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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 1
히라오 아우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6월
평점 :
과거에는 아이돌을 좋아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음반을 구입하거나, TV 프로그램을 녹화하거나, 화보나 기사가 실린 잡지를 스크랩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처럼 아이돌 콘서트가 많지도 않았고, 사인회나 악수회 등 아이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드물었으며, 공개방송이나 공항에 따라다니는 건 학업 또는 생업을 포기한 열성팬이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지금은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똑같은 음반을 열 장, 스무 장씩 구입하고, 음원 순위를 올리기 위해 하루 종일 스트리밍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음원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TV뿐 아니라 인터넷, 모바일 방송도 빠짐없이 챙겨 보며, 아이돌이 직접 운영하는 SNS를 구독하고, 해외 방송까지 섭렵한다. 콘서트 참가는 기본이고, 크고 작은 공연이며 촬영, 행사, 공항 입출국을 모두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사진과 일화를 실시간으로 중계해야 '팬질 좀 한다' 소리 듣는다.
팬질 좀 해본 사람은 물론이요, 누군가의 팬이거나 팬이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한 공감할 만한 만화가 나왔다. 제목은 <최애가 부도칸에 간다면 난 죽어도 좋아>. 히라오 아우리의 최신작으로, 일본 오카야마 현에서 활동하는 마이너 지하 아이돌 'ChamJam'에서도 비인기 멤버인 '마이나'를 좋아하는 열혈팬 '에리피요'의 이야기를 그린다.
에리피요가 팬질하는 모습은 한국의 여느 아이돌 팬 못지않다. 마이나의 악수회 티켓을 얻기 위해 음반을 수십 장씩 사는 것은 기본이요, 공연 때마다 온갖 수를 써서 맨 앞줄을 사수한다. 행사가 있을 때면 누구보다 빨리 입장하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다 다른 지역에서 공연이 있을 때는 비싼 교통비와 숙박 요금을 감수하며 원정을 감행한다. 남자친구는 당연히 없음. 직업은 있지만 수입은 마이나에게 다 바치기 때문에 늘 빈털터리 신세이고, 가진 옷을 다 팔아치웠기 때문에 고교 시절에 입었던 체육복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에리피요의 꿈은 마이나의 호감을 사는 것도 아니고, 마이나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에리피요는 오카야마 현의 마이너 지하 아이돌인 마이나가 그룹 내에서 센터가 되고, 언젠가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존재가 되어 일본 대중문화의 성지인 부도칸에서 화려하게 공연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자 목표다. 자신의 최애인 마이나가 전 국민의 최애가 될 수 있다면 자신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당사자인 마이나조차 에리피요를 외면한다는 것(ㅋㅋ). 에리피요는 자신의 못난 행색을 마이나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지나친 열정을 마이나가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면서도 마이나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이나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대체 마이나는 왜 에리피요를 외면하는 걸까. 에리피요는 언제쯤 마이나의 진심을 알게 될까. 아이돌 팬 문화 고발로 시작해 아이돌과 팬 사이의 백합향 물씬 풍기는 사랑 이야기로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를 돋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