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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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 참 잘 쓴다. 소설도 좋아하지만 에세이도 정말 좋다. 저자가 그랬듯 나도 평생 대도시의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동네의 생활을 잘 모르는데, 역에서 집까지 가기 위해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고, 겨울에 눈이 오면 빙판길이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눈을 쓸어줘야 한다는 게 힘들 것 같기는 하지만, 사계절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고 다정한 이웃들도 만날 수 있는 점은 좋아 보였다. 


이 책의 1부가 저자가 사는 '언덕 위의 집'에 관한 이야기라면, 2부는 저자의 반려견 '봉봉'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기일 때부터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생명의 일생을 전부 지켜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봉봉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봉봉을 그리워하고, 다른 생명을 대할 때에도 봉봉을 떠올리며 부러 더 다정하게 군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서로 참 많이 사랑하고 사랑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부에는 봉봉이 떠난 후 저자의 일상과 저자가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데버라 리비의 산문집 <살림 비용>에 실린 백수린 작가의 후기가 이 책에도 실려 있는데, 이 글도 참 좋다. 여자 혼자 일하고 요리하고 동물을 돌보며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이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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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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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책을 그동안 열심히 따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리뷰 쓴 책만 세어보니 단 세 권(<맨해튼의 반딧불이>, <디어 랄프 로렌>, <사라진 숲의 아이들>)뿐이라서 놀랐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작은 동네>는 책장에 꽂혀 있을 뿐 아직 안 읽었고,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은 읽은 것 같은데 안 읽었나...? 


아무튼 그동안 읽은 손보미 작가의 작품들을 쭉 떠올려 보니,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해튼의 반딧불이>, <디어 랄프 로렌>, <사라진 숲의 아이들>만 봐도, 세 작품 모두 장르나 소재는 제각각인데, <맨해튼>과 <랄프 로렌>은 영미 소설 같다는 점이 닮았고, <랄프 로렌>과 <사라진 숲>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 이야기라는 점이 닮았다(셋 다 탐정 소설, 추리 소설 형식의 요소를 가진 점도 눈에 띈다). 


위에 언급한 세 작품에 비하면, 올해 출간된 손보미 작가의 소설집 <사랑의 꿈>은 장르소설의 느낌이 덜하고 (이른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들이 주로 실려 있다. 중심 인물은 모두 십대 이하의 여자 아이이고, 그 자신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가족(주로 부모)의 불안 또는 부재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인물 설정만 보고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모순과 부정을 고발하거나, 아이 자신의 성장 과정을 묘사하는 이야기를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리, 이 소설집에 나오는 여자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대나 지시와 어긋나는 행동을 주로 하고, 그러한 행동의 결과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배신을 합리화하고(<밤이 지나면>), 거짓말을 재능으로 여기며(<불장난>), 어린 여자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기도 한다(<해변의 피크닉>). 자신을 부양하는 엄마보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보모 언니를 동경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이사>). 


아마도 이 여자아이들은 자라서 엄청난 악녀가 되지는 않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가 될 텐데, 이들이 숨기고 있는 잔혹성은 자신의 차로 친 고양이를 산 채로 땅에 묻을 때처럼(<사랑의 꿈>) 이따금 삐져나와 그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아니면 자기보다 잘 사는 친구를 질투하거나 자식 교육 경쟁을 하는 식으로(<첫사랑>) 발현될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집은 여성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기원을 탐구하는 이야기들로도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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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스미스
이시다 가호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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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운동하는 여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물론 예전에도 많은 여성들이 운동을 해왔지만, 예전과 달리 요즘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운동'이라고 여겨졌던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축구, 야구, 농구 등의 구기종목에도 많은 여자들이 도전하고 있다. 이시다 가호의 소설 <나의 친구, 스미스>의 주인공 U노도 그런 여자들 중 하나다. 


스물아홉 살, 7년 차 회사원 U노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지 1년 3개월 된 새내기 트레이니다. 어느 날 U노는 현역 보디빌더 선수 O시마에게 보디빌딩 대회 출전 권유를 받고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한다. 전문 트레이너의 지도 하에 매일 성실하게 주어진 종목들을 수행하고, 식단 조절과 체중 감량을 병행한다. 여기까지는 U노가 그동안 해온 운동과 강도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하고, U노가 예상한 보디빌딩 대회 준비 과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대회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U노는 남성 참가자들과 달리 여성 참가자들에게는 근육 외의 수많은 심사 항목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제모와 태닝, 워킹 연습, 의상 구입, 포징 연습까지는 대회 성격상 필요한 준비로 보인다. 하지만 여자는 보디빌딩을 해도 '여자다워야 한다'는 편견 때문에, 대회의 본질인 근육 키우기가 아닌 헤어와 메이크업 등에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상황에, 소설 속 U노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난 화장을 하지 않지. 옷장에 치마가 없지. 머리를 기르지 않지. 애교가 없지. 하지만 그런 것들 없이도 난 충분히 여자야. 명백한 여성이야. 그 누구보다도.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이렇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이런 인간인 탓에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싫어질 위기에 처했다. 사실은 좋아하는데, 그 트레이닝의 성과를 널리 알리는 대회를 생각하면 이제는 열정이 식어버린다. 도무지 해탈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네." (135쪽) 


운동 외에도 '00은 좋아하지만 00하는 여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00을 마음 편히 좋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다양한데, 이 소설은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도 가르쳐 준다. 그 방법은 자신이 처음 00을 좋아하게 된 이유, 00에 빠지게 된 최초의 계기를 떠올리는 것이다. U노의 경우, 그것은 스미스(운동 기구 이름)였고, 스미스와 재회하고 나서야 U노는 비로소 자신이 원래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자기 고양감, 만족감을 되찾는다. 이런 운동이라면 나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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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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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밤잠을 설친 이유. 마르틴 베크 시리즈 9권 <경찰 살해자>를 마침내 다 읽었고, 시리즈 1권을 읽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10권만 읽으면 끝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마침 <경찰 살해자>에 오늘날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있게 한 전설적인 그 작품, 시리즈 1권 <로재나>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와서, 10권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로재나>를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재밌는 시리즈를 아직 안 읽은 분들 부럽다...) 


<경찰 살해자>는 스웨덴 남부의 시골 마을에서 한 여자가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스톡홀름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 책임자 마르틴 베크와 렌나르트 콜베리가 사건 해결을 위해 현장에 급파되고, 두 사람은 유력한 용의자가 과거 그들이 체포한 '로재나 사건'의 범인임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경찰은 이미 여성을 살해한 전과가 있는 데다가 실종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 용의자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이쯤에서 사건을 정리하고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베크와 콜베리는 굴하지 않고 사건 해결에 매달리는데...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장점은 중심이 되는 사건 자체가 흥미로운 건 당연하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 중간중간에 스웨덴 경찰 조직의 부패와 무능, 일부 경찰의 태만 또는 과잉 대응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경찰 살해자>에서도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구보다 신속하고 적법하게 사건을 해결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게으르게 수사하고 불법, 폭력 등을 자행하는 모습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주체가 (그들과 마찬가지로 경찰인) 베크와 콜베리라는 점이 웃프다. 


이 시리즈는 1970년대에 발표되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도 유효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경찰 살해자>의 한 대목- "교외의 멋진 집에서 살며 차고에 할부로 산 차를 넣어놓고 매일 죽도록 지루해하며 컬러 TV를 보고 앉은 부모는 그저 딱할 뿐이었다. 그들은 돈 생각, 그리고 아들이 어쩌다 이렇게 엇나가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중략) 부모는 자신들부터가 완고한 물질주의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은 듯했다. 그리고 아들 세대의 많은 젊은이가 원치 않은 실업으로 고통받는다는 점, 뭐든 삶의 희망이나 의미가 될 만한 것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을 모르는 듯했다" (428-9쪽) -은 오늘날 한국 사회 아닌지. 


북유럽 스릴러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한국에 사는 나에게는 낯선 북유럽의 자연 환경과 문화, 풍습 등을 알 수 있다는 것인데, <경찰 살해자>에서는 인물들이 하이킹이나 꿩 사냥, 오리엔티어링 같은 야외 활동을 즐겨 하고, 근교의 숲은 물론이고 자신의 집 정원에 핀 버섯도 채취해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자동차와 선박에 비상한 관심을 가진 인물들이 여러 명 등장하는 점도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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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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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 지역 안에도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와 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나뉘고, 같은 학교 안에서도 잘 사는 집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집 아이들이 갈린다. <최선의 삶>의 강이는 아직 중학생이지만 세상이 이렇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강이가 사는 읍내동이 새로 생긴 전민동보다 경제적으로 덜 부유한 사람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읍내동에선 강이네 집이 부유한 축에 속했고, 그렇기 때문에 강이가 위축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강이의 부모가 전민동에 있는 명문 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하면서 강이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강이를,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상태인 동급생 소영과 아람이 알아본다. 이들은 방과 후에 종종 어울려 놀다가, 급기야 제대로 짐을 싸고 돈까지 모아서 가출을 감행한다. 집 밖으로 나가면 부잣집, 가난한 집 꼬리표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대한민국에서 부모라는 방패막조차 없는 아이들이 가게 되는 곳은 뻔하다. 결국 집과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과 실패의 책임을 서로에게 지우며 대립한다. 


강이와 소영, 아람이 가출을 하고 몸을 팔고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만 보면, 이 소설은 이른바 불량 청소년들의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선택과 행태를 묘사하는 내용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이제 겨우 중학생이라는 사실과, 부모와 학교의 감독과 통제를 당하는 입장임을 감안하면, 결국 이들의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선택과 행태는 이들을 감독하고 통제하는 어른들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삶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가출을 했다면 그것은 정말 선택일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가족과 직장, 사회 시스템의 규율을 따라야 하는 우리는 과연 '최선의 삶'을 살고 있을까. 모든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약자,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약자, 소수자를 무시하거나 차별하며 사는 것은 (강이와 소영, 아람처럼) 최선을 바라다 차선조차 되지 못하고 최악에 다다랐던 경험 때문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차선의 삶 혹은 차악의 삶뿐일까. 소설 내용을 자꾸만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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