다.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와 이미지는 잘 팔려 나갑니다. 소비를 통해 체험하는 즉물적 만족감이 진실을 쉽게 압도하는 세태는 새삼스러울 게 없습니다." (5쪽) 


인터넷이나 SNS에 떠도는 글이나 사진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제일 먼저 인터넷 검색창부터 찾고, 하루 종일 틈날 때마다 인터넷과 SNS를 확인하고 화제가 된 글이나 사진을 주변 사람들에게 퍼나르는 건 왜일까. 


삶과 앎과 노동의 행복한 공생을 꿈꾸는 인문학협동조합의 신간 <거짓말 상회>에 따르면 오늘날 대중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고 듣고 먹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아니라 얼마나 그럴듯한지, 얼마나 보기 좋은 지이다. 거짓말은 예부터 대중이 선호하는 인기 소비재다.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와 이미지는 비록 거짓일지라도 잘 팔리고, 대중이 원하지 않는 이야기와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이 책은 2010년대 한국 사회의 특이성을 보여주는 세 가지 축으로 자기계발, 사진, 음식을 든다. 제1장 '자기계발의 거짓말'을 쓴 김민섭은 2010년대를 가리켜 '노오력'의 환상아 무너진 시대라고 평한다. 88만 원 세대, 3포 세대, 수저 계급론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오늘날 청년들이 자신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부가 부를 낳는 이 시대에 돈도 명예도 '빽'도 없는 청년들은 한때 기성세대가 건네는 '힐링' 메시지에 위로받았다가(혹은 속았다가) 현재는 분노 또는 혐오 담론에 빠져 있다. 이는 '노오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다고 약속했던 기성세대에게 속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를 타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2장 '사진의 거짓말'을 쓴 김현호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홍보와 선전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진을 이용하는지 설명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허리를 구부린 자신의 머리를 참모진의 아이가 쓰다듬는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 오바마의 소탈한 성격을 칭찬했지만, 이 사진을 '선택'하고 '공개'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이 사진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와 메시지가 개입된 '부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같은 사진도 찍은 자와 찍힌 자의 권력관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제3장 '음식의 거짓말'을 쓴 고영은 음식문화사를 전공한 학자의 의견보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신뢰하는 세태를 개탄한다.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불고기의 원조는 고구려의 맥적이고, 냉면은 겨울 음식이다. 하지만 음식문화사 전공인 저자에 따르면 고구려의 맥적은 네발짐승 통구이 요리로 불고기와 거리가 멀고, 냉면을 봄의 별미라고 쓴 기록이 있는가 하면, 가을이 제철이라고 쓴 기록도 있고, 여름에 즐겨 찾았다는 기록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상의 정보나 항간의 상식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일단 의심하고 철저히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 자세만이 거짓말 파는 한국 사회에서 속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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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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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A는 약간의 소음이나 악취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누가 무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무뚝뚝한 반응만 보여도 '내 탓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자책부터 한다. 남한테 들은 비난이나 꾸중을 쉽게 잊지 못하고 두고두고 괴로워한다. 그 때문일까. A는 항상 표정이 어둡고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다. 목과 어깨의 통증을 호소하고 두통약을 자주 먹는다. 군것질을 달고 살고 술기운 없이 잠드는 날이 거의 없다. 


A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일본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이다. 이 책을 쓴 와타나베 준이치는 1970년 <빛과 그림자>로 나오키 상을 수상하고 1997년 <실낙원>으로 일본 역사상 최초로 300만 부 이상 팔리는 대기록을 세운 작가다. 저자는 작가인 동시에 삿포로 의과대학 출신의 정형외과 의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이 작가이자 의사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로 '둔감력'을 든다. 


둔감력이란 '인생을 살면서 괴롭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일이나 관계에 실패해서 상심했을 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나아가는 그런 강한 힘'을 뜻한다. 불의나 부정을 보고도 눈 감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태도와는 구별된다. 둔감력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가 있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개의치 않고 밀고 나가는 자세다. 살다 보면 주변에서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더러 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앞길을 막거나 훼방을 놓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일일이 상처받고 예민하게 굴면 나만 손해이고 시간 낭비다. 그저 "네~,네"하고 가볍게 답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편이 훨씬 이익이다. 


둔감력의 다른 이름은 적응 능력이다. 요즘처럼 사람들의 성, 민족, 국적, 종교, 사회, 문화, 경제적 배경이 다양한 시대에는 취향이나 습관, 생각이나 행동이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거나 혐오하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 둔감력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건강의 첫 번째 조건은 원활한 혈액 순환이다. 혈액 순환은 혈관과 신경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나빠진다. 심리적 긴장이나 흥분, 불안, 불쾌감, 분노, 미움, 추위 등은 인체의 교감 신경을 활성화시키고 혈관을 수축하고 혈액 순환을 어렵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건강을 해친다. 저자는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 자체는 좋은 습관이지만,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은 도리어 건강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위생에 신경 쓰는 것 또한 그 자체는 권장할 만한 습관이지만, 완벽하게 깨끗한 상태는 오히려 면역력이 낮고 질병에 취약하다. 


둔감력을 기르는 첫걸음은 너그러운 부모에게 칭찬받으며 자라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면 실수하거나 실패해서 상사의 질책을 받는 일도 생깁니다. 그럴 때 절망에 빠져 낙담하기보다는 마음을 다잡고 새로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죠. (262-3쪽) 


여성이 남성보다 예민하다는 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질투는 여자가 더 강하고 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일이나 승진에 있어 남성의 질투는 여성의 그것보다 훨씬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하지 않다. 신체적인 아픔이나 고통에 있어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예민하다. 의학서에는 전체 혈액의 3분의 1을 출혈하면 사망에 이른다고 나오지만, 저자는 혈액의 2분의 1을 출혈하고도 멀쩡하게 살아난 여성 환자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의학 실습 시간에도 많은 양의 피를 보고 빈혈을 일으키거나 기절하는 건 대부분 남성이다.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다가 기절하는 남편도 많다. 


저자는 신체가 망가지고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는 출산을 여성이 담당한 것이 인류 존속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남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면 인류는 이토록 오랫동안 번성하고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류 존속의 비결이 여성에게 달려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회가 여전히 남성 중심인 건 왜일까. 남성이 여성의 희생에 둔감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성이 그동안 '덜 민감하게' 굴었기 때문일까. 둔감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둔감해야 할 때와 둔감해선 안 되는 때를 구분하는 눈을 갖춰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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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나라의 소녀 4
나가베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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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나라의 소녀>는 사람과 사람 아닌 자의 교류를 그린 독특한 감성의 동화 같은 만화다. 이야기는 인간이 사는 '안쪽 나라'와 닿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이형의 존재들이 사는 '바깥 나라'로 갈라진 세계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시바는 저주받은 모습이 아닌데도 어떤 연유로 바깥 나라에서 살고 있는 소녀다. 시바를 보호하는 건 저주를 받은 이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자이다.


최근 출간된 4권은 선생님이 시바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늦은 저녁 선생님의 집을 찾아온 한 아주머니는 오래전 바깥 나라의 숲속에 버려져 있는 아기를 주운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아주머니는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 정성껏 길렀는데 얼마 후 저주에 걸려 이형의 존재가 되었다. 알고 보니 아기는 저주에 걸려 있고, 저주 때문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아주머니는 시바가 걸린 저주의 가장 무서운 점은 다른 사람을 이형의 존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선생님은 시바를 사랑하기에 시바와 헤어지고 싶지 않고 시바를 죽인다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한편 아주머니는 시바를 저주한 게 선생님이라고 의심하고, 시바에게 이 집을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시바와 선생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결말이 다소 오싹하면서도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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