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 - 멍때림이 만드는 위대한 변화
마누시 조모로디 지음, 김유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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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발견한 것은 내가 깨어있는 시간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백의 시간이 단 한순간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의 공범은 휴대폰이었다." (11쪽)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의 저자 마누시 조모로디는 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국의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다. 저자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했다. 7일 동안 디지털 기기로부터 언플러그하고 지루함을 즐기면서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저자를 포함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90퍼센트가 실험 참가 기간 동안 평소와 달리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밀린 원고를 완성했고, 기업인들은 회사의 오랜 문제를 해결했으며, 교사들은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은 실험 참가자들이 7일 동안 무엇을 시도했고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 자세히 나온다. 실험의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디지털 사용 습관을 관찰하는 것이다. 저자는 휴대폰을 하루 평균 약 100번 열었고, 대화를 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데 약 70분을 소비했다. 저자는 관찰을 통해 만약 자신에게 휴대폰이 없었다면 그만큼의 시간을 다른 창조적인 활동에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험의 두 번째 단계는 이동할 때 기기를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다. 휴대폰이 보급되기 전에는 출퇴근을 하거나 등하교를 할 때 차 안에서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다. 참가자들은 출퇴근을 하거나 등하교를 할 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예전처럼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 결과 집중력이 훨씬 높아졌고 이동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실험의 세 번째 단계는 하루 동안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휴대폰으로 찍는 사진의 양은 매달 100억 장에 달한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바네사 장 헤럴드는 자동차가 눈 덮인 배수로에 처박히는 사고가 났을 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멋진 글을 한 편 썼다. 


실험의 네 번째 단계는 앱을 삭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평소에 심심풀이로 하던 게임 앱을 삭제했다. 샌드라라는 참가자는 인스타그램을, 아론이라는 참가자는 트위터를 삭제했다. 약간의 금단증상을 겪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었다. 앱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일이나 취미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페이크케이션(fakecation, 사무실에 있으되 연결되지 않은 상태)을 떠나라, 다른 것들을 관찰하라, 지루함과 기발함에 도전하라 등 나머지 3단계에 관한 설명과 참가자들의 도전 사례가 나온다. 디지털 기술이 집중력 저하에 미치는 영향,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우월한 이유 등도 다룬다. 디지털 중독, 스마트폰 중독, SNS 중독을 걱정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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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5-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구매욕이 당깁니다 <포즈>느낌도 나네요
 
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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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 단편만 좋은 줄 알았는데 장편은 더더욱 좋네요. 다른 작품들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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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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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 작가다. 줌파 라히리는 자신의 출신 배경과 성장 과정을 작품에 적극 반영한다. 줌파 라히리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도계 미국 유학생 또는 이민자는 아마도 그의 부모가 모델일 것이다. 그들이 낳은 자식이 이민자 2세로서 혼란과 차별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은 아마도 줌파 라히리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리라. 한때는 줌파 라히리의 작품에 인도계 미국 유학생, 이민자, 이민자 2세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지겹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얼마 전 줌파 라히리의 장편소설 <저지대>를 읽고 그런 생각을 싹 잊었다. 줌파 라히리의 작품을 모두 읽어본 건 아니지만, 어쩌면 줌파 라히리가 여전히 하지 않은(또는 못한)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읽어보고 싶다, 아니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수바시와 우다얀은 15개월 터울의 형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념 대립이 본격화되던 194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지원을 듬뿍 받으며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동생 우다얀이 독재 정부에 항거하는 반정부 운동에 가담하면서 발생한다. 수바시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을 얻고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반면 우다얀은 지금 당장 고생하더라도 사회의 변혁을 이루어 못 사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수바시는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우다얀은 취업을 하지 않은 채 정치 운동에 힘을 쏟으며 형제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의 전후 문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경제적 안정이 우선이라고 믿는 형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동생(또는 그 반대)의 갈등은 한국 소설에도 자주 나왔던 설정이다. 


<저지대>의 장점은 이야기의 무대가 미국으로 옮겨가면서부터 드러난다. 우다얀이 짧은 생을 마치자 수바시는 우다얀의 아내 가우리를 미국으로 데려와 살게 한다. 가우리는 수바시의 배려를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한다. 수바시가 아버지인 줄 아는, 우다얀과 가우리의 딸 벨라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이 항상 허전한 이유를 궁금해한다. 작가는 이들 각각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한 인간의 존재 또는 부재가 남기는 여파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수바시와 가우리는 우다얀의 존재 또는 부재를 행운으로 여겨야 할지 불행으로 여겨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수바시에게 우다얀은 둘도 없는 형제이자 친구 이상의 가까운 존재였지만, 수바시의 삶에 평생 그림자를 드리운(혹은 수바시 자신을 그림자로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가우리에게 우다얀은 그녀 인생 최고의 사랑이었지만, 우다얀이 여전히 살아 있었으면 우다얀의 친가에서 우다얀의 부모를 봉양하며 인습에 따르다 늙어 죽었을지 모른다. 벨라는 우다얀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우다얀의 부재를 느끼며 자란다. 우다얀이 살아 있었다면 벨라의 삶은 더 행복했을까, 아니면 더 불행했을까. 아무리 가늠해 보아도 답은 알 수 없다. 이것이 저것의 원인이고, 저것이 이것의 원인이라고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한 인생의 본질을 담담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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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5-2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저지대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라서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해요.

키치 2018-05-22 16: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주인공 형제가 자라는 곳 근처에 저지대가 있고, 저지대가 두 형제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장소로 여러 번 등장합니다. 작가는 세상의 온갖 것이 흘러 들어와 고이는 곳,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곳으로서 저지대라는 장소를 등장시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읽어본다
남궁인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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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망설인 이유는 책 전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떤 한 대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대목은 위화의 소설집 <4월 3일 사건>에 나오는 한 장면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아가씨, 한가하게 노느니 이거라도 버는 게 안 낫겠소?" 

"흥! 그걸 썩히는 한이 있어도 한 푼도 적게는 안 돼요." 여인이 말했다. 

쑨시는 발을 동동 굴렀다. "좋소. 나도 값을 깎아달라고는 않겠소. 반만 넣지. 반값이니 반만 넣으면 공정하지 않겠소." 

여인은 생각해보더니 옳게 여겼는지 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바지를 벗고 침대에 누워 두 다리를 벌렸다. (중략) 

"이봐요, 이봐, 반만 넣기로 했잖아." 

쑨시가 낄낄거리며 대꾸했다. "내가 말한 반은 뒷부분 반이요." 

(173~4쪽) 


저자는 이 장면을 소개하면서 이런 문장을 썼다. "위화의 소설을 읽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중국식 위트 때문인데, 마지막으로 한 단락 인용해본다." 저자는 이 장면을 읽고 독자가 웃기를 기대했을 텐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장면이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벌기 위해 다리를 벌려야 하는 여자. 그 돈마저도 절반밖에 못 준다고 떼쓰는 남자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여자. 못된 남자한테 사기를 당하고 비웃음까지 당한 여자. 이런 여자를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한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이런 장면을 '중국식 위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게는 참 멀게 느껴졌다. 


이런 경우는 사실 이 책 말고도 다른 여러 책, 만화, 영화, 드라마 등등을 볼 때 자주 마주친다. 그때마다 매번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아니고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일반 작가가 아니라 의사라는 점 때문에 마음에 더 걸렸다(일반인보다 더 예민하고 약자의 입장에 공감해야 하는 게 의사 아닌가).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이 전부 좋았으면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요조의 책이나 한 번 더 읽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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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동물학교 1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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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은 없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건 반려동물의 삶(과 죽음)을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다. 나는 과연 반려동물에게 좋은 반려인이 될 수 있을까. 나 하나 좋자고, 내 욕심 채우자고 반려동물에게 심한 요구를 하게 되진 않을까. 그러다 반려동물이 내 곁을 떠나가거나 무지개다리라도 건너면 그 죄책감과 상실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사라진다. 


<환생동물학교>는 인기 만화 <고양이 낸시>를 그린 재미 작가 엘렌 심의 신작이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만화를 단행본으로 엮었다. 무대는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남아 있는 동물의 습성을 버리고 인간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환생동물학교'다. 이 학교에 부임한 초보 선생님은 이른바 '문제아 반'으로 불리는 AH-27반을 맡고 자신감에 차 있다. 반 아이들이 신발 뜯기, 발로 긁기, 물기 등등 인간이 하지 않을 행동을 할 때마다 가르치고 타일러서 인간으로 만들면 그만인 줄 안다. 


하지만 반 아이들이 유난히 진도가 느리고 수업 내용에 집중을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초보 선생님은 동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옳은지 회의에 빠진다. 어떤 아이는 동물일 때 주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추억 때문에 동물로 남고 싶어 한다. 어떤 아이는 동물일 때 주인에게 학대를 당한 줄 모르고 그걸 사랑이라고 여긴다. 인간이 과연 동물보다 나은가.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축복인가 고통인가 하는 의문도 가진다.


언뜻 보기에는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학교에 다니는 동물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이지만, 사랑의 실체와 사랑에 따르는 책임을 묻는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로서는 사랑해서 하는 행동이 상대에게도 사랑으로 받아들여질까. 반대로 나에게는 사랑으로 보이는 행동이 상대에게도 사랑 때문에 하는 행동일까. 이 같은 질문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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