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 옮김 / 부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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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1953년 뉴욕에서 태어나 1974년에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MIT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83년 레이건 행정부 당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일한 바 있고, 1991년에는 노벨경제학상보다 수상하기 어렵다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했으며, 2008년에는 노벨경제학상을 단독수상하면서 학자로서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대중적인 활동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학자로도 유명하다. 학계 내에서만 활동하면서 집필이라고는 논문과 교과서 정도밖에 쓰지 않는 학자들도 많지만, 크루그먼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잡지에 고정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수십여 권의 대중서를 집필했다. 이러한 노력과 열정이 그를 세계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리게끔 하는 것 같다.


국내에 소개된 다수의 저서들 중에서도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를 읽었다. 이 책은 대학시절 경제학과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부교재로 사용하신 바 있는 책이라서 사실상 이번이 두번째로 읽는 셈이었다. 그 때는 책 내용을 전부 이해하기는커녕 크루그먼이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조차도 몰랐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크루그먼이 90년대 중후반에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기고한 칼럼들을 모아서 엮은 이 책은 칼럼답게 어려운 수식이나 이론은 배제하고 그 때 당시의 경제적 이슈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논설하는 글이 대부분이라서 읽기에 수월하다. 크루그먼은 "경제학에 관하여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글이 더 많아야 한다"고 자주 언급한 바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크루그먼만큼 쉽고 흥미롭게, 대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만한 글을 쓰는 경제학자는 없는 것 같아서 아쉽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90년대 중후반 당시 미국 경제를 배경으로 쓰인 책이라서 지금의 국제경제와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90년대 중반은 탈냉전 이후 단극체제의 패권국이 된 미국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운영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고, 일본은 버블이 붕괴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의 초입에 들어서던 상태였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 결성을 논의하는 단계에 불과했고, 중국의 성장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국제무역은 이제 막 WTO가 출범한 상태로 자유무역에 대한 합의 자체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제금융 역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금융시장을 개방한 나라가 지금만큼 많지 않았다.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책에 나온 논의들을 당장 현실 경제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크루그먼이 설명하고 예측한 것들 중 어느 것이 맞고 틀렸는지 생각해보면서 읽으니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약 십년, 이십년 사이에 국제경제가 확 바뀌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중국의 성장과 일본의 침체 등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사실이 되고 현실이 되다니...... 앞으로 국제경제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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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질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 - 선대인연구소가 대한민국 오천만에게 답하다 선대인연구 1
선대인경제연구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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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체감하게 되는 변화 중 하나는 사람들과 경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재테크 방법이나 투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물가나 공공요금 인상, 경제 정책까지, 학생 때는 화제로 다루지 않았던 경제 이야기를 할 때 문득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듣고 책이나 신문, 뉴스를 통해 보충해도 부족한 부분은 늘 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신간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는 2012년 7월에 출범한 경제 전문 연구소로, 선대인의 시사경제 해설, 정남수의 자산시장 해설, 특집이슈리포트 등을 제공하며, 최근에는 선대인 소장이 경제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의 패널로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문성은 물론 정확한 전망과 사심 없는 분석으로, 국내 연구소로는 드물게 수천 명의 연간회원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번 신간은 선대인경제연구소가 강연, 연구소 게시판, 트위터 등에서 일반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들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어느 부동산에 투자하면 좋겠느냐, 재테크 방법은 무엇이 좋으냐 하는 개인적인 고민부터 국내 대기업의 향후라든지 신 정부의 정책 같은 굵직한 질문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바로 책 제목대로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이라는 것.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올해의 경제 이슈들은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크게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장 '왜 그럴까'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88만원 세대, 물가 인상, 공공요금 인상 등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경제 문제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0대 청년 실업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부동산 버블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버블과 청년 실업이 무슨 상관일까, 언뜻 생각하기엔 이해가 안 되지만 책을 읽고보니 저자의 설명에 수긍이 갔다. 둘째 장 '할까, 말까'에는 부동산, 주식, 보험 등 개인의 자산 관리, 투자에 관한 설명 내지는 조언이 담겨 있다. 무엇을 사라, 어디에 투자하라는 식의 구체적인 조언은 없지만, 현재 한국의 자산시장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셋째 장 '진짜일까'부터는 보다 거시적인 이슈들이 등장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제효과부터 한미 FTA, 글로벌 무역, 환율 문제 등 굵직한 이슈들이 나오는데, 평소 신문이나 책에서 이러한 이슈를 접할 때마다 궁금했던 부분들이 해소되었다. 막연하게 장밋빛 전망을 내놓지 않고 보수적으로 분석한 점도 좋았다. 마지막장 '어떻게 될까'에는 신 정부 출범 이후 복지 정책은 어떻게 될지, 환율은 어떨지, 금융위기 가능성은 없는지 등등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시사 경제 이슈에 대해 보다 잘 알고 싶은 사람, 경제학 지식과 시사 이슈를 연결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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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 - 융합과 혁신으로 미래를 디자인하는 MIT미디어랩 이야기
프랭크 모스 지음, 박미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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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재 세계 최고의 기술연구소라고 하면 단연 미국 MIT 미디어랩을 들 수 있다. 미디어랩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그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름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성과를 냈는지 등은 알지 못했는데, 신간 <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을 읽으면서 MIT 미디어랩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MIT 미디어랩 제3대 소장을 역임한 프랭크 모스가 직접 썼다. 저자는 컴퓨터 업계에서 이십여 년을 일하다가 헤드헌터의 제안을 받고 2006년 MIT 미디어랩의 소장으로 취임했다. MIT 미디어랩은 1985년 미디어 석학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와 전 MIT 학장 제롬 위즈너가 분과 학문의 벽을 타파하고 다가오는 디지털 혁명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한 세계 최고의 미디어융합 기술연구소다. 창립 30주년을 앞둔 현재 1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과 단체들의 지원금을 받고 있으며 30여 명의 교수진과 140여 명의 연구생들이 3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산학협력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는 MIT 미디어랩의 성공 요인으로 미디어랩 특유의 다학제적(interdisciplinary) 면모를 든다. "여기서는 컴퓨터 과학자가 디자인과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음악가가 뇌과학을 연구하며, 예술가가 전기공학과 로봇 조립에 능통해지고, 몽상가와 사상가가 실천가와 발명가가 된다. (중략) 이곳에서 그들은 전통적인 학문의 경계를 두려움 없이 넘나들면서 놀랍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낡은 문제를 재구성할 수 있다." (pp.27-8) 학문을 경계를 나누고 구분짓던 근대적 패러다임을 극복한 것이 미디어랩의 성공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학문의 경계와 구분을 타파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낳았다. 각 학문의 장단점이 다학제적 연구를 통해 상쇄되고 보완되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낳은 것이다. "컴퓨터 과학만 공부한 사람은 인간 행동에 대한 넘쳐 나는 정보를 분석하는 일에는 흥미를 느끼겠지만, 그 정보를 가지고 뭘 할지에 대해선 특별히 관심이 없을 수도 있어요. 반면 경영을 전공한 사람은 조직을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배경은 많이 갖고 있지만, 인간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법에는 능숙하지 않아요. 그들을 한데 모아 문제 해결을 시도해 보면 정말 흥미로워지죠. 그들이 그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p.71)


사실 학제간 연구는 미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아니다. 국내에도 많은 대학과 기업들이 MIT 미디어랩을 본따서 유사한 형태와 목적의 미디어랩 또는 기술연구소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직 MIT 미디어랩만큼의 명성과 성과를 자랑하는 곳은 없다. 학제간 연구라는 말 자체도 일반화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그 이유를 미디어랩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문화와 교육제도의 측면에서 찾는다. 미국과 우리나라 모두 미디어랩이 산학협력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미디어랩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서 상용화하여 제품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미국은 창업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신규창업자에 대한 지원 기반이 탄탄하여 굳이 기업과 연계하지 않아도 기술개발을 할 유인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창업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기술개발을 하는 목적과 유인이 기업에 종속되는 경향이 높다. 교육제도의 측면에서 보자면, 미국은 학과 구분이 많지 않고, 학과 이동의 장벽이 높지 않으며, 기초 소양 교육이 탄탄하여 학제간 연구를 하기가 쉽다. 반면 우리나라는 학과 구분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고, 학과 이동에 따르는 비용이 높으며, 기초 소양 교육이 탄탄하지 않아서 학제간 연구를 하기가 어렵다.


미디어랩을 비롯하여 비슷한 목적의 기술연구소 지원 사업은 학계뿐 아니라 산업 및 경제,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이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기업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기업은 기업대로 저비용으로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업을 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보통 사람들도 정말 대단한 일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인 건강과 부와 행복 또한 자기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그들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라는 MIT 미디어랩의 사명이 국내 미디어랩에도 적용되기까지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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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 손정의의 '자기가 원하는 인생' 특강
소프트뱅크 신규채용 라이브 편찬위원회 엮음, 정은영 옮김 / 마리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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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인 하면 파나소닉의 마츠시타 고노스케 회장의 책이 국내에 자주 출간되었는데, 최근에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책이 눈에 띈다. 일본 기업 순위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의 총수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재일교포 출신으로서 숱한 난관을 이겨내고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가로 성공했다는 점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신간 <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은 '소프트뱅크 신규채용 라이브'에서 손정의 회장이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소프트뱅크 신규채용 라이브'는 소프트뱅크 그룹이 매년 신규채용을 위해 유스트림에서 생중계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대기업이 자사의 신입 사원을 선발하기 위해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기업의 총수가 직접 방송에 출연을 해 강연을 한다는 사실도 신선하다. '역시 손정의다!' 라는 생각이 든다.


손정의 회장은 어린 시절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읽고 사카모토 료마의 열정과 도전에 큰 감명을 받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감명을 받는 정도에 그쳤겠지만, 그는 료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열여섯 살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 꿈은 얼마후 컴퓨터와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몇십 년 후에는 일본을 넘어 전세계 수억명의 생활을 편리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로 결실을 맺었다. 젊은 시절에 큰 꿈을 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러분도 일자리 찾는 것에 급급해하지 말고 인생 전반에 걸쳐 무엇을 추구할지 머리가 터질 정도로 깊이 생각해서 '오를 산'을 결정해보라. 이것은 자신의 인생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p.17)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청년 기업가가 성공하기에는 척박한 환경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손정의 회장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 환경도 중요하지만, 환경이 주는 장애를 뛰어넘는 개인의 노력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손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 하루 5분을 투자해 1년 동안 250개의 발명을 해서 몇 십억 원 단위의 특허료를 벌었고, 간경화로 투병할 때에도 쉬지 않고 자기계발에 힘썼다. 누구나 그렇게 워커홀릭으로 살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 대의를 품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는 자라면 그만한 노력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10대 무렵, 어떤 사업을 시작할지 결정했다. 그것이 현재의 소프트뱅크 그룹이다. 내가 어떤 사업을 시작할지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단순히 당시 붐을 이루거나 흥미를 가지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50년간 질리지 않고 설레면서 일할 수 있을 것'이었다." (p.108) 장기적인 안목으로, 과감하면서도 치열하게 살아온 손정의 회장.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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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 우리시대의 신앙이 되어버린 '발전'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
질베르 리스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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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환경학은 들어봤지만 '발전학'이라니! 그야 발전이라는 말 자체는 수없이 많이 들어봤지만, 발전을 연구하는 학문, 즉 '발전학'이라는 것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발전학의 대가' 질베르 리스트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 발전학대학원의 명예교수다. 그의 저작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은 발전학의 정의와 역사 및 발전에 대한 담론에 대해 설명한 '발전학의 고전'이다. 발전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생소했으나, 발전학이 기초하고 있는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등의 사상은 널리 알려진 편이고,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개발도상국이었으며 여전히 '개발'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번쯤 들어봤고 고민해봤던 문제에 관한 책이라서 내용 자체는 크게 낯설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발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생성된 창조물이자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발전'이라는 용어는 이점이 많았다. 과학용어의 하나로서 이미 상당한 관록을 자랑하고 있었고, 무언가가 바람직하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먼저 전제조건들을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할 수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신화로부터 이어지는 하나의 사상적 전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으므로 그로부터 정통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p.63) 계몽주의 사상의 발현과 함께 시작된 발전의 '신화'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의 기반이 되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패권국인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발전국과 저발전국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데 기여했고, 각 국가들의 정부 내지는 정책 형성의 이념으로서 작용했다.


사실상 민족국가의 형성, 근대화, 냉전 등을 모두 거친 나라라면 발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세 가지를 모두 거친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더 많은 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이라는 경제적 반계몽주의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p.387)는 생각은 발전학계를 넘어 정치학, 경제학 등 학계 전반에서 널리 인정받는 사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발전의 신화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기정사실처럼 여겨져 온 '신화' 내지는 '신앙'을 하루아침에 없애기는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계속 이어져가고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지식이 신앙을 이겨내도록 만드는 것이며, '발전' 이후에도 삶이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p.387) 주류 경제학뿐 아니라 주류 전반, 기득권층 전반의 생각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이 왜 나쁜지, 또 다른 세상은 왜 가능하며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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